퍼스트 러브
시마모토 리오 지음, 김난주 옮김 / 해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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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러브 (2019년 초판)
저자 - 시마모토 리오
역자 - 김난주
출판사 - 해냄
정가 - 15000원
페이지 - 357p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학대



아나운서 면접도중 면접장을 뛰쳐나와 그대로 마트에서 식칼을 구매하고
그길로 아버지가 교수로 일하는 미술학교를 찾아가 여자 화장실에서
아버지의 가슴에 식칼을 꽂고 집으로 도망친 22살 미모의 여성...
화장실에 방치되다 병원으로 옮겨진 아버지는 사망하고, 집근처 둑을
배회하던 여성은 경찰에 체포된다.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극강 미모 살인사건'으로 회자되며 세간의 관심을 끌고
발빠른 출판사에서는 이 여성의 삶과 살인동기에 대해 책으로 출간하기 위해
임상 심리사인 유키에게 원고를 의뢰한다. 그리고 감옥의 면회실에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여성과 유키의 첫 대면이 시작되는데.....



확실히 시선을 잡아당기는 강렬한 도입부였다. 친족살인이라는 강렬한 소재와 함께 자신의 아버지를 찔러 죽일 수 밖에 없었던 대학생의 사연은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들었고, 그와 함께 [퍼스트 러브]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반어적 느낌이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첫 사랑, 첫 경험 같은 직관적인 의미와 함께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부모님의 사랑 같은 함축적인 의미까지...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퍼스트 러브]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불안발작 속에서 허언증이 의심될정도로 상담 내용은 허황되고 그마저도 손바닥 뒤집듯 180도로 급변하는 칸나의 증언에 칸나의 어머니는 그녀를 옹호하기는 커녕 그녀의 죗값을 따지겠다며 검찰측 증인으로 나서는 상황...어느 누구도 칸나의 말을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심리사 유키만은 그녀의 거짓된 증언과 공허한 시선 뒤에 감춰져 있는 비극의 진실을 알아챈다. 작품은 임상 심리사인 유키가 재판을 앞두고 감옥에 갖힌 칸나를 상담하면서 그녀의 불안정한 정신상태에 의혹을 느끼고 사건이 발생했던 시점을 되짚어 보면서 그녀의 과거에 있었던 끔찍하고 추악한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극도의 불안과 발작등 정신병적 증상을 보이는 죄수 칸나의 단편적 증언들을 토대로 심리사로서 그녀의 진실과 거짓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증명하기 위해 그녀 주변의 인물들을 차례로 만나며 진실을 파헤치는 모습은 일반적인 형사물과는 다른 느낌의 심리 미스터리로서의 재미와 긴장감을 선사한다.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짙은 안개속을 해메이는 기분....그 안개가 걷히는 순간....경악할 만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솔직히 친족살인이라는 소재에서 끔찍한 진실이 숨겨져 있을거라고는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지만...진실은 나의 예상을 저만치 넘어서 페이지를 넘기는 손끝이 떨릴 정도로 잔혹했다. 유명 화가인 아버지와 전업주부 엄마 사이에서 부족한것 없이 자라 아나운서를 꿈꾸던 여대생이...모든 꿈과 희망을 던져버리고 식칼을 들게된 사연....ㅠ_ㅠ 이 세상에서 가장 가혹하고 잔인한 학대...한 인간의 인생과 정신을 산산조각 내버리는 고문. 이 작품을 통해 다시금 가족의 진짜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정상적인 가족관계일때의 순기능 보다 비정상적인 가족관계에서 파생되는 역기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거짓말쟁이 살인자였던 칸나가 겪은 고통의 실체가 밝혀지는 순간 수년간 이어져온 그녀의 소리없는 비명과 외침을 외면한 비정한 어른들의 모습에서 나의 그림자를 발견한것 같은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주변의 관심과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칸나의 고통을 통해 깨달아야 하다니...



끔찍하게 무거운 이야기임에도 임상 심리사 유키의 개인적 인생사가 함께 그려지면서 작품의 텐션을 조절해주는데,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고 방황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통해 구원받는 유키와 그렇지 못한 칸나의 인생이 극명히 대조되면서 칸나의 비극적 상황이 더욱 강조된다. 그녀가 겪었을 고통을 남자인 나로선 100% 느끼진 못하겠지만, 딸 가진 아빠로선 다른 의미로 끔찍하게 다가와 굉장히 읽어내기 힘들었다. 하지만 절망속에서 생의 의지를 불태우며 고통을 극복하고 구원을 향해 한발을 내딛는 칸나를 통해 치유의 감정과 그녀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우리 주변 무관심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임을 경고하는 동시에 따뜻한 시선으로 주변의 관심을 촉구하는...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미스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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