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깊은 곳 묘보설림 5
하오징팡 지음, 강초아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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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깊은곳 (2018년 초판)_묘보설림005
저자 - 하오징팡
역자 - 강초아
출판사 - 글항아리
정가 - 14000원
페이지 - 415p



서정적인 클래식 선율 처럼 깊이 있고 아름다운 SF



2015년 '류츠 신'의 [삼체]가 휴고상을 받은 바로 다음해 2016년 휴고상 최우수중편소설 부문을 수상한 [접는도시]가 수록된 '하오징팡'의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작품을 담은 SF단편집이 국내 출간되었다. 중국의 SF라고는 [삼체]와 '리훙웨이'의 [왕과 서정시] 그리고 이 [고독 깊은 곳]까지 달랑 3편을 읽었지만, 결코 중국 SF작품의 연이은 휴고상 수상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된다. 대륙의 스케일과 깊이 있는 스토리...그리고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는 치밀하고도 우아한 서정적 감성, 고독감...현학적 문장에도 어렵지 않게 읽히는 가독성과 몰입감...때로는 황량하고 삭막한 도시문명을 디스토피아로 그리는가 하면 어느 순간에는 중국 고전 기담이 연상되는 환상적 세계가 펼쳐진다. 그녀가 그려내는 다채로운 10가지 세계에 흠뻑 취하게 되리라...



1. 접는 도시
쓰레기 처리장에서 대를 이어 재활용품을 분류하던 라오다오는 쓰레기 하치장에서 주은 아기 탕탕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금기시 되는 위험한 일에 뛰어든다. 접는 도시 베이징은 3구획으로 나뉜다. 1구역은 5백만명이 24시간을 사용하고, 2,3구역은 7천5백만명이 각각 12시간씩을 사용한다. 각자의 사용시간이 끝나면 깨어있던 사람들은 수면가스로 수면을 취하고 사용하던 도시는 접혀 들어간 뒤 다음 사용될 도시가 땅위로 드러난다. 각 구역의 왕례는 차단되 있으며 이를 어길시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구역과 구역을 다니며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의 수요는 있었으니...라오다오는 2구역에 사는 사랑에 빠진 청년의 러브레터를 전하기 위해 1구역으로 잠입하게 되는데....
- 2016년 휴고상을 받은 이 작품은 계급에 따른 확연한 격차를 접는 도시로 표현하지만 사실 지금의 이 현실도 물리적 경계만 없을뿐 작품에서 그려지는 3구역인은 평생 넘볼 수 없는 빈부의 격차는 매한가지 이리라...미래세계를 상정한 디스토피아이지만 작품에서 그려지는 소수의 고위층을 위해 죽을때까지 고된 노동과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야 하는 미래없는 개미들과 가진자들의 냉혹한 계급논리는 너무나 날카롭게 현실을 관통하여 몸서리 처지게 만든다. 현실의 폐쇄적 중국사회를 SF적 기법을 통해 이야기하는...지극히 암울하고 어두운 작품이었다.



2. 현의 노래
어느날 달의 뒷 세계에서 날아온 강철족은 지구를 침공한다. 인류보다 월등히 앞선 기술로 전인류는 반항다운 반항 한번 못해보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깊은 패배의 전운이 감돈다. 인간의 군부대와 무기시설은 압도적으로 폭격하지만 절대로 역사유적과 특히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은 강철족....그런 강철족의 습성탓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너도나도 연주를 배우기 위해 클래식 학원에 줄을 선다. 폐허가되 버린 도시에서 오로지 생존을 위해 클래식을 연주하는 전장위의 연주자들...그리고 이 연주자들은 인류의 마지막 반격을 위해 우주에 선율을 울려퍼뜨리려 한다.....
- 적군의 전투기가 폭격을 날리는 절체절명의 전장 위에서 혼신의 힘들 다해 클래식을 연주하는 소규모 악단의 비장미가 떠오르는 작품이다. 막강한 외계인에게 지배당하느냐 목숨을 끊고서라도 저항하느냐...지구와 달의 현의 노래라는 신박한 설정과 작품 전반을 휘감는 묵시록적 분위기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무척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작품이랄까...이 단편은 출판사 포스트에서도 끝까지 공개하니 SF팬이라면 꼭 찾아보기를...
포스트 링크 : http://naver.me/xdAxrVTx



3. 화려한 한가운데
작곡을 위해 영국 예술학교로 유학간 아주는 유학 3년만에 강철족이 지구를 침공하고, 강철족의 교묘한 유혹에 굴복해 강철족을 위한 음악을 작곡한다. 혼란스러워 하던 그녀는 인류의 마지막 반격 현의 노래 작전을 듣게되고...작전에 참여하게 되는데.....
- [현의 노래]의 후속단편이다. 전작에 등장하는 인물 아주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강철족이 예술가들을 건드리지 않는 이유가 이 단편에서 설명된다.



4. 우주 극장
외계에서 관찰자가 지구에 온 이후 인류는 그들의 의도에 따라 광대한 네트워크를 통해 의식의 집단 공유를 이뤄낸다. 더이상의 우주에 대한 도전은 차단되고 오로지 의식공유를 통해 집단 망상만을 지속하게 되는 인류는 폐쇄적인 사회를 형성하게된다. 그런 어느날 지구에 마지막 남은 관찰자는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여성을 따라 극장에 들어가고...그곳에서 인류의 새로운 계획을 듣게 되는데...
- 어찌보면 강철족의 연장선상에 있는듯한 단편이다. 작가가 명절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동양인이 갖고있는 명절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5. 마지막 남은 용감한 사람
각자의 목적으로 생산된 클론들의 이야기이다. 세계를 뒤바꾸려는 혁명자 클론 스제이47은 우연히 도망친 곳은 어느 무기창고...그곳엔 창고지기의 숙명을 띄고 태어난 노인이 된 클론 파노32가 지키고 있다. 자신의 혁명적 생각을 클론들을 통해 이어가길 바라는 스제이는 파노에게 자신이 탈출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설득하고, 파노는 스제이의 말에 그를 돕기로 결심하는데...
- 몇 대가 지나도 언제나 같은 사고방식을 유지하면서도 각자의 기억과 인생을 갖고 있는 독립된 주체인 클론에 관한 이야기이다. 앞선 단편들과 마찬가지로 거역할 수 없는 막강한 사회체제를 거부하고 저항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6. 삶과 죽음
교통사고 후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내가 깨어난다. 하지만 눈뜬 곳은 내가 살던 곳과 다름없지만 묘하게 다른 분위기의 곳...거리에 사람이 없고 내가 마음먹은데로 움직이는 세상....그런 내게 온 한때 사랑했던 여성 옌란은 내가 눈뜬 이곳이 사후세계라고 말한다....
- 이거슨 중국식 저승문학?...작가 '하오징팡'이 생각하는 삶과 죽음...죽음 이후의 사후세계가 그려진다. 사자의 기억에 재구성되는 도시의 겉모습은 낯설지언정 다분히 동양의 문화가 뒤섞인 윤회적 사후세계라는 정서만은 우리와 닮아있었다.



7. 아방궁
부모님의 유골을 뿌리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 아다는 우연히 작은 섬하나를 발견한다. 섬의 한가운데 엄청나게 오래된 동굴을 발견하고, 들어간 아다는 그곳에서 불사의 약을 먹고 죽지않은 진시황을 만난다. 진시황이 건넨 불사의 약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바다로 나온 아다는 해적을 만나 가진돈이 털리고, 온갖 고생끝에 사는곳 베이징과 한참 떨어진 도시에 다다르고...그곳에서 폐지와 플라스틱을 모으며 거지같은 삶을 이어나간다. 그러던중 우연히 골동품상 천왕을 만나고 그를 꼬여 배를 타고 함께 진시황이 있던 섬을 찾아간다..다시 찾은 동굴에서 진귀한 진나라 유물과 함께 목각으로 조각된 진시황 조각상을 가져온 천왕과 아다...천왕의 중계로 유물을 일부 팔아 돈을번 아다는 진시황 조각상을 가지고 자신의 집 베이징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몇일이 지나고...진시황 조각상이 아다에게 말을 걸어오는데....
- 영겁의 생을 산 진시황이 지금의 제국을 보고 통한에 빠지는 장면이 작가가 이 단편을 들어 하고 싶은 말인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언제까지고 깨어나지 않는 꿈을 꾸는듯한 풍자적 성격이 강한 판타지 작품이었다.



8. 곡신의 비상
화성의 위성 곡신성은 물로 뒤덮인 아름답고 소박한 행성이다. 그곳의 아이들은 열악한 환경이지만 모두가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안고 꿈을 키우며 커간다. 행성을 오가며 아이들을 위한 이동 도서우주선을 운영중인 랑닝은 그래서 곡신성과 곡신성의 아이들에게 가장 애착을 갖는다. 그런 랑닝은 화성 정착지에서 화성의 용수를 위해 곡신성을 폭파시킬거라는 계획을 듣고...곡신성의 사람들과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데.....
- 머랄까...배경은 SF지만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꿈을 위해 커다란 도전을 하려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에서 내가 중국영화중 가장 좋아하는 '장예모' 감독의 영화 [책상 서랍 속의 동화]가 떠오른다...
 
 
9. 선산 요양원
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온 한즈는 물리학 연구원으로 취직하고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는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연구는 별다른 진척이 없고, 가정환경 또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자주 찾는 산을 오른 한즈는 낯선 산길을 한참을 헤메다 낯선 표지판을 발견한다. '선산 요양원'....산속 깊은곳에 위치한 요양원에서 학창시절 함께 공부했던 친구 루싱을 만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신세한탄을 하니 루싱이 건넨 검은색 작은 상자...루싱은 그 상자가 정밀하게 제작된 소형 사제폭탄이라고 말하고....



10. 고독한 병실
신종질병 대뇌 착란으로 병실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차고, 간호사 치나와 한이는 야간병동을 지킨다. 병자들의 안정을 위해선 이마에 연결된 패드를 통해 뇌에 전류자극을 주어야 하는데....
- 사람들이 네트워크속 가상세계에 빠져드는 이유와 대뇌 착란의 치료법과 같아 보인다.



[접는 도시], [현의 노래], [화려안 한가운데], [우주 극장], [마지막 남은 용감한 사람]등을 보며 중국의 유구한 역사...거대한 땅덩어리...소수의 권력층을 위해 소비되는 14억 2천만의 천문학적인 수의 중국인민들...그런 공산주의체제에서 나고 자란 작가의 디스토피아SF는 다른 영미권 디스토피아와는 달리 묘~한 현실감을 풍기는 것을 느꼈다.(이건 선입견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단편집의 대부분 막강한 권력체제 혹은 넘사벽 기술의 외계인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배경의 이야기가 많은데 이 역시 현재 중국의 사회적 배경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미래가 없을것 같은 암울한 세계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품고 저항정신을 보여주는 [현의 노래], [우주 극장], [마지막 남은 용감한 사람]은 지독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것도 같다. 그와는 달리 [삶과 죽음], [아방궁]은 중국 고전 기담을 보는듯한 풍자적이고 기담적인 요소가 가득한 작품으로 앞서 보여준 SF들과는 또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비관적 현실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선산 요양원], [고독한 병실]까지 작가가 선물하는 중국 SF선물세트를 본듯한 느낌의 단편집이었다.



한국, 일본의 SF와는 다른 매력의 중국 SF는 공산주의 체제가 갖는 폐쇄적이고 억압된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방대한 땅덩어리에서 피어난 유구한 역사가 빚어낸 문화적 자부심이 뒤엉켜 기존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중국SF라고는 달랑 3편 읽었지만서도...-_-;;;) 영미권의 거대한 스케일과 닮아 있으면서도 한국인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동양적 정서가 강점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도 더 많은 중국의 SF작품들을 만나보길 기대하고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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