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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24
김유철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1월
평점 :
콜24 (2019년 초판)
저자 - 김유철
출판사 - 네오피션
정가 - 13000원
페이지 - 230p
19살 소녀의 죽음...그녀가 저수지에 뛰어든 진짜 이유는?....
이 작품은 19살 소녀의 죽음을 둘러싸고 숨겨진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변호사의 이야기이다...사회의 어두운 면을 가감없이 드러내 통렬한 비판을 가하면서 사건의 진실을 가려내는 사회파 미스터리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어디서부터 손써야 할지 모르는 고착화된 거대한 시스템에 대해 경고하고 잔혹한 현실앞에서 힘없이 스러져가는 소외된 이들을 향해 손을 내밀기를...그들의 목소리에 사회가 귀기울이기를 바라는...변화를 위해 한발자국 내딛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반 19살의 해나가 부산의 한 저수지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유력한 용의자는 해나와 가깝게 지내던 21살 선배 재석으로 지목된다. 이유는 그녀가 죽기 전날 함께 술을 마시고 근처 모텔에서 성관계를 맺은직후 저수지에 몸을 던졌기 때문이다. 동료인 인권변호사 조변호사에게 사건을 부탁받은 김변호사는 조변호사의 간곡한 요청 끝에 사건을 수락하고, 재석의 변호를 맡게 된다. 사건을 조사하면서 해나가 자신의 주량 이상의 술을 마신점, 술집에서 대리기사를 불러 집으로가지 않은점, 모텔에서 싱글 침대방 대신 트윈 침대방을 대실한점, 죽은 해나의 질에서 재석의 정액이 발견된점 등 재석의 주취강간 후 도망치던 해나가 저수지에 빠져 죽은것으로 보이는 정황증거가 발견되지만 접견한 재석의 태도를 보면서 직감적으로 재석이 범인이 아님을 느낀 김변호사는 반대로 해나에 대해 면밀히 조사한다. 그러면서 해나에 대해 은폐되어있던 사실에 서서히 다가가게 되고...이어서 사회에 드리워진 거대한 장막과 마주하게 되는데....
작품은 해나의 자살과 재석의 강간으로 인한 죽음을 사이에 두고 김변호사와 검사간의 치열한 법정공방과 함께 실적주의의 사회가 만든 대기업의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불법적 행위에 유린당한 한 소녀의 진실을 파헤치는 두종류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고된 회사생활로 힘들어 했었다는 재석의 주장과는 달리 그녀의 주변인 학교와 회사는 온통 해나의 불성실하고 비윤리적 행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서로 상반되고 엇갈리는 진술 속에서 진실과 거짓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추리적 재미가 뛰어난 작품이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은 사회면 뉴스나 기사를 통해 한번쯤은 접해봤을....하지만 그냥 흘러넘겼을 법한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 한다.
해나가 고등학교 졸업전 실습을 나갔던 곳은 대기업의 콜센터였다. 해지방어팀에서 근무하던 해나는 우수한 실적으로 회사 표창까지 받는 성실한 직원이었다. 그런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감정노동이란 단어를 콜센터에 대한 기사에서 처음 본 기억이 난다...콜센터 직원들이 일반 직종의 회사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엄청난 강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는건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중에서도 해지방어는 콜센터 부서중에서도 가장 고강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부서이다. 서비스에 불만족을 느끼고, 화가 날대로 난 상태에서 해지 신청을 하는 고객들의 마음을 돌려야 하는 부서이니...전화 너머로 쏟아지는 욕설과 불만은 콜직원들에겐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다. 배태랑도 힘들어하는 과중한 감정노동 부서에 아직 졸업도 안한 고딩 실습생들을 배치한다?...바로 여기에서 실적주의와 비용절감이라는 대기업의 비정한 논리가 적용된다...
세상을 살면서 실적이 중요치 안은 직장은 없으리라...누구나 실적에 웃고 실적에 눈물짓는다. 특히 콜센터 처럼 개개인의 실적을 정량화 할 수 있는 곳이라면 더욱 서열에 따른 비교와 불평등, 압박은 심하리라. 그런데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새내기라면? 첫 직장에 대한 꿈과 희망에 가득찬 19살 학생이라면? 몇 개월의 실습을 잘 버텨내면 정직원으로 채용 할거라고 사탕발림 한다면? 요즘같이 직장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 어려운 시기에 학생들은 열과 성을 다해 일 할것이고...기업은 싼값에 고효율을 낼 수 있는거다...ㅠ_ㅠ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의 꿈을 이용하여 노동을 착취하는 기업들의 만행...비단 작품속 콜센터에 국한되는 이야기일까?...아웃소싱에 아웃소싱으로 형편없는 급여와 복지에 불평하나 못하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위험천만한 현장에서 목숨을 내놓고 일하는 청년들...강남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화력발전소 컨베이벨트 사망사고와 작품속 해나의 죽음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 하나의 힘으로는 절대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못본척 외면 할 수는 없지 않은가...이 작품 역시 해나와 재석의 재판을 마치고 더 크고 거대한 싸움의 시작을 앞둔 김변호사의 씁쓸하고 두려운 심경을 내비치며 끝을 맺는다. 하지만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울것을 다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작은 희망감을 싹틔우게 한다.
현재 이슈가 되는 사회적 문제를 떠올리게 하고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시기적절한 사회파 미스터리였다. 자칫 고딩 소녀에 대한 감정과잉 혹은 지나친 사회고발적 성향으로 치우치는 우를 범하지 않고 미스터리와 비판의 적절한 밸런스를 끝까지 유지시켜 더욱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던것 같다. 분량은 적지만 페이지를 쉽게 넘길 수 없는 무거운 작품이다. 이 작품이 작가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이라고 하는데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이나 구성의 강약조절이 상당히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감정적이면서도 한발 떨어져 사건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김변을 보면서 '나카야마 시치리'의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를 엿봤달까...앞으로 나올 작가의 이야기가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