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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다
모리 에토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다시만나다 (2018년 초판)
저자 - 모리 에토
역자 - 김난주
출판사 - 무소의뿔
정가 - 14000원
페이지 - 256p
만남과 헤어짐...그리고 다시 만남
히키코모리가 아닌이상 세상을 살면서 수 없이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게 된다. 여기 세상을 살면서 피할 수 없는 만남과 헤어짐에 관한 여섯편의 짧은 이야기가 있다. 때로는 좋은 인연으로 때로는 나쁜 악연으로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만남이란 인연에 관한 이야기...우리의 일상에 깊이 자리한 만남이란 이야기를 통해 나오키 수상작가 '모리 에토'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나이를 먹어가며 새로운 만남 보다는 기존의 만남을 오래도록 지속하고 유지해 가는것이 얼마나 힘든지 여실히 느끼고 있다. 길던 짧던 우리 인생속 나의 기억에 남는...그런 만남은 무엇이던가...6개의 단편, 6번의 갖가지 다른 소중한 만남 속에서 기쁨과 슬픔, 애틋함과 아련함, 반가움과 아쉬움 등 일상적 행위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감정의 편린들과 마주하게 된다. 때로는 잔잔한 감동으로, 때로는 격정적 순간으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는 만남이 갖는 깊은 의미와 함께 매력적이고 독특한 재미로 다가온다.
1. 다시, 만나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첫발을 뗀 사회 초년생인 나는 소설의 삽화를 의뢰 받는다. 그렇게 출판사측 편집자 나리키요와 처음 만나고, 그의 사무적이면서 간결한 태도에 거부감이 일지만 이내 시간이 흐르면서 사무적인 태도 안에 숨겨진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된다. 어찌저찌 2년의 계약기간이 끝나고, 나리키요와의 마지막 미팅에서 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일을 잠시 접어두고 파리로 조각공부를 하러 떠난다고 말한다. 현실적인 무차별 공격을 받으리라 예상했지만 막상 나리키요는 따뜻한 격려 한마디를 남기고, 그 격려를 자양분 삼아 2년간 노력을 통해 한층 성장해 돌아온다. 하지만 아직 모자르다고 판단한 나는 입국 후 2년간 더욱 정진하여 프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실력을 갈고 닦고, 드디어 4년만에 나리키요와 새로운 프로젝트로 다시 만나게 되는데......
- 이 책의 표제작이다. 그만큼 상당히 따뜻하고 좋은 느낌의 작품이었다. 시간이 흘러 누군가와 재회했을때 내가 가졌던 기억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한 그와 마주친다면...처음엔 당황스럽고 실망스럽겠지만...달라진 모습에서 예전 나를 사로잡던 따뜻한 무언가를 찾아냈을때 재회의 기쁨은 배가 되는법이다.
2. 순무와 셀러리와 다시마 샐러드
무슨일이 생기든 내 가족의 밥상은 내손으로 차리는것을 신조로 삼는 중년의 부인...하지만 바쁜 남편, 외국으로 유학간 아들로 홀로 먹는 저녁시간이 늘어만 가고, 집밥에 대한 의지도 많이 약해졌다. 반찬 한개정도는 사먹자는 생각으로 백화점에 들른 부인은 야채 샐러드 코너에서 순무와 샐러리와 다시마 샐러드 150g을 구매한다. 집으로 돌아와 케이스를 열어보니...샐러드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이 생기고...순무를 먹고나서야 그 원인을 알아차린다. 샐러드에 들어간 순무가 순무가 아니라 일반 무였던 것이다. 순간 화가 치민 부인은 백화점 식품코너의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고, 자초지정을 설명한다. 전화를 받은 담당자라는 젊은 청년은 사과는 커녕 부인을 블랙컨슈머 취급하고...당황스럽고 화가나는 부인은 담당자에게 직접 순무를 먹어보고 자신의 말이 맞다면 꼭 다시 전화를 달라 말하고 급하게 전화를 끊는다. 째깍..째깍...시간은 흐르지만....담당자의 회신전화는 오지 않는데......
- 150g 겨우 550엔어치의 샐러드...그냥 먹을수도, 혹은 버릴수도 있다...하지만...그냥 넘길 수 없는 부인의 심정이 왜이렇게 와닿는건지...그리고 이어지는 부인과 담당 청년의 불편한 만남....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서로의 진심이 통하게 되는 마법 같은 시간....
3. 마마
남편이 회상하는 엄마는 '토베 얀손'의 무민 마마와 꼭 닮아 있다. 언제나 필요할때 도움을 주고, 자신을 살펴주는 자상한 마마....그렇게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를 낳고 살던중 소원했던 시아버지를 만나 새로운 사실을 듣게 된다. 남편의 엄마는 남편이 어렸을적 이미 세상을 떠났고 이후 새로온 새엄마와는 무척 사이가 안좋았다는 것을...남편의 거짓말에 충격을 받은 나는 바로 아이를 차에 태우고 집을 나서는데....
- 당신은 검은 손가방을 든 마마를 본적이 없나요?....우리 주변을 맴돌며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는 마마 같은 존재를 만난적이 있나요?...
4. 매듭
15년 만의 동창회...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고 참석한 나는 다시 만난 동창생들에게 용기를 내 31인 32각 릴레이 경주 당일 진실에 대해 묻는다. 당시 인기 TV 프로그램이었던 31인 32각 경주에 열혈담임은 반 전체인원으로 참가 신청을 내고, 그 날부터 연습 강행군이 지속된다. 운동신경이 없던 나는 경기에 부담을 느끼고 담임에게 하차의사를 전달하지만, 반 인원이 한명이라도 빠지면 의미가 없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참가한다. 드디어 경기 당일날...심장이 터질듯한 부담감을 앉고 출발 휘슬이 울리고...반 아이들 30명은 구령과 함께 발을 맞추어 나가는데.....
- 오해와 진실...그 한끗차이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지도 모른다. 고민하는 사이 기회는 지나갈지도 모른다. 한발 먼저 손을 내밀고 진심을 전달한다면 부질없는 오해와 곡해는 더이상 없으리라....
5. 꼬리등
완벽하고 안전한 도시라 믿고 있던 그곳에서 아이를 낳고 연인 율리아와 함께 하고 싶었던 나는 도시의 안전 문제로 율리아와 다툼이 잦아진다. 그러다 우연히 율리아가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일로 크게 다툰 후 율리아는 도시를 떠난다. 직장에서 상실감에 젖어 있던 나는 커다란 굉음에 놀라고...이 굉음이 도시 전체를 파멸로 몰고갈 죽음의 소리였음을 깨닫게 되는데.....
- 단편 속에 또 여러 단편이 있는 옴니버스식 구성의 작품이다. 개별적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지막 이 단편의 도시가 체르노빌 이란건 알겠더라...
6. 파란 하늘
아내가 죽고, 홀로 어린 아들을 키우는 나는 외갓집에 아이들 맡기기 위해 차를 몰고 외갓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고속도로 앞서 달리던 트럭에서 나의 차로 합판이 떨어지고, 합판이 차에 충돌하려는 그 찰나에 나는 수많은 기억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 죽음의 순간 일생이 파노라마 처럼 흘러간다는 이야기를 소재로 풀어낸 이야기이다. 죽음과 마주한 순간...나를 살리는건...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했던 가족이리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상적 만남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을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마마]는 환상소설이었고, [꼬리등]은 판타지적이고,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다양한 장르가 주는 이야기의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만남의 대상 또한 생각과는 달랐다. [마마]에서는 인간이 아닌 듯한 존재와의 만남을, [파란 하늘]은 죽음과의 만남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라 만남에 대한 정의까지 바뀌게 만든다. 삼십대 아저씨임에도 중년 부인의 감정을 절절하게 공감하게 만드는 [순무와 셀러리와 다시마 샐러드]나 비즈니스로 알게된 만남이지만 사무적인 미팅으로는 가릴 수 없는 상대에 대한 믿음과 배려의 위대함을 일깨우는 [다시 만나다]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 좋은 이야기였다. 초등학교 시절의 사건 때문에 15년간 괴롭던 주인공의 고민이 사실은 미성숙함에서 오는 오해였다는 것을 깨닫고 오해의 매듭이 풀리는 이야기 [매듭]은 나조차도 울컥하게 하면서 감동으로 다가오는 좋은 작품이었다. 여섯편의 단편 모두가 각기 다른 만남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고, 잔잔한 여운과 함께 오래도록 좋은 느낌을 준다.
'김난주'님의 완벽한 번역, 흥미로운 소재의 이야기들, 과잉되지 않는 적정한 선의 감정선, 잔잔한 여운과 깊은 감동....이런 보석같이 빛나는 작품, 좋은 작가와의 '만남'에 감사하고, 또다른 좋은 작품으로 '다시 만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