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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서정시
리훙웨이 지음, 한수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왕과서정시 (2018년 가제본)
저자 - 리홍웨이
역자 - 한수희
출판사 - 한스미디어
정가 - 비매품
페이지 - 447p
언어 개조를 통하여 영생을 꾀하다
언어에 담긴 서정성을 제거 한다면 어떤일이 벌어질까?...굉장히 흥미롭고 실험적인 대륙의 인문학 SF가 출간되었다. '류츠신'의[삼체]이후로 두번째로 만나는 대륙의 SF인데 [삼체]와는 또다른 방식의 스케일과 상상력을 선보인다. 언어를 통해 인간의 학살기관을 자극하여 인류대청소를 감행하려는 테러리스트와의 사투를 그린 [학살기관], 언어학자 '롤랑 바르트'의 의문의 죽음을 수사하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언어속에 숨겨진 7번째 기능을 발견하게 되는 [언어의 7번째 기능]등등...미스터리, SF 장르를 불문하고 인간의 언어속에 숨겨진 강력한 힘의 비밀을 다루는 작품은 여러차례 선보인바 있다. 이렇게 작가들이 숨겨진 언어의 힘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예일대 존 바그 교수는 언어의 힘을 측정하기 위해 한가지 실험을 한다. 두 비교군을 나누고 한쪽 집단에는 젊음과 관련된 낱말 카드를, 다른 쪽 집단에는 노인과 관련된 낱말카드를 보여준뒤 걸음속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실험결과 젊음에 관련된 단어를 본 사람들은 2초 46정도 걸음이 빨라지고, 노인에 관련된 단어를 본 사람들의 경우 2초 32 정도 걸음이 느려짐을 확인한다. 언어가 인간 무의식에 관여하면서 실제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는걸 일부 입증한 것이다. 실제로 인간 행동을 조정하는 언어의 매커니즘을 간파해낸다면...언어를 통해 세상을 휘어잡는다는 SF적 상상이 더이상 상상이 아닐지도 모르는 것이다...이 작품 역시 언어를 통해 세상을 변혁하려는 거대한 음모가 담겨있다. 작가가 그리는 2050년의 미래는 어떤 세상일까....
2050년...노벨문학상 수상 일주일을 남겨두고 수상자 위원왕후가 자살한다. 중국은 일대 충격에 휩싸이고 언론과 경찰은 자살 원인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다.
"이렇게 단절한다. 잘 지내길"
자살 직전 친구였던 리푸레이가 받은 위원왕후의 뜻모를 이메일이 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였다는 것이 밝혀지고, 리푸레이는 위원왕후의 뜻에 따라 자살 배경을 조사한다. 위원왕후의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왕후가 남긴 서정시 [타타르 기사]의 기사와 위원왕후 자신을 동일시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서정시 속 기사가 사랑했던 여성이 실존인물이었고, 의식공동체 서비스 업체 '제국'의 사내문예지 기자였음을 알게된다. 기자와 폐간된 문예지를 추적하면서 '제국'의 설립자 '왕'과 위원왕후가 깊이 연관되 있음을 알게되고, '왕'의 야심찬 계획이 서서히 드러나는데.....
SF답게 획기적인 기술로 인한 새로운 사회상이 그려진다. 그 신기술이 바로 의식공동체, 의식결정체, 이동영혼이다. 각 기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언급되지 않아 비루한 상상력으로는 자세한 개념은 알 수 없었으나 그냥 내가 느끼기로는 이 세가지 기술을 사용하여 인간의 뇌에 휴대폰을 이식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이해했다. 12세 부터 의식공동체 단말기를 뇌에 이식하고, 그때부터 이식한 사람들끼리 언제든 의식공동을 통한 통신과 대화가 가능하고(현실의 카카오톡 같은...) 각막을 통해 뇌에 저장된 장면은 언제든 검색이 가능하고(동영상 저장기능?), 공동체에 공유된 정보검색 역시 자유로운 세상이 그려진다. 더이상 단말기에 구애받지 않는 편리한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의 의식이 공유되고, 드러나게 된다면...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어떻게 되는가?...-_- 바로 여기서 이야기의 핵심 '제국'이 등장한다. 최초 SNS 서비스 업체로 시작된 IT회사 '제국'은 의식공동체를 창조하고 이를 통해 의식공동체에 접속된 인류의 모든 의식정보를 비밀리에 저장시킨다.(그렇다면...제국은 다음카카오?!!!!) 세상의 모든 정보를 거머쥔 '제국'의 설립자 '왕'은 수집한 의식정보와 의식공동체를 통하여 인류를 통합하고, 언어의 서정성을 제거하여 영생을 꾀하려 하는 것이다. 머...말이 좋아 영생이지...-_-;; '보네거트'의 [헤리슨 버저론]과 같은 하위호환된 디스토피아를 꾀하는 '제국'의 모습은 휴대폰 업체 화웨이와 샤오미의 출시 휴대폰에 멀웨어를 심어두고 중국을 넘어 전세계 사용자의 정보를 불법으로 수집하고 국민들에게 국가관리 바이오 칩을 이식하여 관리하려 하는 현실의 대륙을 빗댄것인가...아니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멸을 꿈꾸던 독재자 시황제를 디지털 시대의 '왕'으로 빗댄것인가...
사실 실체화되지 않은 언어라는 개념을 통해 전개되는 이야기라 약간 난해하기도 하고 어찌보면 허무맹랑해 보이기도 하지만 의식공동체와 언어의 개조를 통해 불멸을 꾀하는 설정 자체는 (언어의 궁극적 힘을 가정한다면) 상당히 설득력있게 다가왔던것 같다. 그와 함께 SF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것 같은 곳곳에 배치된 서정적 장치들은 점차 인간성을 잃어가며 기계화되고 획일화되어가는 세상을 향해, 작품속 '제국'의 독재자 '왕'의 계략에 맞서 주체적 의식을 가진 마지막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보루가 바로 서정성이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자살한 시인의 죽음을 파헤치면서 세계를 뒤바꿀 음모와 계략이 드러나는 추리적 요소와 집단의식공유라는 사이버펑크 요소, 더불어 언어의 개조라는 인문학적 SF요소, 인간에 대한 사려깊은 성찰까지....기존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독특하고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수 있었다. 개인의 정보통제를 일상화하고 있는 현 중국의 정세와 너무나 맞닿아 있어 두렵기까지 했던 흥미로운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