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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 않아
오키타 밧카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8년 11월
평점 :
죽고싶지만죽고싶지않아 (2018년 초판)
그림 - 오키타 밧카
역자 - 민경욱
출판사 - 비채
정가 - 10000원
페이지 - 159p
살아 남아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고마워
처음 페이지를 열고 몇 장을 넘겼을때만 해도 낙서같은 그림에 맹랑한 초딩 소녀의 학교이야기...그저 귀여운 소녀의 코믹한 학교생활을 그리는 이야기인줄 알았다. 그런데...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뭔가 이상하다....무거워....도저히 다음장을....다음 장에 그려질 소녀의 이야기를 보는것이 두려워 페이지의 무게가 점점 무겁게 느껴진다...죽고 싶지만 죽고 싶지 않은 소녀의 가슴 아프고 처절하게 현실적인 이야기....너무 참혹해 외면하고 싶지만...외면해서는 안되는 이야기...나의, 너의, 우리 모두의 이야기니까. 힘들더라도 끝까지 봐야만 하는 이야기.... ㅠ_ㅠ
학습장애와 ADHD(주위력결핍과잉행동장애), 아스퍼거 증후군 등등 발달장애로 남들보다 조금 느린 작가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그린 자전적 작품이다. 언제나 자신만의 루틴을 따라야 마음이 편하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소녀는 의무교육이라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초등학교를 진학하고 평범한
타인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당연히 규칙과 약속이 존재하는 학교생활을 적응하는데는 어려움이 따르고...잇따른 돌출행동으로 학급전체에 피해를 주기에 이르고...누구보다 더 많은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했던 소녀에게 선생님의 자애로운 사랑대신 듬뿍 받은 것은 폭력과 학대라는 이름의 회초리였다...
79년생인 작가가 초등학교에 다닌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나 역시 국민학교를 다녀서인지 만화속 학교생활이 쉽게 그려 지는것 같았다. 내 학창시절을 다시금 회상해도 한반에 2~3명의 발달장애아는 꼭 함께 했었다. 중증의 장애아는 따로 전담 학급을 만들어 관리하였고, 다소 가벼운 정도의 아이들은 함께 수업을 받았는데, 만화처럼 가끔씩 친구를 놀리는 경우는 있었지만 지금의 이지메처럼 심하진 않았고, 선생님 또한 숙제나 학업성취도 쪽으로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아 다행히 작품에서와 같은 심각한 갈등은 없었던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당시 선생님은 교권이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무장하여 학부모도 선생님의 눈치를 볼정도로 권위적 존재였고, 채벌이란 이름아래 학대에 가까운 폭력도 서슴치 않는 공포의 존재였다. 그런데 작품을 보니 옆나라 일본도 우리와 별반 다를게 없더라. 당시 발달장애에 대한 몰이해는 소녀에 대한 반항으로 비춰졌고...처음엔 가벼운 터치로 시작된 채벌이 어느새 고막이 찢어져 나갈 정도의 폭력으로 확대되가는 과정은 안타까움을 넘어서는 분노의 감정을 폭발시킨다. (나의 중학교 시절엔 공부잘하는 아이를 제외하곤 누구나 가릴것 없이 쳐맞고 고막도 터지고 뼈도 부러지고 그랬었다...ㅠ_ㅠ) 그리고...고난의 클라이막스...버티고 버티던 소녀가 자살을 생각하게 만드는 최악의 학대에 소녀와 함께 나의 정신까지 무너져 내린다....
힘들고 지난한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고...죽고 싶지만 결국 죽고 싶지 않아 삶을 택한 소녀의 선택이 지금의 발달장애아들에 대한 이해와 교내 폭력에 대한 인식 개선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값진 결과물을 탄생시켜준 것에 대해 함께 싸워주지 못해 미안하고 살아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중학교를 졸업한 소녀에게 힘들고 지옥같은 시간을 참아내고 이제는 자신의 길을 찾아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말하는 미래의 자신이 건내는 한마디는 인고의 시간을 극복하고 희망을 향해 나아간 작가가 우리들에게 보내는 메세지이자 충고로 가슴깊이 새겨진다.
이 작품을 보면서 [도그맨]이 떠올랐다. 작가 '대브 필키'는 어릴적부터 앓아오던 ADHD와 난독증이란 장애 때문에 학업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위 문제아로 분류되었다. 어릴적부터 수업은 듣지 않고, 히어로 낙서를 그려댔고, 성인이 된 후 그 낙서들을 통해 [도그맨]을 탄생시키고....그 결과 정식 만화가로서 칼데콧 상을 수상하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잡게 된다. 결국 학창시절 남들보다 조금 느릴지는 모르지만 언젠간 자신만의 길을 찾게되고,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성급한 일반화가 아니길 바란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시행착오를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기만 해도 충분하다.
작품을 보고 나면 이 단순하고 어설픈 그림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을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겉으로 보이는 것이 그 사람에 전부는 아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묵묵히 피멍과 상처를 숨긴채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고요한 비명을 지르고 있을 수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작품이었다.
아프다고 말조차 할 수 없던 소녀의 처절한 투쟁기이자 희망을 향한 기약없는 기다림...하지만 살아 남아 이렇게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서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