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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 레인 ㅣ 데이브 로비쇼 시리즈
제임스 리 버크, 박진세 옮김 / 네버모어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네온레인 (2018년 초판)_데이브 로비쇼 시리즈
저자 - 제임스 리 버크
역자 - 박진세
출판사 - 네버모어
정가 - 14000원
페이지 - 349p
파도 파도 끝없이 이어지는 부패의 구렁텅이 속으로
나는 처음 듣는 작가에 처음 보는 시리즈지만 이름만 들어보던 '퓰리처 상 후보'에 '에드거 상 2회', 'CWA 골드대거'를 수상한 실로 엄청난 작가의 대표시리즈인 '데이브 로비쇼 시리즈' 첫번째 작품이 출간되었다. 도시의 어둠을 밝히는 화려한 네온사인 뒤편 추적이는 비로 진창이 되버린 뒷골목의 음울하고 찌들린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작가만의 독특한 시적(?) 은유로 그려내는 작품 [네온 레인]이다.
한때 알콜중독으로 나락까지 추락했었던 경위 로비쇼는 무죄를 주장하는 사형수의 면회중 감옥에서 라틴계 조직이 로비쇼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말을 전한다. 로비쇼는 몇 주 전 낚시를 하다 늪에서 발견한 흑인 여성의 시체를 떠올리게 된다. 왼쪽 팔의 6개의 주사자국과 오른쪽 팔의 1개의 주사자국...타살을 의심하는 로비쇼는 관할 경찰서에 여성시체의 부검보고서를 요청하지만 깔끔하게 무시당하고, 타지역 형사는 관심을 꺼달라는 차가운 대답만 듣는다. 의심은 더욱 깊어지고 흑인 여성에 대해 수사하던중 여성이 라틴계 '세구로'가 운영하는 갱단의 대저택에서 조직원들의 성노리개로 이용되었다는 진술을 듣고 파트너 '클리트'형사와 함께 '세구로'를 체포하기 위해 그의 집으로 쳐들어간다. 하지만 '세구로'의 가드와 '클리트'의 마찰로 우발적 총격이 벌어지는데....
한 여성의 죽음으로 시작된 사건은 라틴 갱단, 연방수사관, 불법무기 거래, 거물급 장성 등등등...파도 파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불법과 부패의 콤비네이션으로 암흑의 구렁텅이를 헤메는 기분을 선사한다. 천신만고 끝에 단서를 잡았다 싶으면 누군가에 의해 인멸되버리고, 목숨의 위기 속에서 결정적 증인을 찾아내면 바로 다음날 시신으로 발견되버리는...실로 열혈 수사관 로비쇼와 교묘하게 꼬리를 잘라내 버리는 우두머리와의 처절한 대결이 숨막히게 펼쳐진다. 그런 백중지세에서 빛을 발하는건 역시 주인공 로비쇼이다. 희끗 희끗 바랜 머리로 '새치'라 불리는 로비쇼는 월남전의 아픈 기억을 숨긴체 머리보다는 뜨거운 심장이 시키는대로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흑인 여성의 죽음의 비밀을 파헤친다. 으레 여타 경찰 스릴러의 히어로들과 마찬가지로 독단적이고, 고독하며 다혈질의 한 성질 하는 캐릭터 라는점은 비슷하나 다른점은 자신의 동료에겐 굉장히 관대하고, 경찰임에도 법보다는 권총이 혹은 주먹이 먼저 올라가는 터프함, 그리고 특유의 거칠면서도 서정적인 입담이 차별성을 부여한다.
"나도 당신 같은 입장에 놓인 적이 있습니다. 녀석들이 당신 똥구멍을 그냥 두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챙길 수 있는 건 불알뿐이죠. 그건 괜찮지만 잠시 후면 그것도 작은 구슬 크기로 짜부라질걸요."
뭔가...저속하면서도 창의적인 막말들이 작품속 대화의 절반을 차지 하는데, 문장마다 다르게 변주되는 '똥'들의 향연은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물론 로비쇼의 참담한 내면을 대변하듯 건조하고 암울한 색깔의 서정적인 시적 은유가 가득한 작품인데도, 내 눈엔 똥덩어리 같은 저속한 대화들이 더 들어오니...ㅎㅎ 일촉즉발의 심각한 분위기에서 경찰과 범죄자들의 신박하고 경박한 드립대결 만으로도 저질쾌감을 경험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어쨌던...경박한 드립과는 대조적으로 작품 자체는 굉장히 무거운 암울 그 자체다. 우정을 잃고 가족을 잃는등 진실을 밝혀 내기 위해 로비쇼가 치르는 대가는 너무가 가혹하기만 한데, 그럼에도 혈혈단신으로 복잡하게 엮여있는 거대한 어둠을 몰아내기엔 역부족이니...말미에 (히어로로서는 흔하지 않은)모든것을 포기하고 내려놓는 로비쇼의 처참하고 참담한 심정이 너무나 와닿는다. 굉장히 섬세한 주인공의 감정이 살아있는 강렬한 하드보일드 랄까...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감성이 충돌하며 회오리 치는 하드보일드 누아르 작품이었다. 반면 그렇게 힘겹게 수사했지만 우두머리의 부제랄까...모든 음모의 배후 조종자에 대한 단죄 없이 애매하게 끝나는 결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무려 시리즈로 21편이나 나온 대작이니...지금의 아쉬움은 다음편에서 시원하게 날려 주리라 생각하면서...거침없이 다음 후속작이 출간되길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