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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부서진 밤
정명섭 지음 / 시공사 / 2018년 10월
평점 :
달이부서진밤 (2018년 초판)
저자 - 정명섭
출판사 - 시공사
정가 - 13400원
페이지 - 303p
시대극과 좀비의 절묘한 조화
흥행여부는 모르겠지만 조선시대와 좀비를 융합한 퓨전 시대극 [창궐]이 상영중이고, 고구려 양만춘 장군과 당의 치열한 전투를 담은 영화 [안시성]이 성황리에 극장상영을 내린 이시기에...장르문학계에도 영화판의 새로운 시도에 발맞춰 참신한 발상의 좀비소설이 출간되었다. 전국의 사적을 직접 찾아가 방문하는 문화 유적 답사가이자 [붕괴], 좀비 앤솔러지 [그것들]에 참여하며 자신만의 작품활동을 펼치는 전업 소설가로 활동중인 작가가 자신의 전문 분야인 역사와 좀비라는 이질적 소재를 혼용하여 새로운 괴이 시대극을 탄생시켰다. 국사시간에나 봤던 삼국시대 고구려의 역사와 웨스턴 몬스터의 대명사 좀비...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이야기를 합치니 진부함은 가고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때는 고구려 말기...거듭된 당나라의 침략에 결국 고구려는 패망하고...고구려의 수장이던 세활은 무너진 고구려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안시성 함락 후 흔적이 묘연한 양만춘 장군을 찾아 나선다. 우연히 요동성에서 점쟁이 노파에게 양만춘 장군이 망월향에 있다는 점궤를 접하고, 소수의 정예원들을 데리고 망월향으로 향한다. 갖은 우여곡절 끝에 망월향에 이르지만 근처를 지나던 말갈족에게 발각되어 안개가 자욱한 계곡으로 도주한다. 뒤에는 말갈족이, 앞에는 깊은 안개속 인간이 아닌 무언가와 마주한 세활과 부하들...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양만춘 장군은 어디에 있는지...안개속에 숨어 잔혹하게 인간을 공격하는 정체불명의 그것은 무엇인지...정체불명의 기이하고 괴이한 사건들이 숨가쁘게 이어진다....
작품은 세활이 망월향 계곡에 들어가 갖히면서 안개속 좀비들과 겪는 기괴한 일들과 어린 세활이 연씨가문에 가노로 들어가 칼을 잡고 나서부터 차츰차츰 고구려의 장수로 여러 전장을 거치게 되는 두가지 이야기가 교차되며 전개되는 구성이다. 앞선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좀비들과는 다른 설정의 좀비가 등장하여 유혈과 오장육부를 날리는 좀비 호러물로, 뒷 이야기는 역사속 실제 전쟁속 (다른 의미로) 유혈과 오장육부가 난무하는 전투장면을 그리며 서로 다른 개성의 재미를 선사한다.
고구려의 실존했던 장수 세활을 주인공으로 그가 겪어온 수라장들이 소설로 옮겨져 당과 고구려의 처절했던 전장의 모습이 그대로 머리속에 그려지는데, 수적 열세에도 패기 하나로 무장했던 고구려인들의 기개와 기상이 그대로 전달되어 가슴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얼마만큼이 리얼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존했던 인물이 등장하여 치르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전투들은 생생한 현장감을 불러일으켰을 뿐만아니라 얼마전 봤던 영화 [안시성]의 장면들이 소설의 장면으로 자동변형되어 파노라마 처럼 플레이 되는 신박한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안시성]을 보고 이 작품을 읽으면 재미가 두배라는 말이다.-_-) 결과적으로 역사전쟁소설에 좀비를 끼얹졌달까...전쟁이 7이라면 좀비는 3 정도의 비율로 역사소설 쪽에 약간 더 무게가 실린 구성이다.
어쨌던 수십년간 이어져온 전쟁으로 폐허가 되버린 나라와 그로인해 고통받는 백성들의 참상과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좀비가 되어 전쟁을 이어가는 저항정신은 전쟁으로 시작해 전쟁으로 끝난 고구려라는 나라에 대해, 중국의 침략에 정면으로 맞서 한반도를 지켜낸 그들의 투혼에 대해 숙연한 마음이 들게 만든다. 양만춘의 별로 개연성 없는 뜬금없는
정체나 갑자기 사라져버린 망월향의 노인과 아이들, 제목에 비해 그닥 영향을 못준 달이 부서진 밤 등 줄기차게 달리다 힘이 빠져버린듯한 후반부는 아쉬웠지만 퓨전 시대극으로서 역사소설로나 좀비소설로서 모두 만족스러운 재미를 주는 작품이었다. 분명 기존의 익숙한 도시형 좀비물과는 다른 색다른 배경이 주는 신선함을 갖고 있는 역사호러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