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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왕이 온다 ㅣ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평점 :
보기왕이온다 (2018년 초판)
저자 - 사와무라 이치
역자 - 이선희
출판사 - 아르테
정가 - 14000원
페이지 - 384p
오랜만에 돌아온 정통 오컬트 호러의 진수
나도 봤다!!! 지금 한창 떠오르는 정말 HOT한 공포호러의 진수!!! [보기왕이 온다]!!!!
재작년 [곡성]의 흥행을 시작으로 갑자기 TV안방을 장악한 호러 열풍에 발맞춰 장르문학계에도 걸출한 오컬트 호러 신작이 출간되었다. 장르 작품을 비평하려다 자신이 직접 써보겠다는 생각으로(이건 마치 '김치찌개 식당이 맛없이 내가 차린집'과 같은것 아닌가!!) 작가가 된 '사와무라 이치'의 첫번째 장편소설 이자 출간 즉시 열도에 큰 화제를 부르며 제22회 일본호러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올해 초에 출간됐던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 살] 이후로 장르문학계에 이렇다 할 오컬트 호러 소식이 없어 아쉬웠는데, 이번 작품의 출간으로 호러 매니아로서 특히 오컬트 공포 덕후로서 반갑기 그지 없는 작품이다.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 살]이 오컬트와 SF를 접목한 퓨전호러라면 이번 신작은 오컬트의 초심으로 돌아간듯 정석의 공포를 보여준다. 뭐랄까..'스즈키 코지'의 [링]을 처음 접했을때의 충격과 공포랄까...
딩동...
울리는 초인종...
집안에는 치매로 누워있는 할아버지와 어린 소년 히데키뿐...
'누구세요?'
현관으로 달려나간 히데키에게 문밖의 '그것'은 묻는다.
'엄마 계십니까?'
'시즈씨는 계십니까?'
'히사노리 씨는?'
'긴지씨 긴지씨 긴지씨는 계세요? 안에 계시나요?'
긴지...누워계신 할아버지를 찾는 불쾌한 목소리와 함께 문밖 뿌연 유리문에는 기괴하도록 길다란 손가락을 가진 손바닥 두개가 붙어있다.

'돌아가!!!!'
치매로 정신이 없는 할아버지의 일갈 이후 문밖의 '그것'은 돌아가고...
시간은 흘러 어릴적 공포스러웠던 기억이 흐릿해진 어른의 히데키는 아내 '가나'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2살난 딸 '치사'를 키우는 가장이 된다. 하지만 히데키의 주변에 알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하면서 어릴적 겪었던 문밖의 '그것'에 대한 공포가 떠오른다. 그대로 있다간 가족을 지킬 수 없음을 직감한 히데키는 사방으로 괴이한 존재에 대해 수소문하고, 민속학 교수인 동창을 통해 '그것'이 보기왕이라 불리며 오래전부터 전승되오는 민간괴담이란 것을 알게 된다.
딩동. 초인종이 울린다.
대답하면 안 된다. 문을 열어줘도 안 된다.
절대 안으로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
보기왕이 온다.
보기왕이 산으로 데려간다.
집안에 붙여두었던 부적이 갈기갈기 찢기고, 아내와 아이가 공포에 질린 모습을 본 히데키는 가족을 위해 보기왕과의 결판을 결심하고, 영매사 마코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서서히 다가오는 결판의 시간.....
문밖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그 부름에 답하는 순간 나의 영혼이 문밖의 존재에게 홀린다는 이야기는 사실 꼬꼬마 시절에 봤던 어린이 괴담집에서 처음 접했을 정도로 흔하다면 흔한 이야기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누군가 세번 이름을 부르거든 절대로 답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으니 국경을 떠나 널리 알려진 괴담을 모티브로 했다는 말인데, 익숙한 괴담의 변주에도 이렇게 모골이 송연할 정도의 공포심을 주는건 우리가 어릴적부터 기억속에 각인된 문밖의 존재, 타인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고 극대화 시키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집을 침범하려는 존재에 대한 공포..유년시절 가게에 나가시는 부모님이 내게 절대로 모르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그 말 속에서 그것이 인간이던 인간이 아니던 누군지 모를 손(guest)에 대한 공포심을 은연중에 전해주었고, 이 작품은 그 잊혀진 기억을 일깨워 준다고 생각한다.
보기왕에게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방법을 묻는 히데키에게 영매사 마코토는 이렇게 말한다.
'아내와 가족들에게 잘 대해주세요...'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과 밝혀지는 진실들...솔직히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보기왕이 단란한 히데키의 가정에 찾아온 이유....
'그렇게 엄청난건 부르지 않으면 오지 않아...'
여기서 다시 평범하게 살아가는 화목하고 단란해 보이는 가정의 이면에 주목하게 된다. 나의 가정은 어떤가...항상 화목하고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던건 아닐까?...아내를 배려하고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로 보이려 노력하던 내 모습뒤로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아내와 심하게 다투던 모습...부부싸움에 공포를 느끼고 울던 아이들의 모습...업무 스트레스에 퇴근하고 놀자고 조르는 아이들에게 짜증내던 나의 모습...이런 어두운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가고 이내 우리집도 불화와 원망섞인 마음들이 보기왕을 부르고 있었던건 아닌지 생각하게 만든다. 뒷통수를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굳건하고 탄탄한 가족앞에 악귀따위가 들어올 여지는 없다. 굳건한 가정에 불화라는 작은 균열을 파고드는 원념이 쌓이고 쌓여 보기왕이라는 강력한 악마를 불러낸다. 물론 작품에서 비춰지는 극단적 가족의 모습은 아니지만, 일상적 행위가 야기하는 공포와 절망의 연쇄작용이 내겐 더없는 공포로 다가왔다.
작가 후기에서 이 작품을 쓰면서 요괴, 귀신, 이야기, 괴담, 만화, 소설, 게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를 참고하여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보기왕의 기원을 따라가다 보면 일본의 2ch에서 인기를 끌던 괴담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읽어선 안 되는 이야기]에 실려있는 '마비키'와 '쿠네쿠네'이야기이다. 스포가 될것 같아 언급하기 힘들지만 '마비키'는 일본에 실존했던 풍습으로 그 당시의 어렵던 사회상을 반영하기에 보기왕의 탄생 역시 같은 선상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들게 하는 이야기 같다. 또한 후반부 무녀와 보기왕의 본격적인 결판은 강렬한 퇴마액션을 선보이면서 영화나 게임을 보는듯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의 균열을 찢어발기면서 심리적으로 옥죄는 심리공포에 신체 절단이라는 하드고어틱한 장면들, 신묘한 능력을 사용하는 영능력자의 액션까지 공포 호러가 주는 장르적 재미를 총망라하는 이유는 이 같은 다양한 매체의 흥행요소들을 적절히 버무려 놨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외국의 악귀 '부기맨'에서 따온 '보기왕'이란 이름 때문인지는 몰라도, 동양의 [컨져링]을 보는듯한 기분이었다. 분명 비슷한 클리셰를 사용하고 예측이 되는데도 더럽게 무서운...ㅠ_ㅠ...역시 귀신하면 동양귀신...그중에서도 일본귀신이 최고라는걸 다시 한번 느끼면서 정말 오랜만에 극한의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걸작이 나온것 같아 기쁘다. 더불어 12월에 일본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온다]가 기다려진다. 후반부 무녀 VS 보기왕의 대결에 특유의 일본식 뽕끼만 빼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것 같은데..일단 예고편은 잘 뽑아놨던데...설렘반 걱정반이라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