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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의 레퀴엠 ㅣ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3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8월
평점 :
은수의레퀴엠 (2018년 초판)_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3
저자 - 나카야마 시치리
역자 - 이연승
출판사 - 블루홀식스
정가 - 15000원
페이지 - 406p
살의와 선의 한끗차의 진실
내는 족족 최고의 반전과 최고의 재미를 선사하는 작가 반전성애자 '나카야마 시치리'의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신작이 출간되었다.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속 피아노 여선생과 미코시바 레이지가 접점이 있다는걸 이웃 블로거님을 통해 알게되고 관심가는 시리즈였는데, 세번째로 소개되는 이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미코시바 레이지와 만나게 되었다. 타인의 범죄를 변호하는 사회에서 엘리트에 속하는 변호사지만 유년시절 소녀를 참혹하게 토막내는 살인을 저지르고 한동안 의료소년원에서 있었던 과거사를 안고 있는...실로 독특한 이력의 캐릭터에 흥미가 동하고 승소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정하고 냉철한 성격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엄청나게 유능한 악덕 변호사....그가 만난 최악의 의뢰인...내내 숨막히는 긴장감과 치명적 반전이 넘치는 법정미스터리가 펼쳐진다.
자신의 과거가 들통나 시체 배달부라 불리며 공포와 지탄의 대상이 되버린 미코시바는 우연히 노인 요양원 백락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뉴스를 접하고 깜짝 놀란다. 요양사를 죽인 가해자가 자신이 어릴적 의료소년원에 있을때 자신을 변호사의 길로 이끌었던 교관 이나미였기 때문이다. 친아버지 보다 더 믿고 존경했던분이 충동에 의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미코시바는 그 길로 이나미가 임시감금되 있는 경찰서로 찾아가지만 이나미는 미코시바의 접견요청을 거절한다. 우여곡절 끝에 미코시바는 백락원 살인사건의 가해자 이나미의 변호사로 배정받고 이나미의 변호를 위해 사건청취를 하지만 이나미는 일체의 변호를 거부하고 자신이 지은 죄를 받고 속죄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나미의
태도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미코시바는 백락원을 직접 찾아가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그곳에서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는데...
사백여 페이지의 분량중 절반은 미코시바가 백락원 살인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변론을 준비하는 과정이, 나머지 절반은 본격적인 재판이 그려진다. 재판 과정이 너무 길어져도 루즈한 느낌이 들고, 변론 준비 과정이 길어지면 법정 미스터리라 부르기 애매한데 정확히 절반으로 나눠버리니 법정 미스터리로는 꽤나 적절한 안배라고 느껴진다. 그만큼 사건에 대한 탄탄한 사전 배경으로 이해를 돕고 본격적인 재판에서 미코시바가 준비한 회심의 일격이 적재적소에 터져주어 반전의 쾌감을 안겨주니 검찰과 변호인의 엎치락 뒤치락 역동적인 법정공방 속 꽉차있는 긴장감으로 롤러코스터를 타게 만드는 작품이자 어려운 법률 용어도 정독하게 만드는 집중력을 발휘하게 하더라.
이번 작품에서 핵심논쟁이 되는 소재는 위난상태에 빠진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법익을 침해해도 무효로 인정하는 '긴급피난'이라는 법령이다. 작품의 프롤로그에서 그려지는 이야기,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대형선박 블루오션호가 바다 한복판에서 침몰한다. 선장을 포함한 선원들은 서둘러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해버리고 한 남성은 배가 침몰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여성에게 폭력을 가해 구명조끼를 빼앗아 입고 바다에서 구조되지만 여성은 사망한다. 이후 이 사실이 밝혀지면서 남성은 매스컴의 지탄을 받으며 재판에 회부되지만, 타인의 법익을 침해했지만 자신의 목숨이 걸려있는 긴급상황이었기에 '긴급피난'이 적용돼 무죄판결을 받게된다. 당연히 이 '긴급피난'이 백락원 살인사건의 복선으로 작용될 거란건 누구나 예상가능한 일일테고...이 논란의 법이 작품에서 어떻게 엮이면서 아이러니함과 탄식을 자아내는지가 이 작품의 핵심포인트라 생각된다. 추가로 소설속 한국선박 블루오션호의 침몰은 우리의 기억속에 각인된 침몰사고를 작가가 염두에 두고 쓴것인양 너무나 흡사하여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되면서 씁쓸하게 만든다...
어찌됐던....작품은 각자가 살아가며 목표로 하는 의지를 이루기 위해 모든것을 바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긴급피난으로 살아남은 남성, 그리고 그에의해 죽음을 맞이한 여성....시간은 흐르고 흘러 상황은 다르지만 다시금 생존을 위한 급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그속에서 각자의 신념으로 행해지는 결단들...각자의 뼈아픈 사연속에서 서로의 신념을 향한 행동들은 엇갈리고, 자신이 저지른 죄를 받고 속죄하려는 자, 유년시절 저지른 실수를 무죄로 받아내어 속죄하려는 자의 상반되는 신념의 충돌...그 속에서 원죄의 무게와 속죄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살인죄를 인정하고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는 의뢰인 이나미와 살인죄를 인정한 의뢰인을 무죄로 판결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미코시바의 노력...정말로 가장 껄끄러운 피고인을 변호하게 된 변호사의 피나는 노력이 숨쉴틈 없이 펼쳐진다. 법조인이 아닌 일반작가로서 이렇게 생생하고 현실적인 법정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것에 놀라웠고 중간중간 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꼬집어내는 미코시바의 통렬한 시선도 작품의 매력을 높이는데 일조한것 같다. 무겁고 진중한 주제와 함께 재미까지 잡아낸 최고의 법정미스터리 작품이 아닌가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