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기담
전건우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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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기담 (2018년 초판)
저자 - 전건우
출판사 - 캐비넷
정가 - 비매품
페이지 - 428p


한평짜리 곰팡내 나는 작은 공간에서 꿈꾸는 고시원 판타지


다리도 뻗지 못할 정도로 좁디 좁은 한평 남짓의 공간...얼굴 하나 못내밀 정도의 창문 방으로 가려면 3만원을 추가해야 하지만 그마저도 부담인 사람들에겐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독방에서 지내야만 하는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공간...바로 고시원에 거주중인 인간군상들의 이야기...[고시원 기담]이다. 국가의 녹을 받기 위해 수년을 두꺼운 책과 씨름하며 준비하는 고시생들의 피땀이 깃든곳이자 일용직 노동자들이 잠시나마 고단한 몸을 뉘여가는 곳...고시원엔 우리내 고달픈 인생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그런 고시원에 거주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생을 향한 고군분투와 희대의 연쇄 살인마와의 한판 승부. 그리고 뜻모를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녹아있는 기묘하고 신묘한 이야기....고시원 판타지가 펼쳐진다.



변두리 시장...미로 같은 시장골목 속에 낡고 허름한 고문 고시원이있다. 원래는 연탄불 생선구이가게가 밀집한 지역이었으나 화재사건으로 상인과 손님들이 불에 타죽는 사고가 발생하고...그 잿더미 위에 건달이 운영하는 나이트클럽이 들어서지만 역시 이유를 알 수 없는 끔찍한 사고로 인하여 금새 문을 닫는다. 이후 나이트 클럽을 일부 개조하여 공문 고시원이 들어서고...공의 'O'이 비바람에 날아가고 고문 고시원이 되었다. 수많은 한맺힌 사람들의 한이 서려있는
고문 고시원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치열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데.....



1. 303호 : 그 남자 어디로?
공무원 시험준비만 몇해째...쪽방에서 계속되는 생활에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303호 홍은 우연히 옆방에서 들려오는 노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얇은 벽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에 화가 나기 보다는 고독감을 씻어주는 안도감이 든 홍은 용기내 옆방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그렇게 303호 여성 홍과 304호 남성 권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매일 소근대며 이야기를 나누던 홍은 권이 궁금해져 총무에게 304호에 사는 사람을 물어보지만, 총무는 304호가 비어있다고 말하는데....그렇다면 304호의 권은 누구인가?....
- 본격 기담에 걸맞는 기묘한 이야기



2. 316호 : 오케이맨
필리핀에서 취업차 한국으로 온 깜은 힘겨운 한국생활에도 특유의 긍정적 성격으로 '괜찮아요'를 연발한다. 피혁공장에 다니던 깜은 그날도 괜찮아요를 말하며 가죽 염색을 위한 화학용액이 가득 담긴 수조위 나사를 아슬아슬하게 조이고...불운하게도 실수로 수조에 빠져버린다. 독성 용액에 몸을 흠뻑적신 깜은 병원에서 깨어나고...무사히 퇴원한 깜에게 신기한 능력이 발현되는데.....
- 그야말로 영화 [염력]이 떠오르던...외노자판 염력이다.



3. 313호 : 취업 무림 패도기
무술 도장의 아버지 아래서 협객의 정신과 함께 무술을 연마한 편은 취업을 위해 서울로 올라와 취업을 위해 노력하지만 아흔 아홉번의 낙방속에 좌절감을 경험한다. 우연히 고시원 근처 책방에서 주인에게 행패를 부리는 청년들을 무술로 제압한 편은 책방 주인이 왕년에 S그룹 인사팀장이었다는 말을 전해듣고 책방 주인을 사부로 모시고 취업 비책을 전수 받게 되는데.....
-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혈연, 지연, 학연 3대 묘수를 당할 수 있으랴...-_-;



4. 311호 : 매일 죽는 남자
빚에 허덕이던 최는 가족을 버리고 고시원에 숨어든다. 먹고는 살기 위해 알바를 구한 곳이 스트레스 해소방에서 손님의 상대역으로 쳐맞다 죽는 알바이니...플라스틱 방망이로 얻어맞지만 고객들의 생생한 분노를 그대로 받는일은 상당한 심적 스트레스가 따른다. 그중 얼음장으로 통하는 손님은 실제 살인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세부적이고 현실적인 상황 설정과 거침없는 손길로 가상 살인을 저지르는데, 우연히 뉴스를 보던 최는 깜짝 놀라고 만다. 뉴스속 살인자의 살해방법이 살인사건 발생 전날 얼음장이 최에게 가했던 살인 방법과 일치한 것이다....얼음장이 살인마?.....
- 이 단편에서 잔혹하고 경악했던 실제 고시원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역시...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끔찍한 현실....



5. 317호 : 사투 소녀
일류 킬러 아빠 아래서 혹독한 킬러 수련을 받았지만 살생이 싫어 집을 뛰쳐나온 고딩소녀 정은 병든 아빠를 위해, 죽여 마땅한 악인을 처단한다는 보스의 말에 넘어가 마흔아홉번 사람을 죽인 일급 킬러로 생활한다. 마지막 쉰번째 의뢰로 용한 점쟁이를 처리하라는 명령을 받은 정은 점집으로 처들어 갔으나 초딩 소녀가 점쟁이라는 사실을 알고 살의를 상실한다. 처음으로 보스의 명령을 어기고 점쟁이 소녀 란을 살리기 위해 함께 도망친 정은 얼마안가 보스의 부하들에게 꼬리를 잡히고 위기에 처하는데......



6. 310호 : 뱀 사나이, 얼음장, 그리고 괴물
303호 홍을 납치한 납치범, 스트레스 해소방에서 최를 지명하여 살인 예행연습을 하고 실제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범, 그리고 악마에게 영혼을 판 살아있는 괴물....그의 과거가 공개된다.....



7. 유령들
연쇄살인범과 고문고시원 사람들의 최후의 한판승...그리고 먼저 죽어간 원혼들......



각 단편은 개개의 고시원 사람들의 기상천외한 사연을 풀어가면서 대망의 연쇄살인범과 마지막 대결을 향해 나아가는 옴니버스식 구성을 이룬다. 각 단편의 줄거리를 보면 알겠지만 천차만별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머라 한가지의 장르로 규정짓기 어려울 정도이다. 303호는 딱 기담의 이야기를, 316호는 블랙코미디, 313호는 코믹 무협 현실 잔혹극, 311호는 잔혹 스릴러, 317호는 킬러 액션활극, 310호는 오컬트 공포, 마지막 유령들에선 영계 판타지 액션?...이처럼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어주니 한권의 책을 읽지만 여러 장르의 작품을 읽는듯한 느낌마저 들게 만든다.



고시원에 깃든 악령 VS 허름한 고시원이지만 사람의 온기를 간직하고 사는 이시대의 소시민들(고딩킬러는 제외하고...)의 대결을 통해 가진것도 없고 각박한 세상, 현실은 이처럼 처절하지만...그럼에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다...라고 위로해주는 느낌이랄까...고시원 괴담이 아닌 기담이라 지은 이유는 이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한평짜리 공간에서 벌어지는 기묘하고도 환상적인 고시원 판타지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비현실적이지만 각 단편들이 주는 매력
덕분에 시간가는줄 모르고 일독했다. 쉽게 읽히기도 하고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들을 이렇게 흥미롭게 펼쳐놓고 끼워맞추며 떡 주무르듯 주무르는것도 작가의 능력이리라. 등골 서늘한 오싹한 정통 괴담을 생각한 사람들에겐 실망스럽겠지만 이 다양한 장르의 단편중 하나쯤은 취향에 맞는 이야기가 있을테니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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