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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해리오거스트의열다섯번째삶 (2018년 초판)
저자 - 클레어 노스
역자 - 김선형
출판사 - 미래인
정가 - 16800원
페이지 - 624p
역대급 타임루프 SF
죽으면 모든것이 끝나 버린다. 리모컨으로 전원을 꺼버린 TV 브라운관이 퍽 하고 암전하듯이 인간의 의식은 그 순간 소멸되고 모든 것은 무로 돌아가 버린다. 죽음...모든 것의 끝...그래서 언젠간 누구나 죽어야만 하는 인간이기에 SF의 하위 장르인 타임루프물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다음 생에서 수정이 가능한 신의 축복을 받은 자들...죽고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영생의 삶을 사는 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타임루프도 각각의 설정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나 방향이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하루 혹은 몇 일간의 특정 일을 반복하여 겪게 되는 타임루프물. 영화로는 '빌 머레이'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사랑의 블랙홀]이나 '톰 크루즈'가 영화화 했던 '사쿠라자카 히로시'의 [All You Need Is Kill] 같은 작품의 경우 짧은 시간을 반복 경험하면서 높은 자유도(범법행위나 살인까지도)와 빠른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그와는 달리 전 생애를 반복하게 되는 타임루프물이 있는데, '켄 그림우드'의 [리플레이]로 주인공은 매번 죽을때마다 18세의 소년으로 깨어나게 된다. 이런 긴 시간의 루프물은 루프 당사자의 매번 다른 인생(막강한 부와 권력자 등 되고 싶은대로 하고 사는..)의 이야기를 엿보면서 단 한번뿐인 유한한 인생을 사는 독자들에겐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게도 하는것 같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어디에 속하느냐...하면...후자의 설정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주인공 해리 오거스트는 태어나 자신의 수명대로 인생을 살고 눈감는 순간...다시 엄마의 배속에서 태어나 첫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다....게다가 전생의 모든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채로....사건 사고가 없었다는 전제하에 생애를 70살로만 따져봐도 열 다섯 번째 삶이면 천 살을 넘기는 수치이다...천년의 인생을 반복해 사는 해리의 기나긴 삶과 인생이 담겨 있는 대하 드라마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인 것이다.
해리 오거스트는 양아버지의 불륜(혹은 강간..)에 의해 태어난 서자이다. 본가로부터는 버림 받고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내고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 전쟁의 참상을 경험했으며 평범하다기 보다는 불행한 삶을 살았고, 결혼도 없이, 자식도 없이 다발성 경화증으로 병상에서 눈을 감는다...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땐 1919년...어머니가 해리를 낳은 역안의 화장실이었다...전생의 기억을 모두 간직한채 다시 맞은 두번째 삶...두번째 삶은 첫번째 삶보다 좀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고, 횟수가 거듭될수록 인생의 질은 더욱 윤택해져 간다. 세번째 삶...전 생애에서 가장 사랑한 여성이자 아내인 제니에게 자신의 정체를 고백하고...제니는 떠나버리고 해리는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실험정신이 투철한 병원장 덕분에 온갖 치료 행위로 뇌가 물렁해지고 미쳐버리기 일보직전일즈음..병원을 찾아온 정부 관계자 피어슨은 해리를 병원에서 꺼내준다. 크로노스 클럽을 조사하던중 해리를 알게되었다는 피어슨은 해리에게 미래의 정보를 알려주는 대신 크로노스 클럽의 정보를 주겠다는 딜을 건다. 하여 크로노스 클럽이 환생자들의 비밀 모임이며 바빌론 시대부터 이어져온 이 모임을 통해 과거와 미래에 중요한 지식을 전달하고 인류를 위험으로 부터 지키는 파수꾼의 역할을 한다는것을 알게 된다. 크로노스 클럽에 대해 알게 되면서 자신이 발설하는 미래의 일들이 야기하게될 위험에 대해 인지하고 입을 다물어 버리지만..금기의 지식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된 피어슨은 그때부터 해리에게 극한의 고문을 시작하는데......
사실 유명한 타임루프물이었던 [리플레이]만 해도 반복된 인생을 사는 주인공의 인생에 초점을 맞추고 그의 자유로운 삶과 사랑에 대해 서술하는데, 이 작품은 반복되는 해리의 인생과 더불어 환생자들의 비밀 클럽 크로노스 클럽과 그에 반대되는 세력으로 세계의 종말을 획책하는 환생자 랜키스와의 몇 백년간 이어져 오는 숨막히는 암투, 계략이 난무하는 대결을 그리는...실로 기똥찬 작품이다. 게다가 단순히 반복되는 환생에 그치지 않고 다중우주론과 평행우주론의 물리학 개념을 끌어들여 좀 더 복잡한 타임루프의 패러독스와 타임루프를 통한 나비효과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하여
여태껏 읽은 환생 타임루프물중 가장 SF다운 작품이라 생각된다.
"세계가 끝나고 있어요.
이 메시지는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천 년 후 미래의 세대로부터
거슬러 전달된 거예요.
세계가 끝나고 있고
우리는 종말을 막을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이제 박사님께 달려 있어요."
양자이론을 응용하여 퀀텀미러 일종의 포탈을 열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외삽하려는....신이 되고자 하는 환생자 랜키스...자신이 살고 있는 세대 안에서 퀀텀미러를 개발해야 하기에 랜키스가 세계를 항해 벌이는 일은 실로 상상을 초월한다. 그로인해 세계 종말의 시계는 종말의 정각을 향해 치달아 가고, 크로노스 클럽은 해체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자는 모든 생애를 기억하는 환생자이자 기억술사 해리 오거스트 뿐. 랜키스의 도전정신과 특유의 붙임성 때문에 한때는 둘도 없는 동료이자 친구였지만...인류의 존속을 위해, 크로노스 클럽을 위해 또다른 천재 기억술사 랜키스와 대적해야 한다. 초반 해리의 무수한 삶에서 경험한 여러 에피소드들로 환생자에 대한 개념이 잡히자마자 약 사백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랜키스와의 피비린내 나는 숙명적 복수가 펼쳐진다. 한 인간이 몇 백년간 살의를 숨긴채 누구보다 독하고, 누구보다 용의주도 하며, 누구보다 처절하게 말이다...이정도 되면 세계의 종말을 막는다기 보단 그냥 해리의 생애를 건 개인적 복수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듯...무려 육백여 페이지의 볼륨임에도 전혀 지루함 없이 미친듯이 집중해 읽을 수 있는 압도적 몰입감을 주는 작품이자 역대급 타임루프 SF였다!!!!
뭔가...영생자와 비밀클럽...인류를 위협하는 악당과의 대결...얼마전 읽었던 '매트 헤이그'의 [시간을 멈추는 법]과 상당히 흡사한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환생자 해리는 영생자 톰 해저드와 닮아 있고, 크로노스 클럽은 알바트로스 클럽과, 랜키스는 알바트로스의 수장과 닮아 있다. 흠...열 세살 아이들의 무한한 윤회를 그렸던 '토르비에른 외벨란 아문센'의 [변신]도 그렇고 요즘 트랜드가 환생 타임루프 인가?..-_- 그것도 그렇지만 기존엔 개인에 국한되어 스토리가 전개되던 경향이었던 반면 요즘의 작품들은 좀 더 조직화 되고 체계화되어 기존 타임루프물의 재미에 더하여 거대하고 새로운 음모론과 복잡한 플롯을 통한 즐길거리를 선사하는것 같다.
흠뻑 작품에 빠져들어 작가의 천년에 걸친 사고실험이 주는 지적유희를 즐기고 나서 보니 헐....이 작품이 29세 신인작가의 데뷔작이란다...-_-;;; 헐..이런 미친..게다가 데뷔작으로 존 캠벨상을 수상했다고?!!!(음..근데 정말 상 받을만 하다...끄덕 끄덕) 참...얼마나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진 작가란 말인가...그녀의 차기작은 더욱 기똥찬 작품을 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개인적으로 올해 최고의 SF작품으로 꼽고 싶다.
고대 유적 발굴 현장에서 유적이 존재했던 시대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존재 할 수 없었던 유물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유물'이란 뜻의 오파츠라고 불리는 초고도 문명의 흔적을 가진 고대 유물들의 미스터리...흔히 외계인이나 초월적 존재에 의해 만들어진 유물 미스터리로 여겨지는데, 이 작품을 보고 나면 비밀은 환생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님 말고...ㅋ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