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문자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7월
평점 :
11문자살인사건 (2018년 2판 1쇄)
저자 - 히가시노 게이고
역자 - 민경욱
출판사 - RHK
정가 - 14800원
페이지 - 341p
무인도로부터 살의를 담아 그대에게 보내드리오...
다작의 왕이자 장르를 초월하는 미스터리 제왕 '히가시노 게이고'의 미스터리 작품이 개정판으로 재간되었다. 작가의 1987년도 초기작품으로 근래에 소개되고 있는 장르를 초월한 미스터리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정통 미스터리의 향기를 풍기는 작품이다. 워낙 다작 작가이기도 하고 엄청나게 출간된 작품들에 비해 아직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지만 일단 지금까지 읽은 작가의 작품중엔 가장 신본격에 가까운 작품이 아닌가 싶다. 추리소설가인 '나'가 직접 연쇄 살인사건에 뛰어들어 범인과 살해동기를 유추해 나가는 미스터리로서의 묘미와 함께 다양한 등장인물, 연이어 벌어지는 살인사건, 완벽한 알리바이 속에서 벌어진 별장 살인사건등 이야기의 마술사 답게 능수능란하게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한다.
"누군가 나를 노리고 있어."
그는 버번 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잔 속에 든 얼음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노려?"
나는 반쯤 웃으며 되물었다. 농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뭘 노린다는 거야?"
"목숨을."
알수없는 말을 남기고 헤어진 연인은 며칠뒤 참혹한 사체로 발견된다. 단 두 달간 사귄 사이지만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프리랜서 작가 가와즈의 죽음을 파헤치기로 마음먹은 추리소설가 '나'는 가와즈의 스케줄표에서 그의 마지막 스케줄이 야마모리 스포츠 플라자였다는 것을 알게되고, 내 편집자이자 절친인 후유코와 함께 스포츠 플라자를 찾아간다. 스포츠 플라자의 사장 야마모리와 가와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가 1년전 11명의 지인들과 함께 섬으로 요트여행을 갔었다는것을 알게된다. 1년전 요트 전복으로 1명의 사망자를 냈던 여행과 가와즈의 죽음이 연관되있음을 느낀 '나'는 당시 함께 했던 10명의 사람들을 만나 조사하기에 이르고...가와즈에 이어 여행 참석자들이 차례로 죽어가는데......
무려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 있는 등장인물들만 15명이고(맨 앞장 등장인물 소개를 실어준 출판사의 배려에 감사를..ㅠ_ㅠ) '나'의 조사가 진행될수록 사망리스트에 붉은 선을 긋듯 연이어 사망, 실종자가 속출한다. 크게 2개의 장으로 나뉘는 이야기는 초반 가와즈가 사망하고 '나'가 사건에 참전하여 조사를 벌이고 등장인물들이 죽죽 죽어나가는 1장과, 후반 요트여행의 인물들이 모여 다시 섬으로 요트여행을 가게되고 도착한 섬의 별장에서 마지막 한 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고립된 섬, 완벽한 알리바이를 깨고 살인자의 트릭을 찾아내는 2장이 완벽한 조화를 이뤄내면서 사건의 전환을 통한 이야기의 몰입도를 배가 시키고, 결말의 반전에 대한 충격의 시너지를 극대화 시킨다.
열 한명의 요트여행...'무인도로부터 살의를 담아'라는 열 한문자로 쓰여진 협박편지....과연 1년전 요트여행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부유층, 있는집 사람들이 대중에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프라이빗한 심리를 절묘하게 비틀어낸 이 작품은 극한상황 속에서 생명의 무게와 대중의 비난을 저울질하며 그들은 최선이라 자위하지만 결과적으로 최악의 선택을 내린 사람들에 대한 살인자의 가혹한 철퇴를 이야기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섞이지 않을것 같은 절대적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혼란스럽고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모두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고,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것이다. 순간의 선택이 열 한명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버렸다....'이게 정말 최선입니까?'
이같은 모호한 경계 덕분에 결말부 살인범의 정체와 그의 최후가 주는 반전 아닌 반전은 꽤나 어안이 벙벙하게 만든다. 이런 결말로 끝날 수도 있구나...-_- 라는 생각?...좌우지간...'히가시노 게이고' 답게 본격 추리작품임에도 페이지는 거침없이 넘어가고 사건이 진행될수록 흡인력은 끝내주게 가속한다. 다만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는게...아무리 봐도 모든 비밀을 밝혀주는 그 쪽지를 쓸 시간이 없던것 같은데...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과연 그 급박한 상황에서 언제 쪽지를 쓸 시간이 있었던건지 의문스럽긴하다. -_-;; 그래도 사회파 추리작가로 명성을 날리는 작가의 초기 정통추리작품을 접할 수 있어 적어도 내게는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