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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세계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살림 / 2017년 7월
평점 :
소멸세계 (2017년)_E-BOOK
저자 - 무라타 사야카
역자 - 최고은
출판사 - 살림
정가 - 13000원
페이지 - 이북
섹스 행위가 사라진 세계...난 반댈세.
혜자 이북 온라인 서점 리디북스에서 [마지막 패리시 부인]과 함께 무료 대여로 풀었던 [소멸세계]를 완독했다. 교미행위가 사라진 세계라는 독특하고 새로운 발상의 작품으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렇게 무료로 풀리니 않읽을 수 없지 않은가?! 작가의 작품은 이 작품으로 처음 접하지만 얼마전 출간됐던 [살인출산]의 플롯을 보고 이 작품을 읽어보니 여성이 갖는 섹스와 임신, 출산에 대해 상당히 독특한 시각을 갖고 있는 작가인것은 분명한것 같다. 신체접촉을 통한 성행위가 불결한것으로 간주되어 위생적인 마스터베이션이 선호되는 새로운 세계....난 이런 세상 반댈세!!
2차세계대전 후 전쟁에 징병된 수많은 남자들의 전시 사망으로 자연스럽게 인공수정기술이 발달되고 짐승처럼 헐떡이며 씨를 뿌리는 기존의 야만적 성행위에서 신체 접촉 없이 인공수정을 통한 출산이 정상적인 방식으로 자리잡는다. 그렇게 자연스레 기존 성행위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기존의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고 함께 사는 가족의 개념 조차 붕괴된다. 이성이 만나 사랑을 나누던 기존과는 달리 TV에서는 온통 2D 애니메이션 혹은 히어로의 활약이 돋보이는 특촬물이 방영되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TV속 캐릭터를 연인으로 삼고 사랑에 빠지고 캐릭터를 상상하며 마스터베이션 한다.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아이들과는 달리 부모의 성행위로 태어난 소녀 아마네는 엄마가 사랑을 통해 태어난 축복이 아마네라는 말을 줄곳 듣고 자라지만 정작 본인은 불결하고 더럽게만 느껴진다. 섹스에 대해 궁금하면서도 거부감을 느끼는 아마네는 학교 동급생과 호기심 끝에 처음으로 섹스를 하는데......
이 작품을 읽으니 불현듯 중딩시절이 떠오른다. 내가 중학생일때만해도 인터넷은 하이텔, 나우누리등 전화선을 이용한 방식으로 극악의 속도를 자랑했고 하여 동영상은 꿈도 못꾸는 시절이었다. 그나마 왕성한 성적 호기심은 수백명이 돌리고 돌려봐 휴지처럼 닳고 닳은 도색잡지 따위 아니면 똘이가 주인공으로 온갖 여성과 섹스 판타지를 펼치는 야설로 푸는 정도랄까...그렇게 글로 섹스를 배우던중 드디어 친구의 집에서 처음으로 시청한 포르노로 첫 섹스에 대해 접해봤다.(영상지만..) 그런데 동화책으로 곰돌이를 본 아이가 처음으로 동물원에서 곰을 봤을때의 상상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오는 충격이랄까...상상해오던 섹스와는 달리 영상속 흑형의 크고 거대한 물건과 그 물건을 전부 품어버리는 백인여성의 성기...땀을 흘리며 짐승의 괴성을 질러대며 스포츠를 하듯 리드미컬 하게 움직여 대는 그들의 모습은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다. 그렇게 일주일간은 트라우마에 시달렸는데 신기하게도 그 이후에는 섹스에 대한 열망이 더 강해졌다는것...그렇다...소멸세계 속 사회적으로 불결하고 터부시하는 교육을 받았을지라도 몸속 DNA에 각인된 자손번식과 더불어 성행위에 따른 쾌락에 대한 무의식적 열망, 대자연의 조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본능은 후천적 금기로는 막을수가 없는 것이다. 서로 몸을 비비며 느끼는 교감과 일체감은 골방에 틀어박혀 2D 캐릭터의 사진을 문대며 느끼는 마스터베이션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어쨌던 그렇게 염원하고 바라던 나의 첫 성경험은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나 경험할 수 있었다는...
기존의 섹스와 가족관계에 대해 완전히 해체시켜 버리고 작가의 사고실험으로 만들어진 세계는 편의적일지는 몰라도 비인간적이고 메말라 있으며 집단적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것으로 보인다. 특히 작품속 실험도시로 나오는 지바시티는 이 광기의 집합체로 그려지는데 도시의 구성원 모두가 엄마로 불리며 모든 아이들을 공동육아로 키우다보니 아이들의 생김새는 다를지 몰라도 모두가 공장에서 찍어 나온듯 같은 표정 같은 생각을 갖는 획일화된 개체로 자라난다. 구성원들의 정자와 난자를 무작위로 여성, 남성에게 인공수정을 통해 임신을 시키는 세상....남과 여의 완벽한 성적 평등이 실현됐다기 보단 성역할 자체가 사라져 버린 기괴한 세상이 펼쳐진다.
자...그렇다면 작가가 그리는 평행우주속의 소멸세계는 과연 현실성이 없는걸까?...일단 결혼이 늦어지면서 출산연령이 높아지고 지속적 환경오염으로 정자의 질이 떨어져 자연 임신률은 점차 낮아지는 추세이다. 자연스럽게 인공수정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점차 여성에게 관심이 없는 건어물남이 늘어나는 사회적 추세와 덕후양산 애니 [페이트 나이트]를 필두로 2D 애니 캐릭터와 사랑에 빠져 실제 이성과는 담을 쌓아버리는 덕후들이 증가하는 추세이니...단편적이긴 하지만 우리도 소멸세계를 향해 서서히 나아가고 있는건 아닐까?!!!.....아냐....아니야!!!! 절대로 보고 싶지 않다...마치 아마네의 엄마와 같은 심정으로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제정신으로 바라볼 용기가 날것 같지 않다. -_- 실로 충격적인 세계관에 공포 싸이코 드라마를 보는듯한 아마네가 벌이는 충격적 결말은 영~ 찝찝하고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