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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
김진영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4월
평점 :
마당이있는집 (2018년 초판)
저자 - 김진영
출판사 - 엘릭시르
정가 - 13800원
페이지 - 386p
시체 썩는 냄새가 풍기는 마당있는 집으로 초대합니다.
내 가정이 전부라 여기는 여성..그런 여자의 집 마당에서 언제부턴가 시체 썩는 냄새가 난다...나의 아늑한 집 마당에 묻혀 있는 저 시체는 누구이며 저 시신을 묻은 사람은 누구인가? 나의 평화롭던 가정을 깨트리려 하는 자는 누구인가?!!! 나의 전부인 남편과 아들을 위협하려는자는 누구도 용서할 수 없다...내가 지켜낼 것이다!
실로 끔찍한 발상의 소재이다. 편안한 휴식처이자 안식처인 집 마당에 구더기가 들끓며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는 사람의 시체가 발견되다니....그렇게 겉으로는 평화롭고 부족함 없이 화목해 보이던 한 가정이 사실은 온갖 더럽고 불결한 진실을 가득 숨긴채 썩은내를 풍기고 있었다는 충격적 사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유리탑 처럼 위태롭게 이어져오던 가식적인 평화는 마당의 시체로 금이 가버리고, 단 한순간에 산산조각 나 버리고 만다.
[주란]
홍콩 여행중 불의의 사고로 언니를 잃고 정신적 충격에 빠져 과대망상증에 빠진 주란은 요양을 위해 대도심에서 조금은 한적한 분당 전원주택으로 이사온다. 소아과 의사인 남편과 15살 아들 승재와 함께 부족함 없이 생활하며 서서히 정신적 안정을 되찾으려는 찰나 화단을 꾸미기 위해 만들어 놓은 마당 정원에 언제부턴가 정체 불명의 악취가 난다. 악취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참을 수 없어진 주란은 모종삽을 들고 마당 흙을 파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삽 끝에 닿는 딱딱한 무언가를 유심히 지켜본 주란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하얗고 뭉뚝한,..다섯 마디...그것은 누군가의 손가락이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퇴근한 남편에게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말하지만....남편은 또다시 망상증이 도진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리고 그날밤....잠결에 눈을 뜬 주란은 남편의 빈자리를 발견한다....온 집안을 살펴봐도 남편은 없고...다음날 침대에서 자고 있는 남편에게 간밤의 일을 물으니 남편은 나간적 없이 계속 잠을 잤다고 하는데....주란의 망상인가? 아니면 남편이 거짓을 말하고 있는건가?.....
[상은]
제약회사에 다니는 남편에게 이혼 서류를 내민날 남편에게 거칠게 성폭행을 당하고, 그렇게 바라고 시도했던 임신이 되버렸다. 아이가 생겼다고 남편에 대한 마음이 변화가 생긴것은 아니다. 앞으로 태어날 아기와 나의 인생을 위해...남편을 죽여야만 한다..소아과 의사와 낚시터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남편을 졸라 가는길에 낚시터 근처인 친정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동안 참아왔던 날들은 오늘로 끝이다....
남편을 의심하면서도 남편에게 모든걸 의지하고 그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심약하고 여린 여성 주란과 임신한 몸으로 지겨운 가난이란 굴레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남편을 살해 하려는 강인한 의지의 여성 상은....이 두 여성이 우연히 얽히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출판사에서 공개하는 플롯만 봤을땐 그저 심약한 여성과 싸이코패스 미치광이 살인마 남편의 비밀스러운 가정폭력을 그리는 'B. A. 패리스'의 [비하인드 도어] 같은 스릴러가 펼쳐질거라 예상했었다. 그런데 페이지가 넘어갈 수록 그렇게 단순한 작품은 아니란걸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예상가능한 시나리오에서 세번 이상 비틀면서 예상치 못한 반전의 묘미를 선사하는 작품이었다.
현실과 망상을 오가는 주란의 혼란스러운 심리 묘사를 통해 몰입하다 보면 정말로 남편이 살인마인지 아니면 주란이 미쳐가고 있는건지 헷갈리게 만들고 그런 착란상태의 주란에게 상은이 슬쩍 발을 얹어 놓으니 주란의 심리상태는 그야말로 아비규환 헬게이트가 열리는 것이다. 가정이 자신의 모든것이라 여기고 가정이라는 껍질속에서 숨어 살아오던 주란은 이 아비규환을 통해 어찌됐던(자의던 타의던) 세상을 향해 한발짝을 내밀게 된다. 그 한발짝이 가족을 지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지 아니면 가족을 산산조각내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작품을 읽는 입장에서는 뻔히 보이는 사실을 눈가리고 아웅하는 주란의 소극적 태도에 화딱지나고 발암을 일으킬것 같은 답답함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발암 마저도 결말의 반전을 위해 차곡차곡 쌓아논 작가의 노림수라고 생각된다. 치밀한 설정과 탄탄한 구성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하며 읽게 만드는 작품이다. 고요하고 적막한 부자집 전원주택안에서 벌어지는 허상위에 그려진 평화의 적나라한 실체와 나의 전부라 여겼던 가족이 갑자기 낯선 타인으로 다가올때의 섬뜩한 공포를 잘 살려낸....시체썩는 냄새를 풍기는 마당있는 집으로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