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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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쓰치의첫사랑낙원 (2018년 초판)

저자 - 린이한

역자 - 허유영

출판사 - 비채

정가 - 14000원

페이지- 360p




한 소녀를 죽음으로 내몰은 폭력의 역사



더럽고 역겹고 참담하고 암담하다. 아름답고 유려한 문장들 사이로 보이는 탐욕에 젖은 중년의 욕정과 나르시즘에 빠진듯 과장된 미사여구로 둘러대는 세치혀를 뽑아버리고 싶을 만큼...더이상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 정도로 가녀린 소녀를 뼛속부터 산산이 부숴버리는 충격적 장면들은 전신을 분노에 떨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한없이 맑은 어린 나이에 그녀가 겪어야 했을 고통과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그녀를 모른척하고 외면한 주변 사람들에게 화가 치민다. 피해자가 세상의 손가락질을 두려워하며 움츠려 들게 만드는 이상하고 비상식적인 세상...지금 이순간에도 또다른 팡쓰치가 단 한발자국을 내밀지 못해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 현실이 분노케 한다. 팡쓰치의 달달하고 낙원같은 첫사랑이 펼쳐질줄 알았는데 솔직히 이런 작품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벽돌로 뒷통수를 얻어 맞은...그런 기분이다.



이 작품은 13세의 어린 소녀가 50세의 학원 선생에게 5년간 집요하게 성적으로 유린 당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순수하고 풋풋하던 문학을 좋아하는 꿈많던 소녀 팡쓰치가 지적이고 매력 넘치던...동경하던 선생에게 강제로 성폭행 당하고 이후로 5년간 관계가 지속되면서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오던 정신의 끈이 끊어져 버리고 결국 정신분열증으로 자신만의 세계로 숨어버린다. 팡쓰치의 단짝 친구였던 루이팅은 우연히 쓰치의 일기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고, 망할 선생 리궈화를 고발하려 하지만, 그녀의 일기만으로는 고발할수도 없고, 성적으로 폐쇄적인 사회적 통념상 선생 리궈화 보다 팡쓰치에게 비난의 시선이 꽂히게 될거란걸 깨닫게 된다. 



너무나 비극적이고 참혹하고 참담하다...아직 사랑이 뭔지도 모를 나이에 비뚤어지고 변태적인 성욕을 사랑인양 포장하여 지속적으로 세뇌하니 소녀마저 사랑과 성폭력을 동일시하기에 이른다. 비뚤어진 사랑도 사랑이라 믿으며 하루 하루를 위태롭게 버티는 소녀....겉으론 지식인의 모습으로 위장하고 뒤로는 한 인간의 인생을 송두리째 짓밟아 버리는 파렴치한 짓거리를 저지르는 인간 쓰레기도 열받지만 그런 쓰레기에게 받은 상처를 보듬어줘야 할 가족마저 평소 소녀의 행실을 운운하며 상처를 후벼파는 말도 안되는 짓거리가 더 열받게 만든다.  



뭣보다 나를 가장 숨이 막히게 만든건 마지막에 실린 역자 후기에서 이 억압과 폭력으로 점철된 고통의 시간들이 작가가 실제로 겪은 경험을 토대로 써낸 자전적 소설이었다는 점이다...팡쓰치의 이토록 생생하고 혼란스러운 심리묘사는 자신의 암담하고 암흑같은 심리를 그대로 옮겨 놓았기에 느낄 수 있는 모호함이었던 것이다. 2017년 2월 26살의 나이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써낸 이 작품을 출간하고 불과 2개월 뒤 자살한 작가의 심정은 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을것 같다. 작품속 리궈화 선생으로 지목된 실제 강사는 작가 린이한의 지속된 성폭행 사실을 부인했고,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20년...30년전 성에 대해 쉬쉬하고 무지하던때의 이야기가 아니다...불과 1년전...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이순간에 이런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게 세삼 참담하게 느껴진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이런 미친놈을 격리시키는게 어른들이 할일이 아닌가...지금 이순간 어딘가에서 떨고 있을 쓰치들이 손쉽게 도움을 청하고 소녀들의 외침을 귀담아 들어줄 수 있는 사회로 만드는건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들이 시급히 해야 할 일이다. 죽음을 향하며, 그러나 살기 위해 써낸...작가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외침을 우리는 잊이 말아야 할 것이다...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안고 세상을 떠난 작가의 영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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