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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 - 제18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 수상작(고학년) ㅣ 창비아동문고 276
임지윤 지음, 조승연 그림 / 창비 / 2014년 3월
평점 :
어린이 책을 읽고 두근두근 가슴이 뛰었던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이제 나는 웬만한 아이들의 이야기는 이미 대부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책을 좋아하는 세 아이의 엄마인 것이다.
그래서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의 첫 장을 펼칠 때만 해도 살짝 들춰보고 나중에 읽으려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이야기의 전개가 심상치 않았다.
“남이 깨주면 달걀 프라이가 되지만 스스로 깨면 병아리가 된다” 는 뭔가 있어 보이는 명언을 들먹이는 주인공의 엄마가 마치 나의 모습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상대방에게 자발적인 선택권을 주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결국은 내 말이 맞으니까 너는 이 엄마의 말을 따르라는 메시지를 주입하는 나의 모습이 정마니의 엄마에게서 겹쳐졌다. 스스로의 힘으로 깨어날 것을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만, 그런 말을 전하는 마니의 엄마 역시 가족들에게는 남이며, 그 결과 가족을 달걀프라이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강하게 암시하는 첫 장면 이었다.
이렇게 도발적인 시작이라니!
게다가 문장이 깔끔하게 진행되어 술술 읽어지는 바람에 살짝 살펴보겠다는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계속해서 다음 장 다음 장으로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의 주인공 정마니는 자기의 꿈이 무엇인지 모르는 평범한 13살 소녀다. 유명인사들의 명언을 집안 곳곳에 붙여두고 가족들이 보여지는 성공을 이루어내기를 독려하는 에너지 넘치는 엄마가 있고, 식품회사에 다니는 착한 아빠와 소아우울증으로 치료받고 있는 남동생이 있는,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여자아이다.
첫 등장부터 강한 인상을 남긴 마니 엄마에 비해 마니의 아빠는 다소 약하고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앵무새를 사장님 댁에서 가지고 온 마니의 동생 차니는 소아우울증을 앓고 있어 말을 잘 하지 못한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말하기에 능한 엄마도 예전엔 그렇게 드센 사람은 아니었는데, 이러저러한 상황이 엄마를 그렇게 강한 캐릭터가 되도록 하는데 일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앵무새는 사람의 말을 흉내 내는 동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 보니 앵무새가 용변을 가려서 할 정도로 높은 지능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앵무새는 소아우울증에 걸린 차니와 교감하며 인형의 노래를 따라 해서 차니가 그 노래를 따라 하게 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였다. 병원에서도 쉽게 고칠 수 없었던 차니의 우울증을 따라장이 앵무새가 고쳐낸 것이다.
사장님 가족이 모르게 앵무새를 돌려주려는 과정에서 사장님의 아들인 수혁이와 유치원 때부터 마니와 알고 지낸 장난꾸러기 김경지, 좋아하는 남자아이 때문에 마니에게 절교를 선언했던 공주병 친구 세나와 세나가 좋아했던 축구부 주장 규빈이까지 등장하며 이야기는 점점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아이들이 주인공이고 그 아이의 시점으로 흘러가는 많은 이야기에서 주인공 이외의 사람들은 그저 들러리이거나 그 사건을 키우기만 하는 골치덩이들뿐이고 주인공들만 척척박사라도 된 것처럼 힘든 일을 술술 해쳐나가는 것이 유치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도 그런 심한 과장은 아이들을 무시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을 정도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재미라는 이유로 아무렇게 진행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저 어린이들이 읽는 책이라고 이렇게 비현실적이어도 되는 걸까?’ 싶은 못마땅함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책 속의 모든 인물들이 각자 자기와 가족을 문제를 헤쳐나가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마니가 여러 인물들과 이런 저런 일들을 겪는 동안 마니의 엄마와 아빠도 각자의 방법으로 스스로 변화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이 책에서도 어떤 사건의 원인과 해결책은 한가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마니는 자기 방에 걸려있던 명언을 자기의 생각을 담아 바꾸어 쓴다.
개성이 없다고 폄하되는 따라 하기가 이렇게 새로운 창조성을 키워내는 기반으로 표현된 멋진 장면이라 몇 번이나 다시 읽게 되었다.
그렇게 이 책을 단숨에 읽고 몇 번을 다시 읽은 후에 4학년 딸아이에게 책을 건네주었다.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는 책이라는 추천도 잊지 않았다. 아이도 재미있게 잘 읽은 것 같았다. 엄마가 느낀 감동을 아이도 느꼈으면 좋겠지만 이제 책의 내용을 구석구석 알려주는, 아이의 껍질을 밖에서 깨어주는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변화의 힘을 선물한 멋진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