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 - 신화학의 거장 조지프 캠벨의 ‘인생과 신화’ 특강
조지프 캠벨 지음, 권영주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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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조지프 캠벨의 <신화와 인생>이란 책을 읽었었는데 현세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포리즘 같은 경구들의 나열과 깨달음을 향한 길들의 제시를 통해 어떻게 하면 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제시한 책이었다. 제목에 신화가 들어가 있어서 신화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신화 이야기가 거의 없음에 갸우뚱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신화 이야기가 없었음에도 무언가에 홀린 거 마냥 그가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나중엔 그의 살아온 길을 통해 그가 얼마나 신화와 종교에 심취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캠벨, 아내와의 만남과 결혼, 노년의 이야기 등 그의 자전적 이야기들을 통해 신화학자로 거듭난 그를 보면서 “인생은 캠벨처럼 살아야겠다”로 다짐한 그때가 생각이 난다.

<신화와 인생>이 조지프 캠벨의 자서전적 이야기를 통한 깨달음이 주를 이뤘다면《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는 그가 들려주는 신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같은 작가의 책이지만 책 내용은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한다고 볼 수 있다. <신화와 인생>은 인간 삶 전체를 조지프 캠벨이라는 한 인간의 삶에 투영시켜 ‘신화’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 인간을 비유해서 거기에서 파생되는 격언이나 경구를 통해 삶의 깨달음을 얻었다면《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은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한 신화가 우리들 삶 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식으로 이어져 내려왔는지, 인간의 삶 속에 어떻게 녹아져 있는지를 설명하는 책이었다.

신화(神話)는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신들의 이야기다. 신들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누구 하나 본 사람이 없어 비과학적이면서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믿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담과 이브부터 시작해서 인도의 붓다 이야기, 일본 아이누족의 곰 신앙 이야기, 우리나라의 단군신화 등등. 하지만 신화는 허황된 옛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정신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오래된 꿈이자 오래된 진실이라는 사실이 이 책《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의 기본 베이스다. 태초에 인류와 함께 신화가 시작됐고, 죽음에 대해 알게 된 인간이 죽음을 초월하려는 욕구가 신화로 이어졌다. 그 신화가 동양과 서양의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르게 발전했고, 그 신화의 밑바탕에서 종교가 태어나고 서로 대립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신화로 나타난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신화를 조현병에 비유한 부분이었다. 캠벨은 그의 저서들에서 인간의 인생을 영웅의 여정에 비유하곤 했는데 이 책에서도 신화에 나오는 영웅들과 샤먼, 신비주의자, 조현병 환자의 내적 여행은 원칙적으로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다. 영웅들은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초현실적 경이의 영역으로 모험으로 떠나고, 그리고 그곳에서 힘센 무리들과 만나 결정적 승리를 하고 돌아오는 모습이 조현병 환자들의 공상의 패턴과 닮았다는 것이다. 웃기면서도 맞는 거 같아 부정을 못하겠다. 결론적으로 원형적 본능 체계를 상징하는 신화 속 영웅이 현대 시공간에 와서도 유익하게 작용하는 존재로 변하기 위해선 조현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자신을 환각의 대상 또는 환각을 보는 주체와 동일시하는데, 그 속에 빠져들어가지 않고 의식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적과의 관계에서 구세주가 아닌 구원자로 거듭날 수 있다는 얘기다.

모험자에게는 언제나 심리학에서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르는 위험이 따른다. 정신이상자는 자신을 환각의 대상 또는 환각을 보는 주체와 동일시하는데, 여기서 비결은 그 속에 함몰되지 않고 의식하는 것이다.(본문 338쪽 中)

​녹록지 않은 책이었지만 조지프 캠벨과 함께 떠난 신화 속 내면 여행은 재밌으면서도 신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신화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인간과 그 세월을 함께 하면서 우리들이 만들어낸 꿈이자 현실이란 것을, 그 현실 속에서 조현병 환자처럼 정신분열을 일으키기도 하겠지만 나중에 가서는 나의 중심을 찾고,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진리 아닌 진리를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많은 분들이 캠벨의 책을 읽고 신화 속 영웅들처럼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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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연민 -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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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공정하지 못한 사건에 연루되거나 도덕적인 흠결을 발견했을 때 사람들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상대를 물어뜯기 시작한다. 상대가 그로기 상태가 되어 녹다운이 되어도 물어뜯기는 멈추지 않는다. 이때부터는 누구 하나 죽어나가야 물어뜯기가 멈출 기세다. 잘못이 있어 기소가 되거나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음에도 자신들이 재판장이 되어 인민재판에 몰두한다. 도의적인 잘못은 차치하고 이미 물어뜯긴 사람은 회복 불능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왜 이런 사회가 됐을까? 상대를 혐오하고 비난하는 것을 넘어 마녀사냥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해버리는 그들의 만행이 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는 차별과 비난이 분노로 변하면서 상대에 대한 불신이 큰 몫을 했을 거라고 본다. 거기에 상대를 혐오하는 감정이 더해져서 지금의 괴물 같은 사회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다.


미국 또한 차별이 굉장히 심한 나라 중의 하나다. 겉으로 보기엔 선진국이면서 세계를 이끌어가는 리더의 국가처럼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갈등을 간직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총기 사고들, 흑인들에 대한 이유 없는 차별과 폭행들, 여성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성희롱과 다른 인종에 대한 배타적인 적개심이 미국 사회 속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불평등이 너무나도 심해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들이 미국을 두렵게 하면서 동시에 분노케 하고 있다. 두려움과 분노의 감정 속에서 혐오라는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고, 그 혐오가 이제는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미국 사회는 지금 온갖 두려움에 직면해있다. 그 두려움은 민주주의의 안정을 위협한다. 고로 두려움을 없애면 모든 게 해결되는 단순한 결론에 도달한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그렇다면 그 두려움을 없앤다면 미국은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을까? 지금보다 생활수준이 올라가고, 실업과 건강보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물가가 안정되고,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다면 그 두려움은 점차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선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생활수준은 끝을 모르게 떨어지고 있고, 실업률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건강보험은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하다. 흑인들은 탄압당하고, 아시아인들은 무시당한다. 이런 미국 사회에서 두려운 감정을 갖지 않은 거 자체가 이상하지 않겠는가. 결국 두려움은 분노의 감정이 되어 미국을 조종하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 두려움을 없앤다는 것은 총기가 없어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돼버린 것이다.


불합리한 혐오는 많은 사회악의 뿌리가 된다.(본문 132쪽 中)


그렇다면 혐오와 불확실성으로 점철된 두려움을 없앨 수 있을까? 마사 누스바움 교수는 그 해결책으로 여러 방법을 제시한다 . 내면의 두려운 감정은 희망을 통해 해결할 수 있고, 간절하게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줄리의 법칙처럼 간절하게 희망하면 설사 그게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플라시보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문제나 사건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것보다 희망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그 희망으로 인해 가치 있는 사랑과 신뢰가 뒷받침되기에 희망적인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비판적 사고를 취하고, 서로 연대하며, 폭력을 지양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갖춰야 할 희망적인 모습이라고 말하는 그녀다.


미국을 대표하는 교수가 미국의 입장에서 쓴 책이라 이 책의 내용을 모든 나라에 적용시키는 건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책의 내용을 무시할 수도 없다. 세계는 지금 혐오의 시대를 살고 있고, 우월주의라는 이름으로 많은 나라에서 차별이 진행되고 있기에.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이 말하는 혐오의 시대를 건너는 우아한 방법은 사랑이자 희망이고, 연대이자 비판적 사고였다. 인문학적 소양을 통해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기르고, 합리적 토론을 통해 정의를 구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두려운 감정은 사라질 것이고 시나브로 우리 스스로가 타자를 사랑하게 될 거라는 단순하면서도 원론적인 방법론은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시대에도 적용되는 필요조건인 것이다.


희망은 선택이고, 현실적인 습관이다. 결혼이든 직업이든 인간관계든 인간이 겪는 모든 상황에는 언제나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뒤섞여 있다. 어떻게 대처하는지는 우리의 감정적 상태에 달려 있다. (본문 260쪽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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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밴 어린시절
W. 휴 미실다인 지음, 이석규 외 옮김 / 일므디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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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한강의 소설인 <채식주의자>에서의 ‘영혜’였다. 육식을 거부한 채 점점 말라가는 영혜의 모습 뒤로 어린 시절 영혜에게 가해졌던 아비의 폭력이 오버랩됐다. 사랑 없는 결혼을 통해 주체성을 상실한 영혜의 삶 또한 채식을 더욱 부추겼을 것이다. 결국엔 현실의 모순에 저항하기보다는 순응해가는 영혜의 모습이 더해져서 이 책에 더 많은 감정이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라는 속담처럼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사건 또한 평생 갈 거라 생각한다. 좋은 기억이면 추억으로 남겠지만 안 좋은 기억이나 공포심은 자신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서 평생 자아을 괴롭힐 것이고 그 중심에《몸에 밴 어린 시절》이 있는 것이다.


《몸에 밴 어린 시절》은 현재의 내 모습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의 과정을 찾아가는 책이다. 그 찾아가는 과정 중의 거의 대부분을 어린 시절의 기억과 경험에 할애한다. 지금의 내 모습, 결혼생활, 성격, 습관, 사람을 대하는 태도, 가치관, 식습관 등을 나의 어린 시절과 비교하면서 “어렸을 때 이러이러했기에 지금 이런 모습이고,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현재의 모습과 어린 시절의 인과관계에 대해 풀어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법에서 범죄자가 저지른 행위와 피해자가 입은 결과 간에 인과 관계가 있어야 범죄가 성립하듯이 이 책에서도 지금의 이런 행동이나 결과는 어린 시절의 이러한 원인 때문에 만들어진 하나의 결과물인 셈인 것이다. 책에서는 내재과거아(內在過去兒)’란 다소 어려운 용어를 통해 지금 우리들이 처한 상황이나 모습을 설명한다. 우리들이 거쳐 온 어린 시절 하나만으로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재단하고 평가한다는 거 자체가 약간은 억지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묘하게 빠지게 되고, 그 몰입 속에서 어느새 책의 내용을 수긍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몸에 밴 어린 시절》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결혼 생활에는 네 사람이 필요하다(7장)’고 말한 대목이었다. 결혼은 두 사람이 사랑해서 하는 거지만 상대방 모두 각자의 어린 시절을 가지고 있기에 결혼 생활은 두 사람이 아닌 네 사람이 서로에게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게 되면 그 남자와 여자의 어린 시절도 품어야 하기에 결혼에는 네 명의 별개의 사람들이 포함된다는 게 약간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두 명도 힘든데 네 명을 품으라니,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말에 일견 수긍이 갔다. 배우자의 어린 시절 경험했던 기억이나 사건들을 외면한 채 현실에만 충실하게 된다면 그 관계는 머지않아 삐걱거리게 될 것이고, 결혼생활은 늪 속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반대로 상대의 어린 시절을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결혼 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툼이나 난관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 생활은 정말 녹록지 않은 현실이라고 말하고 싶다.


결혼 생활의 만족과 성공은 네 사람, 즉 어른 두 사람과 그 두 어른의 내재과거아가 저마다 나머지 세 사람을 존중하는 가운데 잘 적응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87쪽 中)


책의 말미에 가서는 우리가 처한 갈등이나 어려움에 대한 해결책도 함께 제시한다. 나 자신에게 새로운 부모 역할을 맡기라는 것이다. 새로운 부모 역할을 통해 내 어린 시절 겪었던 부모의 병적인 태도를 버리고, 내재과거아에게 도움을 주는 부모 역할을 해보라고 권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감정들을 확인하고(책에서는 내재과거아의 감정 확인이라고 한다.), 그 알아차린 어린 시절의 감정들을 어른이 된 지금의 감정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릴 적 감정들과 지금의 감정을 분리해서 구별할 수 있다면 어른이 돼서 세운 목적이나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쉽게 얘기하자면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싸움에 나가 질 수 없다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란 말에서 ‘지피지기’를 ‘우리들의 어린 시절(내재과거아)’로 바꾸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겪었던 감정들을 확인하고 보듬어줄 수 있다면 어른이 돼서 발생하는 고민과 불행을 좀 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이들은 부모를 통해 배우고,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자란다. 그만큼 커나가는 아이들에게 부모의 존재는 정서적, 교육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부모들은 너무나도 지나친 태도가 문제다. 아이들을 지나치게 과잉보호하고, 지나치게 방치하기도 한다. 지나치게 화를 내고, 지나치게 요구한다. 이런 부모의 병적인 가르침으로 인해 아이들의 마음은 시나브로 지치고 병들게 된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그들은 어린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아마도 부모에게 강요된 어린 시절은 지우고 싶은 트라우마로 남아 평생 자기 자신을 괴롭히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하지만 그 행복한 삶이 멀게 있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들 가까이에 있다. 몸에 밴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고, 그 어린 시절을 인식하고 존중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지금 불행하다고 느끼거나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몸에 밴 어린 시절》의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 이 책《몸에 밴 어린 시절》이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뚜렷한 처방전은 되지 못 하겠지만 어린 시절 받았던 아픔이나 고통을 어느 정도 상쇄시켜줄 거라 믿는다. 더불어 지금도 어린 시절 공포스러운 기억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이 세상의 많은 영혜들에게《몸에 밴 어린 시절》을 선물해드린다.


한때 당신이 거쳐 온 어린 시절은 까마득한 옛날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모든 일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존재다. 어른이 된 지금도 당신의 삶 안에 그대로 남아서 지속되고 있는, 과거에 거쳐 온 어린이의 모습을 ‘내재과거아’라 부른다. 이 책을 통해 당신 자신과 당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새롭게 살펴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책 뒷면 표지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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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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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 년 전에 고인이 됐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알게 됐다. 인터넷 모 사이트에서 철학 강의를 들을 때 처음 뵈었는데, 열정적으로 강의하는 모습에 낭낭한 목소리가 더해져 첫눈에 반했었다. 강의할 때 체크무늬 셔츠를 자주 입으셨는데 셔츠 주머니에 담배가 항상 있는 걸로 봐서 담배를 좋아하시는구나! 생각만 했지 돌아가실 거라곤 생각을 못했다. 그러다가 이웃 블로거의 <이별의 푸가>란 리뷰를 읽는데 저자가 김진영 선생이었다. 너무 반가워서 이웃님께 알은체를 하고 철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책을 냈다고 해서 구매하려고 검색을 하니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마음이 황망하고 쓰라렸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 년이 지나 그의 부고 소식을 접한 나 자신이 밉기도 했고, 이렇게 관심을 끊을 거면 좋아한단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괜한 자책감이 밀려왔다. 급하게 책 세 권을 주문해서 담배와 함께 그의 책들을 책상에 올려놓고 그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나만의 이별식을 치러드렸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좋아하는 책 많이 읽으시면서 철학적 사유를 주이상스(Jouissance) 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암에 걸린 2017년 7월부터 돌아가신 2018년 8월까지의 기록들이《아침의 피아노》란 책 제목으로 출간됐는데 제목부터가 무척이나 슬프고 아려온다. 이른 아침 저 멀리서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그 피아노 소리는 그 유명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곡도 아니요, 리스트나 스트라빈스키의 피아노곡도 아니었다. 그 아련하면서도 부드러운 피아노 소리는 철학자 김진영이 그려내는 철학적 아포리즘이었다. 암에 걸려 투병하면서도 무기력 상태가 아닌 노동을 원했고, 병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사랑을 선택한 그였기에 그의 피아노 소리는 희미하지만 선명했고, 약해 보였지만 강했다. 병원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파란 버스에 희망을 실어 보냈고, 하루하루 약해지는 모습이 싫어 신문에 칼럼을 싣고, 아침 차 안에서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운 그였다.


분노와 절망은 거꾸로 잡은 칼이다. 그것은 나를 상처 낼 뿐이다.(23쪽)


텅 빈 페이지에서도 그의 숨결이 느껴졌는지 페이지마다 글을 다 못 채워 여백이 많은 걸 보고선 왠지 모르게 가슴 한편이 먹먹했다. 왜 이렇게 세상이 불공평하냐고 외쳐 보지만 돌아오는 건 공허한 침묵뿐이다. 그 침묵 속에서 그의 아포리즘들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성한 내 살들을 헤집어 놓는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통해선 아픈 자기 자신을 되려 위로하고, ‘댈러웨이 부인’의 첫 문장을 통해선 삶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좋아한 프루스트를 통해선 지금은 암으로 고통받지만 곧 구출될 것이고, 그 구출된 문을 통해 구원이 될 것이란 믿음을 갖는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뫼르소를 통해 감정이입을 하는데 그 부분이 너무 울컥해서 계속 읽을 수가 없었다.


날이 너무 덥다. 산책하는 일도 힘들다. 걸으면 고관절 통증이 있기도 하지만 뜨거운 열기 속을 걷는 일이 통 엄두가 안 난다....... (중략) 이 뜨거운 여름, 나도 바람이 지나가는 서늘한 곳이 간절히 그립다. 하지만 병이 아랍 사람처럼 그곳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나는 뫼르소처럼 방아쇠를 당길 필요가 없다. 언젠가 나는 이 아랍 사람을 통과할 것이고, 이방인처럼 어느 낯선 세상으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곳은 어디일까, 거기 또한 바람이 지나가는 서늘한 곳일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260쪽)


​그를 만난 건 나에게 큰 행복이었다. 저에게 큰 기쁨을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여기에 없다. 하나 그의 책은 살아서 우리들과 함께 하고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다. 강의를 많이 해서 그런지 그가 쓴 책은 많이 없지만 그 몇 권 안 되는 책과 함께 그의 철학적 사유를 함께 느끼며 한 평생 살아갈 것이다. 저 먼 하늘나라에서 벤야민과 프루스트, 카뮈와 카프카 등과 함께 행복해할 그에게 진정 애도의 마음을 함께 전하면서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을 여기에 남겨 둔다.


2017년 7월 암 선고를 받았다. 그동안 이어지던 모든 일상의 삶들이 셔터를 내린 것처럼 중단되었다.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고 환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꼭 13개월이 지났다. 이 글은 그사이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지나간 작은 사건들의 기록이다. 환자의 삶과 그 삶의 독자성과 권위, 비로소 만나고 발견하게 된 사랑과 감사에 대한 기억과 성찰, 세상과 타자들에 대해서 눈 떠진 사유들, 혹은 그냥 무연히 눈앞으로 마음 곁으로 오고 가고 또 다가와서 떠나는 무의미한 순간들이 그 기록의 내용들이다...... (중략) 이 책이 나와 비슷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의 위기에 처한 이들에 조금이나마 성찰과 위안의 독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반드시 변명만은 아니리라.(책 마지막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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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도 낭만이 필요합니다 - 일상예술가의 북카페&서점 이야기
정슬 지음 / SISO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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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주 가던 북카페가 있었다. ‘조르바’란 이름에 끌려 들어갔는데 아담한 크기에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토론 모임도 몇 번 하곤 했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조르바를 좋아해서 카페 이름을 ‘조르바’로 지었다는 카페 사장님, 책을 좋아해서인지 카페엔 책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직접 만들어주는 커피와 음료들이 맛있어서 시내에 나가면 꼭 들르곤 했었는데, 지금은 아쉽게도 조르바 자리에 다른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마지막 방문하던 날 본업인 작가에 충실하기 위해 조르바를 그만해야겠다는 사장님의 말씀에 연신 아쉬움을 토로했는데, 지금에 와서 사장님이 만들어준 딸기 스무디가 가끔 생각는 걸 보면 그 아쉬움이 그리운 추억이 되어 사뭇 조르바가 그립다.


카페 이름이 ‘헤세처럼’이다.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번 더 관심을 기울일 테고, 헤세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분명 커피 한잔하러 들어갈 것이다. 카페 안은 책들로 가득하고, 북카페와 서점을 겸하고 있어서 책을 읽고 싶을 때 언제든지 들려서 책 한 권에 커피 한잔하고 싶은 곳이 바로 ‘헤세처럼’이다. 스트레스가 가득인 날 ‘헤세처럼’을 찾아서 헤세 잔에 커피 한 잔 하면서 사장님이 들려주는 낭만에 대해 귀 기울이고 싶어진다. 힘들 때 위로가 되어 주고, 기쁠 때 함께 기뻐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옆에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 ‘헤세처럼’이 친구처럼, 애인처럼 나를 반갑게 맞아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우울한 날 영화도 볼 수 있고, 수다가 떨고 싶다면 아무 때나 편한 시간에 와서 작가와 수다를 떠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고민이 있다면 넌지시 사장님께 상담을 부탁드려보는 건 어떨까? 


‘세상에 낭만적 밥벌이는 없는가?’ 저명한 소설가 김훈도 ‘밥벌이의 지겨움’을 이야기했듯이 현실에서 밥벌이는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낙담해서 낭만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진정한 낭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돈’보다 ‘꿈’을 좇는 사람들이다. 나 자신이 일상에서 예술적 감성으로 주체적인 삶을 만들어가면 그게 바로 ‘낭만’인 것이다.(본문 55쪽 中)


헤르만 헤세가 좋아서 시작한 북카페지만 ‘헤세처럼’은 이제 생활의 전부가 돼버린 듯하다. 그녀에게 있어 ‘헤세처럼’은 단지 책만 읽는 공간이 아니다. 좋아하는 그림을 걸어 놓으면 미술관이 되고, 직접 찍은 사진들을 걸어 놓으면 갤러리가 된다. 헤세처럼 정원을 가꾸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고, 문화가 결집된 공간에서 우리네 인생의 낭만에 대해 얘기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누구나가 그녀가 건네주는 위로를 선물 받을 수 있다. 사는 게 힘들고 외로울 때 ‘헤세처럼’에 방문해서 그녀가 건네는 커피 한 잔, 책 향기 한 스푼에 취해 보시길. 거기에 ‘헤세처럼’은 조르바처럼 없어지지 말고 우리들 곁에 남아서 낭만을 많은 분들께 선물했으면 좋겠다. 시대가 변하면서 디지털로 변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LP 판이 돌아가는 턴테이블, 허름한 선술집, 필름 카메라, 영사기가 돌아가는 영화관, 종이책 등 아날로그 감성들은 우리들 마음속에 남아 평생을 우리와 함께 할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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