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 - 김갑수의 살아있는 날의 클래식
김갑수 지음 / 오픈하우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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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한자 중에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말이 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미칠 정도로 열심히 해야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권력의 법칙』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로버트 그린의 『마스터리 법칙』에서도 거장이나 마스터 등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강박에 가까울 정도의 흥미와 열정을 가지고 2만시간에 가까운 연습의 과정을 거쳐야 그 분야에서 마스터나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하고자 하는 일에 미쳐야 성공할 수 있고, 노력해야만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상황에서 내가 하는 일에 스스로 미칠 수 있다면 성공에 있어서 가장 완벽한 시나리오가 될텐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야속할 따름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이 남자처럼 미칠 수 있을까? 시인이자 평론가라는 타이틀에 비춰보자면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는 미쳤다고 볼 수 없을 듯 한데 그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에는 완전히 미친 사람이 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서 성공하려고 노력하겠지만 그는 그의 취미생활에 완전히 홀릭되어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의 전작 『지구위의 작업실』을 잠깐 살펴 보면 비원(B1, 지하에 있는 방 호수가 B1이라 B1), 비원(悲願, 나를 버리고 떠난 그녀의 간절함 때문에 悲願), 비원(秘苑, 혼자 노는 비밀 공간이라는 뜻에서 秘苑)이라 불리는 지하의 작업실에서 커피향에 취하고, 오디오(스피커)에 한번 더 취하며, 클래식에 완전히 그로기가 되어버리는 남자가 바로 문화평론가 김갑수다. 그의 작업실 벽면만 보더라도 3만 장의 LP 판에 4천 장의 CD가 장식을 하고 있으니 그의 음악에 대한 사랑은 특별하고, 3만 장의 LP 대부분이 클래식 음반이라고 본다면 그의 클래식에 대한 사랑은 특별함을 넘어 각별하기까지 하다. 이 책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도 이런 클래식의 각별함에서 나온 책이자 그가 클래식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반증할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는 클래식을 세분화해서 우리에게 잘 설명하고 있다. 먼 나라에 여행을 가서 이방인의 은밀한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슈만’이나 ‘리스트’ 같은 현란하면서 세련한 음악이 좋고, 몸이 아플 땐 ‘메시앙’의「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곡」을 들으면서 극심한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이 곡을 만들었을 메시앙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또, 절망적인 상태이거나 넋을 놓으면서 처지가 형편없음을 한탄하는 낙백落魄의 상태에서는 원시 전례의 분위기를 풍기는 칸타타곡인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가 제격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르프의 아내이나 작가였던 ‘루이제 린저’의 모습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린저의 두 번째 남편이었던 카를 오르프는 밤마다 집에서 나와 죽음의 속도로 차를 몰아대는 취미가 있었으니 그를 지켜본 부인의 마음이 오죽했겠느냐 말이다. “나는 날마다 남편의 죽음을 대비해야 했다.”고 말하는 린저의 모습에서 「카르미나 부라나」로 위로받았을 그녀의 모습이 애처롭게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덧붙이자면「카르미나 부라나」는 한 시간 이상 소요되는 대곡이기에 대단한 인내심을 갖고 들어야 하는 클래식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누구든 겪어 보면 안다. 절망은 멋이 아니다. 그냥 죽음이다. 그 죽음에서 깨어나면 다른 인간이 되어 있는데 아주 더럽다. 강한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강인한 인간은 참 더럽다고 생각한다. 다시는 절망하지 않는 내성이 생긴 것이다. 순결을 잃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까. 「카르미나 부라나」의 거창한 도입부는 이런 대사로 시작한다. 
오, 운명의 여신이여! (본문 73쪽 中)

클래식은 다른 음악들과 달리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들 한다. 하지만 처음은 무엇이든 어려운 법, 찾아서 듣다 보면 클래식과도 자연스레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클래식과 그렇게 친하진 않지만 듣다 보면 귀가 편하고, 몸이 먼저 좋다고 반응을 하는 음악이 클래식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이 책의 저자인 김갑수 문화평론가처럼 하지는 못 하겠지만 우리 생활 곳곳에 클래식이 들어와있는 만큼 내가 먼저 다가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야 겠다. 내 수줍은 손을 잡아줄 그녀의 손에서 느껴지는 전율이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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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6-01-23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르미나 부라나>는 며칠 전에 요엘 레비 지휘로 KBS 방송교향악단에서 연주하는 걸 `생방송`으로 들었어요. 연주시간이 1시간 5분 정도였는데, 실황공연을 직접 보지 못한 게 너무 아쉽더군요. 라디오에서도 자주 혹은 가끔씩 듣는 곡이지만 짧게만 들려주고, 녹음곡을 `재생`해서 들려주니 생생한 맛이 덜한데, 실황 연주를 생방송으로 들으니 확실히 감동이 다르더라구요.

어제 저녁엔 강추위를 뚫고(?) 빈소년합창단의 공연을 보고 왔어요. 아이들이 너무나 어린 모습이어서 많이 놀랐고, 소규모 편성(소년 26명과 지휘자 1명, 피아노 한 대와 바이올린 1대, 기타 간단한 타악기 몇 개가 전부였어요.)에도 적잖이 실망했지만 `좋은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작년에 비엔나에 갔을 때 빈 슈타츠오퍼, 무지크페라인에 들러 음악연주회를 직접 보고 듣고 왔지만, 음악에 대한 욕심은 정말 끝이 없는 듯해요... 어제 그 소년들이 들려준 멋진 앵콜곡(무려 4곡..) 가운데 `아리랑` 은 정말 감동이었지요. 온갖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피부 색깔조차 저마다 다른 아이들이 어찌나 정확한 발음과 서정을 담아 우리의 민요인 그 노래를 애절하도록 아름답게 부르는지 절로 뜨거운 눈물이 나더군요.. 공연 끝나고 오면서 옆지기한테 그 얘길 했더니 `옆에 앉은 아줌마도 많이 울더라`고 하더라구요. 음악이 주는 감동은 늘 정말로 특별한 듯해요...

그러니 김갑수 님의 책 제목에도 공감할 수밖에요.. 생생하게 읽히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