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위안 - 어느 날 찾아온 슬픔을 가만히 응시하게 되기까지, 개정판
론 마라스코 외 지음, 김설인 옮김 / 현암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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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태풍을 시샘하기라도 하듯 밖에는 비가 내린다. 강한 바람과 함께 창을 내리치는 빗소리가 그리 싫지만은 않다. 뜬금없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 빗소리가 슬픔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모조리 쓸어가 버렸으면 좋겠다. 그럴 리 없겠지만. 책 한 권을 읽고 이렇게 마음의 동요가 일었던 적도 없었지 싶다.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견디지 못할 슬픔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될까? 이 질문에 수없이 머리를 짜내어보지만 뚜렷한 해답은 보이지 않고, 지난 추억이나 흘러가버린 강물처럼 언젠가는 견디지 못한 슬픔도 희석되어 견디게 되고, 그 견딤을 계기로 새로운 날을 살아가겠다란 막연하고 원론적인 생각만을 해보게 된다.


슬픔 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 인간에게 닥치는 가장 극한의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병이나 불의의 사고, 노화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거나 죽게 되었을 때 곁에 있던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과 상실감은 우리가 생각하는 거 이상으로 무거울 것이다. 그 무거움을 감당해야하는 사람들에게 무게를 덜어주기 위해 같이 들어준다고 해서 그들의 슬픔이 가벼워질까? 그 슬픔을 같이 애도한다고 해서 그 상실에 대한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슬픔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고, 그 어떤 것으로도 충족될 수 없다. 슬픔에 빠진 사람들은 고통스럽고, 괴롭다. 거기에 ‘소외감’이라는 감정이 슬픔에 달라붙는 순간 그 감정은 순식간에 한 사람을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하다. 그렇기에 슬픔에도 위안이 필요한 것이고, 그《슬픔의 위안》을 통해 슬픔을 긍정할 수 있고 희석할 수 있다면 슬픔이라는 감정 또한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연습해야 하는 하나의 통과의례라고 생각한다.


슬픔에는 절대적인 것이 없다. 쉽게 견딜 비법도 없고, 빠져 나갈 구멍도 많지 않다. 사별의 슬픔처럼 개인적인 경험을 이해하고 나면,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사람과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슬픔을 이해하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책은 그 길을 가는 동안 동행해줄 뿐이다. 슬픔은 아주 개인적인 경험인 만큼, 책을 읽다 보면 분명 당신은 독특한 상황에 맞는 길을 찾아낼 것이다. 부디 그러길 바란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존재 이유다. (프롤로그 中에서)


책에서는 슬픔에 맞닥뜨리고, 슬픔에 빠지고, 슬픔에서 빠져나오고, 나중에 가서는 슬픔의 흔적이 남는 과정을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한다. 큰 슬픔을 경험했을 때 사람들은 참을 수 없다고 말을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했을 때 그 죽음에 대한 슬픔은 참을 수 없다. 하지만 ‘슬픔은 참아야할 무엇이자 우리가 짊어져야할 무거움’이라고 책에서는 말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뒤 떠오르는 생각이나 영상들은 그 슬픔의 무게를 구성하고 이 슬픔을 참을 수 없게 만들어버리지만 그 무게는 누구에게나 무겁고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를 힘들게 하는 슬픔의 짐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짊어질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죽은 사람의 물건(소지품) 또한 슬픔을 배가시키는 한 요소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 당일엔 막상 슬프지도 않고,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는 분들의 얘기를 종종 듣는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신발장에 가지런히 놓아둔 엄마의 신발을 보거나 옷장 속에 걸려 있는 아빠의 땀 냄새가 베인 점퍼를 본 후 극도의 슬픔을 표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모든 게 물건 속에 들어있는 의미가 가볍지 않아서일 것이다. 죽은 사람의 물건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우리의 중요한 일부이자 흔적이기에 떠난 사람의 소지품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런 물건들이 내 손을 떠나 바깥세상에 나간다면 나만큼 그 물건들을 가치 있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물론 그 물건이나 소지품이 나에겐 무척이나 소중하겠지만 그 물건들을 언제까지 내 곁에 둘 수 없을 테니 죽은 사람의 물건이나 소지품에 그렇게 큰 미련을 두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바로 ‘탐닉’이었다. 그 중에서도 사별이나 죽음을 경험한 사람에게 탐닉은 큰 위안이 될 수 있다는 부분에서는 큰 충격이었지만 이 부분을 읽고 난 후엔 탐닉도 위안이 될 수 있다는 말에 공감을 하게 됐다. 사별이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로하는 흔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탐닉’이다.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 속에서 불현듯 식욕에 대한 욕구가 찾아오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빠져들고 싶은 탐닉의 또 다른 영역이 충격적이게도 섹스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테지만 먹는 것이나 성적 욕망을 품는 것, 사랑하는 것 ,무언가를 미치듯이 탐닉하는 것들은 인간의 육체적인 본능임과 동시에 영혼의 본능이기도 하다는 것을 전제로 두자. 그리고 그 전제를 바탕으로 죽어가는 누군가를 보살피고 있거나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고 있다면 죽음과 멀리 있다고 느끼려는 이 탐닉을 정상적으로 이해하고 바라봐달라고 책에서는 당부하고 있다. 슬퍼하는 사람에게 여유를 주면서 그 슬픔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그 무언가에 집중하는 그들의 탐닉 속에는 죽음에 대한 분노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길 바라면서.


음식과 달리 오명이 따를지 모르지만 사실 섹스에 대한 탐닉은 음식에 대한 충동과 그 뿌리가 같다. 생명에 대한 갈망이자 생명의 힘을 손끝으로, 온몸으로 느끼고자 하는 욕구인 것이다.( 책 본문 中)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죽음을 경험한다. 그 죽음을 통해 슬픔이 발생하고, 그 슬픔의 무거움과 가벼움 속에서 우리는 슬픔이라는 여행 속에 빠져든다. 책에서처럼 슬픔의 무게를 경험하고, 슬픔과 맞닥뜨려서 슬픔에도 빠져보고, 슬픔에서 빠져나오면서 지난 슬픔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는 리허설이 없고, 그 죽음은 갑작스럽게 찾아오기에 슬픔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슬픔의 위안》이 죽음 때문에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분들께 그 슬픔을 반감시킬 순 없겠지만 책 제목처럼 슬픔을 위로하고 마음을 편하게 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될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많은 분들이 슬픔의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고, 그 위로를 통해 직면한 슬픔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났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다른 책을 읽다가 책 속에서 작가에게 소개받아 읽은 책이 바로《슬픔의 위안》이었는데 죽음에 대해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들게 한 책이고, 우리말로 번역도 잘 돼 있어서 막힘없이 읽을 수 있었음에 관계자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이렇게 괜찮은 책을 읽고 나면 책을 출판한 출판사가 괜히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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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삶 - 사유와 의지
한나 아렌트 지음, 홍원표 옮김 / 푸른숲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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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사유에 대한 보고서


개인은 전체 속에서 존재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국가권력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간섭하고 통제했던 전체주의는 파시즘, 나치즘, 볼셰비즘, 군국주의 등 나라마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잔인하고 악랄했던 사건을 뽑으라면 아돌프 히틀러의 ‘홀로코스트(Holocaust)’와 스탈린의 ‘볼셰비즘 독재’라고 본다. 1940년 당시 유럽에 살고 있던 유대인 600만여 명을 인종청소라는 명목 아래 체계적으로 학살한 히틀러의 만행은 정말 치가 떨릴 정도로 잔인하고 무자비했다. 스탈린 또한 공산당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농부들)을 강제노동수용소인 ‘굴라크(Gulag)’에 감금하면서 강제노동을 시켰는데, 그 굴라크에서 죽어 나간 숫자만 600만~1,500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스탈린의 독재 또한 히틀러 못지않게 정말 끔찍하면서도 너무 잔인했다. 이렇듯 전 세계에서 ‘전체주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독재와 학살을 보고 자란 독일 태생의 유대인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에게 전체주의가 저지른 만행은 여러 생각을 갖게 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예루살렘 법정에서 진행된 아이히만 재판을 참관하면서 자신은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 죄가 없다는 그의 말에서 한나 아렌트의 상징이 된 ‘악의 평범성’이 탄생되기에 이른다.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에서 한나 아렌트는 그가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함 속에서 특징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가운데 드러난 사유하지 않음이었다. 아이히만을 통해 ‘사유의 부재(무사유)’를 발견한 한나 아렌트는 사실적 경험에서 형성되는 도덕적 질문들에 대한 어떤 의심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고, 그 의심을 해부한 책이 바로 한나 아렌트 철학의 정수를 담은 《정신의 삶》이다.


그녀의 전작인 <인간의 조건>에서 ‘전체주의적 과정’과 그로 인한 근본악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이 필요 없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목표 아래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쓸모없게 만드는 것이 전체주의적 과정이고,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을 쓸모없게 만들어버리는 전체주의적 체계가 ‘근본악’을 만들었다”고 말이다.(‘인간의 조건’ 31쪽 中, 한길사) 그러면서 인간의 조건의 핵심이자 근간을 이루는 노동, 작업, 행위를 활동적 삶의 주요 테마로 삼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정신적 삶》에서는 우리의 삶에서 정신의 삶이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면서 그 근간으로 사유, 의지, 판단을 조명하고 있다. 사유, 의지, 판단이 우리가 일상적인 생활에서 경험하는 근본적인 활동임에도 이러한 정신활동이 직업적인 철학자들의 몫이었기에 접근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신적 삶은 활동적인 삶과 더불어 철학자들을 포함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경험하는 것이기에 정신적 삶을 이해하고 노력하는 것은 우리들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 속에서 사유, 의지, 판단의 중요성을 한나 아렌트의 《정신적 삶》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사유]

한나 아렌트는 기존에 있던 형이상학적 전통을 비판하면서 사유를 시작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세계를 [존재=현상]이라는 명제를 통해 정신적 삶과 정치적 삶의 원초적 본질에 대해 고대부터 현재까지를 아울러서 ‘정신의 삶’으로서 사유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하나의 현상에서부터 출발해서 현상세계 속 정신 활동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사유란 무엇을 의미하고, 우리는 왜 사유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근대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를 중심으로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칸트, 마르크스 등의 철학자들을 통해 현상의 우위성과 사유의 원형, 사유, 이성, 의미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유에 대해 살피고 있다. 관조적 삶이 활동적 삶보다 우위에 있다는 기존의 틀을 과감히 깨부수고, 활동적 삶과 정신적 삶은 서로 대조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게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사유의 필수조건이다.


[의지]

사유와 이성, 의미의 상관관계와 그 원형을 소크라테스를 중심으로 살폈다면 의지의 중심에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있다. 의지와 지성, 자유의 연관성과 그 의미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 사도 바울, 에픽테토스, 아우구스티누스의 의지이론을 통해 의지를 소개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토마스 아퀴나스와 둔스 스코투스를 통해서는 의지와 지성의 우위성에 대해 밝힌다. 아퀴나스는 지성이 의지보다 우위에 있다는 입장이고, 둔스 스코투스는 지성보다 의지의 우위성을 주장한다. 마지막에 가서는 독일의 관념론과 니체와 하이데거를 통해 의인화된 의지의 개념(독일의 관념론은 의지를 형이상학적 범주로 설정)과 의지를 존재론적 범주가 아닌 인간 능력으로서의 의지에 정면으로 도전한 니체의 영원회귀와 초인, 하이데거의 ‘존재의 역사’ 이념을 통해 의지를 설명한다. 이렇듯 ‘의지’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한나 아렌트는 여러 철학자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주장을 서로 반박하게 하면서 의지 활동의 역사가 반대와 대립의 연속이었음을 상기시킨다.


[판단]

‘판단’의 중심엔 칸트가 있고, 그의 저서인 <판단력비판>을 통해 ‘판단’을 다루는데 한나 아렌트는 이 책 ‘의지’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유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는 이 난관은 다른 정신 능력, 즉 시작 능력 못지않게 신비스러운 능력인 판단 능력에 대한 호소를 통한 경우를 제외하고 열리거나 해결될 수 없다.” (698쪽 中) 이렇듯 ‘판단’은 정신의 삶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정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인데 한나 아렌트는 ‘의지’ 원고를 끝내고 얼마 되지 않아 심장마비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게 된다. 고로 ‘판단’을 집필하지 못한 것은 한나 아렌트가 생전에 강의한 칸트 정치철학 강의 발췌문으로 ‘판단’을 대신하는데 이 부분은 한나 아렌트의 역작인《정신의 삶》에서 크나큰 오점이자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나 아렌트를 생각하면 사유한다는 자체가 사치로 느껴질 만큼 정신 활동에 대한그녀의 학문적 열정과 그 깊이는 정말 대단했다. 700페이지가 넘는《정신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 그녀의 전작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인간의 조건>을 읽었지만 그녀가 말하는 사유와 의지, 판단에 대한 철학들은 너무나 깊고 난해했다. 그래서 말인데 평생을 바쳐 사유에 대해 연구한 한나 아렌트를 생각한다면 이 책《정신의 삶》을 읽을 땐 한나 아렌트처럼은 아니더라도 사유에 대한 지식을 공부하면서 읽으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소크라테스부터 아우구스티누스, 하이데거, 니체, 칸트에 이르는 철학자들의 논리와 철학을 이해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조금은 수월하게《정신의 삶》에 접근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법정에서 아이히만이 보여준 ‘사유의 부재’를 통해 ‘악의 평범성’의 무서움에 대해 알게 됐다면, 이제 우리는 한나 아렌트의《정신의 삶》을 통해서 사유하고, 의지하며, 판단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곧 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사유하게 하는가라는 질문은 우리는 왜 사유하는가라는 질문과 연계된다.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에 사유한다. 사유한다는 것은 진정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691쪽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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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무릎 강화법 - 등산할 때 아픈 무릎을 낫게 하는 테이핑.스틱 사용법.근력 트레이닝.스트레칭
고바야시 데쓰오 지음, 오시연 옮김, 윤치술 감수 / 보누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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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다닌지는 꽤 오래됐다. 담배로 인한 골골함이 원인이었지만 허리도 변변치가 못해서 친구의 권유로 등산을 시작했었다. 처음엔 젊은 혈기로 열심히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재미도 있고 산 정상을 밟는 성취감으로 인해 힘든 것도 모르고 등산을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산에서 내려올 때면 무릎이 아팠다. 처음엔 나아지겠지 하며 계속 등산을 했는데 갈수록 무릎 통증이 심해지고 나중엔 산에서 내려오는 시간이 올라갈 때보다 배는 더 걸릴 정도로 느릿느릿 산을 내려오게 되더라. 안되겠다 싶어 무릎 강화운동도 찾아서 해보고 무릎보호대도 사서 착용해봤는데 그때뿐임을 느낀다. 그도 그럴것이 산에 갔다 오면 무릎이 아파서 삼일은 끙끙대다가 컨디션을 회복하곤 하니까 말이다. 정말 무릎 때문에 등산은 포기해야 하는 걸까? 아픈 무릎을 튼튼하게 해주는 방법은 없는 걸까?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태’라는 말처럼 무릎이 어떻게 생겼고, 무릎은 무엇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지, 무릎의 기능과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면 무릎 통증의 원인은 쉽게 알 수 있다. 다리가 움직일 때 무릎관절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그 움직임과 무릎의 구성요소를 알아야 한다. 참고로 이 책《등산 무릎 강화법》에서는 무릎구성요소를 알기 쉽게 그림으로 설명해 주는데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는데 있어서 왜 무릎이 중요한지를 무릎을 구성하고 있는 조직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무릎을 구성하고 있는 뼈를 비롯해서 연골, 대퇴골, 경골, 슬개골, 반월상연골, 인대, 전.후방 십자인대, 내.외측측부인대, 근육, 장경인대, 슬개건, 연부 조직 등 무릎을 구성하고 있는 조직이 너무나도 많았고, 그 하나 하나 중에서 하나라도 다치게 되거나 고장이 나면 무릎에 이상이 생기게 되고, 비로소 무릎에 통증이 시작되는 것이다.


책에서는 등산에서 생기는 무릎 통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그 통증 원인을 부위별로 파악한 후 부위별 예방법을 알아야 통증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연골 또는 반월상연골 등 뼈와 연골의 통증엔 부하를 줄이고 분산시켜야 한다. 산에 오를 때 배낭 무게를 줄이고, 등산 전 몸무게 감량은 꼭 해야 하며, 산행시 등산 스틱을 사용하여 무릎에 가해지는 압력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등산시 부상으로 인해 인대에 손상이 발생했다면 다친 부위에 보호대를 착용하고, 테이핑을 통한 고정, 근력 강화를 통해 무릎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다. 여기에 근육이나 장경인대, 슬개건 등 무릎을 보호하는 연부 조직의 통증엔 적당한 후식과 등산 전 스트레칭, 무릎 근력 강화운동을 통해 무릎통증을 예방할 수 있다.


무릎 통증을 예방하거나 개선하려면 무릎관절 주위에 있는 근육의 유연성을 키우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으로 근육이 다치지 않도록 천천히 호흡하며 트레이닝을 하자(110쪽 中)


《등산 무릎 강화법》을 통해 등산 전 스트레칭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 운동인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무릎에 부담이 가지 않는 방법으로 햄스트링을 키우는 방법 또한 간단하면서도 정말 유익한 내용이었다. 그렇다고 이 책 《등산 무릎 강화법》이 무릎 통증을 무조건 예방하거나 낫게 해준다는 맹신을 해서는 곤란하다. 책에서는 무릎의 정확한 구조와 이해를 통해서 무릎 통증이 생기지 않게끔 예방하는 효과를 줄 뿐이다. 직접 스트레칭을 하고, 근력 트레이닝을 통해 근력을 키우고, 햄스트링, 장요근, 대둔근 등 무릎 주위의 근육들을 단련해서 무릎통증이 오게 하지 않는 건 바로 우리들의 몫인 것이다. 올바른 동작으로 꾸준히 운동하고 단련해서 무릎 통증으로부터 해방된 여러분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또한 지긋지긋한 무릎 통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책에서 설명한《등산 무릎 강화법》을 꾸준히 실천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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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책방 독본 - 실현 가능하고 지속하기 쉬운 앞으로의 책방
우치누마 신타로 지음, 양지윤 옮김 / 터닝포인트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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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수많은 서점과 책방들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했지만 아직까지 책은 본래의 모습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속으로는 골병이 들고 있는 거 다 아는데 겉으로 괜찮다고 말하는 책들의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시간이 흘러 현재엔 전자책과 오디오북의 역습으로 힘겹게 버티고 있는 책들에게 힘내라는 의미에서 책도 서점에 가서 구매하고, 독립서점에도 다니면서 응원해보지만 나의 응원이 책들에게 스며들기엔 너무나도 역부족임을 느낀다. 책방의 운명은 이대로 끝나는 것일까? 시간이 더 흐르게 되면 웃고, 울면서 책들과 함께했던 우리들의 행복했던 추억들은 이제 아련한 기억들로 마음속에서 리플레이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북 코디네이터가 바라본 앞으로의 책방은 어떻게 될까?

그렇게 낙관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비관적이지도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선 책방이 성공하기 위해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여행할 때 즐거움, 친구들과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실 때의 즐거움처럼 책방도 즐거워야 사람들이 찾는다는 것이다. 책방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책을 발견했을 때, 책방을 통해 새로운 흥미를 발견했을 때, 책방에서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 책방에 가는 것이 즐겁고, 그 즐거움이 책방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자 힘이다.


그렇다면 책방에 가는 즐거움만으로 책방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어느 누구도 내릴 수 없지만 이 책에서는 몇 가지 이유를 들어 긍정적인 책방의 모습을 제시한다. 책방은 서점보다 작으면서 동네 주민들이 오다가다 쉬면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사랑방 역할을 하면 더없이 좋겠다. 여기에 책만 팔아서 책방을 유지하는 시대는 끝났고, 책의 덧셈, 뺄셈만으로 이익을 내기가 어렵기에 이제 책방도 곱셈을 할 줄 알아야한다고 이 책의 저자 우치누마 신타로는 말하고 있다. 책의 판매뿐 아니라 이벤트나 각종 토크 이벤트 개최를 통해 책방에 다른 분야를 곱하라는 것이다. 책방에서 책을 파는 시대는 지났다. 책방에서 음반이나 가구, 생활에 필요한 잡화도 팔고 아침에는 영어 회화 교실, 저녁에는 맥주를 마시면서 북 콘서트도 여는 책맥 파티, 더 나아가 책만이 아닌 다른 물건의 판매를 통해 복수의 수입원이 생긴다면 책 판매가 부진할 때 그걸 보충할 수 있고, 그 보충을 통해 책방을 계속 유지해나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단, 책 자체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고 변하는 세상에서 책만큼은 변하지 말고 우리들 곁에 친구로 남았으면 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바라는 바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책방이 전자책과 오디오 앱과의 생존경쟁에서 지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우리들의 도움 또한 절실하다. 인터넷 보다는 서점을 이용하고,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책방이나 독립서점이 있다면 방문해서 책도 구경하고 책도 읽으면서 동네 사랑방처럼 책방을 이용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책방의 미래가 걱정되는 분들께 이 책에 나온 희망의 메시지로 책방은 계속해서 살아남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책방은 우리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애인 같은 존재니깐.


급속히 진화하는 가상 현실 기술은 머지않아 현실과 완전히 똑같은 수준에 도달하여 경험 그 자체가 될 것이다. 물론, 현실의 서점에 가서 책을 사는 체험도 디지털로 완전히 재현 가능하게 된다. 그때가 오면 현실의 서점이 무용지물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질문은 히말라야 상공을 날아다니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비용이 드는 경험이 저렴한 가격으로 가능해졌을 때 사람은 실제로 히말라야에 오르게 될지 묻는 것과 같다. 결국 받아들이는 사람의 문제이다. 지금도 어떤 사람은 직접 여행을 가지 않고 구글 맵의 스트리트 뷰를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는가 하면 오히려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지는 사람도 있다.(본문 40쪽 中)


당신은 구글 맵의 스트리트 뷰를 보면서 편한 의자에 앉아 여행을 하겠는가? 아니면 직접 걷고 체험하면서 여행의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겠는가? 앞으로의 책방 독본은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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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보는 미술관 - 명화를 이해하는 60가지 주제
이에인 잭젝 지음, 유영석 옮김 / 미술문화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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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그림을 보면서 받았던 묘한 여운(충격)이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탈리아 화가인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도마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1601~1602>란 그림인데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도마(토마스)가 자신의 눈앞에 서있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상처가 난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보는 그림이었다. 정말 실감날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도 묘사였지만 예수님이 오른손으로는 수의를 젖히고 왼손으로 도마의 손목을 잡아 그가 검지손가락을 상처 속으로 더 깊이 집어넣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모습은 정말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때의 자극이 그 어떤 배경이나 소품 없이 인물들의 사실적인 묘사만으로도 여운을 줄 수 있는 그림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 그림을 계기로 명화를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혼자 그림을 감상하는 것과 미술관에서 도슨트(docent)에게 설명을 들으면서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정말 천지차이다. 그림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면 혼자 감상하면서 그 그림에 표현된 기법이나 구성을 이해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혼자서 그림을 감상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런데 이 책 《가까이서 보는 미술관》을 읽으면서는 한 명의 친절한 도슨트와 함께 그림을 감상하는 느낌을 받았다. 60개의 그림을 친절한 설명과 함께 각자 그림에 사용된 양식과 기법을 말해주고, 그림을 세분화해서 그 부분마다 표현하려고 했던 작가의 의도를 설명해주고 있으니 정말 그림에 해박한 도슨트가 이 책 속에 들어있었다.


서양미술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그림은 <모나리자>다. 사람들은 <모나리자>란 그림은 잘 알지만,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물체의 윤곽선을 자연스럽게 번지듯 그리는 스푸마토(sfumato) 기법이 적용된 사실은 잘 모른다. 단지 <모나리자>란 그림이 오래돼서 희미하게 보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나리자>에 나오는 여인이 머리에 쓰고 있는 검은색 투명 베일을 발견하고, 그 투명 베일을 통해 그녀가 상喪중임을 알아채는 분들은 얼마나 될까? 나도 <모나리자>에 나오는 여인에 검은 베일을 썼고, 그것이 상喪중임을 암시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이렇듯 우리는 그림을 감상하면서 작가와 그림의 이름은 잘 알지만 깊게 들어가서 이 그림이 어떤 기법을 사용했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른다. 그림을 감상함에 있어서 이런 취약한 부분을《가까이서 보는 미술관》이 채워주고 있는 이 부분이 이 책의 강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16세기 미술사학자 조르조 바사리는 모나리자에 대해 “너무나 완벽하다. 이는 인간의 솜씨가 아니라 신의 솜씨다”라고 극찬했다. 또한 19세기 비평가 월터 페이터는 불가해하다... 무언가의 불길한 손길이 여기 깃들어 있다. 이는 레오나르도의 전 작품에 깔려 있다”고 서술했다.(책 45쪽 中)


지금은 표지가 바뀌었지만 김영하 작가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예전 표지가 프랑스 화가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책을 읽으면서 왜 이런 그림을 책의 표지로 썼는지 궁금했었는데《가까이서 보는 미술관》을 통해 설명을 들으니 죽음을 묘사하는 데 있어선 정말 절묘한 그림이었다고 생각한다. 친구이자 동료였던 마라의 죽음을 설득력 있을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서 그의 죽음을 애도함과 동시에, 이 죽음과 관계없는 세세한 부분들은 과감하게 삭제함으로써 신고전주의 양식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화가로 기억된 다비드, 그의 그림도 이 책《가까이서 보는 미술관》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사람마다 책이나 영화를 보고 느낀 점들이 다르듯 그림 또한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그 다양한 해석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림을 잘못 해석하고 이해한다면 그것 또한 좋지 못한 감상법이라고 본다. 그림을 통해 작가의 의도, 표현양식, 기법들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그림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올바른 감상법이 아닐는지. 고로 이 책《가까이서 보는 미술관》이라는 도슨트를 통해 명화를 쉽게 이해하고 올바르게 접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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