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평전 - 경험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라
사만다 로즈 힐 지음, 전혜란 옮김, 김만권 감수 / 혜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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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번 《한나 아렌트 평전》을 읽은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유대인의 삶이었다. 얼마 전 읽었던 지그문트 바우만도 그렇고, 이번 한나 아렌트도 그렇고, 유대인으로 20세기를 살았다는 게 녹록지 않았음을 새삼 느낀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이 유대인을 욕하는 소리를 듣고 자라야 했던 한나 아렌트는 언제 어디서나 당당할 수 있게끔 닥치는 대로 읽고 공부하면서 또래보다 뛰어난 학생이 되려고 노력했고, 유대인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차별과 괄시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것을 태어나면서부터 몸소 터득한 아이였다. 열네 살 무렵에 철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난해함의 최고봉이었던 칸트와 카를 야스퍼스를 섭렵하고, 괴테, 호메로스를 읽고 외웠으며, 하이데거의 철학을 배우기 위해 거의 필사적으로 매달려 철학 공부에 매진했다. 이런 밑바탕이 한나 아렌트가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사상가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고, 그녀가 유대인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차별을 이겨낼 수 있는 큰 방패막이가 되었다.


책을 읽다 보면 한나 아렌트와 교감(교류)이 있었던 친구들이 나오는데 그 이름만 들어도 너무 쟁쟁하다. <존재와 시간>으로 유명한 하이데거부터 실존주의의 대부인 카를 야스퍼스, 독일의 사회학자 레로폴트 폰 비제, 한나의 첫 번째 남편이자 독일 철학자인 귄터 안더스, 두 번째 남편이었던 하인리히 블뤼허, 독일 평론가인 발터 벤야민, 프랑스 망명을 통해 알게 된 실존주의의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소설가 알베르 카뮈, 그녀의 소올 메이트였던 힐데 프랑켈, 작가인 메리 매카시, 시인이자 소설가인 랜달 자렐, 오스트리아 소설가 헤르만 브로흐 등 한 세상을 풍미했던 철학자, 사상가, 소설가들과 교감을 나눴다는 사실에 그녀가 더 대단해 보이기도 하면서 이렇게 쟁쟁한 분들과 치열하게 토론하고 경쟁하면서 자랐기에 지금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두 번의 전쟁(1, 2차 세계대전)으로 난민과, 망명생활(수용소)을 경험한 한나 아렌트, 그녀에게 있어서 국가는 자신을 보호해줄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홀로코스트’라는 유대인 대학살을 저지른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저지른 만행이었기에 더 큰 상처가 됐으리라. 그녀의 전작 <인간의 조건>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인간이 필요 없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목표 아래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쓸모없게 만드는 것이 전체주의적 과정이고,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을 쓸모없게 만들어버리는 전체주의적 체계가 근본악을 만들었다."라고 말이다.(‘인간의 조건’ 31쪽 中) 이걸 계기로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을 완전히 말살해버리는 전체주의의 무서움을 알게 됐고, 더 나아가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에서 ‘사유의 부재(무사유)’를 발견한 한나 아렌트는 사실적 경험에서 형성되는 도덕적 질문들에 대한 의구심을 자신이 쓴 책들을 통해 대변했고, 그 책들이 지금도 히틀러의 나치즘이나 무솔리니의 파시즘, 스탈린의 볼셰비즘을 경계하라!는 의미로 많은 사람들이 한나 아렌트의 책들을 찾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오해는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평범이란 단어를 어디에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렇지만 제 말은... 저는 그런 의미로 말하지 않았어요. 우리 모두의 안에 아이히만이 있다는 뜻, 그러니까 개개인 모두의 안에 아이히만이 있고 또 뭐가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 아니었어요. 전혀요! 이를테면, 제가 어떤 사람과 대화하는데 이 사람이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제 반응은 이래요. “정말 어이가 없군요.” 그러니깐 제 의도는 이런 의미였어요. (본문 238쪽 中)

(그녀가 사랑했고, 그녀를 사랑한) 한나 아렌트의 러브 스토리를 읽으면서 그녀도 사랑을 하고 낭만을 즐기는 여자였다는 것을 알게 됐고, 하이데거를 무척이나 사랑했지만 그가 나치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17년이나 말을 섞지 않았다는 걸 보면서 그녀가 나치즘을 얼마나 혐오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이 책《한나 아렌트 평전》을 통해 한나 아렌트의 핵심적인 철학적 사상과 사유에 대해 깊이 있게 알 수 없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평전’이라는 타이틀을 달았기에 그녀의 핵심적 사상을 공부하고 싶은 분들은 그녀의 다른 책들을 통해 지적 욕구를 충족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시중에 나온 한나 아렌트의 책들은 거의 다 읽은 거 같은데 그녀의 새로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그녀가 줄곧 외치는 사유 속에 더 들어가고 싶다는 지적 호기심이 나를 자극한다. 더불어 평탄치 않았던 그녀의 삶 속에서 사유와 사랑을 통해 그녀의 정신적 삶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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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 - 유동하는 삶을 헤쳐나간 영혼
이자벨라 바그너 지음, 김정아 옮김 / 북스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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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문트 바우만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폴란드, 유대인, 유동성(Liquid), 사회학자 등등 그중에서도 유대인은 지그문트 바우만을 평생 괴롭혔던 단어 중 하나였다. 10세기경 지금의 폴란드 서쪽 지방을 중심으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폴란드는 18세기에 이르러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 3국의 침입으로 분할지배를 받다가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8년에 새롭게 독립한 나라인데 지그문트 바우만이 태어난 1925년은 폴란드가 독일과 소련이라는 강대국들의 침입을 받던 시기라 나라의 정세 또한 굉장히 혼란스럽고 불안했다. 이런 시기에 폴란드 내의 유대인들은 종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거의 눈엣가시와 마찬가지였다. 독일에서도 홀로코스트란 이름으로 수많은 유대인이 학살을 당했고, 소련도 여기저기에도 속하지 않는 유대인을 탐탁지 않게 여겼으니 유대인은 설 곳이 없었고, 지그문트 바우만 역시 태어남과 동시에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폴란드 내에서 많은 탄압과 모욕, 멸시를 받아야만 했다.


런 와중에 제2차 세계대전은 바우만에게 있어 공포이자 기회였다. 독일군의 거센 폭격을 맞아가며 떠나야 했던 피난길은 어린 바우만에겐 크나큰 충격이자 공포였지만 여러 언어와 민족이 섞여 있는 모워데치노(전쟁 전에는 폴란드의 소도시, 전쟁 후에는 소련의 지배를 받는 벨라루스로 편입)로의 피난은 바우만에게 있어 유대인의 차별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여러 문화와 여러 인종, 여러 언어가 뒤섞인 곳에서 차별 없이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에 이만한 곳이 없었고, 후에 지그문트 바우만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회학자로 우뚝 설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고 본다.


제는 군대를 들어가서도 유대인이라는 꼬리표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는 것이지만 그 차별 속에서도 승승장구 진급을 했고, 바르샤바라는 새로운 도시에서 시나브로 사회주의라는 체제 속으로 젖어들고 있었다.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교수에 임용되었지만 폴란드 사회는 바우만의 정치 활동과 학문 활동이 불순하다는 것, 유대인이라는 출신 성분, 이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바우만과 야니나를 ‘공공의 적’으로 분류해서 감시와 통제를 서슴지 않았다. 이 이유가 바우만이 폴란드를 떠나 이스라엘로 이주하게 한 결정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 이 세계적인 사회학자를 폴란드가 버렸다는 게 맞을 듯싶다.


집 아닌 트집을 잡아 폴란드를 떠나게 만들었고, 새롭게 이주한 이스라엘에서 바우만은 이방인과 다를 바 없었다. 소위 말하는 ‘3월 알리야’(알리야는 원래 히브리어로 ‘위로 오르다’는 뜻이다. 그리고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더는 소수에 속하지 않는 나라에서 살기로 마음먹고 그동안 살던 곳을 떠나는 이동을 가르킨다. 461쪽)의 첫 주자가 바우만이었고, 힘들고 고독한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가야 했지만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는 전문적 지식인과 학자에 속해 많은 특권을 누릴 수 있었던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다 해도 바우만의 조국은 폴란드였기에 폴란드는 바우만을 과감히 버렸지만 그는 폴란드에 대한 귀를 열어두면서 여러 경로를 통해 폴란드의 소식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르샤바에서의 바우만이 유대인으로서 받는 차별을 걷어내기 위해 열심이었다면 텔아비브에서의 바우만은 정서적인 안정 속에서 그의 전공을 마음껏 공부할 수 있었고, 영국 리즈에서는 바우만의 학문이 꽃을 피웠던 시절이 아닐까 생각한다. 폴란드에서 이스라엘로 다시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유대인으로서 디아스포라의 애환을 겪었지만 그의 학문에 있어서 만큼은 이런 시련이 세계 속의 바우만을 있게 만들었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 용기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다. 영웅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두려움에 지배받기 전에 두려움을 억누른다. 그래서 영웅이 된다.(본문 129쪽 中)


리는 유동의 세계에 살면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액체처럼 끊임없이 유동하며 변하고 있다. 바우만도 그가 말하는 유동성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유동의 세계를 살았다. 폴란드의 포즈난에서, 바르샤바에서,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서, 영국의 리즈에서, 그리고 다시 폴란드로 유동하면서 힘들고 어려웠던 삶을 그가 연구하고 공부했던 학문에 투영시켰고, 불안정한 삶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었으며,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조언을 우리들에게 아끼지 않았다. 


개(滿開)한 삶을 살았던 바우만은 우리 곁에 없지만 그의 사상과 철학은 우리 곁에 남아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로한다. 이 책《지그문트 바우만》을 읽으면서 지정학적 위치와 복잡한 정치 상황 등 우리나라와 닮은 꼴인 폴란드 역사를 공부하는 게 재밌었고, 바우만의 출생과 사망이라는 기간 동안 그가 걸어갔던 길들을 다시 반추해보면서 그의 삶을 재조명할 수 있었다는 게 너무나도 유익했다. 바우만이 어떻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회학자이자 철학자가 될 수 있었는지, 유대인으로서의 외로운 삶을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그의 유동하는 삶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게 무엇이었는지를 말이다. 지금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하는 삶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정체성의 혼란이 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항상 움직이고 있기에 나도 무엇을 해야 할 것만 같고, 액체처럼 유동하면서 위태위태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우만의 철학과 사상이 유동하며 갈팡질팡하는 영혼들에게 하나의 위로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그 위로가 수없이 변하는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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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 선집
찰스 디킨스 지음, 권민정 옮김 / 시공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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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작가들 중에서 왠지 접하고 싶지 않은 분들이 있다. 도스토옙스키가 그렇고, 괴테가 그렇고, 이번에 읽은 찰스 디킨스도 그렇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책을 읽고 다소 어렵다는 입소문이 내 귀에까지 들어온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목록에서 찰스 디킨스는 이제 지워야겠다. 책 모임 때문에 읽은 책이었지만《두 도시 이야기》를 통해 그의 필력에 푹 빠졌기에 빨리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고픈 마음뿐이다. 지금부터 170년 전에 쓴 소설에서 실제 역사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로맨스와 휴머니즘을 묘사하면서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훔쳐간 찰스 디킨스를 나는 대문호라 불리기 이전에 이야기꾼이라고 말하고 싶다. 재미도 있었고, 읽다가 마음 한구석이 아련하기도 했고, 다 읽고 나서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그 당시로 들어가 시드니 카턴도 돼보고, 찰스 다네이도 돼보면서 디킨스가 말하려고 했던《두 도시 이야기》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들은 찰스 다네이, 시드니 카턴, 드파르주 부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프랑스인이지만 본인 가문의 악행을 참지 못해 프랑스를 떠나 영국에 정착한 찰스 다네이, 변호사란 변변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술에 의존하면서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가는 시드니 카턴, 찰스 다네이 가문의 악행으로 가족을 잃은 후 오로지 피의 복수만 다짐하는 드파르주 부인이 그들이다. 물론 다른 인물(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데 있어 키를 쥐고 있는 마네트 박사와 그의 딸 루시, 마지막에 가서 극적인 장면을 선사하는 프로스 양)들도 나오지만 이 소설의 핵심은 저 세 사람이 아닐까 싶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찰스 다네이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을 따라가면서 읽다가 그 사건들을 뒤로하고 갑자기 튀어나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드니 카턴의 순애보, 복수심과 증오가 지나쳐 폭력과 광기의 인물로 변해버린 드파르주 부인이 평온하게 뜨개질 하는 모습 등에서 이 소설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본다.


《두 도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영국은 산업혁명을 진행하면서 부국의 위치에 오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70여 년 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이 찰스 디킨스의 눈에 들어왔고, 만약 프랑스처럼 지배층이 자신들의 신분과 위치를 이용해서 피지배층을 악랄하게 억압하고 착취한다면 영국에서도 제2의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수 있으니 영국 상류층과 지배계층은 조심하라는 경고의 의미에서 이 소설을 썼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교훈들보다 그 당시의 찰스 디킨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다 보니 교훈도 교훈이지만 개개인의 양심과 책임을 통해 타인을 사랑하고 희생하라!는 원론적인 휴머니즘으로 이 소설을 마무리하는 게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제일 마지막에서 시드니 카턴의 독백을 보면 그 시대에서는 그의 대사가 독자들의 마음을 얼마나 울렸을지 눈에 선하다.


나는 본다. 그녀의 품속에 안겨 있던 내 이름을 딴 아이가 어른이 되어 한때 나의 길이었던 인생행로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을. 그가 워낙 잘해준 덕분에 그 분야에서 내 이름이 그의 빛에 의해 찬란해진 것을. 내가 남겼던 오점들이 그 이름에서 지워져 사라진 것을. 더없이 공정한 판사이자 명예로운 남자인 그가, 나의 이름을 지닌 또 다른 남자아이, 내게 친숙한 이마와 금빛 머리카락을 지닌 그런 아이를 이곳ㅡ그때쯤이면 오늘날의 흉측한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바라보기에 아름답게 변한 곳ㅡ으로 데려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듣는다. 그가 아이에게 다정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 관해 들려주는 것을.(657쪽 中)


찰스 디킨스가 들려주는 그 당시의 프랑스의 시대 상황이 폭력을 넘어 광기로, 다시 기요틴으로 점철되는 모습에서 공포를 느끼기도 했지만 그와 함께 파리와 런던의 1850년대를 여행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주인공들의 서로 다른 로맨스를 보면서는 유치함이 극을 달렸지만 묘하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거 같다. 거기에 시간이 흘러도 자유, 평화, 우애는 인간들에게 변하지 않는 보편적 가치라는 사실도 되새김질할 수 있었다. 지금 두 도시는 1850년대와 비교하면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변했지만 지금도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을 폭력과 복수로 상처 입은 영혼들이 있다면 찰스 디킨스가 전하는《두 도시 이야기》가 위로가 됐으면 좋겠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시드니 카턴처럼 목숨은 못 던지더라도 예쁜 꽃다발을 선물해주는 오늘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싶은 독자분이 계시다면 총 650쪽 분량(3부) 중에서 1부(100여 쪽 분량)만 잘 넘어가면 그다음부터는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니 나처럼 너무 부담을 갖고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덧, 번역에 민감한 편인데 권민정이라는 번역가는 처음 들어보는 분이었지만 초반부를 제외하곤 너무 술술 익혀서 번역가를 메모할 정도로 번역도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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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은밀한 감정 - Les émotions cachées des plantes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백선희 옮김 / 연금술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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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게도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란 게 있다면 한번 물어보고 싶다. 그 한세월을 어떻게 기다리고만 있냐고, 혹 다리가 아프지는 않냐고, 그렇게 타인에게 내어주는 삶이 고달프지는 않냐고 묻고 싶지만 그들은 그 어떤 내색도 하지 않고 팔을 벌려 우리를 안아주기만 한다. 감정이란 게 있다면 서운할 법도 한데 그렇지 않은 걸로 봐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다르게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으며,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식물이라고 생각했다. 꽃을 피우고, 그 꽃잎이 떨어지는 크나큰 아픔을 맛보면서도 파릇파릇한 잎을 다시 걸치고 나타나는 식물들의 모습에서 어쩜 저렇게 태연자약할 수 있는지 그 흔들림 없는 그들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애잔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내 생각이 정말 틀렸구나’ 였다. 식물들의 세계가 겉으로 보기엔 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니 이건 정말 그 무엇보다 다이내믹하고, 그들의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이 이곳저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자신의 화분을 퍼트리기 위해 곤충들을 유혹하는 유카(실난초)의 처절한 몸짓들, 욕설과 칭찬 중에서 칭찬을 받고 자란 식물들이 보여준 모습은 식물들을 무럭무럭 춤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공감과 연민이라는 감정 속에서 서로 상생하며 살아가는 아카시아와 개미들의 모습에서, 상대방이 필요할 땐 필요하다고 말하고, 나를 지키고 보호해주는 상대에겐 선물도 할 줄 아는 됨됨이에서, 언어와 소리를 통해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으려는 그들의 배려심에서 식물들의 정말 찐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에게 새로운 원천을 제공해주는 식물을 이해하려고 그들 자리에 서보려고 애쓸 때 우리는 더 인간다워진다.

(본문 204쪽 中)


음악을 좋아하고, 서로의 슬픔을 공감할 줄 알며,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다는 의사표현이 확실한 식물들의 모습에서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그들도 인간들의 희로애락 같은 감정들과 유사한 감정들을 가지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었다. 식물들은 물만 주면 잘 자란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정말 인간들에게 쌀만 먹고 살아가라는 말과 똑같다. 인간이 슬플 때같이 슬퍼해주고, 기쁠 때 서로 웃으면서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바로 식물인 것이다. 인간에게 당하는 어루만짐이 무척이나 싫겠지만 그 싫음을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더 단단하면서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식물들을 보면서 나도 식물 같은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해본다. 동시에 인간과 식물은 서로 상생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에 서로 배신하지 않고 평생을 반려자처럼 함께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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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 작은 뜰을 거니는
프레드 베르나르 지음, 배유선 옮김 / 콤마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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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땐 정원이 딸린 집엔 누가 살까? 가 그리 궁금했다. 담 밖에서 보이는 올곧은 소나무들과 담장을 친구 삼아 올라탄 빨간 장미들, 여름이면 문틈 사이로 보인 하얀 수국, 그리고 이름 모름 꽃들이 정원 안에 한가득이었다. 정원 딸린 집을 지날 때마다 느꼈던 감정들이 하루하루 달랐던 것도 사계절 동안 변화무쌍한 정원의 힘이 아니었나 싶다. 가지치기를 끝낸 나무들에게선 왠지 모를 풋풋함이 느껴졌고, 형형색색으로 옷들을 갈아입은 꽃들을 보면서 나도 무척이나 설레었으니깐. 추운 겨울에 이파리 하나 없이 앙상한 가지를 드리운 나무들을 볼 땐 이유 없는 슬픔이 몰려왔다. 그 슬픔이 끝나기도 전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들을 보면서 나에게 어린 시절 희로애락을 안겨준 그 집 정원에 고마운 마음이다.

 

어느 노부부의 집이었던 200평이 넘는 땅을 일 년 살이를 계획하면서 정원을 싹 다 정리하고 배나무, 호랑버들, 대나무, 개암나무, 딱총나무 등 몇 그루의 나무만 남겨둔 땅에서 생각지도 못한 식물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한다. 갑자기 등장한 식물들에 놀란 것도 잠시 작가는 정원 군데군데 새 화초를 심고 씨앗과 새순을 모았다가 다시 뿌리는 방법을 통해 정원을 만들었고, 그 정원이 정글처럼 무성하게 자라나게 되자 현재 정원의 모습을 동화책 작가답게 글과 그림으로 기록을 하게 되고, 그 기록을 모아 책으로 출간한 게 『작은 뜰을 거니는 정원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다.

 

책은 글보다는 그림이 많고 대부분 그가 쓰고 그린 그림들인데, 2018년 2월 봄을 알리는 봄은방울수선화를 시작으로 정원 사계절의 변화를 책에 담았다고 보면 된다. 영어로 프라임 로즈라 부르는 보라색의 ‘무스카리(Muscari)’도 보이고, 정원에서는 ‘노린재‘가 사방팔방을 누비고 다닌다. 건강한 정원에만 보인다는 ‘민들레’와 ‘산파두꺼비’, 모두가 이 나무를 보면 너무 예뻐서 사랑에 빠진다는 일명 ‘데쇼조’의 단풍나무, 7년을 기다려야 꽃을 볼 수 있다는 인내심의 꽃 ‘발칸작약’, 백합처럼 생겼는데 백합은 아니면서 ‘하루의 아름다움’이란 의미를 가진 ‘원추리’, 성욕을 억제하는 마법의 풀이라는데 유충이 갉아먹고, 달팽이가 갉아먹어서 수난을 겪는 ‘흰백합‘,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접시꽃’, 짤랑짤랑 노오란 색으로 정원을 환하게 비추는 ‘은행나무’, 행운의 상징이지만 몇 시간 안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성을 가진 ‘유럽은방울꽃’ 등 작가의 정원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꽃들은 물론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야생화들의 천국이었다. 여기에 정원의 오지라퍼 ‘노린재’와 나무 타기 선수인 ‘동고비’, 20년 만에 처음으로 정원에 놀러 온 ‘귀뚜라미’, 세상에서 제일 예쁨을 뽐내는 ‘공작나비’, 은빛 날개로 꽃들을 매혹하는 ‘잠자리들’, 정원의 폭군 ‘새매’, 무엇이든 쫌 치는 ‘어치’, 소리는 들리는데 만날 수는 없는 신비의 새 ‘올빼미’, 개암나무에 사는 겁쟁이 ‘청설모’ 등 새와 곤충들도 정원에서 각자의 존재감을 뽐내며 살아가고 있었다.

 

정원을 가꿀 때 비로소 인생이 시작된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그렇다면 내 인생은 199년에 시작되어 이제 곧 서른 살을 맞는다.(본문 48쪽 中)

 

이렇게나 많은 동식물과 곤충들을 실제 그렸다는 것도 대단한데 그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베르나르의 정원에 놀러온 거 같은 착각에 빠질 만큼 그림도 잘 그렸고, 짤막하게 설명하는 글귀 또한 이 책이 주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겉으로 보기엔 아름답기만 한 정원이었는데 실상 속을 들여다보면 거기에서도 생존을 위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기에 치열한 삶의 현장은 동식물이 자라는 자연이나 인간이 사는 사회나 별반 다르지 않구나!를 베르나르의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정원을 가꾸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정원을 잘 가꾸고 관리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는 나무 몇 그루만 남겨둔 땅에서 정글 같은 정원이 만들어졌다고 말하지만 7년을 기다린 끝에 발칸작약을 꽃피우고, 오지 않는 귀뚜라미 소리를 듣기 위해 20년을 기다린 베르나르를 보면서 정원 가꾸는 일이란 기다림의 미학이 아닐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더불어 그 기다림 속에서 올빼미의 웃음소리를 듣고, 노린재의 종횡무진 활약상을 지켜보면서 나도 그처럼 단풍나무와 사랑에 빠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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