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 선집
찰스 디킨스 지음, 권민정 옮김 / 시공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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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작가들 중에서 왠지 접하고 싶지 않은 분들이 있다. 도스토옙스키가 그렇고, 괴테가 그렇고, 이번에 읽은 찰스 디킨스도 그렇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책을 읽고 다소 어렵다는 입소문이 내 귀에까지 들어온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목록에서 찰스 디킨스는 이제 지워야겠다. 책 모임 때문에 읽은 책이었지만《두 도시 이야기》를 통해 그의 필력에 푹 빠졌기에 빨리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고픈 마음뿐이다. 지금부터 170년 전에 쓴 소설에서 실제 역사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로맨스와 휴머니즘을 묘사하면서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훔쳐간 찰스 디킨스를 나는 대문호라 불리기 이전에 이야기꾼이라고 말하고 싶다. 재미도 있었고, 읽다가 마음 한구석이 아련하기도 했고, 다 읽고 나서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그 당시로 들어가 시드니 카턴도 돼보고, 찰스 다네이도 돼보면서 디킨스가 말하려고 했던《두 도시 이야기》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들은 찰스 다네이, 시드니 카턴, 드파르주 부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프랑스인이지만 본인 가문의 악행을 참지 못해 프랑스를 떠나 영국에 정착한 찰스 다네이, 변호사란 변변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술에 의존하면서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가는 시드니 카턴, 찰스 다네이 가문의 악행으로 가족을 잃은 후 오로지 피의 복수만 다짐하는 드파르주 부인이 그들이다. 물론 다른 인물(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데 있어 키를 쥐고 있는 마네트 박사와 그의 딸 루시, 마지막에 가서 극적인 장면을 선사하는 프로스 양)들도 나오지만 이 소설의 핵심은 저 세 사람이 아닐까 싶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찰스 다네이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을 따라가면서 읽다가 그 사건들을 뒤로하고 갑자기 튀어나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드니 카턴의 순애보, 복수심과 증오가 지나쳐 폭력과 광기의 인물로 변해버린 드파르주 부인이 평온하게 뜨개질 하는 모습 등에서 이 소설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본다.


《두 도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영국은 산업혁명을 진행하면서 부국의 위치에 오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70여 년 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이 찰스 디킨스의 눈에 들어왔고, 만약 프랑스처럼 지배층이 자신들의 신분과 위치를 이용해서 피지배층을 악랄하게 억압하고 착취한다면 영국에서도 제2의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수 있으니 영국 상류층과 지배계층은 조심하라는 경고의 의미에서 이 소설을 썼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교훈들보다 그 당시의 찰스 디킨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다 보니 교훈도 교훈이지만 개개인의 양심과 책임을 통해 타인을 사랑하고 희생하라!는 원론적인 휴머니즘으로 이 소설을 마무리하는 게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제일 마지막에서 시드니 카턴의 독백을 보면 그 시대에서는 그의 대사가 독자들의 마음을 얼마나 울렸을지 눈에 선하다.


나는 본다. 그녀의 품속에 안겨 있던 내 이름을 딴 아이가 어른이 되어 한때 나의 길이었던 인생행로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을. 그가 워낙 잘해준 덕분에 그 분야에서 내 이름이 그의 빛에 의해 찬란해진 것을. 내가 남겼던 오점들이 그 이름에서 지워져 사라진 것을. 더없이 공정한 판사이자 명예로운 남자인 그가, 나의 이름을 지닌 또 다른 남자아이, 내게 친숙한 이마와 금빛 머리카락을 지닌 그런 아이를 이곳ㅡ그때쯤이면 오늘날의 흉측한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바라보기에 아름답게 변한 곳ㅡ으로 데려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듣는다. 그가 아이에게 다정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 관해 들려주는 것을.(657쪽 中)


찰스 디킨스가 들려주는 그 당시의 프랑스의 시대 상황이 폭력을 넘어 광기로, 다시 기요틴으로 점철되는 모습에서 공포를 느끼기도 했지만 그와 함께 파리와 런던의 1850년대를 여행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주인공들의 서로 다른 로맨스를 보면서는 유치함이 극을 달렸지만 묘하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거 같다. 거기에 시간이 흘러도 자유, 평화, 우애는 인간들에게 변하지 않는 보편적 가치라는 사실도 되새김질할 수 있었다. 지금 두 도시는 1850년대와 비교하면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변했지만 지금도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을 폭력과 복수로 상처 입은 영혼들이 있다면 찰스 디킨스가 전하는《두 도시 이야기》가 위로가 됐으면 좋겠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시드니 카턴처럼 목숨은 못 던지더라도 예쁜 꽃다발을 선물해주는 오늘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싶은 독자분이 계시다면 총 650쪽 분량(3부) 중에서 1부(100여 쪽 분량)만 잘 넘어가면 그다음부터는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니 나처럼 너무 부담을 갖고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덧, 번역에 민감한 편인데 권민정이라는 번역가는 처음 들어보는 분이었지만 초반부를 제외하곤 너무 술술 익혀서 번역가를 메모할 정도로 번역도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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