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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 - 유동하는 삶을 헤쳐나간 영혼
이자벨라 바그너 지음, 김정아 옮김 / 북스힐 / 2022년 7월
평점 :
지그문트 바우만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폴란드, 유대인, 유동성(Liquid), 사회학자 등등 그중에서도 유대인은 지그문트 바우만을 평생 괴롭혔던 단어 중 하나였다. 10세기경 지금의 폴란드 서쪽 지방을 중심으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폴란드는 18세기에 이르러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 3국의 침입으로 분할지배를 받다가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8년에 새롭게 독립한 나라인데 지그문트 바우만이 태어난 1925년은 폴란드가 독일과 소련이라는 강대국들의 침입을 받던 시기라 나라의 정세 또한 굉장히 혼란스럽고 불안했다. 이런 시기에 폴란드 내의 유대인들은 종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거의 눈엣가시와 마찬가지였다. 독일에서도 홀로코스트란 이름으로 수많은 유대인이 학살을 당했고, 소련도 여기저기에도 속하지 않는 유대인을 탐탁지 않게 여겼으니 유대인은 설 곳이 없었고, 지그문트 바우만 역시 태어남과 동시에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폴란드 내에서 많은 탄압과 모욕, 멸시를 받아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 제2차 세계대전은 바우만에게 있어 공포이자 기회였다. 독일군의 거센 폭격을 맞아가며 떠나야 했던 피난길은 어린 바우만에겐 크나큰 충격이자 공포였지만 여러 언어와 민족이 섞여 있는 모워데치노(전쟁 전에는 폴란드의 소도시, 전쟁 후에는 소련의 지배를 받는 벨라루스로 편입)로의 피난은 바우만에게 있어 유대인의 차별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여러 문화와 여러 인종, 여러 언어가 뒤섞인 곳에서 차별 없이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에 이만한 곳이 없었고, 후에 지그문트 바우만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회학자로 우뚝 설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고 본다.
문제는 군대를 들어가서도 유대인이라는 꼬리표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는 것이지만 그 차별 속에서도 승승장구 진급을 했고, 바르샤바라는 새로운 도시에서 시나브로 사회주의라는 체제 속으로 젖어들고 있었다.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교수에 임용되었지만 폴란드 사회는 바우만의 정치 활동과 학문 활동이 불순하다는 것, 유대인이라는 출신 성분, 이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바우만과 야니나를 ‘공공의 적’으로 분류해서 감시와 통제를 서슴지 않았다. 이 이유가 바우만이 폴란드를 떠나 이스라엘로 이주하게 한 결정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 이 세계적인 사회학자를 폴란드가 버렸다는 게 맞을 듯싶다.
트집 아닌 트집을 잡아 폴란드를 떠나게 만들었고, 새롭게 이주한 이스라엘에서 바우만은 이방인과 다를 바 없었다. 소위 말하는 ‘3월 알리야’(알리야는 원래 히브리어로 ‘위로 오르다’는 뜻이다. 그리고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더는 소수에 속하지 않는 나라에서 살기로 마음먹고 그동안 살던 곳을 떠나는 이동을 가르킨다. 461쪽)의 첫 주자가 바우만이었고, 힘들고 고독한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가야 했지만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는 전문적 지식인과 학자에 속해 많은 특권을 누릴 수 있었던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다 해도 바우만의 조국은 폴란드였기에 폴란드는 바우만을 과감히 버렸지만 그는 폴란드에 대한 귀를 열어두면서 여러 경로를 통해 폴란드의 소식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바르샤바에서의 바우만이 유대인으로서 받는 차별을 걷어내기 위해 열심이었다면 텔아비브에서의 바우만은 정서적인 안정 속에서 그의 전공을 마음껏 공부할 수 있었고, 영국 리즈에서는 바우만의 학문이 꽃을 피웠던 시절이 아닐까 생각한다. 폴란드에서 이스라엘로 다시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유대인으로서 디아스포라의 애환을 겪었지만 그의 학문에 있어서 만큼은 이런 시련이 세계 속의 바우만을 있게 만들었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 용기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다. 영웅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두려움에 지배받기 전에 두려움을 억누른다. 그래서 영웅이 된다.(본문 129쪽 中)
우리는 유동의 세계에 살면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액체처럼 끊임없이 유동하며 변하고 있다. 바우만도 그가 말하는 유동성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유동의 세계를 살았다. 폴란드의 포즈난에서, 바르샤바에서,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서, 영국의 리즈에서, 그리고 다시 폴란드로 유동하면서 힘들고 어려웠던 삶을 그가 연구하고 공부했던 학문에 투영시켰고, 불안정한 삶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었으며,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조언을 우리들에게 아끼지 않았다.
만개(滿開)한 삶을 살았던 바우만은 우리 곁에 없지만 그의 사상과 철학은 우리 곁에 남아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로한다. 이 책《지그문트 바우만》을 읽으면서 지정학적 위치와 복잡한 정치 상황 등 우리나라와 닮은 꼴인 폴란드 역사를 공부하는 게 재밌었고, 바우만의 출생과 사망이라는 기간 동안 그가 걸어갔던 길들을 다시 반추해보면서 그의 삶을 재조명할 수 있었다는 게 너무나도 유익했다. 바우만이 어떻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회학자이자 철학자가 될 수 있었는지, 유대인으로서의 외로운 삶을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그의 유동하는 삶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게 무엇이었는지를 말이다. 지금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하는 삶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정체성의 혼란이 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항상 움직이고 있기에 나도 무엇을 해야 할 것만 같고, 액체처럼 유동하면서 위태위태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우만의 철학과 사상이 유동하며 갈팡질팡하는 영혼들에게 하나의 위로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그 위로가 수없이 변하는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