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평전 - 경험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라
사만다 로즈 힐 지음, 전혜란 옮김, 김만권 감수 / 혜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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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나 아렌트 평전》을 읽은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유대인의 삶이었다. 얼마 전 읽었던 지그문트 바우만도 그렇고, 이번 한나 아렌트도 그렇고, 유대인으로 20세기를 살았다는 게 녹록지 않았음을 새삼 느낀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이 유대인을 욕하는 소리를 듣고 자라야 했던 한나 아렌트는 언제 어디서나 당당할 수 있게끔 닥치는 대로 읽고 공부하면서 또래보다 뛰어난 학생이 되려고 노력했고, 유대인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차별과 괄시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것을 태어나면서부터 몸소 터득한 아이였다. 열네 살 무렵에 철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난해함의 최고봉이었던 칸트와 카를 야스퍼스를 섭렵하고, 괴테, 호메로스를 읽고 외웠으며, 하이데거의 철학을 배우기 위해 거의 필사적으로 매달려 철학 공부에 매진했다. 이런 밑바탕이 한나 아렌트가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사상가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고, 그녀가 유대인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차별을 이겨낼 수 있는 큰 방패막이가 되었다.


책을 읽다 보면 한나 아렌트와 교감(교류)이 있었던 친구들이 나오는데 그 이름만 들어도 너무 쟁쟁하다. <존재와 시간>으로 유명한 하이데거부터 실존주의의 대부인 카를 야스퍼스, 독일의 사회학자 레로폴트 폰 비제, 한나의 첫 번째 남편이자 독일 철학자인 귄터 안더스, 두 번째 남편이었던 하인리히 블뤼허, 독일 평론가인 발터 벤야민, 프랑스 망명을 통해 알게 된 실존주의의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소설가 알베르 카뮈, 그녀의 소올 메이트였던 힐데 프랑켈, 작가인 메리 매카시, 시인이자 소설가인 랜달 자렐, 오스트리아 소설가 헤르만 브로흐 등 한 세상을 풍미했던 철학자, 사상가, 소설가들과 교감을 나눴다는 사실에 그녀가 더 대단해 보이기도 하면서 이렇게 쟁쟁한 분들과 치열하게 토론하고 경쟁하면서 자랐기에 지금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두 번의 전쟁(1, 2차 세계대전)으로 난민과, 망명생활(수용소)을 경험한 한나 아렌트, 그녀에게 있어서 국가는 자신을 보호해줄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홀로코스트’라는 유대인 대학살을 저지른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저지른 만행이었기에 더 큰 상처가 됐으리라. 그녀의 전작 <인간의 조건>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인간이 필요 없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목표 아래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쓸모없게 만드는 것이 전체주의적 과정이고,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을 쓸모없게 만들어버리는 전체주의적 체계가 근본악을 만들었다."라고 말이다.(‘인간의 조건’ 31쪽 中) 이걸 계기로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을 완전히 말살해버리는 전체주의의 무서움을 알게 됐고, 더 나아가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에서 ‘사유의 부재(무사유)’를 발견한 한나 아렌트는 사실적 경험에서 형성되는 도덕적 질문들에 대한 의구심을 자신이 쓴 책들을 통해 대변했고, 그 책들이 지금도 히틀러의 나치즘이나 무솔리니의 파시즘, 스탈린의 볼셰비즘을 경계하라!는 의미로 많은 사람들이 한나 아렌트의 책들을 찾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오해는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평범이란 단어를 어디에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렇지만 제 말은... 저는 그런 의미로 말하지 않았어요. 우리 모두의 안에 아이히만이 있다는 뜻, 그러니까 개개인 모두의 안에 아이히만이 있고 또 뭐가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 아니었어요. 전혀요! 이를테면, 제가 어떤 사람과 대화하는데 이 사람이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제 반응은 이래요. “정말 어이가 없군요.” 그러니깐 제 의도는 이런 의미였어요. (본문 238쪽 中)

(그녀가 사랑했고, 그녀를 사랑한) 한나 아렌트의 러브 스토리를 읽으면서 그녀도 사랑을 하고 낭만을 즐기는 여자였다는 것을 알게 됐고, 하이데거를 무척이나 사랑했지만 그가 나치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17년이나 말을 섞지 않았다는 걸 보면서 그녀가 나치즘을 얼마나 혐오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이 책《한나 아렌트 평전》을 통해 한나 아렌트의 핵심적인 철학적 사상과 사유에 대해 깊이 있게 알 수 없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평전’이라는 타이틀을 달았기에 그녀의 핵심적 사상을 공부하고 싶은 분들은 그녀의 다른 책들을 통해 지적 욕구를 충족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시중에 나온 한나 아렌트의 책들은 거의 다 읽은 거 같은데 그녀의 새로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그녀가 줄곧 외치는 사유 속에 더 들어가고 싶다는 지적 호기심이 나를 자극한다. 더불어 평탄치 않았던 그녀의 삶 속에서 사유와 사랑을 통해 그녀의 정신적 삶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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