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열림원 세계문학 2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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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다 읽고 몇 개의 단어(구절)가 떠올랐다. 첫사랑, 광상곡(狂想曲), 우울한 아름다움......

개츠비의 ‘첫사랑’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가도 자신의 어려웠던 상황과 맞물려 과연 개츠비가 데이지를 정말 사랑했던 것인지(데이지를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의 들었고, 개츠비의 죽음을 보면서는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그(개츠비)만의 방식으로 잘 연주하다가 누군가의 방해로 갑자기 바이올린 줄이 끊어져 버려서 연주회를 망쳐버린 하나의 ‘광상곡’이 떠올랐다. 거기에 이 소설을 읽다 보면 화려함 뒤에 감춰진 공허함과 초라함을 보면서 우울한 분위기가 밀려왔고, 개츠비와 데이지의 풋풋한 사랑을 생각하면 가슴 떨리는 사랑을 떠올리다가도 돈을 좇아 사랑을 선택한 데이지의 이중적인 모습과 그런 데이지를 광적으로 품으려 했던 개츠비의 모습에서 ‘우울한 아름다움’이란 구절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녀는 이제 그곳을 떠나고 없었지만, 그 도시 자체에 대한 그의 느낌은 우울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234쪽)

이번에 읽는 것까지 하면 『위대한 개츠비』는 세 번째 읽었다.(이제부터 하루키와 친구가 될 수 있겠지-?-) 처음엔 다른 사람이 읽으니깐 그들을 따라 멋모르면서 읽었고, 두 번째엔 등장인물들의 면면과 전체적인 줄거리를 조율하면서 읽었고, 이번엔 오롯이 ‘제이 개츠비’란 인물만 생각하면서 읽었다. 개츠비와 데이지가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개츠비와 데이지는 왜 헤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대저택에서 매일 밤 성대한 잔치를 벌이는 이유는 무엇인지, 개츠비의 죽음이 무엇을 말하는지 등등 자신과 신분 차이가 나는 데이지를 처음엔 본인의 지위 상승을 위해 접근했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시나브로 데이지의 신비한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해외로 파병을 떠나기 전날 밤 개츠비의 감정선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데이지를 사랑했는지 이심전심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사랑을 나눈 한 달 동안, 데이지의 말 없는 입술이 그의 윗옷 어깨를 스칠 때만큼, 또는 그녀가 잠들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그녀의 손끝을 살며시 만질 때만큼 서로 가깝게 느낀 적도 없었고 서로의 마음이 더 깊이 통한 적도 없었다.(250쪽)

그가 떠난 후 데이지는 ‘전쟁과 평화’의 나타샤처럼 현실(돈)이 이끄는 대로 톰 뷰캐넌을 선택했고, 전쟁터에서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 개츠비에게 남은 건 데이지가 아닌 돈(물질)으로 점철된 욕망의 늪지대뿐이었다.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빠져들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에서 개츠비는 첫사랑인 데이지를 잡기 위해 돈을 선택했다. 여기에 돈을 벌기 위해 불법(밀주업자)도 자행했지만 결국 그에게 되돌아온 건 허망한 죽음이었고, 그 죽음을 통해 개츠비는 본인이 원했던 사랑도, 출세도, 욕망도, 명예도 모두 잃은 채 우울한 아름다움을 우리들에게 남기곤 홀연히 떠나버렸다.

피천득 선생의 ‘인연’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그리워하는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개츠비는 첫사랑이었던 데이지를 그리워했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밤마다 성대한 파티를 열면서 매 순간 그녀를 기다렸다. 하지만 개츠비는 그녀를 마음속으로만 간직하면서 그녀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런 허무한 죽음도, 개츠비의 쓸쓸한 장례식도, 욕망에 찌든 허세의 삶도 살아가지 않았을 텐데. 반대로 데이지를 마음속으로만 품고 만나지 않았다면 개츠비의 삶은 행복했을까? 개인적인 생각인데 개츠비는 아마도 평생을 욕망과 물질에 찌든 삶을 살면서 자기 자신을 파멸로 이끌었으리라.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난 후 계속해서 여운이 남는다. 한 여자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개츠비의 입장에서, 때론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닉 캐러웨이의 입장에서, 닉 주변을 맴돌면서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하는 조던 베이커와 개츠비가 사랑한 데이지의 행동들과 대사들이 머릿속에 계속 남는다. 책을 읽고 여운이 남는다는 건 뭔가 아쉽다는 뜻일 테고, 다음에 읽을 땐 다른 장면, 다른 인물들에게서 허전함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만약 네 번째 읽게 된다면 이 소설이 출판된 1920년대 미국 사회의 모습도 눈에 들어올 거라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명불허전 김석희 선생의 번역 또한 훌륭해서 막힘없이 술술 잘 읽을 수 있었고, 새롭게 시작하는 열림원의 세계문학 시리즈가 많은 분들께 사랑받길 바라본다.

개츠비는 그 초록 불빛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멀어지고 있는, 환희에 찬 미래의 존재를 믿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것이 우리한테서 달아났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내일은 우리가 좀 더 빨리 달리고, 좀 더 멀리 팔을 내뻗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맑게 갠 아침이...... 그래서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흐름을 거슬러가는 조각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302쪽, ‘위대한 개츠비’ 마지막 구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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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인 브레인 - 탄수화물은 어떻게 우리의 뇌를 파괴하는가, 개정증보판
데이비드 펄머터 지음, 김성훈 옮김 / 시공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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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진화한 이래로 식습관은 변화를 거듭했다. 구석기 시대엔 채집과 수렵, 어로가 주였기에 산 채로 잡아서 먹는 시대였다. 배고프면 키우거나 잡아서 먹었기에 인간들에게 주 공급원은 지방과 단백질 위주의 고단백이었을 거라 추측이 된다. 그러다가 농경사회를 거치게 되면서 농작물을 키우게 되고 벼농사를 시작하게 되면서 탄수화물 섭취가 점점 보편화되고, 지금에 와서는 거의 대부분의 식단에서 탄수화물과 당류가 주를 이루게 됐다. 아침에 먹는 시리얼부터 시작해서 빵, 음료수, 밥, 스파게티, 과일 등 거의 모든 음식에 탄수화물과 당이 들어 있고 우리는 즐겁게 이것들을 섭취하고 있다. 그러다가 부지불식간에 당뇨병과 대사증후군의 위험성에 빠지게 되고, 평생 혈당을 조절하는 약을 먹으면서 우울한 일생을 보내게 되는 게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평생 먹어온 탄수화물을 끊을 수도 없는 일이기에 이런 상황에서 의사들의 충고나 조언을 통해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반 쌀보다는 현미가 좋고, 밀가루로 만든 빵보다는 통곡물로 만든 빵을 먹어가면서 탄수화물의 노출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픈 노력을 하고 있는 게 바로 우리들의 일상이 돼버렸다.

탄수화물과 불용성 단백질인 글루텐 섭취를 줄이고 지방 섭취를 늘리는 저탄고지가 이 책 「그레인 브레인」의 키워든데 이 책을 다 읽고 든 생각은 과연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식습관을 바꿀 수 있을까였다. 예부터 한국인은 밥심으로 살아간다고 했거늘 지금까지 먹고 살아온 쌀밥의 섭취를 줄이고, 빵, 밀가루를 멀리하고, 건강한 지방식을 먹으라는 것, 콜레스테롤이 우리 몸에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 지금까지 우리가 먹은 탄수화물이 우리 몸의 염증을 일으키고, 치매, 알츠하이머 등 뇌와 관련 있는 질환뿐 아니라 당뇨, 비만, 고혈압, 대사증후군과 같은 성인병 질환의 주범이 바로 탄수화물과 같은 글루텐이라는 것, 이뿐 아니라 우리가 몸에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유기농 빵이나 통곡물 식빵, 현미, 신선한 과일도 앞에서 설명한 만성질환들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글루텐이 가득 든 탄수화물을 폭식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들이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글루텐은 우리 세대의 담배라고 할 수 있다. 글루텐 민감성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널리 퍼져 부지불식간에 우리에게 어느 정도 잠재적인 해를 끼치고 있다. (본문 116쪽 中)

그렇다면 무엇을 먹어야 우리의 뇌와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 말 그대로 탄수화물은 줄이고 건강한 지방식을 섭취해서 ‘그레인 브레인’을 치료하라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아무리 좋은 곡물이라 할지라도 탄수화물과 글루텐은 입에 대지 말고, 뇌의 영양분을 구성하는 콜레스테롤의 섭취를 늘리라는 것, 단식을 통해 끊임없이 뇌를 자극하고, DHA인 오메가-3 지방산을 꾸준히 복용, MCT나 코코넛오일의 섭취, 항염증 작용과 항산화 작용에 효과적인 강황과 내장을 튼튼하게 하는 프로바이오틱스, 뇌세포를 보호하는 커피콩 씨앗, 몸의 에너지원을 구성하는 알파리포산, 비타민 B-복합체, 비타민 D 등의 섭취와 함께 꾸준한 운동을 통해 우리의 뇌를 똑똑하게 만들어서 뇌질환의 공포에서 벗어나자는 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이 책의 내용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으나 탄수화물은 우리의 뇌 상태를 흐리게 하고 우리 몸의 혈관을 망가트린다는 것은 팩트다. 우리의 뇌가 고장 나면 앞에서 말한 치매나 알츠하이머 같은 뇌질환이 올 것이고, 혈관이 망가지게 되면 당뇨, 고혈압 등 대사증후군이 찾아올 것이기에 탄수화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끊는 것이 맞다. 그리고 앞에서 설명한 우리의 몸과 두뇌에 좋은 약이나 식품을 섭취하는 것도 맞다. 중요한 것은 밥을 먹고 음식을 섭취하는 한국인의 밥상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건 선택의 문제에 앞서 우리 인간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인데 아직도 많은 분들이 이 책의 주된 내용에 반신반의하는 것도 사실이다. 나도 이 책에 나온 대로 식단을 바꿀 자신은 없다. 그러나 내 두뇌의 건강을 위해, 미래의 내 노후를 위해 탄수화물은 반드시 줄여나갈 생각이고, 내 상식과 정반대였던 좋은 지방과 양질의 콜레스테롤은 꼭 섭취해서 ‘그레인 브레인’과 작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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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 베이식 아트 2.0
프랑크 죌너 지음, 최재혁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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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서 모나리자의 그림을 본 건 처음이다. 그것도 미술관이 아닌 가로 22, 세로 27의 미술책 판형을 통해서. 처음 봤을 땐 “이게 레오나르도 다빈치 하면 떠올리는 모나리잔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계속 보고 있으니 판본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과 묘하게 웃고 있는 눈가의 미소가 점점 그림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누구의 말처럼 “눈썹도 없고 그렇게 미인 같지도 않은 여인을 왜 그리 많은 사람들이 열광을 할까?” 란 생각을 해보게 되지만 결국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그림이라서 뭔가 특별할 거 같은 기대감 속에 다빈치가 모델로 삼은 여성의 원숙미가 더해져서 지금의 모나리자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피렌체에서 화가로서의 견습 생활을 시작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드로잉 솜씨는 가희 천재적이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그 시대의 작가와 비평가들은 그에게 “결코 평범하지 않으면서 독보적이기에 언제나 주목할 수밖에 없는 작품(본문 7쪽)”이라는 찬사를 남길 정도로 다빈치의 그림 솜씨는 처음부터 수준급이었다. 이런 천재적인 드로잉 기술을 가졌음에도 완벽함을 추구하는 그의 열정과 한 번에 너무 많은 작품을 손대다 보니 그림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포기해버린다는 치명적 단점이 항상 주위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 불안을 뒤로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건축학, 해부학, 과학 등 여러 분야의 그림 그리기에 열중했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의 그림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런 과도기를 발판 삼아 그의 나이 서른에 밀라노에서 <암굴의 성모>란 작품을 통해 화가로서의 지위를 확실하게 각인시킨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궁정화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기에 이른다. 궁정화가가 됐다는 것은 이른바 ‘궁정’이라는 안정적인 무대가 있으니 그가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더 안정적이면서 편안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해석하면 편할 듯하다. 이때 그린 그림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함께 화가로서 명성을 널리 알린 <최후의 만찬>이었다. 예수를 둘러싸고 나는 배반자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듯한 열두 제자의 모습을 네 무리로 나누어 각 인물에 맞는 표정과 몸짓을 정확히 표현해낸 생동감 있는 요소들과 장소적 특성을 고려한 원근감 및 인물들에 대한 리듬감의 부여 등을 통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예술의 혁신적인 모든 것을 <최후의 만찬>에 쏟아부었고, 그 결과 <최후의 만찬>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는 것이다.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 - 지금은 많이 손상되었지만 이 벽화는 치밀하게 계획된 인물들 각각의 표정과 자세의 표현 이외에도 무엇보다 인물을 몇 개의 무리로 나누어 대조적인 효과를 주었다는 점에서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본문 52쪽 中)

96쪽 분량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읽으면서 그의 드로잉 솜씨에 놀랐고, 그가 그린 그림들을 보면서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이라는 타이틀이 괜히 붙은 게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스푸마토’라는 기법으로 그렸다는 <세례자 성 요한>을 보면서는 컴컴한 방 안에서 홀로 빛을 발하는 촛불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운 요한의 모습과 투명한 도료를 여러 번 겹쳐 바르면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기에 열심인 다빈치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묘한 신비감을 주기도 했다. 이처럼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통해 그가 그림을 통해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화가였다는 사실과 그런 호기심을 그림을 통해 불어넣었던 그의 천재적인 영감들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서 읽는 내내 즐거웠고 행복했다. 이런 행복감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을 좋아하는 다른 분들도 느꼈으면 좋겠고,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을 통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진가를 다시 한번 확인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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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숲속의 올빼미
고이케 마리코 지음, 정영희 옮김 / 시공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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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달밤 숲속에서 한 마리 올빼미가 소리를 죽여가며 울고 있다. 삶이 즐거운 사람에게 그 울음소리는 하늘에 떠있는 달을 더 밝게 비추는 조명효과가 될 테지만 마음 한구석에 슬픔을 간직한 사람에게 달밤 숲속 올빼미의 울음소리는 그리움에 사무친 이별가처럼 들린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이별을 한다. 다양한 이별 속에서 여기 남편과 사별한 한 여자의 그리움이 올빼미라는 대상에 감정이입되어 구슬프게 울고 있다. 그리움에 문득 떠난 그 사람을 생각해 보면 내 옆에서 한없이 조잘거리던 그였고, 매번 무덤덤하게 말하던 그였는데, 해맑은 얼굴로 나에게 장난치던 그가 지금 내 옆에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쓰디쓴 울음이 터져 나온다.

그녀는 그와 37年을 함께 살았다. 말이 37年이지 강산이 세 번도 더 변했을 시간 동안 그와 그녀는 함께 했다. 서로가 글을 쓴다는 이유로 묘한 동질감도 있었고, 혈기왕성할 때 만나 치열하게 싸운 적도 많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고, 각자가 쓴 작품들을 공유하면서 앞으로 쓸 소설들과 함께 미래를 얘기했다. 함께 쓰고, 함께 사유하면서 일본의 권위 있는 상인 나오키상도 차례로 받은 그들이었다. 이런 부부에게 있어 남편인 후지타 요시나가의 암 선고와 사망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들 부부의 삶이 암으로 인해 남편이 시한부 선고를 받고 거기에 코로나19가 함께 온 순간 그들의 삶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가 각자가 겪은 슬픔들을 어깨에 얹고 살아가지만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어떤 슬픔이나 고통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 상실이나 아픔에 대해 함부로 재단할 수도 없다. 섣불리 한 위로가 상대에게는 더 큰 상실감을 주기도 하고, 한 사람의 삶을 망쳐버릴 수도 있기에 큰 상실감을 겪은 분들께 위로나 충고도 쉽지 않다. 고이케 마리코의 《달밤 숲속의 올빼미》란 에세이를 읽으면서 그녀가 남편과의 사별을 잘 극복하고 있구나! 란 생각을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녀의 외로움에 사무친 슬픔과 쓸쓸함이 나에게 이심전심으로 전해지는 거 같아 마음이 많이 아프다. 곁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죽으면 너무나 큰 상실감으로 인해 눈물도 나오지 않다가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 울음이 터진다고 하는데 고이케 마리코의 상황이 딱 그 상황인 거 같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잘 대처했고 잘 견뎌왔다고 생각한 나(고이케 마리코)였는데 문 앞에 가지런히 놓인 그의 신발이나 옷을 보면서 갑자기 터져버린 울음이 그치지 않는 그런 상황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그녀를 위로하고 누가 그녀의 어깨에 얹힌 슬픔을 거둬들일 수 있을까? 그건 바로 깊은 달밤 숲속에서 울고 있는 올빼미처럼 자기 스스로가 슬퍼하고 애도하면서 그 슬픔을 극복하는 거 말고는 그 누구도 위로를 대신할 수 없다. 그녀와 함께 살아가는 창밖 작은 생명체들이 그녀 옆에서 그녀의 삶을 지켜보는 거 말고는.

가을 기운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마당에는 엉겅퀴 꽃이 무리 지어 피었고, 동글동글한 말벌과 작은 박새가 꿀을 먹으러 찾아든다. 먼 나무에서, 기름매미 한 마리가 조금은 쓸쓸히 울고 있다. (본문 71쪽 中)

책 내용은 단순히 신변잡기적인 내용이었지만 그녀가 처한 상황에 감정이입이 되는 순간 이 책에 실린 글은 단순한 수필이 아닌 위로의 글이 됐고, 위안의 글이 됐다. 별 얘기가 아닌 듯 보이지만 별 얘기였고, 상실감을 크게 느낀 사람들이 읽으면 동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마리코 여사의 글들은 담백하면서 따뜻했다. 오늘도 그 누군가의 부모님, 남편, 아내, 아들, 딸, 반려동물이 세상과 작별 인사를 하게 된다. 그 이별이 누군가에겐 큰 상실감으로, 큰 고통으로 다가올 테지만 그 슬픔과 아픔을 오롯이 견뎌낼 수 있는 것도 인간이라는 동물이 가진 능력이라고 본다. 그 능력이 슬픔을 아우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부족하다면 고이케 마리코가 쓴 《달밤 숲속의 올빼미》를 통해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기본이 갖춰진 소설가라 글도 잘 쓰고, 읽다 보면 어느새 내가 겪고 있는 슬픔이 반감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꼭 반감됐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고이케 마리코 여사처럼 슬픔을 극복하려 하지 않고, 그 슬픔을 시간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게 삶에 젖어드는 생활을 하고 계신 분들께 힘내라는 안부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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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사랑한 나무들 - 명화 속 101가지 나무 이야기 화가가 사랑한 시리즈
앵거스 하일랜드.켄드라 윌슨 지음, 김정연.주은정 옮김 / 오후의서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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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아름답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책장을 넘기는 순간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세계에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나무 사랑이 이 정도 일 줄은 몰랐고, 나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그들의 붓에 묻어나면서 나무들은 화가들의 터치에 화사한 옷들을 입었다. 그 옷들을 보고 있으니 황홀하면서 형형색색의 나무들이 내뿜는 아우라에 빠져들었다.

 

역시나 나무를 그린 그림에서도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은 경쾌하면서도 발랄했다. 늦봄의 터널에 빠져서 나오고 싶지 않을 만큼 호크니의 붓에서 그려낸 봄의 정취는 산뜻함 그 자체다. 호크니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어쩜 저렇게 색감(色感)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자유자재 붓 터치가 너무 부럽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배나무의 터치를 보면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배나무에 달린 배들과 나뭇잎들을 한 번의 붓질로 채색되고 묘사했다고 하니 클림트 당신은 그림에 있어서 붓질의 마술사라 부르고 싶다. 나무가 주는 황홀감과 생동감을 느끼고 싶다면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사이프러스 나무》를 보면 된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고흐가 나무를 통해 활기찬 모습으로 되돌아가고픈 마음을 사이프러스 나무에 투영시킨 듯하다. 러시아에서 ‘숲의 시인’이자 ‘나무의 회계사’로 불린 이반 이바노비치 시시킨의 그림은 사진으로 착각할 정도로 대단히 사실적이다. 눈 덮인 전나무의 위태위태하면서도 의젓한 모습의 《황량한 북쪽에서》란 그림은 처음엔 사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림이었다. 나무의 회계사란 별명처럼 그가 나무 그림에 있어서 얼마나 세밀하게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나무의 가지는 큰 눈이 내려 얼어붙어도 상처받지 않는다.

눈이 녹으면 가지들은 다시 새로운 싹을 틔운다. (본문 22쪽 中)

 

 

책에서는 아름다움만 보여주지는 않는다. 전쟁을 통한 파멸의 현장을 그린 폴 내시의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있다》를 보고 있으면 전쟁이 우리를 어떻게 만들지를 나무를 통해 미리 보여준다. 나무들은 불타고, 꺾이고, 뿌리째 뽑혀 있다. 거의 혼돈의 아수라장이다. 하지만 거의 죽은 땅이라고 생각했던 곳 뒤편 산에서는 반짝반짝 해가 떠오르고 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떠오르는 해를 자양분 삼아 죽은 나무에서 싹이 돋고 새 생명이 태어나듯이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폴 내시의 마음이 그림 속에 녹아들어 있어서 안심이 된다. 우울함과 고독함의 아이콘이자 표현주의 화가인 에곤 실레, 그의 그림에서도 별반 다르지가 않다. 《가을 나무》에서는 쓸쓸하면서 왠지 모를 고독함이 묻어난다. 끝나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는 에곤 실레의 마음이 가을 나무에 고스란히 묻어 있는 느낌이다. 이 이외에도 르네 마그리트, 클로드 모네, 피에트 몬드리안, 로라 나이트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화가들이 그린 나무들이 이 책을 살아 숨 쉬게 하고 있다.

 

아름다운 책을 만나니 마음속에 감춰져있던 응어리들이 풀린 느낌이자 치유받은 느낌이다. 산에 가면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를 마시면서 머릿속을 정화하곤 하는데 이 책에서는 저 마다의 나무들이 뽐내는 그들의 자태에 넋이 빠져 버렸다. 그러고 보면 화가들도 그들의 직업에 자부심을 느낄만하다. 그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서 치유받는 사람들이 있고, 나처럼 스트레스가 확 풀려서 리프레시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깐. 마지막으로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화가들이 선물하는 나무들을 통해 본인이 좋아하는 나무와 화가들을 찜해서 그 화가들이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연상작용으로 공부한다면 그림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줄 거라 생각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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