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숲속의 올빼미
고이케 마리코 지음, 정영희 옮김 / 시공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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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달밤 숲속에서 한 마리 올빼미가 소리를 죽여가며 울고 있다. 삶이 즐거운 사람에게 그 울음소리는 하늘에 떠있는 달을 더 밝게 비추는 조명효과가 될 테지만 마음 한구석에 슬픔을 간직한 사람에게 달밤 숲속 올빼미의 울음소리는 그리움에 사무친 이별가처럼 들린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이별을 한다. 다양한 이별 속에서 여기 남편과 사별한 한 여자의 그리움이 올빼미라는 대상에 감정이입되어 구슬프게 울고 있다. 그리움에 문득 떠난 그 사람을 생각해 보면 내 옆에서 한없이 조잘거리던 그였고, 매번 무덤덤하게 말하던 그였는데, 해맑은 얼굴로 나에게 장난치던 그가 지금 내 옆에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쓰디쓴 울음이 터져 나온다.

그녀는 그와 37年을 함께 살았다. 말이 37年이지 강산이 세 번도 더 변했을 시간 동안 그와 그녀는 함께 했다. 서로가 글을 쓴다는 이유로 묘한 동질감도 있었고, 혈기왕성할 때 만나 치열하게 싸운 적도 많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고, 각자가 쓴 작품들을 공유하면서 앞으로 쓸 소설들과 함께 미래를 얘기했다. 함께 쓰고, 함께 사유하면서 일본의 권위 있는 상인 나오키상도 차례로 받은 그들이었다. 이런 부부에게 있어 남편인 후지타 요시나가의 암 선고와 사망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들 부부의 삶이 암으로 인해 남편이 시한부 선고를 받고 거기에 코로나19가 함께 온 순간 그들의 삶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가 각자가 겪은 슬픔들을 어깨에 얹고 살아가지만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어떤 슬픔이나 고통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 상실이나 아픔에 대해 함부로 재단할 수도 없다. 섣불리 한 위로가 상대에게는 더 큰 상실감을 주기도 하고, 한 사람의 삶을 망쳐버릴 수도 있기에 큰 상실감을 겪은 분들께 위로나 충고도 쉽지 않다. 고이케 마리코의 《달밤 숲속의 올빼미》란 에세이를 읽으면서 그녀가 남편과의 사별을 잘 극복하고 있구나! 란 생각을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녀의 외로움에 사무친 슬픔과 쓸쓸함이 나에게 이심전심으로 전해지는 거 같아 마음이 많이 아프다. 곁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죽으면 너무나 큰 상실감으로 인해 눈물도 나오지 않다가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 울음이 터진다고 하는데 고이케 마리코의 상황이 딱 그 상황인 거 같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잘 대처했고 잘 견뎌왔다고 생각한 나(고이케 마리코)였는데 문 앞에 가지런히 놓인 그의 신발이나 옷을 보면서 갑자기 터져버린 울음이 그치지 않는 그런 상황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그녀를 위로하고 누가 그녀의 어깨에 얹힌 슬픔을 거둬들일 수 있을까? 그건 바로 깊은 달밤 숲속에서 울고 있는 올빼미처럼 자기 스스로가 슬퍼하고 애도하면서 그 슬픔을 극복하는 거 말고는 그 누구도 위로를 대신할 수 없다. 그녀와 함께 살아가는 창밖 작은 생명체들이 그녀 옆에서 그녀의 삶을 지켜보는 거 말고는.

가을 기운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마당에는 엉겅퀴 꽃이 무리 지어 피었고, 동글동글한 말벌과 작은 박새가 꿀을 먹으러 찾아든다. 먼 나무에서, 기름매미 한 마리가 조금은 쓸쓸히 울고 있다. (본문 71쪽 中)

책 내용은 단순히 신변잡기적인 내용이었지만 그녀가 처한 상황에 감정이입이 되는 순간 이 책에 실린 글은 단순한 수필이 아닌 위로의 글이 됐고, 위안의 글이 됐다. 별 얘기가 아닌 듯 보이지만 별 얘기였고, 상실감을 크게 느낀 사람들이 읽으면 동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마리코 여사의 글들은 담백하면서 따뜻했다. 오늘도 그 누군가의 부모님, 남편, 아내, 아들, 딸, 반려동물이 세상과 작별 인사를 하게 된다. 그 이별이 누군가에겐 큰 상실감으로, 큰 고통으로 다가올 테지만 그 슬픔과 아픔을 오롯이 견뎌낼 수 있는 것도 인간이라는 동물이 가진 능력이라고 본다. 그 능력이 슬픔을 아우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부족하다면 고이케 마리코가 쓴 《달밤 숲속의 올빼미》를 통해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기본이 갖춰진 소설가라 글도 잘 쓰고, 읽다 보면 어느새 내가 겪고 있는 슬픔이 반감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꼭 반감됐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고이케 마리코 여사처럼 슬픔을 극복하려 하지 않고, 그 슬픔을 시간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게 삶에 젖어드는 생활을 하고 계신 분들께 힘내라는 안부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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