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가 사랑한 나무들 - 명화 속 101가지 나무 이야기
앵거스 하일랜드.켄드라 윌슨 지음, 김정연.주은정 옮김 / 오후의서재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이 아름답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책장을 넘기는 순간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세계에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나무 사랑이 이 정도 일 줄은 몰랐고, 나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그들의 붓에 묻어나면서 나무들은 화가들의 터치에 화사한 옷들을 입었다. 그 옷들을 보고 있으니 황홀하면서 형형색색의 나무들이 내뿜는 아우라에 빠져들었다.

 

역시나 나무를 그린 그림에서도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은 경쾌하면서도 발랄했다. 늦봄의 터널에 빠져서 나오고 싶지 않을 만큼 호크니의 붓에서 그려낸 봄의 정취는 산뜻함 그 자체다. 호크니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어쩜 저렇게 색감(色感)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자유자재 붓 터치가 너무 부럽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배나무의 터치를 보면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배나무에 달린 배들과 나뭇잎들을 한 번의 붓질로 채색되고 묘사했다고 하니 클림트 당신은 그림에 있어서 붓질의 마술사라 부르고 싶다. 나무가 주는 황홀감과 생동감을 느끼고 싶다면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사이프러스 나무》를 보면 된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고흐가 나무를 통해 활기찬 모습으로 되돌아가고픈 마음을 사이프러스 나무에 투영시킨 듯하다. 러시아에서 ‘숲의 시인’이자 ‘나무의 회계사’로 불린 이반 이바노비치 시시킨의 그림은 사진으로 착각할 정도로 대단히 사실적이다. 눈 덮인 전나무의 위태위태하면서도 의젓한 모습의 《황량한 북쪽에서》란 그림은 처음엔 사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림이었다. 나무의 회계사란 별명처럼 그가 나무 그림에 있어서 얼마나 세밀하게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나무의 가지는 큰 눈이 내려 얼어붙어도 상처받지 않는다.

눈이 녹으면 가지들은 다시 새로운 싹을 틔운다. (본문 22쪽 中)

 

 

책에서는 아름다움만 보여주지는 않는다. 전쟁을 통한 파멸의 현장을 그린 폴 내시의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있다》를 보고 있으면 전쟁이 우리를 어떻게 만들지를 나무를 통해 미리 보여준다. 나무들은 불타고, 꺾이고, 뿌리째 뽑혀 있다. 거의 혼돈의 아수라장이다. 하지만 거의 죽은 땅이라고 생각했던 곳 뒤편 산에서는 반짝반짝 해가 떠오르고 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떠오르는 해를 자양분 삼아 죽은 나무에서 싹이 돋고 새 생명이 태어나듯이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폴 내시의 마음이 그림 속에 녹아들어 있어서 안심이 된다. 우울함과 고독함의 아이콘이자 표현주의 화가인 에곤 실레, 그의 그림에서도 별반 다르지가 않다. 《가을 나무》에서는 쓸쓸하면서 왠지 모를 고독함이 묻어난다. 끝나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는 에곤 실레의 마음이 가을 나무에 고스란히 묻어 있는 느낌이다. 이 이외에도 르네 마그리트, 클로드 모네, 피에트 몬드리안, 로라 나이트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화가들이 그린 나무들이 이 책을 살아 숨 쉬게 하고 있다.

 

아름다운 책을 만나니 마음속에 감춰져있던 응어리들이 풀린 느낌이자 치유받은 느낌이다. 산에 가면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를 마시면서 머릿속을 정화하곤 하는데 이 책에서는 저 마다의 나무들이 뽐내는 그들의 자태에 넋이 빠져 버렸다. 그러고 보면 화가들도 그들의 직업에 자부심을 느낄만하다. 그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서 치유받는 사람들이 있고, 나처럼 스트레스가 확 풀려서 리프레시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깐. 마지막으로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화가들이 선물하는 나무들을 통해 본인이 좋아하는 나무와 화가들을 찜해서 그 화가들이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연상작용으로 공부한다면 그림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줄 거라 생각하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