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열림원 세계문학 2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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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다 읽고 몇 개의 단어(구절)가 떠올랐다. 첫사랑, 광상곡(狂想曲), 우울한 아름다움......

개츠비의 ‘첫사랑’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가도 자신의 어려웠던 상황과 맞물려 과연 개츠비가 데이지를 정말 사랑했던 것인지(데이지를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의 들었고, 개츠비의 죽음을 보면서는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그(개츠비)만의 방식으로 잘 연주하다가 누군가의 방해로 갑자기 바이올린 줄이 끊어져 버려서 연주회를 망쳐버린 하나의 ‘광상곡’이 떠올랐다. 거기에 이 소설을 읽다 보면 화려함 뒤에 감춰진 공허함과 초라함을 보면서 우울한 분위기가 밀려왔고, 개츠비와 데이지의 풋풋한 사랑을 생각하면 가슴 떨리는 사랑을 떠올리다가도 돈을 좇아 사랑을 선택한 데이지의 이중적인 모습과 그런 데이지를 광적으로 품으려 했던 개츠비의 모습에서 ‘우울한 아름다움’이란 구절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녀는 이제 그곳을 떠나고 없었지만, 그 도시 자체에 대한 그의 느낌은 우울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234쪽)

이번에 읽는 것까지 하면 『위대한 개츠비』는 세 번째 읽었다.(이제부터 하루키와 친구가 될 수 있겠지-?-) 처음엔 다른 사람이 읽으니깐 그들을 따라 멋모르면서 읽었고, 두 번째엔 등장인물들의 면면과 전체적인 줄거리를 조율하면서 읽었고, 이번엔 오롯이 ‘제이 개츠비’란 인물만 생각하면서 읽었다. 개츠비와 데이지가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개츠비와 데이지는 왜 헤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대저택에서 매일 밤 성대한 잔치를 벌이는 이유는 무엇인지, 개츠비의 죽음이 무엇을 말하는지 등등 자신과 신분 차이가 나는 데이지를 처음엔 본인의 지위 상승을 위해 접근했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시나브로 데이지의 신비한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해외로 파병을 떠나기 전날 밤 개츠비의 감정선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데이지를 사랑했는지 이심전심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사랑을 나눈 한 달 동안, 데이지의 말 없는 입술이 그의 윗옷 어깨를 스칠 때만큼, 또는 그녀가 잠들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그녀의 손끝을 살며시 만질 때만큼 서로 가깝게 느낀 적도 없었고 서로의 마음이 더 깊이 통한 적도 없었다.(250쪽)

그가 떠난 후 데이지는 ‘전쟁과 평화’의 나타샤처럼 현실(돈)이 이끄는 대로 톰 뷰캐넌을 선택했고, 전쟁터에서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온 개츠비에게 남은 건 데이지가 아닌 돈(물질)으로 점철된 욕망의 늪지대뿐이었다.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빠져들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에서 개츠비는 첫사랑인 데이지를 잡기 위해 돈을 선택했다. 여기에 돈을 벌기 위해 불법(밀주업자)도 자행했지만 결국 그에게 되돌아온 건 허망한 죽음이었고, 그 죽음을 통해 개츠비는 본인이 원했던 사랑도, 출세도, 욕망도, 명예도 모두 잃은 채 우울한 아름다움을 우리들에게 남기곤 홀연히 떠나버렸다.

피천득 선생의 ‘인연’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그리워하는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개츠비는 첫사랑이었던 데이지를 그리워했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밤마다 성대한 파티를 열면서 매 순간 그녀를 기다렸다. 하지만 개츠비는 그녀를 마음속으로만 간직하면서 그녀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런 허무한 죽음도, 개츠비의 쓸쓸한 장례식도, 욕망에 찌든 허세의 삶도 살아가지 않았을 텐데. 반대로 데이지를 마음속으로만 품고 만나지 않았다면 개츠비의 삶은 행복했을까? 개인적인 생각인데 개츠비는 아마도 평생을 욕망과 물질에 찌든 삶을 살면서 자기 자신을 파멸로 이끌었으리라.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난 후 계속해서 여운이 남는다. 한 여자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개츠비의 입장에서, 때론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닉 캐러웨이의 입장에서, 닉 주변을 맴돌면서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하는 조던 베이커와 개츠비가 사랑한 데이지의 행동들과 대사들이 머릿속에 계속 남는다. 책을 읽고 여운이 남는다는 건 뭔가 아쉽다는 뜻일 테고, 다음에 읽을 땐 다른 장면, 다른 인물들에게서 허전함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만약 네 번째 읽게 된다면 이 소설이 출판된 1920년대 미국 사회의 모습도 눈에 들어올 거라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명불허전 김석희 선생의 번역 또한 훌륭해서 막힘없이 술술 잘 읽을 수 있었고, 새롭게 시작하는 열림원의 세계문학 시리즈가 많은 분들께 사랑받길 바라본다.

개츠비는 그 초록 불빛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멀어지고 있는, 환희에 찬 미래의 존재를 믿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것이 우리한테서 달아났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내일은 우리가 좀 더 빨리 달리고, 좀 더 멀리 팔을 내뻗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맑게 갠 아침이...... 그래서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흐름을 거슬러가는 조각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302쪽, ‘위대한 개츠비’ 마지막 구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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