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발견
오정희.곽재구.고재종.이정록 지음 / 좋은생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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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에 숨겨진 ‘추억’과 ‘그리움’을 찾아 떠나는 여행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가 외로움이 밀려들 때쯤 고이 펼쳐서 조근조근 곱씹어보는 그리움.

그 그리움이 요즘은 점점 메마르더니 이젠 저 바다 수평선 뒤로 꽁꽁 숨어버린 듯 하다.

키가 크다 못해 곧 쓰러질 거처럼 하늘과 맞닿아있는 빌딩들 사이로 매캐한 매연을 내뿜으며 서로에게 질세라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자동차들, 그리고 검은 먼지로 화장을 한 은행나무의 애처로운 모습들에서 느낄 수 있는 건 메마르다 못해 말라버린 황량함뿐이다. 다 허물어져가는 판자집이라도 참나무를 때고 있는 굴뚝엔 하얀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고, 부엌에선 옥수수와 고구마가 익어가며, 마당 큰 평상엔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무수히 많은 별들을 보며 각자의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런 정겨움이 요즘 들어서 그리워지는 건 내가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일테고, 세월이 흘러간다는 증표일 테지만 그래도 난 그런 정겨움과 아련함이 세상을 살아가는 즐거움이고 황량한 사막속에서 견딜 수 있는 오아시스의 물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가 못해본 것들을 책을 통해 간접경험을 하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리움의 발견』이란 책을 통해 저마다의 사람들속에 숨겨져있는 ‘그리움’이라는 추억을 찾아냈다. 4인의 문인들을 통해 그들이 저 멀리에 숨겨논 보물들을 하나씩 찾아내는 즐거움과 그 즐거움을 통해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계절의 변화를 통해 일상생활의 소소함을 기록한 오정희 소설가의 글에서는 엄마! 하고 부르면 금방 어디서 나오실 것만 같은 그런 고향의 어머니를 만난 거 같은 반가움이 엿보였고, 냄새를 좋아하고 바닷가의 짭조름한 바닷물같은 글을 쓰는 곽재구 시인의 글에선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느낄 수 있는 몽환적인 그리움과 우리의 단조로운 생활에서 무심코 넘겼었던 그리움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어머니의 왼손 넷째 손가락의 첫마디는 눈에 띄게 휘어져 있다. 다 자란 뒤 나는 그것이 열일곱 살 처녀 시절 두 살 위인 오빠가 폐결핵으로 숨을 거둘 때 마지막 회생의 방법으로 단지를 했던 흔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 어머니가 얼마나 무섭고 독한 사람인가 진저리를 치며 평소의 지나치다 싶은 참을성, 단정함, 부드러움 따위가 실은 속 깊은 강함의 의미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65쪽)

 

또,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이 주는 기쁨을 사랑하는 고재종 시인의 글에선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자연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고, 고향을 그리워하고 그 고향이 내어주는 정겨운 향기를 사랑하는 이정록 시인의 글에서는 고향에서 살아 숨쉬고 계시는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와 누나, 동생 등 가족들의 살아있는 숨소리를 느낌과 동시에 그가 써놓은 글들이 마치 현실이 되어 눈앞에 보여지는 신기루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억새꽃을 볼 때마다 산신 할아버지의 흰 붓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 흰 붓으로 써 놓은 시화(詩畵)들이 뭉게구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에 써 놓은 억새꽃의 문장이 비가 되어 바다에 내리면 흰 거품 일렁이는 파도가 될 겁니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흰 눈으로 쏟아질 겁니다. (250쪽)

 

사람이 살 수 있는 세상을 좋아하고, 사람 냄새나는 세상을 좋아하지만 지금의 각박한 세상에서는 이런 호사를 누릴 수가 없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상대방을 이겨야만 내가 살 수 있는 큰 원형 경기장 안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의 환호와 야유를 들으며 상대방을 쓰러뜨리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싸우는 전사(戰士)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각박한 생활 속에서 내 안의 그리움이나 추억을 꺼내보는 게 사치라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그 사치가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고, 사람 냄새나는 세상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마음엔 변함이 없기에 지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건 높디높은 빌딩과 매연으로 치장한 나무뿐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겐 어머니 품과 같은 고향이 있고, 나의 곁을 지켜주는 든든한 아버지처럼 모든 걸 내어주는 자연이 있어서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우리 모두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을 해보면서.....

오늘은 나도 새들이 노래하고 아름드리나무가 춤을 추는 한적한 시골 마을을 거닐며 내 안에 찌든 이기주의와 물질 만능주의를 훌훌 털어버리고, 내 마음속 고이 접어둔 ‘그리움’ 이라는 추억과 함께 자연이 내어주는 품에 한번 안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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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 진실의 목격자들
PD수첩 제작진.지승호 지음 / 북폴리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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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20년을 국민과 함께 한 방송 <PD수첩>, 그리고 그들의 못다 한 이야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와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권력이나 강압에 의해 한 나라의 주권이 흔들릴 때 언론은 국민의 입과 귀가 되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줄 의무가 있다.

예전 군사정권 시절엔 권력의 힘에 좌지우지되는 게 언론이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지금에 와서는 자유와 힘의 논리 중간에 위치해서 서로 간의 균형이 맞도록 적절하게 견제와 조화를 이루게 해주는 게 언론의 역할임과 동시에 언론의 기능이라 생각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언론은 예전에 비해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지금도 힘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몇몇 언론들이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공정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국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발로 뛰는 언론들이 더 많기에 언론계에 종사하는 분들께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공중파에서 한 프로그램을을 가지고 20년을 이끌어가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거기다가 예능 프로도 아닌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 20년 동안 유지해왔다면 그건 그만큼 국민들에게 사랑받아왔다는 증거일게다. 1990년 ‘피코 아줌마가 열 받았다’로 시작해서 얼마 전 방송된 ‘검사와 스폰서’까지 만 20년을 총 80여 명이 넘는 피디들과 함께 사회의 부조리와 부정부패에 맞서 싸워온 MBC의 간판 시사교양프로그램인 PD수첩, 그 20년의 발자취는 우리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신문에도 특종 기사가 있듯이 20년을 방송해온 PD수첩에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특종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과 ‘미국산 쇠고기 검증문제’는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놀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방송이었다. 잘 나가는 한 과학자의 신화를 무참히 깨뜨려버린 ‘논문조작사건’은 국익과 진실사이에서 고민하다 불편한 진실을 선택한 PD수첩의 판단이었고, 그 후폭풍은 대한민국을 휘청하게 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또, 미국산 쇠고기 검증문제를 파헤친 방송에서는 촛불집회가 일파만파로 퍼지는 상황에서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 되어 대한민국 사회에 촛불 증후군 열풍을 일으킨 방송이 되었고, 그 여파는 상당했다. 그 후, 광우병 열풍은 시간이 지나고 잠잠해졌지만 방송이 나간 지 2년이 넘은 지금에 와서 그 방송에 참여했던 PD들과 작가들이 명예훼손으로 고소되어 지금도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하니 너무나도 안타까울 뿐이다.

 

무죄 판결을 받던 날이 떠오릅니다. <PD수첩> 선후배들이 가장 기뻐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참 많은 빚 가운데, <PD수첩>을 왜곡방송이라 비난받게 만들었다는 것이 저에겐 가장 큰 괴롭고 무거운 빚이었습니다. 아직 끝나진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PD수첩>이 걸어온 역사에 먹칠을 하진 않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며 수없이 가슴을 쓸어내렸더랍니다. 앞으로 <PD수첩>이 또 어떤 시련을 겪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코 옆을 보지 않고 걸어가는 PD들의 묵묵함이 있기에, 언제까지라도 <PD수첩>은 지켜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335쪽, 광우병 논란의 중심에 섰던 김보슬 PD>

 

‘PD저널리즘’ 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이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이자 진실한 기록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 PD수첩.

그리고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준 PD들과 스태프들의 노력에 감사를 전하면서...

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인 지승호씨와 함께 한 <PD수첩>의 내로라하는 9명 PD들의 진솔한 이야기들이 잔잔하게 내 마음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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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 디스크 환자를 위한 바른자세와 운동 우리들 척추건강 시리즈 3
이상호.미셸 리 지음 / 열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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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척추(허리)를 만들기 위한 척추 건강 프로젝트! !

 

 

척추(허리)를 펴고 똑바로 걸을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척추의 고마움을 망각한 채 허리를 혹사시키고 있다. 장시간 공부하거나 컴퓨터를 할 때 우리가 취하는 자세를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다리를 꼬는 건 다반사고, 턱을 괴거나 허리를 똑바로 펴지 않고 구부정하게 해서 척추에 무리를 주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나쁜 자세들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 척추 디스크가 생기거나 퇴행성 척추 질환으로 걸을 수도, 의자에 않을 수도 없다는데 지금도 이런 자세를 취하면서 일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번에 열음사에서 출간된 『바른 자세와 운동』은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척추의 중요성과 척추의 건강법을 다루고 있다.

척추 디스크를 부르는 잘못된 생활 습관을 점검해보고 더 나아가 건강한 허리를 만드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허리 부담을 줄이는 앉기부터 일상 생활에서의 바른 자세와 나쁜 자세, 더 나아가 요즘은 몸짱이 대세인 것처럼 튼튼한 척추짱을 만들기 위한 운동 노하우를 제시한다.

 

건강한 척추를 만들기 위해서는 바른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바른 자세을 통해 튼튼한 척추를 가지고 있으면 디스크, 또는 척추가 충격을 받거나 퇴행성이 되어도 좋은 자세를 취하고 허리를 튼튼하게 하는 운동을 하면 대부분 정상 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만큼 일상 생활에서 바른 자세를 취하면 허리의 고질병인 디스크나 퇴행성 척추질환이 온다 하더라도 금방 회복될 수 있다. 하지만 평소에 나쁜 자세를 취하거나 척추를 혹사시키고 허리를 튼튼하게 만들지 못하면 척추 디스크나 퇴행성 척추 장애, 경추 및 요추 근육통에 그대로 노출되어 운동이 아닌 수술대에 올라야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강하고 올바른 자세는 척추 건강의 첫걸음이자 건강한 허리를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말하고 싶다.

 

건강한 척추는 운동에서부터 나온다.

허리에 좋은 운동으로 등산, 수영, 자전거 타기 이외에 걷기 운동은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시행할 수 있는 운동이다. 매일 1만 보 이상 걸으면 모든 생활습관병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치료 효과를 높이고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한다. 거기에 걷기 운동은 허리의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척추 관절은 보호하면서 허리 근육을 강화할 수 있는 최상의 운동이라고 말한다.

 

걷기 운동과 더불어 스트레칭도 허리를 강화하고 튼튼하게 만드는 데 정말 도움이 되는 운동이다.

허리 굴곡 운동(허리 굽히기)과 신전 운동(허리 젖히기)을 통해 허리 디스크병 환자는 신전 운동을, 만성 요통 환자에게는 허리 굴곡 운동을 추천한다. 『바른 자세와 운동』에서도 걷기 운동의 요령과 방법, 스트레칭(허리 굽히기와 젖히기)의 방법과 요령등이 사진과 더불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가 되리라 생각한다.

 

운동으로 척추의 회복이 불가능하다면 수술도 허리를 강화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수술이라면 무조건 겁부터 먹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수술이라면 겁부터 먹는 사람 중 한 사람 이지만 의료 기술은 우리가 상상했던 거 이상으로 발전하고 있고, 척추나 디스크 수술도 상처와 합병증은 최소화하고 효과는 극대화시키는 수술들이 많다. 시술 후 짧게는 2시간부터 3일 정도 지나면 일상 생활에 복귀할 정도의 회복 능력을 보여 준다고 하니 겁부터 먹을 게 아니라 환호성이라도 질러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중에 척추(허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걷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과연 그 사람들은 척추(허리)의 고마움을 알까?

지금 병원에서 척추 디스크나 척추와 관련된 질환때문에 휠체어에 앉아 생활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올바르게 걸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 중의 하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망각한 채 허리를 마구 혹사시키고 있는 것이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란 말처럼 허리도 건강할 때 지켜야만 노후에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바른 자세와 운동』은 나에게 척추(허리)의 고마움을 느끼게 해 준 책이며, 척추(허리)건강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해 준 책이라고 말씀드리면서......지금도 의자에 앉아 업무 스트레스나 공부에 시달리는 직장인이나 학생, 그리고 허리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구세주가 되어주진 못할지라도 허리를 강화하고 디스크나 척추질환을 예방하는 데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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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전용복 - 옻칠로 세계를 감동시킨 예술가의 꿈과 집념의 이야기
전용복 지음 / 시공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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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칠로 세계를 감동시킨 한국인 전용복의 옻칠 이야기!

 

 

그를 만나기 전까지 옻칠은 나에게 생소한 분야였다. 옻을 만지면 옻독이 오른다는 기본적인 상식만 아는 정도였으니까.

근데 그 옻독이라는 게 사실은 독이 아니란다. 옻이 오른다는 것은 독이 아니라 체질에 따른 알레르기 현상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이처럼 사람들이 꺼려하는 옻을 평생의 동반자처럼 함께 한 사람이 옻칠의 장인인 전용복이다. 그리고 이 책 『한국인 전용복』은 옻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깨고 예술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칠예가 전용복의 고군분투한 삶의 기록이다.

 

조그만 목재회사에 취직해서 나무와 시름하던 중 우연찮은 기회에 토기 위에 옻칠을 올린 ‘와태칠’을 보고 옻의 매력에 빠진 그는 점차 가구 만드는 일과 멀어지면서 나중에는 아예 옻의 연구에 몰두하게 되고, 옻칠의 나라인 일본을 견학하고 난 후 옻칠의 또다른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옻칠을 더 많이 알기 위해 일본으로 진출할 궁리만 하던 그에게 ‘오젠’이라는 조그만 밥상을 수리할 기회가 생기게 되고, 그 ‘오젠’을 계기로 전용복과 메구로가조엔(1931년에 건립된 일본의 국보급 대규모 연회장)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다. 

 

가고자 하는 길에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모험을 시도한 전용복, 그에게 메구로가조엔은 자신의 옻칠 능력을 시험해볼 기회이자 한국의 옻칠을 세계에 알릴 기회였다. 3,000명에 달하는 일본 최고의 옻칠 장인들과의 경쟁 끝에 메구로가조엔 복원공사를 맡게 된 그는 연인원 10만 명, 최소 비용 1조 원으로 추산된 방대한 작업을 한국에서 데려간 장인들과 함께 3년 만에 완벽하게 메구로가조엔을 복원하게 되고, 일본의 자존심이라는 국보급 건물 메구로가조엔을 그의 작품들로 채우기에 이른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한국의 옻칠장이가, 그것도 무명의 한국인이 일본의 자존심인 메구로가조엔을 완벽 복원에 성공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국인 전용복의 메구로가조엔 복원이 일본인들에게는 그렇게 기뻐할 일은 아닌 듯 하다. 일본의 자존심이라는 메구로가조엔 복원을 한국인이 해냈으니 말이다. (얼마 전 불타 없어진 대한민국의 국보 1호인 숭례문을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 완벽한 복원에 성공했다면 우리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상상해보면 일본인들의 마음이 어떨지 잘 알 것이다.)

 

(일본의 국보급 건물인 메구로가조엔의 완벽복원에 성공한 후)

내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영광이고 승리였다. 나아가 우리를 선택해서 끝까지 믿고 기다려 준 메구로가조엔의 승리이기도 했다. 이는 문화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문화는 만드는 자의 것이 아니라 쓰는 자의 것이다. (본문 239쪽)

 

지구상의 그 어떤 물질보다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나무에서 추출한 수액으로 자연친화적이며 인체에 유익한 물질을 생성함과 동시에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내구성이 강해 보존만 잘하면 만 년을 견딜 수 있다는 옻칠이지만 이처럼 옻칠에 대한 우수성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현재 우리는 대체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거의 몸 전체를 서양식으로 꾸미고 있다. 물 건너온 가구나 명품에는 열광하면서 우리의 것에는 소홀한 게 요즘의 현실이라지만 우리의 전통이나 문화유산을 우리가 지키고 보존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불타 없어진 숭례문처럼 그 전통이나 유산들은 우리의 곁을 홀연히 떠나버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잊혀져가는 옻칠을 세계에 알린 그가 고맙고, 그가 위대하며, 그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난 한가지 바람이 생겼다. 바로 내 집의 전체를 일본의 메구로가조엔처럼 옻칠 기법으로로 집안 전체를 꾸미는 것이다. 화장실은 그가 그려 넣은 암수 공작 두 마리가 날아다니고, 거실엔 사계산수화를 배치해서 사계절이 주는 행복감을 만끽할 것이며, 벽면엔 송학도로 장식을 해서 눈을 즐겁게 하고 싶은 바람인데 상상만으로도 행복감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그러려면 우선 돈을 많이 벌어야겠고, 그 무엇보다 전용복 선생님이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하면서 옻칠을 연구하고 고수해야지 싶다.

 

모두가 힘든 일을 기피하고 회피할 때 오로지 한 우물을 파면서 그 힘들고 어려운 작업인 옻칠을 지켜낸 한국인 전용복!

그는 영원한 한국인이자 불멸의 위대한 유산인 옻칠을 세계에 널리 알린 그가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그의 열정과 고뇌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이 책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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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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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와 영문학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장영희 교수의 1주기 한정판 유고집

 

 

요사이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완연한 봄을 알리는 봄비인지, 여름을 재촉하는 단비인지 아리송하지만 이 비로 인해 땅에서 숨쉬는 생명들에겐 분명 축복속에 내리는 꽃비가 되었을 것이다. 요즘처럼 꽃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분이 아련하게 생각이 난다. 아직도 우리들 곁에 남아서 내가 잘하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예의에 어긋한 행동이라도 할라치면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나의 잘못을 지적해줄 것만 같은 그녀, 하지만 그녀는 떠나고 없다. 왜 그녀를 우리들 곁에서 빨리 빼앗아갔느냐고 하늘에,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따져보지만 하늘에서는 축복받은 꽃비만이 내릴 뿐이다.

 

장영희 교수님의 1주기 한정판으로 나온 유고집『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에는 교수님이 살아 생전에 신문에 연재했던 칼럼과 영문학자답게 교수님이 평생을 곁에다 두고 사랑한 영미문학이 실려 있다. 영어를 전공한 분이라서 대학에서는 영문학을 가르치셨지만 영어만큼 문학을 사랑했고, 몸이 불편한 그녀를 아무말 없이 선뜻 다가와 그녀의 친구가 되어 준 게 문학이기에 그녀와 문학을 떼어놓고 설명할 수는 없다. 집필활동도 왕성하게 하셨던 분이라 신문 기고 글이나 칼럼, 에세이 등 우리의 생활 곳곳에서 그녀의 흔적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나를 살게 하는 근본적 힘은 문학이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쳐준다.

나는 기동력이 부족한 사람이라 문학을 통해 삶의 많은 부분을 채워왔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내 스스로가 문학의 한 부분이 된 듯하다.” (본문 149쪽)

 

사람과 풍경을 사랑하고, ‘나’보다는 ‘우리’라는 울타리에 속하는 걸 좋아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善을 행하는 것을 삶의 지표로 산 그녀에게 하늘은 가혹한 선물을 줬지만, 그녀는 우리에게 문학이라는 큰 선물을 주고 우리의 곁을 떠났다. 책속에 파묻혀 지내는 걸 좋아하고, 넘어지는데 이골이 났으면서도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며, 어디를 가든 열 번 이상 가지 않은 곳은 절대로 혼자 다시 찾아가지 못하는 지독한 방향치면서도 운전하면서 눈에 띄는 간판은 다 읽어보는 습성을 가진 그녀였기에 그녀가 쓴 글들에선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사랑의 향기가 전해지는 걸 느낀다.

 

사랑의 기본 원칙은 내 삶 속에서 상대방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세상의 중심이 내 안에서 바깥으로 이동하여 마음이 한없이 커지고 순해집니다.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아름드리나무뿐 아니라 길옆에 숨어 있는 작은 풀 한 포기도, 하늘을 찌를 듯 높고 멋있는 빌딩뿐 아니라 초라한 헛간도, 휘황찬란하게 밝은 네온사인뿐 아니라 희미한 가로등도, 사람들이 왁자지껄한 큰길뿐 아니라 아무도 가지 않는 외로운 길도,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들, 하잘것없는 것들까지 모두 애틋하고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사랑하므로 그 사람이 꼭 필요해서 ‘나와 당신’ 이 아니라 ‘나의 당신’ 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 그게 사랑입니다. (본문 219쪽)

 

지난 5월 9일은 장영희 교수님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내가 장영희 교수님을 알게 된 건 10년 전 큰누이가 선물해준 ‘내 생애 단 한번’이란 책을 통해서였는데 그 책을 통해 처음으로 수필이란 장르의 떨림을 맛보았다. 그 후 ‘축복’이란 책을 통해 그녀가 전해주는 시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소아마비라는 장애를 딛고 대한민국에서 당당히 살고 계셨던 그녀를 보게 되면서 점점 그녀의 광팬이 되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내가 좋아했던 그녀를 이제는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소아마비도 ‘축복’이라고 말했던 그녀처럼 그녀의 축복이 배어나는 책들이 있기에, 그녀의 영혼이 담긴 책들이 우리와 함께 하기에, 난 오늘도 그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날에 그녀의 향기가 배어나는 이 책을 난 다시 펼쳐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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