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발견
오정희.곽재구.고재종.이정록 지음 / 좋은생각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일상속에 숨겨진 ‘추억’과 ‘그리움’을 찾아 떠나는 여행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가 외로움이 밀려들 때쯤 고이 펼쳐서 조근조근 곱씹어보는 그리움.

그 그리움이 요즘은 점점 메마르더니 이젠 저 바다 수평선 뒤로 꽁꽁 숨어버린 듯 하다.

키가 크다 못해 곧 쓰러질 거처럼 하늘과 맞닿아있는 빌딩들 사이로 매캐한 매연을 내뿜으며 서로에게 질세라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자동차들, 그리고 검은 먼지로 화장을 한 은행나무의 애처로운 모습들에서 느낄 수 있는 건 메마르다 못해 말라버린 황량함뿐이다. 다 허물어져가는 판자집이라도 참나무를 때고 있는 굴뚝엔 하얀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고, 부엌에선 옥수수와 고구마가 익어가며, 마당 큰 평상엔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무수히 많은 별들을 보며 각자의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런 정겨움이 요즘 들어서 그리워지는 건 내가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일테고, 세월이 흘러간다는 증표일 테지만 그래도 난 그런 정겨움과 아련함이 세상을 살아가는 즐거움이고 황량한 사막속에서 견딜 수 있는 오아시스의 물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가 못해본 것들을 책을 통해 간접경험을 하곤 했는데 이번에도 『그리움의 발견』이란 책을 통해 저마다의 사람들속에 숨겨져있는 ‘그리움’이라는 추억을 찾아냈다. 4인의 문인들을 통해 그들이 저 멀리에 숨겨논 보물들을 하나씩 찾아내는 즐거움과 그 즐거움을 통해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계절의 변화를 통해 일상생활의 소소함을 기록한 오정희 소설가의 글에서는 엄마! 하고 부르면 금방 어디서 나오실 것만 같은 그런 고향의 어머니를 만난 거 같은 반가움이 엿보였고, 냄새를 좋아하고 바닷가의 짭조름한 바닷물같은 글을 쓰는 곽재구 시인의 글에선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느낄 수 있는 몽환적인 그리움과 우리의 단조로운 생활에서 무심코 넘겼었던 그리움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어머니의 왼손 넷째 손가락의 첫마디는 눈에 띄게 휘어져 있다. 다 자란 뒤 나는 그것이 열일곱 살 처녀 시절 두 살 위인 오빠가 폐결핵으로 숨을 거둘 때 마지막 회생의 방법으로 단지를 했던 흔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 어머니가 얼마나 무섭고 독한 사람인가 진저리를 치며 평소의 지나치다 싶은 참을성, 단정함, 부드러움 따위가 실은 속 깊은 강함의 의미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65쪽)

 

또,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이 주는 기쁨을 사랑하는 고재종 시인의 글에선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자연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고, 고향을 그리워하고 그 고향이 내어주는 정겨운 향기를 사랑하는 이정록 시인의 글에서는 고향에서 살아 숨쉬고 계시는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와 누나, 동생 등 가족들의 살아있는 숨소리를 느낌과 동시에 그가 써놓은 글들이 마치 현실이 되어 눈앞에 보여지는 신기루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억새꽃을 볼 때마다 산신 할아버지의 흰 붓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 흰 붓으로 써 놓은 시화(詩畵)들이 뭉게구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에 써 놓은 억새꽃의 문장이 비가 되어 바다에 내리면 흰 거품 일렁이는 파도가 될 겁니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흰 눈으로 쏟아질 겁니다. (250쪽)

 

사람이 살 수 있는 세상을 좋아하고, 사람 냄새나는 세상을 좋아하지만 지금의 각박한 세상에서는 이런 호사를 누릴 수가 없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상대방을 이겨야만 내가 살 수 있는 큰 원형 경기장 안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의 환호와 야유를 들으며 상대방을 쓰러뜨리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싸우는 전사(戰士)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각박한 생활 속에서 내 안의 그리움이나 추억을 꺼내보는 게 사치라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그 사치가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고, 사람 냄새나는 세상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마음엔 변함이 없기에 지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건 높디높은 빌딩과 매연으로 치장한 나무뿐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겐 어머니 품과 같은 고향이 있고, 나의 곁을 지켜주는 든든한 아버지처럼 모든 걸 내어주는 자연이 있어서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우리 모두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을 해보면서.....

오늘은 나도 새들이 노래하고 아름드리나무가 춤을 추는 한적한 시골 마을을 거닐며 내 안에 찌든 이기주의와 물질 만능주의를 훌훌 털어버리고, 내 마음속 고이 접어둔 ‘그리움’ 이라는 추억과 함께 자연이 내어주는 품에 한번 안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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