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에세이와 영문학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장영희 교수의 1주기 한정판 유고집

 

 

요사이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완연한 봄을 알리는 봄비인지, 여름을 재촉하는 단비인지 아리송하지만 이 비로 인해 땅에서 숨쉬는 생명들에겐 분명 축복속에 내리는 꽃비가 되었을 것이다. 요즘처럼 꽃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분이 아련하게 생각이 난다. 아직도 우리들 곁에 남아서 내가 잘하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예의에 어긋한 행동이라도 할라치면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나의 잘못을 지적해줄 것만 같은 그녀, 하지만 그녀는 떠나고 없다. 왜 그녀를 우리들 곁에서 빨리 빼앗아갔느냐고 하늘에,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따져보지만 하늘에서는 축복받은 꽃비만이 내릴 뿐이다.

 

장영희 교수님의 1주기 한정판으로 나온 유고집『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에는 교수님이 살아 생전에 신문에 연재했던 칼럼과 영문학자답게 교수님이 평생을 곁에다 두고 사랑한 영미문학이 실려 있다. 영어를 전공한 분이라서 대학에서는 영문학을 가르치셨지만 영어만큼 문학을 사랑했고, 몸이 불편한 그녀를 아무말 없이 선뜻 다가와 그녀의 친구가 되어 준 게 문학이기에 그녀와 문학을 떼어놓고 설명할 수는 없다. 집필활동도 왕성하게 하셨던 분이라 신문 기고 글이나 칼럼, 에세이 등 우리의 생활 곳곳에서 그녀의 흔적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나를 살게 하는 근본적 힘은 문학이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쳐준다.

나는 기동력이 부족한 사람이라 문학을 통해 삶의 많은 부분을 채워왔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내 스스로가 문학의 한 부분이 된 듯하다.” (본문 149쪽)

 

사람과 풍경을 사랑하고, ‘나’보다는 ‘우리’라는 울타리에 속하는 걸 좋아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善을 행하는 것을 삶의 지표로 산 그녀에게 하늘은 가혹한 선물을 줬지만, 그녀는 우리에게 문학이라는 큰 선물을 주고 우리의 곁을 떠났다. 책속에 파묻혀 지내는 걸 좋아하고, 넘어지는데 이골이 났으면서도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며, 어디를 가든 열 번 이상 가지 않은 곳은 절대로 혼자 다시 찾아가지 못하는 지독한 방향치면서도 운전하면서 눈에 띄는 간판은 다 읽어보는 습성을 가진 그녀였기에 그녀가 쓴 글들에선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사랑의 향기가 전해지는 걸 느낀다.

 

사랑의 기본 원칙은 내 삶 속에서 상대방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세상의 중심이 내 안에서 바깥으로 이동하여 마음이 한없이 커지고 순해집니다.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아름드리나무뿐 아니라 길옆에 숨어 있는 작은 풀 한 포기도, 하늘을 찌를 듯 높고 멋있는 빌딩뿐 아니라 초라한 헛간도, 휘황찬란하게 밝은 네온사인뿐 아니라 희미한 가로등도, 사람들이 왁자지껄한 큰길뿐 아니라 아무도 가지 않는 외로운 길도,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들, 하잘것없는 것들까지 모두 애틋하고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사랑하므로 그 사람이 꼭 필요해서 ‘나와 당신’ 이 아니라 ‘나의 당신’ 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 그게 사랑입니다. (본문 219쪽)

 

지난 5월 9일은 장영희 교수님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내가 장영희 교수님을 알게 된 건 10년 전 큰누이가 선물해준 ‘내 생애 단 한번’이란 책을 통해서였는데 그 책을 통해 처음으로 수필이란 장르의 떨림을 맛보았다. 그 후 ‘축복’이란 책을 통해 그녀가 전해주는 시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소아마비라는 장애를 딛고 대한민국에서 당당히 살고 계셨던 그녀를 보게 되면서 점점 그녀의 광팬이 되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내가 좋아했던 그녀를 이제는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소아마비도 ‘축복’이라고 말했던 그녀처럼 그녀의 축복이 배어나는 책들이 있기에, 그녀의 영혼이 담긴 책들이 우리와 함께 하기에, 난 오늘도 그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날에 그녀의 향기가 배어나는 이 책을 난 다시 펼쳐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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