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시대 -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지혜와 만나다
김용규 지음 / 살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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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대에 생각에 대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가는 요즈음 생각한다는 걸 잊어먹고 사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너무나 생각지도 못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지금이기에, 하루가 멀다하고 생각없는 일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기에, 생각이 어디로 숨어버린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서 생각에 대한 생각을 하는 남자, 아니 철학자가 있다. 생각에 대한 역사적 프레임을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남자, 학습을 통해 체득했던 지식의 시대는 가고,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합리적인 판단과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사고 능력을 통해 생각의 시대를 외치는 한국의 ‘움베르토 에코’ 김용규 인문학자가 ‘생각’이라는 화두로 우리에게 돌아온 것이다.

인간이 무지했던 시절 타이탄족의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아궁이에서 불을 훔쳐 건네면서 인간에게 불의 사용을 가르쳐주었다는데서 지식의 기원은 시작한다. 프르메테우스가 불이라는 도구와 함께 인간에게 “사고능력과 지적능력”을 함께 넣어준 것인지는 우리가 생각과 지식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데 동물이 생존하기 위해 생물학적 방법인 진화를 선택했다면 인간은 문화적인 방법으로 지식을 택했다는 사실이고, 그 선택이 생각의 존재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고 이 책에서는 보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탄생된 지식이 ‘언어’라는 문자를 통해 ‘폭발-융합-폭발’이라는 단계를 거치면서 발달해왔다고 말하면서 그 단계적 시기를 찰스 밴 도렌C.V.Doren의 『지식의 역사』와 칼 야스퍼스K.Jaspers의 『역사의 기원과 목표』등 유명한 철학자의 책들을 통해 밝히고 있다.

생각할 수 있는 도구들이 그리스에서 탄생되고, 프로테메우스가 인간에게 가르켜준 불의 사용으로 인해 지식이 탄생되고, 생각의 기원이 시작되었다면 생각 이전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범주화(세상 만물을 유사성을 통해 이 묶음, 저 묶음으로 구분하여 우리의 정신 활동과 언어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분류작업) 를 통해 외적으로 세계를 만들고, 내적으로 정신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선뜻 이해가 잘 가진 않지만 중요한 것은 범주화를 하기 위해서는 학습이 중요하고, 이 학습을 통해 언어, 문장, 문법, 은유, 논리적 추론 등과 같은 사고를 하게 되고, 이를 통해 우리의 뇌에서 만들어진 ‘개념적 혼성’이라는 작업을 통해 생각이 탄생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바탕으로 책의 뒤에 가서는 범주화를 기본으로 그 ‘개념적 혼성’이 ‘생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고대에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생각의 도구라는 차원에서 보면 인간의 모든 이야기는 같다. 2,500년 전의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 미개인의 이야기와 문명인의 이야기, 어린아이들의 이야기와 어른들의 이야기, 신참자의 이야기와 전문가들의 이야기, 신화에서 수학까지, 잡담에서 이데올로기까지, 언어에서 과학까지, 한마디로 인류가 탄생시킨 모든 문명이 은유, 원리, 문장, 수, 수사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462쪽, 이 책의 맺음말 中)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이야기하면서도 인문학은 외면한 채 유명 작가의 소설에 열광하는 아이러니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 생각을 통해 인간은 나날이 진일보되는 삶을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런 삶 속에서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지혜인 ‘생각’을 통해 인문학적인 사고를 기르지 않는다면 동물과 다를 것이 없다는 비약 아닌 비약을 해보면서, 다시 돌아온 김용규 인문학자의 《생각의 시대》를 통해 우리 모두가 ‘생각’을 공부하고, ‘생각’하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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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읊조리다 - 삶의 빈칸을 채우는 그림하나 시하나
칠십 명의 시인 지음, 봉현 그림 / 세계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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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담고 있는 분위기를 사랑하고, 시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Aura)를 사랑한다. 한 문장의 명문을 만들기 위해 밤새 시인의 말동무가 되어준 담배에게 고맙고, 그의 졸린 눈꺼풀을 유지해준 커피에게도 고맙다. 이렇게 고통 속에서 탄생된 시는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시 속에 풍경이 있고, 시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 때론 슬픔을 보이기도 하고, 나의 마음을 마구 흔들어대면서 아픔을 주기도 한다. 이러니 같이 좋아할 수밖에, 이러니 같이 아파할 수밖에......

이런 형식의 시집(?)은 처음이지만 감동은 두 배로 다가옴을 느낀다. 시 자체가 함축과 여운을 주는데 이 책에서도 시의 한 문장만을 뽑아서 그림과 같이 버무려놨으니 이 맛이야말로 그 어떤 산해진미와 비할 수 없음을 느낀다. 그 맛도 아주 찰지고 쫄깃쫄깃하다. 함축과 여운이 이렇게 크게 다가온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시 한 편 한 편의 메타포도 상당하다. 70명의 시인이 요리한 음식이니 맛도 제각각이지만 시에서 보여지는 단어 하나하나가 내 입맛에 쏙 맞는다. 이러다가 시도 편식을 할까봐 겁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좋으니 이 순간을 읊조리고 싶다.

시인의 시 한 편이 통째로 실렸다면 그 나름대로의 멋이 있었겠지만 이렇게 한 문장으로 시를 만나니 그 다음 문장은 내가 꼭 자작을 해야할 것만 같은 의무감이 생긴다. 나희덕 시인의 ‘잉여의 시간’에서는 남아도는 잉여의 시간 속에 넘실거리는 내 감정을 표현해보고 싶기도 하고, 박성우 시인의 ‘악수’에서는 정말 내 마음 속 바닥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너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시인 중의 한 분인 최영미 시인의 ‘불면의 일기’에서는 내가 잠잘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당신과 함께 폭풍 수다를 떨고 싶은 마음이 든다. “고통은 이 시처럼 줄을 맞춰 오지 않는다”란 문장이 나를 불면의 밤으로 빠져들게 한다.

달력을 넘기다 손이 찢어졌어요
어머니가 웃으시며 붕대로 감싸주셨어요

얘야 시간은 날카롭단다 
(본문 118쪽, 조인선 ‘인터넷 정육점’ 中)

시는 우리네 인생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예전에 못한 것에 대한 여운이 남고 회한悔恨의 감정이 남는 것처럼 시도 읊조릴수록 끝났음에도 끝나지 않은 듯한 여운이 남고, 무엇인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이 여운과 아쉬움이 시가 우리에게 주는 매력이고 우리에게 주는 선물일 거라 생각하면서 이 아쉬운 감정과 여운을 시와 함께 읊조리면서 다시 한 번 느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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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얻는가 - 최고의 성과를 내는 사람들의 비밀
김철호 지음 / 토네이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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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태어난 아기들은 울음을 통해 자신의 요구조건을 부모들에게 알리곤 한다. 배가 고플 때나 기저귀에 볼일을 봤을 때 울음으로써 자신의 요구조건을 말하는 것이다. 울면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기에 정해진 시간에 울리는 알람처럼 운다. 그러다가 점점 커가면서 울어서는 내가 요구하는 조건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학습을 통해 알게 되고, 울음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부모들에게 시위를 하곤 한다. 다 큰 성인이 되어서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세상의 사람들과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자신만의 방법으로 협상에 관한 노하우를 얻는다. 하지만 이 방법이 매번 맞는 건 아니기에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건 성공한 사람들의 전유뮬과도 같기에 녹록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어떤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얻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이 책 속에 들어있다고 하면 약간 오버하는 거 같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여러가지의 노하우가 이 책에 들어있다고 보면 될 듯 하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양 당사자가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양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최상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핵심인 것이다. 벤담을 중심으로 19세기 영국 공리주의 철학자들이 외쳤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바로 성공적인 협상의 기본이자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이 책에서는 많은 원칙들과 방법론을 내세우고 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협상에서 서로 간 갈등이 발생했을 때 갈등에 대한 접근법이나 협상과정에 있어서 서로의 의견이 상충되거나 상대가 비합리적이나 비효울적으로 나올 때의 협상과정의 방법, 협상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읽기 위한 대인관계의 관리법 등 협상에 필요한 원칙이나 방법들이 이 책에서 자세하게 제시되고 있다.

성공적인 협상은 나와 상대가 얻을 수 있는 최대 파이를 도출하는 데 있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열 조각의 파이를 서로 다섯 조각씩 나눠 갖는 건 평범한 협상에 불과하다. 전체 파이를 열두 조각, 열네 조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협상에서 나와 상대가 어떤 역할과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 때, 비로소 우리는 평범한 것을 넘어 탁월한 것을 성취하게 된다.(책 5쪽, 에필로그 中)

이 책을 읽으면서 원하는 것을 얻는 것에 대한 원칙이나 방법들을 익히는 것도 좋았으나 마지막 부분에 나온 사과(apology) 한 마디가 좋은 타협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는 사과하는 것에 있어서 너무나도 인색하다.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하는 게 당연한데 괜한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든다. 그래서 사과의 타이밍도 놓치게 되고, 결국에 가서는 일을 망치고 만다. 이런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무조건 사과해서도 안 되겠지만 상황에 따라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이 원하는 것도 얻을 거라고 본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느냐, 못 얻느냐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명심하길 바라면서 이 책을 통해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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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침팬지 길들이기 - 정신없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심리학 특강
토니 크랩 지음, 정명진 옮김 / 토트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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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내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회사에서 요구하는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인간관계의 어려움, 거기에 결혼까지 했다면 결혼생활에서 오는 육아스트레스와 가정사의 힘듦이 우리들의 몸을 더욱 분주하게 만들고 있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하는 것처럼 오늘 내게 맡겨진 임무를 다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일처리를 하지만 되돌아오는 건 해냈다는 성취감이 아니라 내일 또 뛰어야하는 두려움인 것이다. 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과연 이 두려움을 없애면 내 자신을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일까?

겉보기엔 심리학과 관련된 책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전형적인 자기계발서의 책이다. 주요 내용은 어떻게 하면 일상의 분주함이나 바쁨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이 들어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 읽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은‘ 침팬지’의 의미이다. 이 책에서는 침팬지를 묘사하는 부분이 책 말미에 있는데 스티브 피터스(Steve Peters)라는 정신과 의사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심리적 마음을 세 개의 뇌, 즉 앞뇌(frontal), 변연뇌(limbic), 정수리(parietal)를 가진 것으로 설명한다. 앞쪽 뇌는 ‘인간’으로, 변연뇌를 ‘침팬지’로, 정수리 뇌를 ‘컴퓨터’로 부르는데 ‘인간’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데 반해 ‘침팬지’는 감정적으로 생각하고, 실제의 침팬지가 사람보다 힘이 다섯 배 더 세듯이, 이 ‘침팬지’는 쉽게 인간을 제압하고, 정보는 가정 먼저 ‘침팬지’에게 보내지며 ‘침팬지’는 빠르다는 것이다. 거기에 ‘침팬지’는 쉽게 결론을 내리고, 비이성적이며, 흑과 백 아니면 선과 악 등 이분법적으로 간단하게 사고하는 버릇이 있는데 이런 ‘침팬지’가 인간의 몸 속에서 우리의 변연뇌(limbic)를 조정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분주할 정도로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뒤로 밀려날 것이라는 불안감 속에서 우리의 몸 속에 ‘침팬지’라는 분주함을 안고 산다는 얘기다. 이 분주함을 없애고 ‘침팬지’를 진정시키게 만드는 게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무엇 무엇을 해라!와 같은 화법들이 자주 등장한다. ‘침팬지’(변연뇌를 지칭)와 같은 분주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시야를 넓게 하고, 내 안의 내적 감정이나 외적 행동의 해석을 달리 해볼 수 있도록 나에 대해 재평가를 하라는 것,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자신감을 느껴보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 한 일에 자긍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우리는 성과주의라는 목표 속에서 너무 앞만 보고 달린 나머지 과정이 아닌 결과만을 중시하게 됐고, 결과만을 중시했기에 조급하고 분주해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을 즐겨버리게 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오늘날 ‘침팬지’는 압박과 경쟁에 시달리는 나머지 거의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사태가 차분해질 때까지’ 기다리지만 해가 바뀌어도 차분해지는 날은 없다. 우리는 분주함을 유지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투입하면서 군인 같은 정신으로 버티면서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할 에너지는 거의 남겨놓지 않고 있다. 우리가 소파에 퍼져서 포도주와 TV로 통증을 누그러뜨릴 때 ‘침팬지’는 만족하지만 우리 안의 인간은 그것이 전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본문 381~378쪽 中)

위의 글을 읽으면서 어찌나 서글프던지, 눈물이 다 날 정도로 공감하고 싶은 글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은 이 글을 읽으면서 공감하면서 수고하는 내 자신에게 힘내라는 위로의 말을 전하겠지만 내 안의 또 다른 나인 ‘침팬지’는 더 열심히, 더 분주하게 일하라고 하면서 나를 혹사시킬 것이다. 여기서 답은 나왔다고 본다. 한번 뿐인 내 인생을 ‘침팬지’에 맡길 것인지, 아니면 내 스스로가 분주함에서 벗어나 나만의 여유로운 방법을 찾을 것인지 말이다. 그 여유로운 방법은 먼 데서 찾지 말고 ,바로 이 책을 통해 내 안에 있는 ‘침팬지’를 길들여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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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 기행 - 고개를 들면 역사가 보인다
김봉규 글.사진 / 담앤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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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이런 기억 있을 것이다. 절이나 사찰에 가서 절 중앙에 걸린 현판이나 편액을 보면서 저것이 무슨 한자인 것인지, 저 글씨를 왼쪽으로 읽는지 오른쪽으로 읽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창피해서 남이 말하기 전엔 말하지 않는 센스도 발휘해보고, 결국에 가서는 옹알거리면서 첫 글자나 마지막 글자만 말하는 그런 기억 말이다. 물론 현판에 대해 아는 사람들도 많지만 필자는 한자엔 문외한에 가까운 쪽이라서 고택이나 정자, 서원 등에 걸린 현판의 의미는 고사하고 모르는 한자도 많기에 관심이 없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여행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절이나 사찰 같은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아서 자주 찾곤 하는데 되도록이면 절에 걸려있는 현판의 한자들은 알려고 노력을 한다. 절에 와서 대웅전大雄殿이나 무량수전無量壽殿, 극락전極樂殿을 모른 채 구경한다는 것은 단팥 없는 단팥빵을 먹는 거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참고로 사찰에 대웅전이 있다는 것은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는 큰 법당이고, 무량수전이 있다는 것은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는 법당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훌륭하고 멋진 현판 글씨가 우리나라의 사찰과 고택에 이렇게나 많이 있음을 고맙게 생각한다. 현판의 글씨는 아무나 쓸 수 없기에 그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더 빛나는 것이다. 편액 중 가장 오래 된 글씨이자 신라의 명필 김생(711~791)이 쓴 공주 마곡사의 ‘대웅보전大雄寶殿’부터 공민왕의 힘이 느껴지는 경북 영주에 있는 부석사의 ‘무량수전無量壽殿’, 독특한 전서체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었던 강원 삼척 죽서루의 ‘제일계정第一溪亭’, 퇴계 이황의 요청으로 명종이 직접 쓴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紹修書院’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절이나 사찰 등의 현판이 이렇게나 유명한 사람들의 붓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특히나 소수서원이 수많은 서원 중에서 유명한 이유는 왕이 서원 이름을 지어 주고 그 현판을 내린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이라는 데 있다. 한마디로 국가가 공인한 사립대학인 셈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안 사실인데 백세토록 길이 전할 맑은 기풍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백세청풍百世淸風’이란 글자가 현판에 가장 많이 사용된 한자이고, 경북 영천 은해사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추사 김정희의 글씨 현판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정말 서예로 이름을 떨친 추사의 글씨체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필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글씨 모양도 크고 작으면서 약간 삐뚫어지게 쓴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몰라보는 내 자신의 부덕을 탓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와는 반대로 내 마음을 홀린 글씨도 있었으니 전남 장성 필암서원의 ‘확연루廓然樓’라는 편액이다. 우암 송시열이 직접 이름을 짓고, 글씨도 쓴 편액이라고 하는데 보는 순간 글씨에 어찌나 힘이 있고 장엄하던지, 내 마음을 쏙 빼앗은 편액이라고나 할까. 전남 장성이면 내가 사는 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이니 시간을 내서 우암 송시열의 힘찬 기운을 꼭 받고 올 생각이다.

확연루의 확연은 ‘확연대공廓然大公’에서 온 말로, ‘거리낌 없이 넓게 탁 트여 크게 공평무사하다’는 의미다. 이는 널리 모든 사물에 사심이 없이 공평한 성인의 마음을 배우는, 군자의 학문하는 태도를 뜻한다.(본문 159쪽 中)

《현판기행》을 읽으면서 이 책을 쓰기 위해 전국의 고택과 정자, 사원, 누각, 고찰 등을 누비고 다녔을 저자를 생각하면 한편으론 고맙고, 또 다른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잊혀가는 문화유산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전국으로 발품을 팔고 다녔을 저자를 생각하면  한없이 고맙고 감사하지만, 이 중대한 유산을 홀로 사진을 찍으면서 감상했다는 사실엔 너무나도 부러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 전  불타 없어진 숭례문을 보면서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키지 못한 자책감으로 피눈물을 흘린 경험이 있다. 이제는 선조들이 물려주신 문화유산은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바로 우리들이 지켜야 한다. 전국에 퍼져 있는 수많은 현판 또한 우리들의 문화유산이기에 우리들이 보호해야하고, 우리들이 지켜야 한다. 그래서 나중에 내 아이들과 함께 절이나 고택에 여행왔을 때 그 절에 걸려 있는 현판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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