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판 기행 - 고개를 들면 역사가 보인다
김봉규 글.사진 / 담앤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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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이런 기억 있을 것이다. 절이나 사찰에 가서 절 중앙에 걸린 현판이나 편액을 보면서 저것이 무슨 한자인 것인지, 저 글씨를 왼쪽으로 읽는지 오른쪽으로 읽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창피해서 남이 말하기 전엔 말하지 않는 센스도 발휘해보고, 결국에 가서는 옹알거리면서 첫 글자나 마지막 글자만 말하는 그런 기억 말이다. 물론 현판에 대해 아는 사람들도 많지만 필자는 한자엔 문외한에 가까운 쪽이라서 고택이나 정자, 서원 등에 걸린 현판의 의미는 고사하고 모르는 한자도 많기에 관심이 없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여행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절이나 사찰 같은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아서 자주 찾곤 하는데 되도록이면 절에 걸려있는 현판의 한자들은 알려고 노력을 한다. 절에 와서 대웅전大雄殿이나 무량수전無量壽殿, 극락전極樂殿을 모른 채 구경한다는 것은 단팥 없는 단팥빵을 먹는 거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참고로 사찰에 대웅전이 있다는 것은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는 큰 법당이고, 무량수전이 있다는 것은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는 법당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훌륭하고 멋진 현판 글씨가 우리나라의 사찰과 고택에 이렇게나 많이 있음을 고맙게 생각한다. 현판의 글씨는 아무나 쓸 수 없기에 그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더 빛나는 것이다. 편액 중 가장 오래 된 글씨이자 신라의 명필 김생(711~791)이 쓴 공주 마곡사의 ‘대웅보전大雄寶殿’부터 공민왕의 힘이 느껴지는 경북 영주에 있는 부석사의 ‘무량수전無量壽殿’, 독특한 전서체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었던 강원 삼척 죽서루의 ‘제일계정第一溪亭’, 퇴계 이황의 요청으로 명종이 직접 쓴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紹修書院’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절이나 사찰 등의 현판이 이렇게나 유명한 사람들의 붓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특히나 소수서원이 수많은 서원 중에서 유명한 이유는 왕이 서원 이름을 지어 주고 그 현판을 내린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이라는 데 있다. 한마디로 국가가 공인한 사립대학인 셈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안 사실인데 백세토록 길이 전할 맑은 기풍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백세청풍百世淸風’이란 글자가 현판에 가장 많이 사용된 한자이고, 경북 영천 은해사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추사 김정희의 글씨 현판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정말 서예로 이름을 떨친 추사의 글씨체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필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글씨 모양도 크고 작으면서 약간 삐뚫어지게 쓴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몰라보는 내 자신의 부덕을 탓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와는 반대로 내 마음을 홀린 글씨도 있었으니 전남 장성 필암서원의 ‘확연루廓然樓’라는 편액이다. 우암 송시열이 직접 이름을 짓고, 글씨도 쓴 편액이라고 하는데 보는 순간 글씨에 어찌나 힘이 있고 장엄하던지, 내 마음을 쏙 빼앗은 편액이라고나 할까. 전남 장성이면 내가 사는 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이니 시간을 내서 우암 송시열의 힘찬 기운을 꼭 받고 올 생각이다.

확연루의 확연은 ‘확연대공廓然大公’에서 온 말로, ‘거리낌 없이 넓게 탁 트여 크게 공평무사하다’는 의미다. 이는 널리 모든 사물에 사심이 없이 공평한 성인의 마음을 배우는, 군자의 학문하는 태도를 뜻한다.(본문 159쪽 中)

《현판기행》을 읽으면서 이 책을 쓰기 위해 전국의 고택과 정자, 사원, 누각, 고찰 등을 누비고 다녔을 저자를 생각하면 한편으론 고맙고, 또 다른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잊혀가는 문화유산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전국으로 발품을 팔고 다녔을 저자를 생각하면  한없이 고맙고 감사하지만, 이 중대한 유산을 홀로 사진을 찍으면서 감상했다는 사실엔 너무나도 부러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 전  불타 없어진 숭례문을 보면서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키지 못한 자책감으로 피눈물을 흘린 경험이 있다. 이제는 선조들이 물려주신 문화유산은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바로 우리들이 지켜야 한다. 전국에 퍼져 있는 수많은 현판 또한 우리들의 문화유산이기에 우리들이 보호해야하고, 우리들이 지켜야 한다. 그래서 나중에 내 아이들과 함께 절이나 고택에 여행왔을 때 그 절에 걸려 있는 현판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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