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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읊조리다 - 삶의 빈칸을 채우는 그림하나 시하나
칠십 명의 시인 지음, 봉현 그림 / 세계사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시가 담고 있는 분위기를 사랑하고, 시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Aura)를 사랑한다. 한 문장의 명문을 만들기 위해 밤새 시인의 말동무가 되어준 담배에게 고맙고, 그의 졸린 눈꺼풀을 유지해준 커피에게도 고맙다. 이렇게 고통 속에서 탄생된 시는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시 속에 풍경이 있고, 시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 때론 슬픔을 보이기도 하고, 나의 마음을 마구 흔들어대면서 아픔을 주기도 한다. 이러니 같이 좋아할 수밖에, 이러니 같이 아파할 수밖에......
이런 형식의 시집(?)은 처음이지만 감동은 두 배로 다가옴을 느낀다. 시 자체가 함축과 여운을 주는데 이 책에서도 시의 한 문장만을 뽑아서 그림과 같이 버무려놨으니 이 맛이야말로 그 어떤 산해진미와 비할 수 없음을 느낀다. 그 맛도 아주 찰지고 쫄깃쫄깃하다. 함축과 여운이 이렇게 크게 다가온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시 한 편 한 편의 메타포도 상당하다. 70명의 시인이 요리한 음식이니 맛도 제각각이지만 시에서 보여지는 단어 하나하나가 내 입맛에 쏙 맞는다. 이러다가 시도 편식을 할까봐 겁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좋으니 이 순간을 읊조리고 싶다.
시인의 시 한 편이 통째로 실렸다면 그 나름대로의 멋이 있었겠지만 이렇게 한 문장으로 시를 만나니 그 다음 문장은 내가 꼭 자작을 해야할 것만 같은 의무감이 생긴다. 나희덕 시인의 ‘잉여의 시간’에서는 남아도는 잉여의 시간 속에 넘실거리는 내 감정을 표현해보고 싶기도 하고, 박성우 시인의 ‘악수’에서는 정말 내 마음 속 바닥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너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시인 중의 한 분인 최영미 시인의 ‘불면의 일기’에서는 내가 잠잘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당신과 함께 폭풍 수다를 떨고 싶은 마음이 든다. “고통은 이 시처럼 줄을 맞춰 오지 않는다”란 문장이 나를 불면의 밤으로 빠져들게 한다.
달력을 넘기다 손이 찢어졌어요
어머니가 웃으시며 붕대로 감싸주셨어요
얘야 시간은 날카롭단다
(본문 118쪽, 조인선 ‘인터넷 정육점’ 中)
시는 우리네 인생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예전에 못한 것에 대한 여운이 남고 회한悔恨의 감정이 남는 것처럼 시도 읊조릴수록 끝났음에도 끝나지 않은 듯한 여운이 남고, 무엇인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이 여운과 아쉬움이 시가 우리에게 주는 매력이고 우리에게 주는 선물일 거라 생각하면서 이 아쉬운 감정과 여운을 시와 함께 읊조리면서 다시 한 번 느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