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언제나 광속 - 시 한 수, 그림 한 장
김주대 지음 / 현암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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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리움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피천득 선생님이 쓴 <인연>의 마지막 구절이다. “그리워 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캬, 정말 명문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리운 감정이 복받치도록 올라온다. 아니 없는 감정도 상기시켜야 할 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리운 마음이나 감정을 마음 속에 품으면서 이 풍진(風塵)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힘들거나 슬플 때 각자 마음 속 그리움을 꺼내 놓고 내 안의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사코를 세 번 만났을 때의 설렘처럼 각자의 그리움이 나를 위로할 수 있다면 마지막은 아사코를 만나지 말았어야 함을 알면서도 만나버린 그를 이해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다.


《그리움은 언제나 광속》이란 제목이 참, 마음에 든다. 그리움이 빛의 속도처럼 빠르게 온다면 감당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 들지만 그래도 그리움이란 감정은 언제 들어도 반갑다. 이 책은 ‘SNS 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주대 시인의 시화집(詩畵集)이다. 시화집답게 시와 그림 100편이 실려 있다. 시 한 편에 그림 한 폭이 그려져 있는데 짧은 시 한편에 많은 게 함축되어 있으면서 그림 또한 한 폭의 문인화를 보는 것처럼 수준급이다. 시를 그림으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김주대 시인의 그림이 시와 매치되면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가히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리움이 크다는 건 그만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 책에서는 그 그리움의 대상을 한정할 수 없을만큼 다양하고 함축적인 소재들을 우리의 주변이라는 공간적 배경에 투영시키고 있다. 제일 첫 장에 나오는 <시작>이란 시를 보면 ‘시작’은 마음 다잡고 맞이해야 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항상 수행해야 하는 그 무엇이란 것, 그리고 그 무엇은 반복적으로 순환된다는 말이 약간 난해하기도 하지만 무엇을 이룬 순간에도 우리는 끝에 다다른 것이 아니라, 이미 또 다른 ‘시작’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헤어짐은 또다른 만남이란 말과 비슷하다고 본다. <고요를 듣다>란 시에서도 대한민국의 한쪽에서는 많은 소란이 일어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선 그 소란을 막으려 대치하는 상황에서 ‘고요’가 사람을 더 크게 움직일 수 있다는, 그래서 소란스럽고 웅변스러움보다 고요함과 침묵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에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고요을 듣다>


꽃 지는 고요를 다 모으면 한평생이 잠길 만하겠다 (본문 14쪽 中)


세월호의 아픔을 담은 <유류품>을 읊조리면서는 가슴 한쪽이 아려왔고, <부녀>란 시를 읊조리면서는 88만원 세대를 대변하는 거 같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앎>이라는 시를 통해서는 너무 편협한 지식 세계에 갇힌 내 자신을 보는 듯 해서 뜨끔하기까지 했다. 사랑에 있어서도 얕은 지식 속에서 헤매는 내 자신처럼 내 안에 가두어 구속하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되돌아보고, 느껴보고, 그리워해보는 감정들이 이 책 속에 녹아내려져 있다면 <죽음>이란 시를 통해 이런 감정들이 극대화되고 있다. 시를 읽으면 죽음을 미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죽음 앞에선 모든 게 부질없으니 돈이나 명예, 권력을 쫓는 삶을 살지 말고, 나보다는 우리 모두를 위해 살아가자는 말로 귀결되는 시라고 생각한다.


<죽음>


그 한 번의 경험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죽음은

가장 위대한 통찰

가장 먼 탈출

(본문 171쪽 中)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움’이라는 감정은 평생을 나와 같이 가는 친구같은 존재다. 힘들 때 나를 위로해주고, 기쁠 때 같이 기뻐해주며, 슬플 때 같이 공감해줄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이다. 여러분들은 살아가면서 이런 친구 한명 두고 있는가? 만약 있다면 시간이 많이 흘러 그 친구와 차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많은 추억을 만들었으면 좋겠고, 애석하게도 그런 친구가 내 옆에 없다면 김주대 시인의 시화집 《그리움은 언제나 광속》을 읽으면서 그리움의 감정을 되살렸으면 좋겠다. 아사코를 세 번째 만난 걸 후회하면서도 만났던 그처럼, 우리의 그리움도 때론 후회스럽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더라고 시간이 흘러 나중에 끄집어 냈을 땐 나의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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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비용
유종일 외 지음,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엮음 / 알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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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간다는 건 정말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사계절이 분명하고, 지천에 꽃과 나무들이 널려 있으며, 우리 고유의 말인 한글을 사용하는데다 예의를 중시하는 대한민국이 좋다. 이렇게나 좋은 점이 많은 대한민국이지만 싫은 것도 있으니 그건 바로 동과 서로 나뉘어진 지역감정과, 친일파를 중심으로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했다는 점, 거기에 임기를 마친 대통령 중에서 부정부패를 저지르거나 국정을 운영하면서 발생한 비리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 하는 사건에 있어서는 너무도 관대하다는 것이다. 그렇게나 피비린내 나는 군화발 정치를 한 그가 버젓이 고개들 든 채 서울 하늘을 활보하고 있고, 나라 재정을 파탄내고 먹튀한 또 다른 그는 그럴싸한 책까지 내면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에 바쁘다. 대통령 임기 내 잘못한 점이 있으면 시인하면서 용서를 구할 부분은 용서를 구하고, 죄가 있다면 죗값을 받으면 될 것을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는 냥 위선의 모습을 하며 매스컴에 얼굴을 내비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과연 국민을 위한 나라이고,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감정이 폭발해서 책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책이 무슨 죄라고...하지만 끓어오르는 분노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캐나다 하베스트 사의 에너지 인수사업 손실액 3조 7453억 원, 이라크 쿠르드 유전개발 2조 989억 원, 멕시코 볼레오 구리광산 1조 3863억 원, 캐나다 셰일가스 사업 1조 1403억 원, 호주 CLNG프로젝트 8322억 원, 사비아페루 인수 6569억 원, 이 모든 금액은 이명박 정부가 대통령 임기 기간 중 해외자원개발에 쏟아부은 돈이다. 튼튼하고 잘 만들어진 옹기에 돈을 넣었어도 행여 돈은 세지 않을까 전전긍긍일 텐데 밑빠진 독에 이 많은 돈을 쏟아 부었으니 남은 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서 차용한 빚이요, 이 빚덩이로 인해 휘청이는 대한민국의 경제는 덤으로 딸려 왔으리라. 여기에 ‘한반도대운하사업’ 운운하면서 벌인 4대강사업 예산 22조 원은 공중에 날려버린 돈이 됐으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을지 당최 감이 오질 않는다.


4대강사업의 진실은 일시적으로 물속에 잠겨 있을지 몰라도 엄연히 숨 쉬고 있다. 22조 원의 수업료를 지불하고 우리 국민들은 오래된 상식을 확인했다. 어서 그들의 몰상식을 백일하에 드러내야 한다. 상식을 무시했던 과정을 밝히기 위해 더 기다려야 한다면 그것은 한국사회에 더 큰 불행이 될 것이다. 4대강사업은 이미 ‘4대강 게이트’로 이행되었기 때문이다. 거짓이 진실을 덮을 수도 있다는 것이 결코 현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본문 153쪽 中)


이 책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42조 원의 천문학적 빚을 남기고 자신들이 주름잡던 무대에서 내려왔다고 말한다. 조(兆)가 누구 개 이름도 아니고 그들이 섰던 무대값 치곤 정말로 어이가 없는 액수다. MB정부의 들러리를 자청했던 공기업들은 이미 파산신청을 해도 될만큼 박살이 났고, 묻지마식 투자로 해외에 투자했던 해외자원개발은 날카로운 부메랑이 되어 대한민국으로 되돌아왔으며, 수질개선과 홍수를 예방한다는 명목아래 행해진 4대강 사업은 흉측한 괴물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으니 이 괴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혹자들은 대통령께서 생각이 있어서 투자한 거 가지고 괜한 꼬투리를 잡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돈을 쓴 결과만을 가지고 꼬투리 잡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돈을 투자한 과정들을 면면히 살펴봤을 때 의혹투성이에 비리와 부실 ,부패가 한 데 엮어져서 내 마음 속 분노를 표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캐나다 원유회사인 하베스트 사를 인수하면서 그들의 자회사인 날(정유시설)과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서 약 4조 5500억 원 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하베스트 사의 손에 쥐여줬지만 이 많은 돈을 주면서 하베스트 사의 경제성 평가나 그 어떤 부실검증 없이 인수협상을 마무리 했다는 사실과 캐나다의 현장실사는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 우리를 화나게 하고, 분노케 하는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MB정부의 5년은 어느 덧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들이 무대에 선 5년 동안 대한민국은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졌다. 나라를 망가뜨린 것도 모자라 빚의 수렁에 빠지게 만든 MB정부에겐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며, 범죄에 연루된 사실이 들어나면 무거운 처벌을 통해 일벌백계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길이자 튼튼하고 내실있는 대한민국이 되기 위한 밑거름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느릿느릿 흐르는 영산강의 물줄기를 보면서 과거사나 비리를 청산하지 못하고 느릿느릿 행동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는 거 같아 마음이 더욱 더 아프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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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 장석주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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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할 때 책만큼 수면제 역할을 해주는 존재도 없을 것이다. 난해하면서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인문학이나 철학 책을 읽고 있으면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나도 모르게 잠들어버리니 책 앞에서 불면이란 말은 무용지물일지도 모르겠다. 내 경우에도 불면일 때 책을 읽고 있으면 잠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간혹가다가 보물 같은 책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책 속에 빠져서 날을 꼬빡 세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의 기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기쁘고 행복하다. 잠에 굴복당하지 않았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양질의 책을 내 스스로가 재미를 느끼면서 읽었다는 기특함이 나를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거 같다. 요즘 들어 이런 기분을 다시금 느끼고 싶다.


깊은 바다 한 가운데서 잠수을 하고 있는 한 사람, 그는 과연 누구일까?


장석주 시인의 책은 요근래 벌써 3권째다. 한 권은 여러 명사들과 함께 쓴 문장 강화에 관한 책이었고, 다른 한 권은 장석주 시인이 30년 동안 글 쓴 노하우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글쓰기에 관한 책이었다. 그리고 이 책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는 ‘장석주의 서재’란 부제와 함깨 그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통해 읽었던 책들과 그 책들을 통해 받았던 사유를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영화배우의 수상 소감처럼 장석주 시인이 차려논 밥상에 숟가락만 얹고서 넑고 깊은 사유의 세계로 빠져들면 되는 것이다.


노란 개나리가 피었다가, 4월의 크리스마스처럼 눈보라가 치기도 하는 봄에 장석주 시인은 원주에 있는 토지문화관에 들어가 책을 읽는다. 시도 쓰고, 여름에 나올 책의 원고도 검토하면서 책 100여 권을 읽는다는 그의 말에서 묘한 아우라가 느껴진다. 이렇게 책 읽는게 생활화된 그의 모습이 한편으론 부러우면서 다른 한편으론 책에 완전히 빠져버린 그의 모습이 두렵기까지 하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날엔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를 읽으면서 사유하는 기쁨을 맛보고, 앞마당에 핀 목련과 개나리를 보면서는 헤르만 헤세의 『정원』을 읽으면서 봄이 주는 선물을 만끽한다. 폭염으로 잠을 이룰 수 없는 여름이 오면 지방의 기숙사에 내려가 책을 읽으면서 더위를 이기곤 하는 그인데, 폴 오스터의 『선셋 파크』, 마르탱 파주의 『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을 통해 한 여름의 더위를 즐긴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솔솔 불어오면서 쌀쌀해지는 가을이 오면 그의 독서량은 절정에 오른다. 알베르 카뮈, D.H.로렌스, 니체, 앙드레 지드의 외국 작가부터 현진건, 최인호, 은희경, 박현욱의 한국 작가들까지 그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리곤 친철하게 그들의 책에 대한 설명이 깃들여지는데 이것이 장석주 시인만이 내뿜는 매력이요, 날마다 읽고 쓰는 장석주 문장노동자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첫얼음이 얼고, 첫눈이 내리는 겨울엔 질 들뢰즈, 지그문트 바우만, 슬라보예 지젝과 함께 ‘철학’이라는 겨울잠에 빠지는 그의 모습에서 ‘문장노동가’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그다. 


책이 없었다면 나는 하품하는 개나 뒷발질하는 당나귀나 나뭇가지 위에서 뜻 없이 우는 까치와 다를 바 없는 비천한 존재로 머물고 말았을 것이다. 동물들이 열등한 것은 스스로 ‘운명의 중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은 사람에게 스스로 운명의 중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준다.(255쪽 中)


중국의 시인인 베이다오(北鳥)의 시 한 구절에서 빌려 와 썼다는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란 책엔 장석주 시인이 추천하는 수많은 책들과 그가 지금까지 책을 읽으면서 느꼈을 사유와 감정들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오랜 기간 그가 공들여 쌓아온 이 노력의 결과물을 읽는 거에 대해 미안한 감정이 들기도 했지만, 이 미안함보다 그가 전해주는 사유의 기쁨이 더 컸기에 장석주 시인에게 미안함 대신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없이 작아지는 내 자신을 만나기도 했고, 지식의 짦음에 자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니깐. 다가오는 봄에서부터 겨울까지는 장석주 시인이 권하는 책들과 함께 2015년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다. 꽃피는 봄이 오면 발터 벤야민의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넓히고 싶고, 눈오는 겨울에는 질 들뢰즈의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 속 불면의 등불이 나를 인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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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국사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 역사
신채호 지음, 김종성 옮김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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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대한민국의 역사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파란만장’이라는 표현이 맞을 듯 싶다. 그 오래전 고조선의 시작부터, 신라의 삼국합병, 고려와 발해, 조선,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굴곡의 역사가 우리와 함께 했다. 이 와중에 많은 시련과 좌절, 왜곡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지금의 자리에까지 왔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건 정말 장하고 대단한 일이지만 고대사의 왜곡이나 사대주의적 역사관과 식민사관 등 대한민국 역사의 왜곡이나 잘못을 바로잡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런 아쉬움을 한방에 날려버린 책이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다. 단재 선생이 옥중에서 뇌출혈로 순국할 때까지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피를 토하며 외쳤던 고대사의 진실 속으로 들어가 보려 한다.


신채호 선생은 그의 저서 <조선사 연구초>에서 묘청의 난(서경천도운동)을 ‘조선 역사 1천 년 이래 최대 사건’이라고 평가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고등학교 때 배웠던 역사적 상식으로는 승려가 일으킨 반란 정도로 각인되어 있었던 묘청의 난이 신채호 선생의 언급으로 인해 세상밖으로 나온 것이다. 묘청과 이를 제압해려 했던 김부식을 가르켜 낭불양가(낭가사상. 불가사상)  대 유가의 싸움이요, 독립당 대 사대당의 싸움이자 진취사상 대 보수사상의 싸움으로 보았고, 이 싸움은 김부식의 승리로 끝났기에 조선의 역사가 보수적, 유교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싸움에서 반대로 김부식을 물리치고 묘청이 승리를 거뒀다면 조선의 역사가 자주적이고 진취적으로 흘러갈 수 있었고, 지금쯤 대한민국은 어떻게 변해있을지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면서 벅차오르는 느낌이다.


신채호는 두 가지 부류의 역사학자들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그는 <조선사 연구초>에 실린 논문인 <조선 역사상 1천 년 이래 최대 사건>에서 밝혔듯이, 12세기에 사대파 유학자인 김부식이 자주파 승려인 묘청을 제압하고 <삼국사기>를 편찬한 이래로 이 땅의 역사학계는 기본적으로 사대적이고 퇴보적이 되었다고 말했다. 신채호가 도전한 첫 번째 역사학자들은 1천 년 가까이 이 땅을 지배한 유교주의적 역사학자들이다. 이들과 똑같다고 볼 수 없지만, 궤를 같이하는 또 다른 부류가 신채호 시대에 급성장하고 있었다. 일본제국주의 역사관을 받아들이는 식민사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본문 34쪽 中)


이 책에서는 우리가 머리로만 배웠던 단군, 기자, 위만, 삼국의 역사체계를 부정하는 대신에 대단군조선, 삼조선, 부여, 고구려, 신라, 백제로 이어지는 새로운 역사인식 체계를 수립하고 있다. 조선의 민족은 태백산 수림을 모방한 ‘수두’라는 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각각의 수두에 단군이 모여서 대단군왕검이 탄생하게 된다. 기원전 10세기경부터 대략 오륙백 년간은 대단군조선의  전성기였고, 기존 역사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삼조선’이란 명칭이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단군, 기자, 위만의 세 왕조를 뜻하는 게 아니라 신한.불한.말한, 세 한이 분립한 것으로 신한은 대왕大王을 뜻하고 ,불한과 말한은 부왕副王을 말한다. (덧붙이자면 신한.말한.불한은 이두문자로 진한.마한.변한이라 표기했고, 신조선.말조선.불조선은 이두로 진조선.막조선,번조선으로 표기함) 그리고 삼조선의 영역이 길림성.흑룡성 및 지금의 연해주 남쪽(신조선)과 요동반도(불조선)와 압록강 이남(말조선)이었다고 하니 그 위력이 상당했다.


삼신설(천일.지일.태일)의 파탄으로 인한 삼조선이 붕괴되고 중국과의 격전시대인 열국쟁웅시대의 도래, 그리고 고구려, 신라, 백제의 활약상이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중요한 것은 신채호 선생의《조선상고사》는 김부식이 서술했던 <삼국사기>처럼 신라를 위주로 해서 역사를 서술한 게 아니고,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부여,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의 역사를 동등하게 서술했다는 점에 있다.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우리 한민족 역사 자체를 서술하려고 했던 신채호 선생의 의지가 아니였으면 이렇게 새로운 역사체계를 알 수 없었다는 의미에서 본인은《조선상고사》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이다.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의 내용에 눈을 부릅뜨며 반발할 역사학자도 있을 거란 생각이다. 많은 책을 참고해 썼다지만 신채호 선생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이기에 오류도 분명 존재하리라. 하지만 검증하고 확인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모두가 쉬쉬하며 왜곡해버린 조선의 상고사上古史를 차디찬 감옥에서 우리의 조국을 생각하며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그의 애국심을 생각한다면 박수는 못 칠지언정 비난은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동북아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고, 일본은 호시탐탐 독도를 노리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단재 선생의 역사관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란 사실을 명심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아我와 비아非我를 헷갈려서는 결코 안될 것이며. 미완으로 끝나버린 조선상고사의 마지막을 우리 스스로가 완성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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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스타일이다 - 책읽기에서 글쓰기까지 나를 발견하는 시간
장석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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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 그의 시를 처음 접했을 때의 묘한 동질감이 나를 사로잡았고, 현실적이면서도 사실적인 표현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한창 뛰어놀 나이에 방안에 갇혀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는 모습에서는 왠지 모를 눈물이 났더랬다. 이처럼 한 사람이 쓴 글은 다른 사람의 눈에서 눈물을 뺄 수도 있고,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게 할 만큼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의 대소(大小)는 중요치 않다. 남의 마음을 훔칠 수 있을 만큼의 필력만 있다면 족하다. 그렇다고 이 힘이 아무에게나 주어지지는 않는다. 글을 잘 쓴다는 건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경험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일종의 보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로 시작하는《대추 한 알》이라는 시를 통해 장석주 시인을 알게 됐다. 그의 시를 처음 읊조릴 때는 김영랑 시인의《모란이 피기까지는》이란 시와 묘한 대칭을 이룬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을 읊으면 읊을수록 더 깊은 감동의 물결이 밀려 왔다. 내가 좋아했던 기형도 시인이 가장 사랑한 시인이자 소설가라고 하니 그의 전작(前作)들이 더 궁금해졌다. 최근에 읽었던《명사들의 문장강화》란 책에서도 장석주 편이 있었는데 좋은 문장의 글을 쓰기 위해선  반드시 많은 책을 읽어야 함과 동시에 내 삶이 들어있는 책 한 권을 써보라고 권하던 그다. 이런 것들을 한데 모아《글쓰기는 스타일이다》란 책에서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방법론과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공부를 잘하는 방법에 왕도가 없듯이 글을 잘쓰기 위해 기본적으로 밑바탕에 깔려 있어여 할 것은 바로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소설가나 작가들도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하니, 책을 많이 읽는 것은 글을 쓰기 위한 기초작업인 셈이다. 이런 기본적인 틀이 갖추어진 후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허기진 삶’이라고 말한다. 작가란 직업이 가난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직업이기에 굶주림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작가가 되는 것은 포기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아니 포기해야 할 것이다. ‘봄봄’, ‘동백꽃’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유정이 친한 벗이자 동기생이었던 안희남에게 도움을 구하는 편지를 보내는 대목에서는 작가란 직업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승부를 봐야 하는 처절한 결투처럼 느껴졌다.


형아! 나는 날로 몸이 꺼져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 있다. 그리고 맹열(猛熱)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안되겠다. 달리 도리를 찾지 않으면 이 몸을 일으키기 어렵겠다. 형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필요하다...(본문 47쪽 中)


29세의 김유정에게 약간의 돈만 있었다면 이처럼 이른 나이에 그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진 않았을 테지만 반대로 김유정에게 돈이 풍족하게 있었다면 그가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남길 수 있었을는지는 의문이다. 중요한 것은 굶주림이나 절박함이야말로 큰 작가가 되기 위한 밑거름이자 걸작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자양분이 될 거란 생각이다. 이런 굶주림과 재능이 합쳐져서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그야말로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작품이 나올 거라고 본다.


김연수, 어니스트 헤밍웨이, 김훈, 무라카미 하루키, 피천득, 알베르 카뮈, 헤르만 헤세, 박경리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들이 말하는 글쓰는 스타일을 소개하는 부분은 이 책이 우리들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끊임없이 고치고, 또 고치는 퇴고작업을 반복하면서 얻어낸 결과물로 인해 김연수의 소설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고, 비정하고, 냉정한 하드보일드(hard-boiled) 문체 하면 떠오르는 헤밍웨이의 작품들, 그리고 《칼의 노래》 제일 첫 부분에 나오는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에서 체언인 ‘꽃’ 뒤에 붙는 조사 ‘이’와 ‘은’ 때문에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꽃이 피었다.”로 결국 정한 소설가 김훈을 보면서 그의 강렬하면서 탐미적인 문체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을 쓴다는 건 자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이자 수단이다. 하지만 자기 마음 가는 대로 쓴 글은 낙서에 불과할 뿐이다. 글은 정확하고 아름다우며, 상대방의 마음을 울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선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름다운 글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앞에서도 설명했다시피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 장석주 시인의 시에서처럼 대추는 그냥 열린 게 아니다. 천둥과 벼락을 맞고, 태풍과 땡볕도 경험하면서 붉고 둥글게 여물었다고 본다. 글쓰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글쓰는 재능은 차치하더라도 문장 하나 하나에 심혈을 기울여 쓴다면 그 진심만큼은 읽는 사람에게 전달될 거라고 본다. 이 책을 통해 여러분의 글쓰는 능력을 끌어올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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