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 장석주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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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할 때 책만큼 수면제 역할을 해주는 존재도 없을 것이다. 난해하면서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인문학이나 철학 책을 읽고 있으면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나도 모르게 잠들어버리니 책 앞에서 불면이란 말은 무용지물일지도 모르겠다. 내 경우에도 불면일 때 책을 읽고 있으면 잠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간혹가다가 보물 같은 책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책 속에 빠져서 날을 꼬빡 세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의 기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기쁘고 행복하다. 잠에 굴복당하지 않았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양질의 책을 내 스스로가 재미를 느끼면서 읽었다는 기특함이 나를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거 같다. 요즘 들어 이런 기분을 다시금 느끼고 싶다.


깊은 바다 한 가운데서 잠수을 하고 있는 한 사람, 그는 과연 누구일까?


장석주 시인의 책은 요근래 벌써 3권째다. 한 권은 여러 명사들과 함께 쓴 문장 강화에 관한 책이었고, 다른 한 권은 장석주 시인이 30년 동안 글 쓴 노하우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글쓰기에 관한 책이었다. 그리고 이 책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는 ‘장석주의 서재’란 부제와 함깨 그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통해 읽었던 책들과 그 책들을 통해 받았던 사유를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영화배우의 수상 소감처럼 장석주 시인이 차려논 밥상에 숟가락만 얹고서 넑고 깊은 사유의 세계로 빠져들면 되는 것이다.


노란 개나리가 피었다가, 4월의 크리스마스처럼 눈보라가 치기도 하는 봄에 장석주 시인은 원주에 있는 토지문화관에 들어가 책을 읽는다. 시도 쓰고, 여름에 나올 책의 원고도 검토하면서 책 100여 권을 읽는다는 그의 말에서 묘한 아우라가 느껴진다. 이렇게 책 읽는게 생활화된 그의 모습이 한편으론 부러우면서 다른 한편으론 책에 완전히 빠져버린 그의 모습이 두렵기까지 하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날엔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를 읽으면서 사유하는 기쁨을 맛보고, 앞마당에 핀 목련과 개나리를 보면서는 헤르만 헤세의 『정원』을 읽으면서 봄이 주는 선물을 만끽한다. 폭염으로 잠을 이룰 수 없는 여름이 오면 지방의 기숙사에 내려가 책을 읽으면서 더위를 이기곤 하는 그인데, 폴 오스터의 『선셋 파크』, 마르탱 파주의 『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을 통해 한 여름의 더위를 즐긴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솔솔 불어오면서 쌀쌀해지는 가을이 오면 그의 독서량은 절정에 오른다. 알베르 카뮈, D.H.로렌스, 니체, 앙드레 지드의 외국 작가부터 현진건, 최인호, 은희경, 박현욱의 한국 작가들까지 그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리곤 친철하게 그들의 책에 대한 설명이 깃들여지는데 이것이 장석주 시인만이 내뿜는 매력이요, 날마다 읽고 쓰는 장석주 문장노동자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첫얼음이 얼고, 첫눈이 내리는 겨울엔 질 들뢰즈, 지그문트 바우만, 슬라보예 지젝과 함께 ‘철학’이라는 겨울잠에 빠지는 그의 모습에서 ‘문장노동가’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그다. 


책이 없었다면 나는 하품하는 개나 뒷발질하는 당나귀나 나뭇가지 위에서 뜻 없이 우는 까치와 다를 바 없는 비천한 존재로 머물고 말았을 것이다. 동물들이 열등한 것은 스스로 ‘운명의 중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은 사람에게 스스로 운명의 중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준다.(255쪽 中)


중국의 시인인 베이다오(北鳥)의 시 한 구절에서 빌려 와 썼다는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란 책엔 장석주 시인이 추천하는 수많은 책들과 그가 지금까지 책을 읽으면서 느꼈을 사유와 감정들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오랜 기간 그가 공들여 쌓아온 이 노력의 결과물을 읽는 거에 대해 미안한 감정이 들기도 했지만, 이 미안함보다 그가 전해주는 사유의 기쁨이 더 컸기에 장석주 시인에게 미안함 대신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없이 작아지는 내 자신을 만나기도 했고, 지식의 짦음에 자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니깐. 다가오는 봄에서부터 겨울까지는 장석주 시인이 권하는 책들과 함께 2015년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다. 꽃피는 봄이 오면 발터 벤야민의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넓히고 싶고, 눈오는 겨울에는 질 들뢰즈의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 속 불면의 등불이 나를 인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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