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미래,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오는가 - "5년 뒤 당신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선대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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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대한민국은 많은 변화를 거쳐왔다. 오래 전 외세의 침입부터, 식민지배, 전쟁, 기아(배고픔), 올림픽 개최, IMF 등등 이런 변화와 아픔을 통해 대한민국은 성장했고, 세계 경제대국이라는 자리에까지 오르게 됐다. 땅덩어리도 작고, 천연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기술 하나만으로 이렇게까지 성장한 나라도 드물거라 생각한다. 그 성장의 힘 속에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력과 386세대의 열정이 한몫했을 것이고,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통해 세계와 경쟁한 기업들 또한 큰 힘을 발휘했을거라고 본다. 이렇게 노력해서 지금의 자리에 오른 대한민국이 흔들리고 있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마저 불투명을 넘어서 제 2의 IMF 사태가 오지는 않을는지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한다. 지금에 와서는 일본의 장기적인 경기침제와 불황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불안하기만 하다.


실업률은 최악이고, 경제마저 바닥을 기고 있는 대한민국에 변화의 기운마저 감지되고 있다.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AI 인공지능, 자율주행자동차, 클라우드, 무어의 법칙으로 대변되는 제 4차혁명이 대한민국에서도 이미 시작됐다. 소프트파워를 통해 공장과 산업 전반에 걸쳐 AI 인공지능이 결합되면서 소비자를 최상의 조건에서 만족시켜주는 스마트한 시대가 온 것이다. 빅데이터를 통해 내 데이터와 소비패턴을 조회해서 내게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서 척척 내어주는 대형마트, 로봇이 인간의 복잡한 일을 대신 처리하고, 스스로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게 되는, 미래에 닥치겠지! 했던 일들이 시나브로 우리들 곁으로 다가왔고, 이제는 미래가 아닌 현실이 되어버렸다. 


5년 뒤에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세상은 어떻게 변하고, 어떤 일자리가 살아남고 어떤 일자리가 사라질까? 이처럼 모두가 궁금해하는 5년 뒤 미래에 대한 궁금증들이 선대인 경제연구소 소장이 쓴 책《일의 미래 :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오는가》에 들어 있다. 변화를 통해 일의 미래를 전망하고, 이런 변화를 기업과 개인과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책 앞부분에 실린 향후 10~20년 안에 사라지는 직업과 남는 직업을 읽어보면 많은 걸 느끼게 될 것이다. 희소성이 있는 기술직군이더라도 자동화될 확률이 높은 직업들(소위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쉽게 대체가능한 직업들)은 사라질 것이고, 로봇이 대신할 수 없는(사람의 심리를 분석하고, 인간의 정신건강을 상담하고 치료하는)직업들은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저성장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변화와 인구의 감소, 산업화의 기술적인 구조조정, 인공지능 로봇의 출현 등등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어떻게 변하고, 개개인들의 일자리는 어떻게 변할 것이며,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를 예측하는 건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변했다. 4차혁명의 시작과 함께 발전하고 있는 소프트파워는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는지를 큰 그림으로 제시해주고 있다. 사라지는 직업과 살아남은 직업들, 그 속에서 기업, 개인, 사회들의 변화에 따른 생존법들을 말이다. 70세가 넘어도 일해야 하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내 직업의 불안함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지를 선대인 소장은 그만의 축적된 경험과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막연한 추측이 아닌 변화할 수밖에 없는 직업의 존재가능성을 이 책을 통해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변화의 갈림길에 서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서처럼 숲속의 두 갈래 길에서 사람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이제 낭만적이지도 않고 실현가능성도 없다. 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아서 가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남이 가본 길을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본다. 선대인 소장이 걸어본 길을 걸어가면서 이 길이 꽃길이었는지 꽁꽁 언 얼음길이었는지는 5년 후가 판단해줄 것이다. 지금은 앞만 보고 뛰어가는 속도보다도 계속헤서 변하는 일자리들의 변화가 더 무섭고 힘이 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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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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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채식주의자》를 읽고 이틀을 앓았다. 책을 읽는 와중에 덜덜 떨리는 몸을 뒤로 하고 내뱉은 한 마디가 “제발, 그만!”이었다. 영혜의 고통이 나에게 전해져서였을까? 영혜의 두 팔을 잡은 그들의 모습은 내가 보기에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 영혜의 속사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눈엔 상처가 곪아서 터지고, 그 터진 상처에서 새살이 올라오는 것보다 해골처럼 말라가는 그녀의 외형적인 모습만이 중요했다. 억지로 먹은 탕수육을 으르렁거리며 뱉어내는 영혜의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내 안에 잠재해있던 상처를 토해 버리고 싶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모든 찌꺼기들을 바닥까지 토해내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나를 조아오는 건 나에게 가해진 폭력들이었고, 그 폭력의 정당성들이 나를 더욱 더 힘들게 만들었다. 영혜가 마지막에 가서 자신의 손목을 그어서 저항한 것처럼 자신의 붉은 피를 뿜으며 자해(自害)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영혜의 그 무엇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채식주의자》를 필두로 <몽고반점>, <나무불꽃>은 서로가 다른 듯 하면서 같은 모습을 한 연작소설이다. 각 3편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화자들의 시선은 다르지만 영혜를 중심으로 그들과(영혜의 남편과 형부) 인혜가 영혜의 채식주의를 하게 된 과정을 탐색하는 과정이 이문열의『젊은 날의 초상』과 플롯(plot)에서 참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 『젊은 날의 초상』 각 3편 <하구>, <우리 기쁜 젊은날>, <그해 겨울>도 각각의 독립된 중편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젊은 주인공이 자기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는 과정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단계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니깐 말이다. 이런 닮음을 뒤로 하고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나를 너무나도 힘들게 했다. 『채식주의자』가 해외에서 내로하하는 상을 수상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강의 소설이 어렵고 난해하다는 점을 들어 나를 힘들게 한 건 아니었다. 작품 전반에 자리잡고 있는 우울함과 폭력성이 내가 살면서 경험한 트라우마와 오버랩이 되니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그 힘듦 속에서 소설은 재미를 넘어 영혜라는 인물에 푹 빠지게끔 빠르게 흘러갔다.


꿈 때문에 채식(菜食)을 선택한 영혜의 꿈 속에 한번 들어가보고 싶었다. 과연 그 꿈이 영혜가 어렸을 때 경험한 아버지의 폭력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영혜를 문 개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한 끔찍한 기억(트라우마)때문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사랑 없이 결혼해서 남편을 위해 의무적으로 식사를 준비하고, 남편이 원할 때 몸을 허락하는, 주체성의 상실에서 오는 남편의 증오심 때문이었는지 말이다. 하지만 영혜는 육식을 거부한 채 채식을 선택했고, 끝에 가서는 가족들과 남편을 거부했지만 실상 영혜를 철저하게 소외시킨 건 그녀의 남편과 가족들이었다. ‘폭력’이라는 상징성을 통해 약자(소수자)들을 굴복시키고야 마는 현대 자본주의의 속성이 영혜라는 여자의 삶 속에 고스란히 숨 쉬고 있었으니까.


시선의 변화도 이 책이 주는 묘한 즐거움이다. 《채식주의자》에선 영혜의 남편이 그의 눈을 통해 바라본 영혜를 이야기하고 있고, <몽고반점>과 <나무불꽃>에서는 영혜의 형부와 영혜의 언니인 인혜로 바뀌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인 영혜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녀의 남편과 형부, 언니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시선의 변화들이 영혜가 겪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가를 추측하게 한다. 예술을 통해 더 고요하고, 더 은밀하고, 더 매혹적이며 더 깊은 것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엔 파멸이라는 길을 걷게 된 형부와 영혜와 성격적인 면에서 정반대의 인물인 인혜를 내세워 현실의 모순에 저항하기보다는 현실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인혜의 삶에 대해 많은 이야깃거리를 작가는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어렸을 때 언니와 함께 간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아버지의 손찌검이 무서워 집에 돌아가지 말자고 했던 아홉살 소녀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왔다. 그래서였을까? 세상의 나무들이 모두 형제 같아 보인다는 영혜의 모습을 통해 그녀가 죽어가면서도 나무에 집착하고, 나무가 되려고 했던 이유에 대해 조금은 알 듯 하다. 남에게 잔인한 폭력을 가하지 않고 한 없이 내어주기만 하는 나무를 통해 영혜는 다시 태어나고 싶었고, 그 바람이 꿈을 통해 자신의 뱃속 얼굴이 형상화되어 나타났을 때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타자(他者)들의 폭력성을 이기려고 ‘채식주의자’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던 건 아니었는지 반문해보게 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그 힘듦이 영혜의 아픔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란 걸 알기에 내 스스로 내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 여기에 살아가면서 마음의 상처나 트라우마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분들께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오늘날 자본주의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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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들지 않는다 - 젊음을 죽이는 적들에 대항하는 법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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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읽었던 마루아먀 겐지의 책 한 권이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완전히 정반대의 것으로 흔들어놓아 버렸다. 약간은 도발적이면서 시건방진 제목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가 나를 완전히 엿 먹였으니 그 맛은 약간 씁쓸하면서도 내 감성의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야 진정한 사회 구성인이 될 수 있다는 말로 서문을 연 마루야마 겐지의 식견은 가족을 넘어 국가, 종교, 신, 사랑, 청춘, 죽음 등 다양한 카테고리들에 대한 부작용들에 대해 완고히 외치고 있었다.(피를 토한다는 표현이 맞을 듯 싶다.) 그 완고함은 그 무엇에도 거침이 없었고, 죽은 동물의 고기를 뼈까지 해치우는 하이에나처럼 그의 날 선 비판들은 너무나도 신랄했다. 그러면서 든 의문이 과연 마루야마 겐지는 일본의 소설가가 맞냐는 거다. 뱉어내고 토해내는 말들마다 자극적이고 듣기 거북한데도 이상하게 수긍이 가고 머리가 끄덕거려지는 내 자신을 보면서 그는 소설가이기 전에 말 잘하는 정치인이 아니였을까? 라는 생각도 했으니까. 그리고 궁금했다. 그가 쓴 전작(前作)들 모두 다가.

마루야마 겐지에 흥분한 나머지 그에게 다른 성향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어서 제목만 보고 고른 책이 <나는 길들지 않는다> 였는데 처음에 읽었던 책이 너무나도 강렬해서였는지 읽고 나서 별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다. 아니 재미가 반감돼 버렸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신랄함도 없었고, 이전 책과 내용이나 구성 면에서 너무나 비슷해서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속편을 읽은 느낌이랄까. 강렬한 오르가슴을 느끼려다가 찬물로 봉변당한 느낌이라면 이해가 되리라 생각한다. 책 속으로 들어가서 이 책 <나는 길들지 않는다>에서도 성인이 됐을 떄 가족과 멀리하라는 얘기가 초반부에 나온다. 어머니의 맹목적인 사랑이 나중에 가서는 자식들을 소유물로 여기면서 그들을 지배하고 세뇌시킨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자식, 아내와 자식의 부적절한 연대 속에서 아버지와 남편은 이미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식이라는 안전한 보험을 통해 보험금만 호시탐탐 노리는 우리 시대의 어머니와 아내들에게 마루아먀 겐지는 남편과 자식들은 배수진을 치고서라도 그들과 맞서 싸워 그들을(어머니와 아내) 굴복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안 그러면 쓰레기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요, 밑바닥 인생을 사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을 말이다.

책의 중간 부분을 읽다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목적이 없는 자는 목적이 있는 자에게 죽임을 당한다” 라고... 참, 의미심장한 말이면서 멋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의 행간은 자신의 품 안에서 자신이 의존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떨쳐내라는 것인데 그 의존적인 것들이 바로 ‘담배’, ‘비만’, ‘목적 없는 자’, ‘술’인 것이다. ‘담배’라는 안이함과 절교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읽고 있는 지금 당장 끊으라는 것!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금연할 수 없고, 체형은 그 사람의 성격과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것이기에 식욕을 이기지 못해 살이 투실투실 찐 자는 의지도 박약하고 정신건강도 불량하기에 무조건 살을 빼야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계속 먹어야하는 식사는 소위 말해 먹지 않을 똥배짱이 없기에 자기 자신이 조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을 양껏 먹는 것은 섹스를 할 때마다 임신을 시키는 것이나 다름없어서 감당하기 어려운 결과를 낳는다”는 마루야마 겐지의 조언이 의미심장하다. 마지막으로 술은 앞에서 설명한 담배나 비만보다 더 의존성이 강하기에 떨쳐내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끽연과 과식은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지만 술은 습관성 , 중독성이 너무나도 강하기에 어정쩡하게 도전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망치는 길이라는 것. 술 앞에서는 답답함도 슬픔도 분노도 눈 녹듯 녹아버리기에 정신 바짝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금연에 비해 완벽한 금주에 성공한 자의 비율이 아주 낮다는 사실은 그만큼 술이 가지는 중독성이 마약과 같다는 것이기에 알코올 의존을 통해 몽상형 쓰레기가 될 것인지, 아니면 술을 끊고 내가 원하는 자립과 자유의 길로 갈 것인가는 바로 자기 자신이 선택할 몫이다.

한 마리의 길들여지지 않는 늑대로 살기 위해 마루야마 겐지가 이 책 <나는 길들지 않는다>에서 말한 독설과 비판들이 전부 맞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고 그 누구도 지배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라”는 그의 말 속에는 자유가 있고, 자립이 있으며, 젊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자유와 자립과 젊음 속에서 이들을 죽이려 하는 적들에 대해 살펴야 하고, 맞서 싸워 이겨야만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본다. 여러분들은 지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나를 방해하려는 적들과 싸우고 있는가? 만약 싸우고 있지 않다면 지금 당장 칼을 들고 한 마리의 길들여지지 않는 늑대로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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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평전 - 찬란한 고독, 한의 미학
최광진 지음 / 미술문화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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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다. 그 슬픔이 캔버스가 되고, 그 고독이 붓이 되어 마음에 남아있는 한(恨)이 종이에 그려진다면 어떤 모습일지 사뭇 궁금하다. 화가 천경자의 삶을 보면서 ‘파란만장’이란 단어가 떠올랐고, 한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어했던 한 여자의 기구한 운명을 보면서 잔인하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그림을 그리는 화가 천경자의 이력은 그 당시 다른 어떤 화가들보다도 월등한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세계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그녀가 좋아한 것들을 캔버스에 담을 수 있는, 어찌 보면 화가로서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한 남자의 사랑을 받는 여자로서의 삶은 처절하다 못해 비참했다. 두 번의 결혼 생활과 실패에 따른 그녀의 운명은 다름 아닌 그녀가 그린 그림들을 통해 대변되기 시작했고, 자신의 불행과 마음 속에 맺힌 한을 자신의 그림에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기에 이르렀다.


일본 유학에 대한 아버지의 반대,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한 여동생의 갑작스런 죽음, 두 번의 결혼생활의 실패를 딪고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화가에 오르기까지 천경자 자신도 무척이나 노력했겠지만 그녀를 지금의 천경자로 만든 건 팔할이 그녀가 처한 환경이었다고 생각한다. 천경자 화가의 그림에 뱀이 자주 등장하는 건 그녀의 죽은 동생이 자신의 마음 속에 꿈틀대면서 살아있다는 생동감의 표현이었고, 머리에 화려한 꽃을 단 여인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녀의 어린시절 고향에서 머리에 꽃을 꽂고 돌아다녔던 미친 여인들에게서 받은 영감을 그림에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천경자가 살았던 한반도 최남단 시골의 섬마을은 어린 천경자에겐 화가가 되기 위한 소재거리가 풍부했던 장소이자, 어린 천경자가 감내하기에는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은, 짙은 안개가 자욱한 미지의 섬이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그림만이 우리들 곁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엔 그녀가 그린《미인도》의 위작 논란이 한창이다. 살아 생전 그녀도 자신의 그림이 결코 아니라고 했던 것을 지금까지 진위 여부를 밝혀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원본만 있다면 이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을 텐데 원본이 사라졌으니 지금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인도’가 가짜다! 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최광진 선생의 말씀처럼  ‘미인도’의 위작문제가 정말 간단히 끝날 수도 있다. 천경자 자신도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인도’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아니라고 했으니 국립현대미술관 측에서 이 그림이 진품이라는 증거를 제시하던지, 아니면 가짜임을 인정하고 그 그림을 폐기처분하면 끝나는 일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런 결정을 내릴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천경자의 ‘미인도’ 원본이 사라진 마당에(책에서는 1976년에 그린 ‘장미와 여인’을 미인도의 원본으로 추정) 이 문제를 쉽게 결말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기구한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한국의 ‘천경자’를 멕시코의 ‘프리다 칼로’와 견주어 비교하곤 한다. 남자들에게 버림받으면서 느꼈을 고통과 아픔을 그림에 투영시켰고, 특정 계파를 따르기 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예술로 승화시킨 그녀들의 그림에서 공통점이 많은 건 사실이다. 그림의 색채나 분위기도 많이 유사하다. 하지만 프리다 칼로의 그림과 천경자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뚜렷한 차이점은 바로 현실에 대응하는 자세였다. 프리다 칼로가 현실에 순응하고 체념과 원망을 그림에 표현했다면 천경자는 현실을 넘어 자신의 고독과 슬픔을 초월해서 그림이라는 매개를 통해 그 슬픔과 한을 아름다움으로 극대화시킨 화가였다. 이것이 천경자 그림의 매력이자 그녀가 진정으로 추구하고자 한 예술세계였다.


“내 온몸 구석구석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적인 여인의 한이 서려 있나 봐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슬픈 전설의 이야기는 지워지지 않아요. 그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팔자소관이려니 하고 생각하고 말지만 그러다 보면 또 다른 허망한 고독감에 또다시 서글퍼지고 말지요.” (책 25쪽 中)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그리워하고, 그녀의 그림을 그리워한다. 찬란한 고독과 한의 아름다움을 캔버스에 표현한 화가 천경자! 그녀의 삶이 천경자 평전인《찬란한 고독, 한의 미학》에 50여 점의 그림과 함께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호기심 많은 어린 천경자가 되어 보기도 했고, 다 커서는 마음이 아픈, 고독하고 한(恨) 많은 천경자가 되어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그녀는 아직 우리들 마음 속에 살아있다는 것이고, 그녀의 그림 또한 우리들 곁에서 우리들의 아픈 영혼을 치유하면서 뱀처럼 꿈틀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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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 1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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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도서에서 번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책이 외국소설이라면 어떻게 번역을 했는가에 따라서 독자가 느끼는 감동이나 감정이 다를 수밖에 없기에 번역자를 고르는 것도 출판사의 고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번 책인 《백야행 1, 2》는 대한민국에서 추리소설로 가장 뜨거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자, 이미 출간된 소설을 번역자만 바꿔서 재출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일본 문학의 번역하면 믿고 읽을 수 있는 김난주 번역가의 번역이라서 어느 부분 하나 막힘없이 술술 읽을 수 있었고, 히가시노 게이고가 표현하려고 했던 사건들의 빠른 진행과정들과 사건의 실마리(복선)들을 잘 표현해서 더 돋보인  소설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짓다 만 채 방치된 폐허 같은 건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그 사건을 파헤치려는 형사, 그리고 그 사건을 은폐하려고 하는 사람들, 피살당한 피해자의 과거 동선을 파악하던 중 피해자와 만났던 한 여인(나시모토 후미요)과 한 남자(데라사키 다다오)가 나타나게 되고, 그 남자와 여자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수사를 하던 중 피의자였던 남자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다른 여자는 가스중독이라는 사고로 죽음을 당하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나서 이 살인사건의 전말에 용의자(나시모토 후미요)의 딸인 나시모토 유키호와 피해자(기리하라 요스케)의 아들 기리하라 료지가 나서게 되는데 이 살인사건의 결말은 과연 어떻게 될는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책의 제목처럼 하얀 어둠 속을 걷고 있는듯한 착각에 빠져 들었다. 하나의 살인사건을 가지고 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소설을 쓴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도 대단했지만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범인의 윤각을 알기 위해 계속 읽어야만 했던 걸 생각하면 이 소설의 재미 또한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요즘 나온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이 전작들에 비해 재미나 완결성에 있어서 실망한 사람들도 많은 걸 봤을 때 이번에 재출간된 《백야행1, 2》는 재미와 완결성이라는 두마리의 토끼에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흠잡을 데 없는 번역이라는 세마리 토끼를 잡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 후 소년과 소녀 사이에 어떤 약속이 오갔는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약속이랄 만한 것이 없었을 것이라고 사사가키는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혼을 지키려 했을 뿐이다. 그 결과 유키호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아무에게도 내보이지 않고, 료지는 지금도 어두운 배기관 속을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백야행2, 527쪽 中)


무대가 끝난 후 관객이 다 빠져 나간 무대에 남아서 공허함의 여운을 즐기는 연극배우처럼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료지와 유키호가 어린시절에 받아야 했던 상처들을 생각하면 왠지 모를 공허감이 밀려 왔고, 이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그들을 치료해주고 싶었다. 돈을 위해 자신의 딸을 판 엄마나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짐승같은 짓도 서슴지 않았던 아빠를 그들은 과연 용서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종이그림을 보여주기 위해 도서관으로 달려가 유키호를 만나고 싶었던 료지의 마음을 생각하면 그저 안타까움이 밀려올 뿐이다. 자신들의 욕망만을 채우기 위해 어린 자녀들을 방치한 채 밀회와 성적 유희를 즐긴 그들에게 마음 같아선 그들의 이마에 ‘간음(Adultery)’이라는 주홍 글자를 찍어주고 싶다. 커가면서 하얀 어둠 속을 걷는 것처럼 백야행을 해야만 했던 료지와 유키호를 생각하면 ‘부모’라는 타이틀로 자신의 아이들은 외면한 채 성적 일탈만 일삼은 인간들에게 ‘간음’이라는 주홍 글자도 과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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