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적 자유주의 - 자유, 평등, 상생과 사회발전 돌베개 석학인문강좌 2
이근식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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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지식인 사회에서 진보적 자유주의, 사회적 자유주의, 공동체적 자유주의 등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를 결합하는 담론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 책은 이런 맥락에 속하는 교과서 같은 책이다. 큰 틀에서 머리 속을 깔끔하게 정돈해 준다. 자유주의의 기원, 정의부터 자유주의의 한계, ‘상생’적 자유주의이어야 하는 이유와 사회발전의 의미와 방법까지 잘 정리한 책이다. 두 번 읽었지만 가까이 두고 또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판단은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으로 나눌 수 있다. 제비꽃을 보고 제비꽃임을 아는 것이 사실판단이고, 제비꽃을 보고 예쁘다고 느끼는 것이 가치판단이다. 사실판단은 객관적으로 오류 여부를 판단할 수 있지만 가치판단은 주관적이라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저자는 과학은 결국 인간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주므로, 사회과학은 물론이고 자연과학에서도 가치판단을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사회적인 존재인 어떤 인간도 개인의 취향이나 인생의 목표 같은 가치관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지만 윤리 문제를 회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상생적 자유주의, 이근식, 돌베개  
 
그가 생각하는 보편적 인류의 가치관은 어떤 이유로도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기본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러한 건전한 가치관과 편견이나 이해관계를 떠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 냉철한 사실 판단력이 합쳐져야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는 이성을 갖추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란 개인이 원치 않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자유는 집단이 아니라 개인에 대한 자유이고,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사상, 출판, 취업, 결사, 종교의 자유 같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자유를 말한다. 정치권력, 재벌권력, 언론권력 같은 사회적 권력으로부터 부당한 침해를 받지 않을 자유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생명권과 재산권을 포함하는 인권 전체를 광의의 자유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자유가 빈곤으로부터의 자유이다. 개인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빈곤이 존재하지만, 이것이 사회적 권력의 부당한 침해라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과 르네상스, 종교개혁, 시민혁명 등의 전개를 바탕으로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왔다. 역사적 맥락에서 자유주의는 모든 개인은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근대시민사상이며, 절대군주제와 전통적 신분사회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축으로 시민사회를 건설한 주역인 부르주아(중소상공인)의 건강한 시민정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자유주의의 인간관은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부족하고 그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도 부족하다. 품성 면에서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기도 한다. 즉, 인식과 윤리 양면에서 이중적 불완전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나 과오를 범할 수 있으므로 사상과 비판의 자유가 필수적이고, 불완전한 권력자의 권력에 대한 엄격한 제한이나 부당한 피해를 막기 위한 공정한 법질서 등이 필요한 것이다.

16-18세기 서양의 시민혁명 과정에서 형성된 고전적 자유주의의 중요한 기본 원리들은 만인평등(사회적 평등), 개인주의, 독립심과 자기 책임, 사상과 비판의 자유, 관용 같은 것들 이다.

만인평등사상은 자유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관점이다. 모두 평등하므로 아무도 타인의 자유를 억압할 권리가 없다는 점에서 모든 인간은 자유롭다는 주장이 도출되었다. 이런 사회적 평등은 인격과 인권에서의 평등, 법 앞의 평등, 기회균등이다. 서양의 경우 200-300년, 우리나라의 경우 겨우 60년 전에 인류 역사의 무수한 세월 동안 당연시 했던 인간 차별을 타파하고 만인평등 사회를 실현한 것이 자유주의인 것이다. 만인평등사상 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상이자 근대성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들의 자유주의는 진보성과 수구성(반동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이 반동성은 부르주아의 계급적 한계 때문인데, 시민혁명 후 집권한 부르주아정부들은 선거권을 유산자에게만 주거나, 노동조합을 금지하고 탄압하거나, 공공교육은 의도적으로 거의 시행하지 않았다.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을 통해 정치적 자유를 쟁취한 부르주아들은 경제 활동의 자유도 요구했다. 시민혁명 전 서구의 중상주의 정책은 정부의 비호를 받는 대상공인들에게 유리했고, 불리한 처지였던 중소상공인들은 정부의 경제 규제를 철폐하는 자유방임 경제를 원했다. 이런 주장을 경제적 자유주의 또는 자유방임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16세기에서 19세기 전반까지의 고전적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합한 것이었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성립 이래 보편타당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경제적 자유주의는 19세기 후반 이래 끊임없는 논란이 되어 왔다. 논란의 이유는 자본주의 경제가 장점도 갖고 있지만 분배 편중, 불황과 실업, 독과점화, 공공재 부족 등 시장 실패와 자본주의 실패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 언급한 자유주의의 반동성은 모두 경제적 자유주의 때문에 발생한다.  

이런 한계 때문에 정치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경제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 개입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나뉜다. 후자는 19세기 말 사회적 자유주의로 등장한다. 사회적 자유주의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영미에서 널리 공감을 얻었고, 그 결과 자유주의는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말과 혼용되었다. 오늘날 영미에서 리버럴리즘이라는 말이 자유주의와 진보주의의 두 의미로 혼용되는 배경이다.

평등. 평등의 의미를 본원적 평등, 사회적 평등, 경제적 평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본원적 평등은 자유주의의 핵심인 만인평등사상이다. 사회정의를 사회문제에 관한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기준이라 볼 때 만인평등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유일하게 자명한 명제이다. 사회적 평등은 본원적 평등이 현실 속에서 실현된 것이다. 법적 평등, 정치적 평등 등이다.
경제적 평등은 출발 선상에서의 기회 균등과 결과로 얻어진 부와 소득의 평등분배를 말한다. 자유와 갈등 관계에 있는 것은 경제적 평등뿐이며, 나머지 두 평등은 자유를 위한 필수 요소이다.   

저자는 분배정의에 대한 중요한 기존 이론들을 소개한다. 공리주의, 클라크의 한계생산력설, 파레토 최적, 롤즈의 분배정의론, 폴리의 자족, 드워킨의 자원의 평등 분배론, 노직의 소유권적 분배정의론 등이다.

저자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떠나 공정한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이 분배와 관련된 분쟁을 해결하는 길이라고 보고, 공리주의와 롤즈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종합하여 우리 경제의 입장에서 분배 정의의 세 원칙을 제시한다.

1. 생산 기여도에 따른 차등분배(기여도 원칙) : 근면과 창의력으로 생산에 많이 기여한 시람은 많이 받고, 적게 기여한 사람은 적게 받는 것이 정의에 합당하다.
2. 기본재 충족의 원칙 : 공공복지제도를 통한 절대빈곤의 퇴치이다. 인간으로서 생활하는데 필수적인 기본재인 의식주, 의료, 교육, 교통 등은 모든 사람에게 공급한다. 경제적인 면에서 최소한의 기본적 인권을 충족시킨다는 의미이다. 기본재의 수준은 사회적으로 합의해야 할 것이다.
3. 기회균등의 원칙 : 교육과 상속에서의 기회균등을 의미한다.

민주주의 이념은 자유, 평등, 박애이다. 기여도 원칙은 자유의 정신을 분배에 적용한 것이고, 기회균등은 평등을 적용했고, 기본재 충족은 박애를 적용한 것이다. 또한 단순한 균등분배는 성장을 방해할 것이지만 공정분배는 오히려 성장을 촉진시킨다. 이 세 원칙은 모두 장단기적으로 성장에 친화적이다. 

저자는 개인주의의 한계를 상생의 원리로 극복한 자유주의를 상생적 자유주의라고 부른다. 정치적 자유주의의 확립,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확립,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살리면서도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시장실패를 시정하는 복지국가형 수정자본주의, 상생의 원리와 실천을 통한 공동의 갈등 문제(분배 갈등, 인간 소외, 윤리 타락, 환경 파괴, 국제 분쟁 등)의 해결, 정부 실패를 예방하기 위한 적절한 제도 등이 상생적 자유주의의 주요 내용이다. 

적대적 갈등과 상생적 갈등, 삶의 의미, 사회진보의 정의와 이성적 사회 발전의 길 등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도 음미할 만하다. 최근 전개되고 있는 진보적 자유주의 담론에 대한 기본적인 교과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분배정의의 삼원칙을 통해 공정과 복지를 아우르는 경제적 민주주의에 대한 설득력 있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고 많은 정책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세계화와 분단 상황 속에 조절시장경제에 대한 더 구체적인 모습과 정책들에 대한 후속 논의들이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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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 - 미국 수정헌법 1조의 역사
앤서니 루이스 지음, 박지웅.이지은 옮김 / 간장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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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수정헌법 1조 이야기

법체계는 보통 영미식 보통법 체계와 유럽식 대륙법 체계로 나눈다. 대륙법은 1804년의 나폴레옹 법전이 대표적이듯 판사들의 자율성을 최소화하고 모든 법을 문서로 엄격히 규정해 놓는다. 구지배질서에서 교육받은 판사들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고, 법의 입인 판사들이 법전에 따라 판단한다. 하지만 보통법 체계는 배심재판제도가 핵심이고 법전 보다는 판례가 중요하다. 진실의 판정을 내리는 주체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다. 판사는 재판을 주재하고 배심원들의 올바른 판단을 돕고 이 판단에 비추어 형량을 정할 뿐이다.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도 법전보다는 과거부터 축적되어 온 판결문들이다. 우리나라는 대륙법체계이지만 최근 국민참여재판을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등 새로운 사법체계에 대한 실험을 시작하고 있다.

이 책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는 부제로 붙인 미국 수정헌법 1조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국 수정헌법 1조는 다음과 같다. “의회는 국교를 설립하거나 종교의 자유로운 실천을 금지하는, 그리고 의사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 또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회동할 수 있는 권리와 불만사항의 시정을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그 어떤 법도 만들 수 없다.” 시민의 자유에 대한 대단한 선언이다. 하지만 1791년에 제정된 수정헌법 1조가 처음부터 잘 작동된 것은 당근 아니다. 불과 7년 후에 대통령을 조롱한 사람들이 투옥 되었고, 1세기 후 조차도 윌슨 대통령의 정책 결정을 비판한 사람들에게 징역 20년이 선고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신장되어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수정헌법 1조에 대한 시민과 판사들의 인식이 지속적으로 아니 거의 극적으로 변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수정헌법 1조를 둘러싼 대표적인 사건들과 대중들의 생각 그리고 판사 특히 대법관들의 판결문들이 어떻게 달라져 왔는가에 대한 보고서이다. 민주주의, 자유, 평등 같은 가치들은 결코 명문화된 헌법이나 약속만으로는 지켜질 수 없고 다수 국민과 지식인들의 직접적이고 끈질긴 노력에 의해서만 만들어져 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는 책이다.

이 책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는 특히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 집중하여 보통법 체계인 미국에서 수정헌법 1조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연방대법원 대법관들의 판결문을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다. 대법관들이 법적으로 보장받는 권한을 배경으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 시대를 한발짝 앞서가는 판단을 내리고 이것을 우직스럽게 지켜나가는 과정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나치 옹호나 이슬람 극단주의 같은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들에 대한 표현의 자유가 어느 정도까지 보장되어야 할지 어떤 지점(예컨대 폭력 호소 같은)에서는 제한되어야 하는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물론 언론의 면책 특권을 어느 정도까지 보장 할 지 개인의 사생활 보호라는 가치와의 대립은 어떻게 조정할 지 많은 의문들은 남는다. 더구나 9.11 테러 이후 미국 언론들이 보여 준 권력에 순종적인 태도는 역사가 거꾸로 갈 수도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여전히 국가보안법 등 사상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고, 국가의 경제 정책을 비판하는 네티즌이 기소되고, 피디수첩 사건처럼 국가 정책을 비판하는 언론인을 개인 이메일을 뒤지면서까지 기소하는 우리나라의 저급한 현실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준다. 번역자 중 한 사람은 군에서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문제를 제기하다 강제로 군복을 벗게 된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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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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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종성 영장류  질환-인간이라는 병적 존재가 지구 전역에 퍼져 지구가 병을 앓고 있다는 의미로 쓰인 병명-이 생명체의 서식지인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저자의 문제 의식은 인본주의나 인간 중심주의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고 대안을 만들어 내야 할 주체 역시 인간이라는 점이 아이러니칼 하기는 하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사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생각이나  인류가 진보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인간의 이성이나 합리성에 대해 회의했던 탈근대 시대의 보편적 지성의 한 흐름이었다. 근대의 자연과학의 발전과 함께  일반화 되었던 역사 발전에 대한 사회 진화론적 여러 주장들은 자본주의 영속성에 대한 낙관론이나 자본주의 이후 사회주의의 필연적 도래에 대한 믿음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현실의 경험을 통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 인류의 대안이 될수 없다는 생각이 퍼졌던 60-70년대의 사회과학과 철학적 흐름은 대부분 인간의 이성이나 합리성에 대한 부정으로 부터 시작 되었다. 또한 인류나 사회의 진화나 진보에 대한 환상도 대부분 부정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성이나 합리성에 대한 회의 역시 이성과 합리적인 논증을 통해 이루어 진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성이나 합리성이 아니라 어떤 이성이고 어떤 합리성인가에 있지 않을까? 연장선상에서 기계나 기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것들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가가 문제의 핵심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물론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 찌들어 지구와 자연과 생태를 복리와 개발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오히려 파괴하는 세력에 맞서 이런 생각을 깨뜨릴 필요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만으로는  이러한 강력한 세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과 전술이 무엇일까에 대한 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문제를 야기하는 것도 인간이고 해결할 수 있는 것도 결국 인간 속에서 찾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는 지구에 대해 악마일 수도 천사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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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건축
쿠마 켄고 지음, 임태희 옮김 / 안그라픽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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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어떤 시대 였을까 라는 질문에 저자는 거침없이 콘크리트의 시대라고 답한다. 콘크리트가 도시를 만들고, 국가를 만들고, 문화를 만들었다.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나무로 형틀을 짜고 철근, 모래, 자갈, 시멘트를 배합하면 장소를 불문하고 콘크리트가 완성 된다. 콘크리트는 장소적 보편성 뿐 아니라 어떤 조형도 가능한 또 하나의 보편성, 즉 형태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형틀만 잘 만들어 집어넣으면 그 뿐이다. 거기다 콘크리트는 표층의 자유도 허락한다. 나무, 돌, 알루미늄 등 무엇을 붙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콘크리트의 장점 속에 숨어 있는 다양성의 파괴에 주목한다. 다양한 장소, 다양한 기술, 다양한 건축 재료가 콘크리트라는 단일성에 의해 파괴되어 자연의 다양성, 건축의 다양성이 상실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또한 속과 겉이 다른 콘크리트의 탁월한 화장술에도 불편해 한다.

저자는 콘크리트라는 편리한 소재를 버리고 그 대신 자연과 장소에서 건축 소재를 구하는 힘겨운 도전에 나선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는 설계사무소 대표가 아니라 건축자재 회사의 대표가 된 것처럼 보인다.

장소에 맞는 설계를 구상하고 그 장소에 맞는 건축 재료를 가능한 현장 주변에서 찾는다. 자연과 건축물과 건축소재가 자연스럽게 조화 되는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 한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건축소재를 그냥 쓰는 것은 아니다.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이리저리 구멍을 뚫거나, 격자를 만들거나, 철을 결합시키거나 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구사 한다.

돌미술관을 만들 때는 일반적인 조적조 방식을 뛰어넘어 돌을 1/3씩 빼 내거나 기상천외한 돌격자를 만들기도 한다.

쵸쿠라 광장에서는 오타니석을 파형철판에 끼워 독특한 형태를 만들어 낸다.

대나무를 쓸 때는 고심 끝에 대나무 속에 콘크리트를 채워 넣어 쪼개지는 단점을 극복한다.

이 책만 보면 저자는 이익을 내는 데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건축을 하나의 놀이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다보면 주어진 여러 가지 제약은 어느새 새로운 창조적 상상력의 조건이 되어 버린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건축물을 직접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바람과 햇빛, 풍광 같은 자연과 장소와 건축을 하나로 연결시키려는 저자의 지극한 노력과 정성이 감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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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시간에 잠기다 - 한 인문주의자의 피렌체 역사.문화 기행 깊은 여행 시리즈 2
고형욱 지음 / 사월의책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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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을 하는 대부분의 한국 관광객들은 주마간산 격으로 관광을 한다. 패키지여행을 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자유여행 이라도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경험하려다보니 늘 시간에 쫒긴다. 한 도시에 오래 머물면서 샅샅이 경험하는 방식은 언제나 바램으로 만 남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피렌체를 열 번이나 갈 수 있었다니! 아름다운 예술품들을 실컷 구경하고 중앙시장 등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는 작자의 발길을 상상하면 나는 언제 저렇게 가보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보티첼로의 그림이나 다비드를 보면서 작자처럼 행복한 감동의 정취에 빠져 들 수 있으려면 이정도의 상식은 있어야 할 것이다. 직접 진품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다보면 책에 실린 그림이나 작품들을 자꾸 반복해서 보게 만든다.


압권은 역시 보티첼로의 비너스의 탄생이다. 작자는 운 좋게도 다른 관람객이 없는 이른 시간에 혼자 그 그림을 볼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책에 실린 그림만도 자꾸 쳐다보게 만드는데 진품을 그것도 혼자 한참 동안 바라보았을 그 순간이 얼마나 벅찼을까? 예컨대 루브르의 모나리자나 바티칸 성당의 천지창조 같은 유명한 작품들을 사람들 틈에 끼어 밀려가면서 본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그 느낌을 어느 정도 상상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의 아프로디테인 비너스는 보티첼로의 붓에 의해 탄생한다. 상상 속의 비너스가 구체적으로 시각화하여 인간 세계에 탄생한 것이다. 신화 속에서 바다 거품(아프로디테의 아프로는 거품이라는 뜻)에서 태어난 비너스가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보티첼로의 상상력과 손길이 우리에게 비너스를 선물해 준 것이다. 비너스의 탄생은 사실 탄생의 모습이 아니라 조개를 타고 서풍의 신 제피로스의 바람에 의해 흘러와 육지에 오르는 순간의 그림이다. 결혼 선물로 그려졌다는 추정에 의하면 순결한 여인이 결혼을 앞두고 행복과 출산을 축복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비너스의 왼손이 잡고 있는 머리카락이나 호라이가 입혀주려고 들고 있는 망토 끝의 모양이 여성의 성기를 닮아 있단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얼굴은 마냥 행복한 얼굴이 아니라 어딘지 애잔함이 서려있다. 신부들이 자기 집을 떠나 미지의 신랑집에서 살아가게 되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의 표현이리라. 어딘지 껑충해 보이는 10등신 몸이나 이상하게 꺾여있는 목 등 평범하지 않은 신체이지만 어딘지 청순하면서도 관능적인 느낌을 주는 그 자태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꽃의 도시 피렌체를 상징하는 ‘꽃의 성모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피렌체 시내 어디에서나 이 성당의 두오모(돔)가 보인다. 성당 앞에 있는 산조반니 세례당에는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고 극찬한 기베르티의 황금문이 있다. 그는 이 문을 제작하는데 30년을 소비한다. 성서의 구양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을 10개의 작품으로 구성했다.


작자는 다빈치의 수태고지, 라파엘로의 작품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나 바쿠스 등 여러 걸작들을 섭렵하고 아르노 강이나 궁전들 심지어 가장 번화한 곳인 중앙시장까지 독자들을 끌고 다닌다. 피렌체를 두 번 방문 하면서도 겨우 건성으로 구경한 ‘꽃의 성모마리아’ 성당이나 시뇨리아 광장의 조각 작품들이 작자의 글을 통해 다시 생생하게 살아나는 느낌이다. 시뇨리아 광장의 다빈치는 복제품이라는데 언제 다시 가서 진품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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