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적 자유주의 - 자유, 평등, 상생과 사회발전 돌베개 석학인문강좌 2
이근식 지음 / 돌베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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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지식인 사회에서 진보적 자유주의, 사회적 자유주의, 공동체적 자유주의 등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를 결합하는 담론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 책은 이런 맥락에 속하는 교과서 같은 책이다. 큰 틀에서 머리 속을 깔끔하게 정돈해 준다. 자유주의의 기원, 정의부터 자유주의의 한계, ‘상생’적 자유주의이어야 하는 이유와 사회발전의 의미와 방법까지 잘 정리한 책이다. 두 번 읽었지만 가까이 두고 또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판단은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으로 나눌 수 있다. 제비꽃을 보고 제비꽃임을 아는 것이 사실판단이고, 제비꽃을 보고 예쁘다고 느끼는 것이 가치판단이다. 사실판단은 객관적으로 오류 여부를 판단할 수 있지만 가치판단은 주관적이라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저자는 과학은 결국 인간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주므로, 사회과학은 물론이고 자연과학에서도 가치판단을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사회적인 존재인 어떤 인간도 개인의 취향이나 인생의 목표 같은 가치관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지만 윤리 문제를 회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상생적 자유주의, 이근식, 돌베개  
 
그가 생각하는 보편적 인류의 가치관은 어떤 이유로도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기본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러한 건전한 가치관과 편견이나 이해관계를 떠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 냉철한 사실 판단력이 합쳐져야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는 이성을 갖추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란 개인이 원치 않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자유는 집단이 아니라 개인에 대한 자유이고,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사상, 출판, 취업, 결사, 종교의 자유 같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자유를 말한다. 정치권력, 재벌권력, 언론권력 같은 사회적 권력으로부터 부당한 침해를 받지 않을 자유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생명권과 재산권을 포함하는 인권 전체를 광의의 자유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자유가 빈곤으로부터의 자유이다. 개인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빈곤이 존재하지만, 이것이 사회적 권력의 부당한 침해라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과 르네상스, 종교개혁, 시민혁명 등의 전개를 바탕으로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왔다. 역사적 맥락에서 자유주의는 모든 개인은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근대시민사상이며, 절대군주제와 전통적 신분사회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축으로 시민사회를 건설한 주역인 부르주아(중소상공인)의 건강한 시민정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자유주의의 인간관은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부족하고 그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도 부족하다. 품성 면에서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기도 한다. 즉, 인식과 윤리 양면에서 이중적 불완전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나 과오를 범할 수 있으므로 사상과 비판의 자유가 필수적이고, 불완전한 권력자의 권력에 대한 엄격한 제한이나 부당한 피해를 막기 위한 공정한 법질서 등이 필요한 것이다.

16-18세기 서양의 시민혁명 과정에서 형성된 고전적 자유주의의 중요한 기본 원리들은 만인평등(사회적 평등), 개인주의, 독립심과 자기 책임, 사상과 비판의 자유, 관용 같은 것들 이다.

만인평등사상은 자유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관점이다. 모두 평등하므로 아무도 타인의 자유를 억압할 권리가 없다는 점에서 모든 인간은 자유롭다는 주장이 도출되었다. 이런 사회적 평등은 인격과 인권에서의 평등, 법 앞의 평등, 기회균등이다. 서양의 경우 200-300년, 우리나라의 경우 겨우 60년 전에 인류 역사의 무수한 세월 동안 당연시 했던 인간 차별을 타파하고 만인평등 사회를 실현한 것이 자유주의인 것이다. 만인평등사상 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상이자 근대성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들의 자유주의는 진보성과 수구성(반동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이 반동성은 부르주아의 계급적 한계 때문인데, 시민혁명 후 집권한 부르주아정부들은 선거권을 유산자에게만 주거나, 노동조합을 금지하고 탄압하거나, 공공교육은 의도적으로 거의 시행하지 않았다.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을 통해 정치적 자유를 쟁취한 부르주아들은 경제 활동의 자유도 요구했다. 시민혁명 전 서구의 중상주의 정책은 정부의 비호를 받는 대상공인들에게 유리했고, 불리한 처지였던 중소상공인들은 정부의 경제 규제를 철폐하는 자유방임 경제를 원했다. 이런 주장을 경제적 자유주의 또는 자유방임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16세기에서 19세기 전반까지의 고전적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합한 것이었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성립 이래 보편타당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경제적 자유주의는 19세기 후반 이래 끊임없는 논란이 되어 왔다. 논란의 이유는 자본주의 경제가 장점도 갖고 있지만 분배 편중, 불황과 실업, 독과점화, 공공재 부족 등 시장 실패와 자본주의 실패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 언급한 자유주의의 반동성은 모두 경제적 자유주의 때문에 발생한다.  

이런 한계 때문에 정치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경제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 개입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나뉜다. 후자는 19세기 말 사회적 자유주의로 등장한다. 사회적 자유주의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영미에서 널리 공감을 얻었고, 그 결과 자유주의는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말과 혼용되었다. 오늘날 영미에서 리버럴리즘이라는 말이 자유주의와 진보주의의 두 의미로 혼용되는 배경이다.

평등. 평등의 의미를 본원적 평등, 사회적 평등, 경제적 평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본원적 평등은 자유주의의 핵심인 만인평등사상이다. 사회정의를 사회문제에 관한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기준이라 볼 때 만인평등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유일하게 자명한 명제이다. 사회적 평등은 본원적 평등이 현실 속에서 실현된 것이다. 법적 평등, 정치적 평등 등이다.
경제적 평등은 출발 선상에서의 기회 균등과 결과로 얻어진 부와 소득의 평등분배를 말한다. 자유와 갈등 관계에 있는 것은 경제적 평등뿐이며, 나머지 두 평등은 자유를 위한 필수 요소이다.   

저자는 분배정의에 대한 중요한 기존 이론들을 소개한다. 공리주의, 클라크의 한계생산력설, 파레토 최적, 롤즈의 분배정의론, 폴리의 자족, 드워킨의 자원의 평등 분배론, 노직의 소유권적 분배정의론 등이다.

저자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떠나 공정한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이 분배와 관련된 분쟁을 해결하는 길이라고 보고, 공리주의와 롤즈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종합하여 우리 경제의 입장에서 분배 정의의 세 원칙을 제시한다.

1. 생산 기여도에 따른 차등분배(기여도 원칙) : 근면과 창의력으로 생산에 많이 기여한 시람은 많이 받고, 적게 기여한 사람은 적게 받는 것이 정의에 합당하다.
2. 기본재 충족의 원칙 : 공공복지제도를 통한 절대빈곤의 퇴치이다. 인간으로서 생활하는데 필수적인 기본재인 의식주, 의료, 교육, 교통 등은 모든 사람에게 공급한다. 경제적인 면에서 최소한의 기본적 인권을 충족시킨다는 의미이다. 기본재의 수준은 사회적으로 합의해야 할 것이다.
3. 기회균등의 원칙 : 교육과 상속에서의 기회균등을 의미한다.

민주주의 이념은 자유, 평등, 박애이다. 기여도 원칙은 자유의 정신을 분배에 적용한 것이고, 기회균등은 평등을 적용했고, 기본재 충족은 박애를 적용한 것이다. 또한 단순한 균등분배는 성장을 방해할 것이지만 공정분배는 오히려 성장을 촉진시킨다. 이 세 원칙은 모두 장단기적으로 성장에 친화적이다. 

저자는 개인주의의 한계를 상생의 원리로 극복한 자유주의를 상생적 자유주의라고 부른다. 정치적 자유주의의 확립,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확립,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살리면서도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시장실패를 시정하는 복지국가형 수정자본주의, 상생의 원리와 실천을 통한 공동의 갈등 문제(분배 갈등, 인간 소외, 윤리 타락, 환경 파괴, 국제 분쟁 등)의 해결, 정부 실패를 예방하기 위한 적절한 제도 등이 상생적 자유주의의 주요 내용이다. 

적대적 갈등과 상생적 갈등, 삶의 의미, 사회진보의 정의와 이성적 사회 발전의 길 등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도 음미할 만하다. 최근 전개되고 있는 진보적 자유주의 담론에 대한 기본적인 교과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분배정의의 삼원칙을 통해 공정과 복지를 아우르는 경제적 민주주의에 대한 설득력 있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고 많은 정책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세계화와 분단 상황 속에 조절시장경제에 대한 더 구체적인 모습과 정책들에 대한 후속 논의들이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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