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안철수를 읽는다
김보협 등 5명 / 한겨레출판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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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판이 요동치고 있다. 19일 안철수 후보의 출마 선언 후 대선 후보 3인 사이의 지지율이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은 출마선언 효과까지 더해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 대선이 불확실성이 매우 큰 선거라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변화는 변화를 몰고 오고 지지율은 파동을 그리므로 앞으로도 계기마다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를 보일 것이다.

현재의 지지율 추이에서도 드러나지만 이번 대선의 역동성은 갑자기 등장한 안철수가 철옹성이던 박근혜 대세론을 깨면서 형성되었다. 안철수의 갑작스런 부상은 ‘안철수 현상’이라는 사회학적 용어까지 만들며 우리 사회를 해석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많은 국민들은 물론이고 일선의 기자들조차 정작 안철수 후보를 잘 모르는 기이한 현상도 지속 되었다.

본문에도 나오지만 안철수 후보의 언론을 대하는 태도는 박근혜 후보의 ‘복도 발언’과 유사한 면이 있었다. 언론에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할 뿐 기자들과의 접촉면을 넓히고 부딪치는 것을 주저했던 것이다. 이런 것을 의식해서인지 안후보는 출마 선언을 하면서 언론과 더 잦은 접촉을 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이 책은 한겨레 정치부 기자 다섯 명이 안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 된다면 잘 할 수 있을지 등을 올해 7월 말과 8월 초에 걸쳐 대담한 기록이다.
저자가 다섯 명이므로 서로 다른 생각들이 많아 일목요연할 수는 없지만 안후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안철수의 생각’이 안후보의 개인사와 정책을 스스로 밝힌 책이라면 이 책은 안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 대통령을 잘 할 수 있을지 등 정치인 안후보에 대한 외부의 다양한 분석과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 안후보를 지지하든 아니든 여전히 궁금한 안후보를 입체적으로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강준만교수는 ‘안철수의 힘’에서 이번 대선에서는 ‘증오의 종언’이 필요하고 기존 정치와 떨어져 있던 안후보가 적임자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많은 논객들은 안철수 대통령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저자들은 보고 있다. 한겨레와 경향의 주요 논객들, 특히 정치학과 정당정치 전공 학자들이 그렇고 당연히 보수언론의 논객들도 거부감이 크다. 특히 안후보의 정치 경험 부재와 정당 기반이 없는 것은 전문가나 논객들 뿐 아니라 다수 국민들도 걱정하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안철수 현상의 기저에는 20-30대의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 미래에 대한 불안감, 노무현에게 열광했다가 실패한 경험 등이 있다고 한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고난에 빠진 민중이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내는 처절한 소리라고도 했다. 양극화에 대한 반발도 결합되어 특권층에 대한 분노와 성공에 대한 갈망이 응축된, 즉 배고픔과 배아픔이 결합된 것이라고도 본다. 이런 현실에 대해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혐오가 결부되면서 안철수 현상이 증폭되었다는 것이다.

안후보는 대선 출마 선언을 통해 가치나 정책으로 여야 정당을 다 비판하면서 자신이 미래 가치를 대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야권 단일화에 대해서는 정치권(사실상 민주당)의 변화와 혁신, 국민의 동의가 전제 되어야 한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표명했다. 하지만 저자들은 안후보가 독자 무소속 후보로는 당선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야권 단일 후보가 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본다. 어떤 방식이든 후보 단일화를 한 뒤 민주당 후보의 틀을 가지고 대선 레이스에 뛰어드는 게 유리하다는 생각이 다수였다. 그렇다고 민주당에 쉽게 들어갈 수는 없다. 기존 정당을 불신하는 것이 ‘안철수 현상’이기 때문이다. 야권은 단일화 과정에서 이 딜레마를 잘 풀어야 승리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사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정책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의 생각’에서 정리한 복지, 정의, 평화는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 경제 민주화, 한반도 평화와 일치하고, 문후보가 후보 수락 연설에서 발표한 5대 국정 목표인 일자리, 복지, 경제민주화, 새로운 정치, 평화와도 유사하다. 안후보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민주당과의 차별성을 부각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문후보와 안후보의 단일화는 그 자체로 야권이 주도하는 논쟁적 프레임이다. 여기에는 민주당이 쇄신할 수 있는지, 안철수 현상을 야권이 그대로 흡수할 수 있을 것인지, 정치 신인 안철수가 대통령으로 적합할 수 있는지, 단일화 과정이 합리적이고 감동적일 수 있는지, 시대정신에 맞는 가치와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지, 공동정부나 연합정부가 가능하고 순기능을 할 수 있을지, 안철수현상으로 표출된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을 사실상 누가 대변하며 표로 만들어 갈 수 있는지 등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단일화 논의가 이슈 블랙홀이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현재 새로운 정치의 키워드로 거론되고 있는 화합의 정치, 복지와 경제 민주화, 평화 등을 구체적인 모습으로 의제화하여 2-3개의 논쟁적 프레임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일화 과정의 의도적인 속도 조절과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다.

여러 가지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번에는 과정에서 새로움을 찾아야 한다. 이전투구가 되는 것은 최악이며 화합의 진정성을 과정을 통해 실제로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객관성과 책임성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그동안의 야권연대에 역할을 해 온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 같은 시민 단위가 중재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안후보와 문후보가 선의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대한민국을 창조해 가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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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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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껌에는 진짜 인삼 성분이 들어 있을까, 합성 인삼향만 들어 있을까?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호두과자에는 호두가 있는데 인삼껌은 잘 모르겠다. 소설은 분명 허구(합성)인 데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현실의 어떤 모습이 들어 있을 때 더 감동적이다.

1년 반 전 창비를 통해 이 소설을 알았고 한동안 지인들에게 가장 첫 번째로 추천했던 소설이었다. 몇 권을 선물하기도 했는데 어쩌다보니 나에게 이 책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번에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주문해서 읽었다.  

김애란의 단편소설집 ‘침이 고인다’는 20대 젊은이들의 삶을 잘 드러내 준다. 피아노를 배우면 피아노 영재가 되고, 공부는 했다하면 우등생이고, 오랜 고생 끝에 고시에 척 합격하는 드라마 같은 삶은 없다. 대신에 돈 때문에 온갖 구차한 삶을 견뎌야 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치기공과에 다니는 언니는 “요즘 계급을 나누는 건 집이나 자동차가 아니라 피부하고 치아라더라.”고 전한다. 언니는 자기 남자친구의 누르스름하고 고르지 않은 작고 오래된 치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전혀 어울리지 않게 피아노가 있는 반지하 셋방에서 여름 장마에 비가 무릎까지 차오는 상황에서 서울에 온 후 처음 피아노를 치는 나의 이야기인 ‘도도한 생활’.

대표작 ‘침이 고인다’에 묘사되는 한국의 학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도 흥미롭다. 연봉이 1억이 넘고 심지어 연수입이 수십억에 달한다는 학원 강사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원 강사들은 높은 강도의 노동과 많지 않은 수입으로 힘겹다. 아침마다 알람 소리에 갈등하고 몸은 힘들고 돈만 아는 원장, 이사장들의 몰상식에 휘둘린다. 학원 강사인 나의 삶에 거의 20년 묵은 인삼껌을 간직한 대학후배가 그만큼의 사연과 함께 비집고 들어온다.

사귄 지 4년 만에 처음으로 애인과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는 연인이 있다. 지나간 크리스마스에는 여자에게 적당한 옷이 없거나 사내에게 돈이 없거나 하는 이유로 따로 떨어져 있어야 했다.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모텔을 찾아다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그냥 집으로 들어가는 하룻밤이 실감나면서 안쓰럽게 그려져 있다.

노량진 학원가를 배경으로 재수생과 취업 준비생 등을 그린 ‘자오선을 지나갈 때’나 신림동 고시촌을 배경으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언니와 계속 실직 상태에서 과외로 살고 있는 나를 등장시킨 ‘기도’도 가슴 뭉클하다.

김애란의 소설에는 직접 겪지 않고는 표현하기 힘들다고 여겨지는 묘사들이 자주 등장한다. 몇 개만 예로 들면 고시촌 게시판에 있는 “제 지갑 가져가신 분, 죽어버리세요.”, 공무원 시험책을 사러 다니다 서울대 근처 헌책방에는 9급 공무원 시험책은 팔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일, 학원 체육대회 마지막에 자원해서 연단에 오른 버스기사가 노래를 부르자 ‘이상한 불편함’을 느끼는 학원선생들 등이다. 이런 디테일들이 소설에 숨을 불어 넣는다.

이 소설에는 재수생, 등록금이 없는 대학 신입생, 9급 공무원 시험 준비생, 실직자, 알바생, 혼자 힘으로 학비와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대학생, 힘겨운 학원 강사 등 다양한 20대 무렵의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이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그냥 견뎌내고 있거나 그저 암울한 심정을 표현 할 뿐이다. 시장만능 무한경쟁시대에 출구 없는 미로를 헤매고 있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설령 “출구”를 찾았다고 해도 별 의미도 없고, 아직도 “그 골목을 헤매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238쪽).       

대한민국 2,30대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나갈 새싹은 어디에서 움트고 있는 것일까 자못 궁금하다. 대표적인 신세대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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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1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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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과 비극의 파노라마 '형제'
형제 1,2,3 위화 휴머니스트
 

2010년 11월 01일 (월) 전민용 gca027@paran.com
 

 


   
 
     
 
이 소설은 시대적으로 30 여년 전의 문화대혁명과 최근의 개혁개방과 시장경제 시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작가 위화는 문화대혁명 당시 중학생이었고, 나중에 치과의사를 5년 쯤 하다가 소설가로 전업했다. 작가의 경험이 그대로 묻어나는 소설인데 글이 대단히 유머스럽고 인물들과 사연들이 특이하고 재미있다. 그러면서도 문화대혁명의 반인간적인 면과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이렇게 생생하게 풀어 놓은 글을 읽은 적이 없다.

소설 ‘형제’의 형제는 이광두와 송강이다. 외모부터 성격까지 너무도 다른 둘은 친형제가 아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각각 데리고 결혼하면서 형제가 된 사이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이광두는 못생기고 엉뚱하고 다혈질이고 막무가내이지만 도전적이고 긍정적인 형이다. 송강은 건장하고 반듯하고 희생적이지만 고지식하고 비관적인 형이다. 둘은 일찍 부모를 잃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류진 제일의 미녀 임홍을 이광두가 짝사랑하고 임홍과 송강이 서로 사랑하게 되면서 형제 관계는 끝장나고 만다.

이야기는 어린 이광두가 재래식 변소에 고개를 처박고 다른 칸에서 볼일을 보는 여자들 엉덩이를 훔쳐보다 딱 걸려 류진 시내를 돌아 경찰서로 끌려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알고보니 이광두의 아버지도 변소에서 같은 일을 하다가 똥통에 거꾸로 처박혀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상황에서 과감하게 똥통 속에 직접 들어가 시신을 끌어내어 집에까지 옮겨 준 사람이 송범평이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훗날 건장하고 잘 생기고 류진에서 농구를 제일 잘하는 송범평과 이광두의 어머니 이란은 결혼한다.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이광두의 집은 박살이 난다. 송범평의 아버지가 지금은 입에 풀칠을 하기도 어렵게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지난 날 지주였기 때문이다. 오래 전 지주의 아들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당성 강하고 누구에게나 존경받던 송범평은 갖은 고초를 겪다가 결국은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다.

이렇듯 문화대혁명 기간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인간으로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참혹한 대우와 고문을 당하고 심지어 죽어간 사람들의 모습이 자세히 그려진다.

이광두는 변소에서 본 여자 엉덩이 목격담을 팔아먹을 정도로 장사 수완이 뛰어난 아이였다. 그는 어른이 된 후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 들어 엄청난 부를 모은다. 부를 모으는 방법이 너무도 풍자적이다.

예를 들면 그는 전국처녀미인대회를 개최하여 큰 돈을 번다. 여기에 참가하는 미인들은 자기가 처녀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육탄공세로 심사위원들을 매수한다. 이 와중에 인공처녀막을 팔아 돈을 챙기는 사람도 등장한다. 부정과 부패가 판을 치고 인간의 성과 몸이 한낮 상품으로 팔리는 중국식 시장경제의 문제들을 신랄하게 드러낸다.

시장경제는 결국 모든 사람들을 휩쓸어 간다. 반듯했던 송강마저 직장을 잃은 후 몸은 망가지고 결국 가짜 약을 팔아 돈을 벌게 된다. 심지어 가슴 커지는 크림을 팔기 위해  남자인 그가 가슴 확대 수술을 받기도 한다. 성형 수술은 한국식이 제일 인기가 높다고 한다. 송강은 아내 임홍을 자신이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임홍은 남편을 잃고 여자를 파는 포주가 되어 큰 돈을 번다. 송강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광두는 사업체를 모두 넘겨주고 고독과 회한 만을 간직하며 살아간다.

이 소설에는 감정이입을 할 만한 인물이 없다. 하나같이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이다. 그럴듯한 인물은 일찍 죽거나 다른 인물로 변신한다. 많은 인물들이 자기 이름도 없이 별명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역사적 현실적 간극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했지만 작가가 가진 중국에 대한 절망의 표현 이자 전체주의 사회가 인간과 관계를 어떻게 망가뜨리는 가를 고발하는 내용이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허삼관 매혈기(위화, 푸른숲)를 번역한 최용만이 ‘형제’도 아주 맛깔스럽게 잘 번역했다. 피를 팔아 가족의 어려운 일을 해결해 가는 허삼관 매혈기도 한 번 읽어 볼만하다. 이 책을 읽고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실제로 중국에는 매혈을 해서 살아가는 마을 까지 있다고 한다. ‘형제’는 1,2,3권으로 되어 있고, 모 인터넷 서점에서 반값에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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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라이어 -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말콤 글래드웰 지음, 노정태 옮김, 최인철 감수 / 김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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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펜실베니아의 로제토는 이탈리아 포자 지방의 로제토 발포르토레 마을 사람들이 1882년 이래 수십년에 걸쳐 이주해 오면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그런데 1950년 대 후반에 미국에서 65세 이하 남성 사망원인의 1위를 달리는 심장마비가 이 마을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로제토에서는 55세 이하에서는 심장질환의 흔적도 보이지 않고, 65세 이상도 심장마비 사망률이 전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모든 사망원인을 종합한 사망률도 30-35%가 낮았다.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자도 없고 자살율과 범죄율도 아주 낮은 로제토에 대한 대대적인 역학조사가 실시되었다.

음식, 운동, 유전, 지역 환경, 흡연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요인들을 조사했지만 답은 엉뚱한 데서 나왔다. 평등주의적이고 끈끈한 마을공동체가 건강의 비결이었던 것이다. 의료계는 개인 차원을 넘어 집단과 문화, 가치관 같은 것들이 건강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을 인정했고, 건강에 대한 이해를 넓혀 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사례처럼 말콤 글레드웰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성공에 대한 이해를 확장해 주는 이 책을 집필했다.


   
 
  ▲ 아웃 라이어, 말콤 글래드웰, 김영사  
 
캐나다 하키계를 지배하는 철의 법칙. 유명 하키선수팀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1월-6월에 태어난 선수들이 압도적이다. 캐나다에서 보통 코치들은 아홉 살이나 열 살 무렵의 소년들을 대상으로 유력팀의 선수들을 짜는데 한창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이라 몇 개월의 차이로도 상대적으로 체격이 더 크고 더 잘 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애들이 일단 선발되고 나면 차별화된 지도와 훈련 덕에 정말로 뛰어난 선수로 성장해 가는 것이다.

교육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나 생일이 빠른 아이들의 성적이 상대적으로 더 높게 나온다. 세월이 갈수록 희석되기는 하지만 대학에서 조차 10% 정도의 효과가 남아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IQ. 1921년 캘리포니아 초등생 25만명을 대상으로 IQ검사를 실시해 최고 중의 최고인 140이 넘고 200에 다다르는 1470명의 아이들을 추려냈다. 이들을 평생에 걸쳐 추적 조사했다. 결론은 거의 대부분 평범한 인생을 살아갔다는 것이다. 노벨상수상자는 한 명도 없었고 오히려 IQ검사에서 탈락한 아이들 중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지능과 성취도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IQ가 너무 떨어져도 학업성취도가 낮은 것은 맞지만 높으면 높을수록 비례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대략 115 정도를 넘어서면 지능지수는 성격이나 인격, 가정환경 같은 다른 요인에 비해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801편 추락의 비밀. 1997년 8월 괌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린 보잉 747 비행기 추락 사건이 일어났다. 254명의 탑승객 중 228명이 사망했다. 비행기 사고는 대개 사소한 고장과 장애가 여러 건이 겹치고  상당수의 실수가 겹치는 특별한 상황에서만 일어난다. 이 날도 사소한 잔 고장, 나쁜 날씨, 피곤함이 모두 겹쳤고, 더 결정적인 것은 기장의 실수나 판단 착오를 부기장이 명확하게 지적해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권력 간격 지수(Power Distance Index, PDI)란 특정 문화가 위계질서와 권위를 얼마나 존중하는 지를 나타낸다. 즉 위험과 불확실성을 무릅써야 하는 특정한 상황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그 의견을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라별 PDI지수와 비행기 사고 간에 명확한 상관관계가 있음이 통계로 입증되었다. 세계 조종사들의 PDI를 조사해 본 결과 브라질이 1위, 한국이 2위 였다. 우리의 장유유서 문화가 위기 상황에서는 큰 위험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2002년 히딩크가 우리나라 월드컵 국가대표 감독을 맡았을 때 선후배 위계 질서가 엄격한 모습을 보고 밥 먹을 때나 훈련 할 때 선후배를 막론하고 반말을 쓸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우리 문화를 모르는 외국인 감독의 파격적인 지시에 잠시 정적이 흐르던 찰나, 대표팀 막내인 김남일의 “명보야, 밥먹자!”는 한마디에 식당은 웃음바다로 변했고, 대한민국호는 승승장구했다. 참으로 현명한 히딩크이다.

진료실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위계 질서를 좋아하는 엄격한 원장이나 의사는 옆에서 돕고 있는 의료인들의 적극적 역할을 통해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는 의료사고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아시아인이 수학을 더 잘하는 이유. 오랜 세월동안 한국, 중국, 일본에서 유학을 왔거나 그 나라 이민자의 자손들은 수학에서 서구 아이들 보다 더 높은 성취를 올려왔다. 왜일까?  중국에서는 보통 네 살만 되어도 40까지 센다. 하지만 미국의 네 살은 15까지 밖에 세지 못한다. 숫자체계의 규칙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시아 아이들은 먼저 수학에 눈뜨고 규칙적 체계에 익숙해질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쌀농사 문화권이라는 것을 든다. 쌀농사는 노동집약적, 기술집약적이다. 노력과 끈기와 자율성을 최대한 요구하는 문화이고 이것은 수학과 잘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성취 공식은 ‘재능 더하기 연습’이다. 그런데 재능 있는 이들의 경력을 관찰하면 할수록 타고난 재능의 역할은 줄어들고 연습의 역할이 커진다.

재능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음악, 그 중에 바이올린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심리학자들이 조사 연구 했다. 베를린 음악 아카데미 학생들을 연주 실력에 따라 세 그룹으로 나누어 조사해 보면 대략 다섯 살 전후에 연주를 시작하고 초기 몇 년 간은 일주일에 두세 시간 씩 비슷하게 연습했다. 여덟 살 무렵부터 변화가 시작되는데 갈수록 연습시간의 차이가 커진다. 결과적으로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최상의 실력자들은 1만 시간, 그 다음은 8천 시간, 그 아래는 4천 시간을 연습한다. 노력하지 않고 재능만으로 정상에 올라간 연주자는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어느 연주자가 최고 수준의 음악학교에 들어갈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실력 차이는 오로지 노력의 차이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만 시간의 법칙. 신경과학자인 다니엘 레비틴은 어느 분야든 세계 수준의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의 연습시간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작곡가, 야구선수, 소설가, 스케이트선수, 피아니스트, 체스선수, 숙달된 범죄자 등 어떤 분야든 이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1만 시간이면 대략 하루 세 시간, 일주일에 스무 시간씩 10년 간 연습한 것과 같다. 어느 분야든 이보다 적은 시간을 연습해 세계 수준의 전문가가 탄생한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신동이라고 부르는 모차르트의 경우에도 여섯 살에 작곡을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걸작으로 평가받는 진정한 협주곡은 스물 한 살 때부터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록밴드인 비틀즈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역시 1만 시간 법칙의 예외가 아니다. 

“특별한 성취는 개인적 재능이 아닌 노력과 환경과 기회에 의해 좌우된다.”로 이 책을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노력을 가능하게 하는 가정과 사회의 환경도 중요하고, 집단적인 문화적 유산이나 시대적이고 우연적인 사회적 기회 역시 중요하다. 개인의 성공이나 성취의 열매가 왜 일정정도 사회적으로 공유되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들이기도 하다.   

물론 성공이나 성취가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심리학적으로 성공에는 집중력이 중요하고 행복은 자존감이나 자기애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행복이나 바람직한 삶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성취나 성공에 대해 보다 사실에 접근하는 이해를 제공해 주는 것은 사실이다. 마지막 에필로그에 나오는 저자의 가까운 직계 조상인 자메이카 흑인 노예들의 가족사도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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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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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을 검사하고 진단하고 치료계획을 세우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만 고르라면 대부분의 의료인들은 진단을 선택할 것이다.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장하준은 이 책에서 지난 30년 동안 세계 경제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자유시장주의자들이 어떤 오판과 거짓 주장을 해 왔는지 조목조목 구체적 자료를 제시하며 진단한다. 2008년 경제 위기를 경험하며 ‘사다리 걷어차기’, ‘쾌도난마 한국경제’ ‘국가의 역할’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에서 그동안 장하준이 주장해 왔던 내용들의 적합성과 사실성이 새삼 입증되었다. 아직도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세계경제의 해법에 빛나는 이정표가 될 한 권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2008년 11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경제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런던경제대학을 방문하여 왜 아무도 2008년 가을에 터진 금융 위기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물었다. 아마 지구인 대부분이 궁금해 했던 질문일 것이다.

여왕의 질문에 대해 영국아카데미는 2009년 학계, 금융계, 정부 등에서 최고로 꼽히는 경제학자들을 모아 답변을 정리하여 여왕에게 전달했다. 그들은 “경제학자들 개개인은 유능했지만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했다.

영국 등 세계적으로 유능한 사람들이 집단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시스템 전체에 끼치는 리스크를 이해해야 했는데 실패했다.”고 반성했다. 집단적 상상력이라는 그동안 경제학의 주류에서는 낄 자리도 없던 단어를 조합해서 만든 이 답변은 결국 영국 경제학계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들이 모였는데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자신들도 잘 모르겠다고 인정한 셈이다.

사실 지난 30여 년 동안 많은 경제학자들이 위기를 불러오는 환경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금융규제 철폐, 무제한 단기 이윤 추구와 주주 이익 극대화, 고용 불안, 부자 감세, 양극화 심화, 시장 만능과 국가 통제력 약화, 탈산업화 현상들에 대한 이론적 정당화를 해준 것이 그들이다.

이들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이 지난 30년 간 한 일은 스스로 고백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어리석은 판단을 한 것 정도가 아니라 세계 경제와 대다수 사람들의 삶에 큰 해악을 끼쳤다. 구체적으로 1982년 제3세계 채무 위기, 1995년 멕시코 위기,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1998년 러시아 위기,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까지 크고 작은 수십 개의 금융위기에 이들의 책임이 있다.

2008년 가을 세계 경제를 1929년의 대공황 같은 총체적 붕괴에서 구해낸 것은 케인스, 찰스 킨들버거, 하이먼 민스크 등의 경제학이다. 정부 지출을 늘리고 예금 보험을 강화하고 복지 정책을 확대하고 대규모의 유동성을 금융시장에 쏟아 부은 덕분이다. 이 대책들의 대부분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이 한사코 반대해 왔던 정책들이다.

장하준은 지유시장 경제학자들이 믿고 주장해 왔던 신화들을 하나하나 깨부순다. 그는 역사적으로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없다고 단언한다. 우리가 규제라고 느끼는 것은 그 이면에 있는 도덕적 가치를 수긍하지 않을 때이다. 어떤 시장에도 사고 팔 수 있는 대상,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주체, 거래의 조건, 이민 정책 등  규제가 있다. 시장은 오직 정치적으로 정의될 뿐이다.

장하준은 기업이 소유자인 주주들의 이익만을 위해 경영하면 안 되는 이유, 나라마다 임금 격차가 수십 배 까지 벌어지는 배경, 자유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가 하나도 없었던 현실, 탈산업화 사회와 지식기반 경제라는 헛된 신화, 정보화와 세계화에 대한 지나친 과장, 정부 역할의 중요성,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드는 정책과 트리클 다운 논리의 허구성, 경영자들의 과잉 보수의 문제점, 금융시장 규제의 필요성, 인간 합리성의 한계, 경제의 불확실성, 교육이 생산성 향상에 별 효용이 없는 근거 등에 대해 방대한 자료와 통계를 제시하며 입증해 나간다.  

장하준의 주요 타겟은 자유시장주의자들의 판단과 정책들이지만,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에 감염되어 제 3의 길, 사회투자국가등을 추진했던 영국 노동당이나 미국 민주당 등의 진보파들의 정책적 오류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장하준은 책의 결론으로 세계경제를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위한 8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더 잘 규제된 자본주의, 인간의 합리성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시스템, 이윤 동기 뿐 아니라 연대와 신뢰를 장려하는 시스템 설계, 기회의 평등 뿐 아니라 어느정도 결과의 평등도 보장하여 진정으로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사회, 탈산업화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제조업을 중시하는 것, 금융과 실물 부분의 균형, 복지 확대 등 더 크고 적극적인 정부,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배려 등이다.

인간의 비합리성, 경제의 불확실성, 정부 역할의 중요성 등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장하준은 진정한 케인wm주의의 계승자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는 2008년 경제 위기가 세계 경제의 완전 붕괴로 이어지는 것을 겨우 막아낸 상황이며 지속적인 경기 회복이 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금융개혁은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정 및 통화를 완화한 결과 새로운 거품이 일어나고 있고, 실물 부문의 돈줄은 막혀 있다. 이 거품이 터지면 세계 경제는 다시 불황으로 들어가는 더블딥 현상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번 G20회의에서도 드러났지만 각국의 정부들은 금융시장 규제 방안이나 환율 문제, 기축통화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의 차이가 크다. G20회의의 효용성 자체에 대한 의문도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해법을 위해서는 먼저 상황 파악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그동안 각국에서 추진했던 경제정책들의 공과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장하준의 책이 빛나는 지점이다. 영국 가디언지가 영국의 노동당 당수에게 장하준을 만나보라고 권한 것처럼  경제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장하준의 주장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현재 이명박정부는 부자감세 등 자유시장주의자들의 생각을 답습하고 있다. 과거 참여정부 역시 잘 봐주면 사회투자국가 정도의 인식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했다고 보인다.

장하준의 견해에 비추어 보면 이명박정부는 완전히 배를 산으로 끌고 가고 있는 중이고, 민주당 역시 안일하고 부정확한 인식과 정책을 가지고 있다. 위기를 넘어 새로운 경제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경제도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 해야만 하는데 이를 끌고 나갈 새로운 가치관으로 무장한 새로운 정치가 출현해야 가능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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