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 - 미국 수정헌법 1조의 역사
앤서니 루이스 지음, 박지웅.이지은 옮김 / 간장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미국 수정헌법 1조 이야기

법체계는 보통 영미식 보통법 체계와 유럽식 대륙법 체계로 나눈다. 대륙법은 1804년의 나폴레옹 법전이 대표적이듯 판사들의 자율성을 최소화하고 모든 법을 문서로 엄격히 규정해 놓는다. 구지배질서에서 교육받은 판사들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고, 법의 입인 판사들이 법전에 따라 판단한다. 하지만 보통법 체계는 배심재판제도가 핵심이고 법전 보다는 판례가 중요하다. 진실의 판정을 내리는 주체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다. 판사는 재판을 주재하고 배심원들의 올바른 판단을 돕고 이 판단에 비추어 형량을 정할 뿐이다.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도 법전보다는 과거부터 축적되어 온 판결문들이다. 우리나라는 대륙법체계이지만 최근 국민참여재판을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등 새로운 사법체계에 대한 실험을 시작하고 있다.

이 책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는 부제로 붙인 미국 수정헌법 1조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국 수정헌법 1조는 다음과 같다. “의회는 국교를 설립하거나 종교의 자유로운 실천을 금지하는, 그리고 의사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 또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회동할 수 있는 권리와 불만사항의 시정을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그 어떤 법도 만들 수 없다.” 시민의 자유에 대한 대단한 선언이다. 하지만 1791년에 제정된 수정헌법 1조가 처음부터 잘 작동된 것은 당근 아니다. 불과 7년 후에 대통령을 조롱한 사람들이 투옥 되었고, 1세기 후 조차도 윌슨 대통령의 정책 결정을 비판한 사람들에게 징역 20년이 선고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신장되어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수정헌법 1조에 대한 시민과 판사들의 인식이 지속적으로 아니 거의 극적으로 변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수정헌법 1조를 둘러싼 대표적인 사건들과 대중들의 생각 그리고 판사 특히 대법관들의 판결문들이 어떻게 달라져 왔는가에 대한 보고서이다. 민주주의, 자유, 평등 같은 가치들은 결코 명문화된 헌법이나 약속만으로는 지켜질 수 없고 다수 국민과 지식인들의 직접적이고 끈질긴 노력에 의해서만 만들어져 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는 책이다.

이 책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는 특히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 집중하여 보통법 체계인 미국에서 수정헌법 1조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연방대법원 대법관들의 판결문을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다. 대법관들이 법적으로 보장받는 권한을 배경으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 시대를 한발짝 앞서가는 판단을 내리고 이것을 우직스럽게 지켜나가는 과정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나치 옹호나 이슬람 극단주의 같은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들에 대한 표현의 자유가 어느 정도까지 보장되어야 할지 어떤 지점(예컨대 폭력 호소 같은)에서는 제한되어야 하는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물론 언론의 면책 특권을 어느 정도까지 보장 할 지 개인의 사생활 보호라는 가치와의 대립은 어떻게 조정할 지 많은 의문들은 남는다. 더구나 9.11 테러 이후 미국 언론들이 보여 준 권력에 순종적인 태도는 역사가 거꾸로 갈 수도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여전히 국가보안법 등 사상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고, 국가의 경제 정책을 비판하는 네티즌이 기소되고, 피디수첩 사건처럼 국가 정책을 비판하는 언론인을 개인 이메일을 뒤지면서까지 기소하는 우리나라의 저급한 현실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준다. 번역자 중 한 사람은 군에서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문제를 제기하다 강제로 군복을 벗게 된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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