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메이킹북스 편집부 옮김 / 메이킹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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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함 속에서 드러나는 마음의 무늬

오만과 편견을 읽고 / 제인 오스틴 지음

메이킹북스 출판 (도서협찬)

 

 

이 책을 읽다 보면, 큰 사건 하나 없이도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소리 없이 요동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번역의 결이 부드러워서인지, 인물들의 일상적인 대화조차 물살처럼 잔잔하게 이어진다. 그런데 그 잔잔함 속에 인간의 허영, 욕망, 자존심, 그리고 사랑이 아주 정직하게 드러난다. 얕은 소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속내를 깊이 건드리는 순간들이 숨어 있다.

 

초반쯤의 베넷 부부의 결은 특히 인상 깊었다. 베넷 씨는 냉소와 재치가 뒤섞인 인물이지만, 그의 아내는 20년이 넘는 결혼 생활 동안 정작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단순한 성격의 충돌 같지만, 그 뒤엔 서로를 읽는 데 실패한 세월이 곶감처럼 말라붙어 있다. 오스틴은 이 오래된 단절을 거창하게 부풀리지 않고, 담담한 필치로 그려낸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씁쓸하게 다가온다.

 

그와 대비되듯, 베넷 부인의 질투와 두려움은 종종 우스꽝스럽지만 한편으론 애처롭다. 딸들의 미래에 매달리는 모습, 재산권과 상속 앞에서 조바심을 내는 행동들이 속물처럼 비칠 때도 있지만, 그 불안의 근원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현실적 걱정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쉽게 웃어넘기지 못한다. 오스틴은 인물의 허점을 드러내면서도 잔혹하게 내몰지 않는다. 그 적당한 거리감이 소설 전체의 품위를 지탱하는 듯했다.

 

또 하나 재미있었던 지점은 신중함과 속물근성의 경계에 대한 대사였다. 그 선을 어디서 긋느냐의 질문은 결국 이 작품의 주제와 맞닿을 듯하다. 사랑이란 감정 속에도 경제적 판단이 스며들고, 도덕과 욕망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현실을 오스틴은 웃음기 어린 문체로 가볍게 건드린다. 하지만 그 가벼움은 생각보다 묵직하게 남는다.

 

무엇보다 마음에 남은 건 다아시의 변화였다. 엘리자베스를 위해 굴욕과 희생을 감수하는 장면은 화려한 고백보다 더 깊은 울림이 있었다. 이미 거절당한 여자 때문에 자존심을 내려놓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는 조용히 그것을 해낸다. 엘리자베스가 그제야 자신의 무례함을 돌아보고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을 동시에 느끼는 부분은, 인간이 성장하는 방식이 얼마나 복합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천천히 깨닫는 그 여정이 이 소설의 진짜 힘이다.

 

<오만과 편견>은 극적인 사건이 없는 것 같지만, 그 잔잔함 속에서 사람은 조금씩 보이고 조금씩 변한다. 오스틴의 문장은 대단한 파도를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서서히 마음을 잠식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읽는 동안 제일 많이 떠올랐던 말은 이야기의 뿌리는 늘 우리의 일상에서 생겨난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이었다. 이 소설은 그 사실을 가장 단정하고 우아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베넷 씨는 재치와 냉소적 유머, 속 깊은 침묵과 변덕이 기묘하게 섞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스물세 해의 결혼 생활 동안 그의 아내는 그의 속마음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의 성격은 훨씬 단순했다. 그녀는 이해력이 짧고, 지식이 부족한 데다 변덕이 심했으며,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기면 곧잘 신경병한자인체했다. 그녀에게 가장 큰 과업은 딸들을 결혼시키는 것이었으며, 유일한 위안은 이웃을 방문하고 새로운 소문을 전해 든는 일이었다.” p10

 

베넷 부인은 정말 불쌍해 보일 정도였다. 약혼 소식이 나올 때마다 신경질을 부렸고, 샬럿의 모습은 눈엣가시였다. 롱본의 새 안주인으로 여겨지는 그녀가 질투스럽고 밉살스러웠던 것이다. 샬럿이 집에 와서 콜린스 씨와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순간마다, 베넷 부인은 그들이 롱본 영지를 이야기하며, 베넷 씨가 죽으면 자신과 딸들을 내쫓을 궁리를 한다고 확신했다.” 116

 

“‘숙모, 결혼할 때 신중함과 속물근성 사이에 뭐가 그리 큰 차이가 있겠어요? 어디서 신중함이 끝나고 탐욕이 시작되는 걸까요? 지난 성탄절에는 제가 돈이 없어서 위컴 씨와 결혼하면 무모하다고 걱정하시더니, 이젠 1만 파운드를 가진 아가씨에게 마음을 두었다고 속물이라고 하시네요.’”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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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5분 호르몬 혁명 - 우리 몸의 관제탑, 호르몬 관리로 10년 젊어지는 루틴
안철우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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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이라는 보호막, 내 몸의 균형 회복 프로젝트

하루 15분 호르몬 혁명을 읽고 / 안철우 지음

한스미디어 출판 (도서협찬)

 

호르몬을 단순한 생리학적 요소가 아니라 삶의 질을 조율하는 지휘자로 바라보는 시선이 이 책의 힘이다. 작가는 건강이 재산이라는 흔히 들어봤던 말에서 건강을 재테크에 빗대어 호테크라는 표현을 했는데, 이 표현이 재미있으면서 이해하기 쉽게 다가왔다. 건강은 투자이며, 꾸준한 관리 없이는 결코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차갑게, 그러나 친절하게 일깨운다.

 

핵심을 세 가지로 응축해봤다.

첫째, 호르몬은 노화와 항상성의 축이라는 점이다. 멜라토닌을 비롯해 인슐린, 코르티솔, 성장호르몬 등 우리의 하루와 수십 년의 노화를 조율하는 물질들이 사소한 기복에도 흔들린다. 생체시계가 어긋나면 몸과 마음에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이 반복되면 가속노화가 온다는 메시지는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온다.

 

둘째, 대사 건강의 본질은 결국 호르몬 균형이라는 점이다. 당뇨, 갑상선질환, 고지혈증 같은 흔한 진료명들이 사실은 호르몬 불균형의 후폭풍이라는 설명이 선명하다. 탄수화물 과잉이 인슐린을 자극하고, 내장지방이 염증 물질을 뿜어내며 혈관을 공격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복부 지방을 키운다는 구조는 복잡해 보이지만 책은 이를 실제 사례처럼 쉽게 풀어낸다. 의학 용어도 줄줄 나오지만 어렵지 않게 읽히고 이해된다.

 

셋째, 습관이 호르몬을 만든다는 결론이다. 독서를 하면 옥시토신이 흐르고, 근육이 줄면 기초대사가 떨어지고, 단 음식을 먹으면 도파민이 쏟아져 다음 행동을 결정한다. 결국 우리 몸은 매일의 작은 행동을 즉각적으로 화학적 신호로 번역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하루 15분의 움직임, 올바른 식단, 적절한 수면이라는 평범한 처방이 평범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과학을 어렵지 않게 풀어낸 실용서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다. 호르몬이라는 보이지 않는 보호막을 조율하는 일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돌보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근본적인 태도임을 일깨운다.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 앞에서도, 병원 수치를 대하는 순간에도, 우리 몸은 생각보다 정직하고 생각보다 시적이다. 그래서 이 책은 건강 관리라는 딱딱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따뜻한 울림을 남긴다.

 

멜라토닌이 잠을 유도할 뿐만 아니라 인체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강력한 항산화 작용으로 젊음을 유지하며, 치매 등 정신건강을 지키는 데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p25

 

호르몬 불균형은 미병을 불러오는 대표적 원인이다. 후천적 당뇨병이라고 하는 제2 당뇨병은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과 인슐린에 대한 민감도가 줄어들어 발생한다. 인슐린과 함께 코르티솔, 갑상선호르몬 등의 분비에 이상이 생기면 고지혈증까지 동반될 수 있다. ~ 쉽게 피로를 느끼고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거나 감정 변화가 나타날 때,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피부가 푸석해져 더 나이 들어 보일 때는 몸이 보내는 위험 신호가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한다.” p35

 

동맥과 정맥, 모세혈관은 그야말로 생명의 통로다. 몸 구석구석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노페물을 운반한다. 혈관이 노화되어 산소와 영양분을 제때 공급하지 못하면 혈관과 연결된 모든 장기의 노화가 빨라지고, 결국 생명에도 위협을 받는다.”

음식으로 섭취한 탄수화물을 포도당으로 분해해 에너지로 사용한다. 남은 포도당은 인슐린의 도움을 받아 간과 근육에 보관한다. 그런데 인슐린이 제대로 분비되지 못하거나, 인슐린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지면 여분의 포도당이 간과 근육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혈액 속을 떠돌게 된다. 이처럼 혈중 포도당이 과도하게 쌓여있는 상태가 당뇨병이다.”p45

 

생체 시계가 틀어지는 가장 흔한 원인이 노화라는 사실이다. 호르몬 감소가 노화를 촉진하고, ~ 생명의 유지와 노화의 방어를 위해 호르몬이라는 보호막을 오래도록 잘 유지해야 한다.” p72

 

도파민은 인체의 움직임과 팔다리의 의식적인 운동에 관여한다. 나이가 들어 도파민의 신경세포가 파괴되고 신호 전달이 끊기면 근육이 경직되고 팔다리의 움직임이 둔화된다. 잘못하면 온몸이 마비될 수도 있다. 파킨슨병은 도파민 부족에 의해 발병하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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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왜 말을 그렇게밖에 못할까 로버트 볼튼 인간관계 수업 2
로버트 볼튼 지음, 박미연 옮김 / 트로이목마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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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존중하며 나를 지키는 말하기, 진정성과 공감으로

그 사람은 왜 말을 그렇게밖에 못할까를 읽고 / 로버트 볼튼 지음 / 박미연 옮김

트로이목마 (도서협찬)

타인의 사적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나의 영역도 지키고 원하는 것을 얻는 말하기 기술!

 

이 책은 관계 속에서 타인의 사적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말하기의 기술을 탐구한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면서도 이를 관계형 자기주장으로 착각한다고 지적하며, 가치관 강요가 관계와 자아를 해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또한 회피나 부정, 순응적 태도는 단기적으로 갈등을 피하는 듯 보여도 결국 관계를 악화시키고 양쪽 모두 상처를 입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특히 사랑과 존중은 가까이 있음에도 거리와 경계를 유지하며, 상대의 본래 모습을 존중하는 성스러운 두려움을 동반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의사소통의 기술은 진정성, 배려, 공감 없이는 의미를 갖기 어렵고, 이러한 태도를 통해 우리는 더 나은 관계와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다. 이 책은 말과 관계의 본질을 성찰하게 하며, 인간관계에서 실질적 변화를 모색하는 이들에게 실용적 지침을 제공한다.

 

그 사람은 왜 말을 그렇게밖에 못할까는 인간관계에서 말과 경계의 미묘함을 섬세하게 조명한다. 볼튼은 많은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사적 영역을 침범하면서 이를 관계형 자기주장으로 오해한다고 지적한다. 회피나 부정, 순응적 태도 역시 순간의 갈등 회피로 보이지만, 결국 양쪽 모두를 지치게 하고 관계를 훼손한다는 사실을 경고한다. 그는 사랑과 존중의 핵심을 가까이 있으면서도 거리를 지키는 공경으로 정의하며, 상대의 본래 모습에 대한 깊은 존중, 성스러운 두려움을 강조한다. 또한 기술적 의사소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진정성과 배려, 공감이 더해질 때 비로소 관계가 성장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 책은 단순한 말하기 지침을 넘어, 인간의 마음과 관계를 이해하고,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길로 안내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의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그것을 관계형 자기주장 메시지로 착각하고 있다. 관계형 자지주장과 가치관 강요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있다. 다른 사람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도 있지만,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자기 자식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것은 타인의 사적인 공간을 침해하는 것이고 정신적으로 공격하는 행위이다. ~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은 상대방의 자아 또는 두 사람의 관계를 해칠 가능성이 크다.” p114

 

회피의 역설은 사람들이 종종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회피는 결국 관계를 악화시키고, 더욱 깊은 고립을 초래한다.” p199

 

평소에 주로 순응적인 사람들조차도 권위를 갖게 되면 갈등 상황에서 자신의 해결책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p200

 

한 사람이 이기면 다른 사람은 지는 것이다. 부정하기와 회피하기도 이기고 지는 방식이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나 뒤로 물러나는 것은 지는 것이다. 자신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3가지 대응 방식은 양쪽이 다 지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양 당사자가 모두 뭔가를 잃고 관계 자체도 훼손되기 때문이다.” p202

 

사랑은 공경이다. 사랑은 가까워지면서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원래의 모습으로 남아 있기를 바랄 뿐, 공경하는 사랑은 상대방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은 기쁨과 경이로움을 위해서이다. 그런 사랑에는 모두 성스러운 두려움이라는 요소가 존재하는데, 나와 다름에 대한 깊은 존중, 그리고 그의 본래의 모습을 헤치지 않으려는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p246

 

의사소통 기술이 아무리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다 하더라도, 진정성과 배려, 이해를 대체할 수는 없다. ~ 더욱 진실되고, 사랑으로 가득하며, 공감하면서 소통할수록, 우리는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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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실 - 완벽이란 이름 아래 사라진 나에 대한 기록
송혜승 지음, 고정아 옮김 / 디플롯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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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욕망 아래 길들여진 나,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내적 투쟁

도실 DOCILE을 읽고 / 송혜승 지음 고정아 옮김

디플롯 (도서협찬)

완벽이란 이름 아래 사라진 나에 대한 기록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그들에게 칼을 꽂는 일처럼 느껴졌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사랑받기 위해 순종해야 했던 어린 는 결국 자신의 내장을 쏟아내듯 텅 비워진 존재가 된다. 엄마의 기대와 완벽의 잣대 아래, 그녀는 행복은 성취한 게 없는 자들의 도피처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났다. 그 말은 한 인간의 존재를 부정하는 명령이었다.

 

<도실>은 그 명령에서 천천히 걸어나오는 기록이다. 부서진 접시, 빨간 국물 자국, 파괴의 흔적 속에서도 작가는 스스로를 치유하는 길을 찾는다. “우리는 남아서 치우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던 소녀는 이제, 자기 안의 파괴된 방을 정리하며 다시 살아나는 중이다.

이 책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그 상처로부터 어떻게 주체로 서는가를 묻는다. ‘도실’, 순종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는 아이러니하게도 순종을 거부하는 이야기의 이름이 된다. 완벽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진 를 다시 불러내는 이 기록은,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의 목소리로 살아왔는가.

 

 

나는 파괴의 현장을 둘러보았다. 어울리지 않게 차분한 튤립 무늬가 빛나는 부엌에서 식당으로 가는 빛줄기가 들어와 모든 것을 환히 비추었다. 부서진 코렐 접시, 한국 음식의 빨간 국물로 수천 개 상처 같은 얼룩이 찍힌 하얀 카펫, 죽은 듯 쓰러져 있는 의자, 나는 식당 바닥에 앉아 세상을 생각했다. 우리는 파괴하지 말고 건설해야 한다고, 누군가 부수면 다른 사람이 치워야 한다고. 우리는 남아서 치우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P31

 

나는 낯선 상담사가 내 인생의 중대한 실존적 문제를 이해해주기 바라며 절박하게 물었다. ‘저도 행복할 자격이 있지 않나요?‘ 하지만 엄마가 먼저 끼어들었다. ’행복은 성취한 게 없는 자들의 도피처야.‘ 나는 엄마의 얼굴에 붙은 그 승리감을 떼어내고 싶었다. 그 결연함을 흔들고 싶었다. 우리가 평생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P123

 

“’너는 열아홉 살이야! 열아홉 살짜리가 무슨 힘이 있어!’ 그건 내 감정의 정당성도, 그 감정이 내 것이라는 소유권도 빼앗아가는 말이었다. 나는 엄마의 인형이고, 엄마가 나를 뒤집어서 내 안에 있는 걸 전부 비워내는 것 같았다. 내 머리가 공중에서 열리고 내장이 싸구려 구슬들처럼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나는 텅 비워졌고 그 안을 채우는 건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똑똑했지만 언제나 보고 싶은 것만 보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해서 상대도 스스로를 미쳤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상대는 자기도 모르는 새 스스로 의혹의 밧줄에 휘감겼다. 내가 힘과 의지를 지닌 성인이라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았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p171

 

내게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그들에게 칼을 꽂는 것 같은 배신으로 느껴졌고 나는 살인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p245

 

내 속에 분노가 화르르 일었다. 나는 항상 엄마와 중간에서 만나는 게 아니라 엄마의 위치로 가서 엄마의 언어로 이야기해야 했다. ~ 나는 손을 덜 덜 떨며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갑작스러운 고요 속에 엄마의 목소리가 윙윙 울렸다. 엄마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했다. 엄마 자신이 나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엄마가 그 노숙자였다.” p260

 

내가 텍사스에서 아웃사이더로 자랐다고 말했다. 밖에서는 인종차별의 대상이었고, 집에서는 목소리 없는 진흙 인형으로 살면서 생존하고 성공하려고 애를 썼다고. ‘성취를 이룰 때마다 보이지 않는 반대급부가 있었어요. 프린스턴대에 가면서 한 번, 하버드대에 오면서 또 한 번 나 자신의 조각을 내주어야 했어요. 엄마는 제가 이런 병도, 인생에 대한 불안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해요. 엄마는 저를 사랑하지만 제가 원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엄마는 저를 당신처럼 만들고 싶어하고, 특정 조건에서만 사랑하거든요. 이런 여러 가지 일들로 제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돼서 궁극적 자기 삭제 행위인 자살을 시도하게 되었어요.”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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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의자 -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정도언 지음 / 지와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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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다스린다는 건, 나를 이해하고 진짜 대화를 배우는 일

프로이트의 의자를 읽고 / 정신분석가 정도언 지음

지와인 출판 (도서협찬)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분노에 대한 문장을 읽으며 오래 묵은 감정이 일었다. 화가 치밀어오를 때마다 나는 늘 상대를 탓했지만, 그 밑바닥엔 상처받은 자존감이 웅크려 있었다. 저자는 분노를 억누르거나 터뜨리는 대신, ‘우리 안의 호랑이를 달래듯 다루라 한다. 내 안의 화를 이해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나를 삼키지 못한다.

결국 분노의 해답은 소통에 있다. 대화를 나눈다면서도 서로의 말을 듣지 않는 현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쉽게 내뱉는 날 선 말들. 저자는 그것이 통보일 뿐이라고 말한다. 진짜 소통은 듣는 일에서 시작되고, 고독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 책은 관계에 지친 마음들에게, 먼저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하라고 조용히 권한다

 

이 책은 관계에 지친 우리에게 묻는다.

분노는 진짜로 타인을 향한 것인가, 아니면 이해받지 못한 나 자신을 향한 외침인가.

결국 소통이란 타인을 이해하려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의 언어를 해독하는 일이다.

우리가 자신과의 대화를 회복할 때, 세상과의 대화도 비로소 다시 시작된다.

분노를 다스리는 일은 결국 나를 돌보는 일이다.

조용히 내면을 어루만질 때, 관계도 서서히 숨을 고른다.

 

 

마음은 마치 순두부 같습니다. 조금만 건드려도 흔들리고 쉽게 뭉그러집니다. 그리고 그 상처가 오래 남습니다. 이렇게 여린 마음을 잘 보호하기 위해 누구나 마음의 경호실을 가지고 있습니다. ~ 방어기제는 두렵거나 불쾌한 정황이나 욕구 불만에 직면하였을 때 스스로를 방어가히 위하여 자동적으로 취하는 적응 행위를 말합니다. .” p55

 

내 안의 분노가 호랑이라면 우리에서 뛰쳐나온 호랑이를 일단 달래서 그 안으로 다시 넣는다고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상상합니다. 그 후에 우리 안에서 호랑이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이어가십시오. 그것이 안전하게 분노를 내 안으로 끌어안는 방법입니다. 분노 역시 내가 만들어낸 내 마음의 자식입니다.” p137

 

분노는 판단력을 흐리게 합니다. ~ 적대감이라고 하는 아주 성능 좋은 필터가 마음에 생겨서 좋은 뜻의 말을 걸러내거나 왜곡해서 나쁜 뜻으로 듣게 합니다. ~ 분노는 봉합되지 않은 자기애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진물입니다. 상대가 나의 가치에 상처를 주면 분노를 통해 자기애를 지켜나가려 합니다. 자기애란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자 나의 가치에 대한 나의 사랑입니다.” p140

 

마음이 아플 때는 자신의 무의식 속에 있는 애착 관계를 되짚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린아이처럼 변하는 자신을 차분히 바라봐줄 수 있다면 일시적인 퇴행을 겪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헤어진 그 사람에게서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인가요? 사랑 아니면 애착?” p188

 

진짜 소통은 상대의 말을 내가, 내 말을 상대가 잘 들어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언뜻 대화를 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상대방 말은 듣지 않고 내 말만 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것은 소통이 아니고 통보입니다. 대화가 없으면 외로움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 고독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은 고독을 통해서 자랍니다. 세상 일이 모두 즐겁고 남들과 어울리는 것으로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면 고독은 진정으로 병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면세계를 통합하고 정리하기 위해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p190

 

가까운 사이일수록 아무렇게나 편하게 말해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가까울수록 더 크게 말의 상처를 받습니다. 가까운 사이의 거친 말은 칼이나 송곳이 되어 상대의 가슴에 당장 꽂힙니다. 그리고 잘 낫지 않습니다. 내가 그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단정 짓지 마세요. 그가 나를 아주 잘 이해한다고도 믿지 마세요. 꼭 그렇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가까울수록 상대를 객관적으로 보기보다는 감정을 개입시켜 환상 속에서 봅니다. 환상 속의 나와 너, 너와 나 사이에는 말 한마디에 이해가 아니고 서로 오해를 할 소지가 커집니다.”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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