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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실 - 완벽이란 이름 아래 사라진 나에 대한 기록
송혜승 지음, 고정아 옮김 / 디플롯 / 2025년 10월
평점 :

부모의 욕망 아래 길들여진 나,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내적 투쟁
도실 DOCILE을 읽고 / 송혜승 지음 고정아 옮김
디플롯 (도서협찬)
완벽이란 이름 아래 사라진 나에 대한 기록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그들에게 칼을 꽂는 일처럼 느껴졌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사랑받기 위해 순종해야 했던 어린 ‘나’는 결국 자신의 내장을 쏟아내듯 텅 비워진 존재가 된다. 엄마의 기대와 완벽의 잣대 아래, 그녀는 “행복은 성취한 게 없는 자들의 도피처”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났다. 그 말은 한 인간의 존재를 부정하는 명령이었다.
<도실>은 그 명령에서 천천히 걸어나오는 기록이다. 부서진 접시, 빨간 국물 자국, 파괴의 흔적 속에서도 작가는 스스로를 치유하는 길을 찾는다. “우리는 남아서 치우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던 소녀는 이제, 자기 안의 파괴된 방을 정리하며 다시 살아나는 중이다.
이 책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그 상처로부터 어떻게 주체로 서는가를 묻는다. ‘도실’, 순종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는 아이러니하게도 순종을 거부하는 이야기의 이름이 된다. 완벽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진 ‘나’를 다시 불러내는 이 기록은,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의 목소리로 살아왔는가.
“나는 파괴의 현장을 둘러보았다. 어울리지 않게 차분한 튤립 무늬가 빛나는 부엌에서 식당으로 가는 빛줄기가 들어와 모든 것을 환히 비추었다. 부서진 코렐 접시, 한국 음식의 빨간 국물로 수천 개 상처 같은 얼룩이 찍힌 하얀 카펫, 죽은 듯 쓰러져 있는 의자, 나는 식당 바닥에 앉아 세상을 생각했다. 우리는 파괴하지 말고 건설해야 한다고, 누군가 부수면 다른 사람이 치워야 한다고. 우리는 남아서 치우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P31
“나는 낯선 상담사가 내 인생의 중대한 실존적 문제를 이해해주기 바라며 절박하게 물었다. ‘저도 행복할 자격이 있지 않나요?‘ 하지만 엄마가 먼저 끼어들었다. ’행복은 성취한 게 없는 자들의 도피처야.‘ 나는 엄마의 얼굴에 붙은 그 승리감을 떼어내고 싶었다. 그 결연함을 흔들고 싶었다. 우리가 평생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P123
“’너는 열아홉 살이야! 열아홉 살짜리가 무슨 힘이 있어!’ 그건 내 감정의 정당성도, 그 감정이 내 것이라는 소유권도 빼앗아가는 말이었다. 나는 엄마의 인형이고, 엄마가 나를 뒤집어서 내 안에 있는 걸 전부 비워내는 것 같았다. 내 머리가 공중에서 열리고 내장이 싸구려 구슬들처럼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나는 텅 비워졌고 그 안을 채우는 건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똑똑했지만 언제나 보고 싶은 것만 보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해서 상대도 스스로를 미쳤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상대는 자기도 모르는 새 스스로 의혹의 밧줄에 휘감겼다. 내가 힘과 의지를 지닌 성인이라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았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p171
“내게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그들에게 칼을 꽂는 것 같은 배신으로 느껴졌고 나는 살인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p245
“내 속에 분노가 화르르 일었다. 나는 항상 엄마와 중간에서 만나는 게 아니라 엄마의 위치로 가서 엄마의 언어로 이야기해야 했다. ~ 나는 손을 덜 덜 떨며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갑작스러운 고요 속에 엄마의 목소리가 윙윙 울렸다. 엄마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했다. 엄마 자신이 나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엄마가 그 노숙자였다.” p260
“내가 텍사스에서 아웃사이더로 자랐다고 말했다. 밖에서는 인종차별의 대상이었고, 집에서는 목소리 없는 진흙 인형으로 살면서 생존하고 성공하려고 애를 썼다고. ‘성취를 이룰 때마다 보이지 않는 반대급부가 있었어요. 프린스턴대에 가면서 한 번, 하버드대에 오면서 또 한 번 나 자신의 조각을 내주어야 했어요. 엄마는 제가 이런 병도, 인생에 대한 불안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해요. 엄마는 저를 사랑하지만 제가 원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엄마는 저를 당신처럼 만들고 싶어하고, 특정 조건에서만 사랑하거든요. 이런 여러 가지 일들로 제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돼서 궁극적 자기 삭제 행위인 자살을 시도하게 되었어요.”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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