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황제
셀마 라겔뢰프 지음, 안종현 옮김 / 다반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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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랑의 품격과 기다림으로 버티는 집

포르투갈 황제를 읽고 / 셀마 라겔뢰프 소설 / 안종현 옮김

다반 (도서협찬)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작가란 글귀가 눈에 띄어서 무조건 읽어보고 싶었고 선택했던 책이다. 처음 읽을 때는 약간의 실망을 느꼈지만, 두 번째 읽을 때는 달랐다. 문장 사이에 배어 있던 슬픔과 체념, 그리고 가난한 삶의 숨결이 가슴 가까이 다가왔다. 오래된 서사가 품은 인간의 정직한 감정이, 시간이 지나고 또 책을 다시 읽으면서 비로소 와닿기 시작한 것이다.

 

얀의 삶은 늘 젖어 있었다. 허술한 헛간, 새는 지붕, 고된 품팔이의 나날 속에서도 그는 오두막 하나에 모든 희망을 걸었다. 그 초라한 집은 그에게 생의 전부였다. 가난한 사람에게 집은 단순한 거처가 아니라 존재의 근거이며, 인간으로서 마지막 존엄을 지키는 울타리였다. 시대가 달라져도 이 감각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의 세상에서도 집은 여전히 인간의 삶을 결정한다. 얀의 오두막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의 심장은 딸 클라라가 태어날 때 처음으로 뛰었고, 그 아이가 떠난 뒤로는 다시 고요해졌다. 얀은 딸을 기다리며 살아 있었고, 죽어서도 그리움 속에 머물렀다. 그에게 그리움은 고통이 아니라 생의 이유였다. 오직 그 마음 하나로 세상과 이어졌고, 그 사랑이 멈추는 순간 그는 이미 세상 밖의 존재가 되었다.

 

클라라가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가는 동안, 아버지는 세상을 등지고 남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끝없이 걸었지만, 끝내 닿지 못했다. 그 비극적인 거리감 속에서 라겔뢰프는 사랑의 본질을 드러낸다. 부모가 자식을 향한 마음과 자식이 부모를 이해하게 되는 마음은 시차를 두고 만난다. 그 공백이 바로 인간의 성장이며, 삶이 감당해야 할 고독이다.

이 작품은 결국 가난과 사랑, 그리고 기다림과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다. 라겔뢰프는 고단한 생의 밑바닥에서조차 품격을 잃지 않는 인간을 그려낸다.

 

가난도 상실도 세월 속에서 모양을 바꿀 뿐 사라지지 않는다. 라겔뢰프의 세계는 낡은 이야기 같지만, 실은 지금 우리의 이야기다. 견디고 버티는 일, 그것이 인간이 가진 마지막 품격이다. 그리고 그 품격은 사랑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그 순간, 무엇이 그의 심장을 이렇게 요란스럽게 뛰게 만들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얀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았다. 이제야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슬픈 일이 일어나도, 기쁜 일이 생기는 순간에도 자신의 뛰는 심장을 느껴 본 적이 있었던가? 그건 진정한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p22

 

숲에서 발생한 사고로 에릭이 세상을 떠난 뒤, 라스는 자신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얀이 이젠 너무 늙어서 지나가는 하루 품삯을 온전히 쳐주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식의 지나가는 말을 툭툭 던지곤 했다.” p107

 

가난한 사람에게서 오두막을 빼앗는 건, 모든 걸 빼앗는 것과 다름이 없어요. 카트리나가 탄식했다. ~ 하지만 이런 집이라도 없어진다면, 더 이상 인간처럼 살 수가 없어요.” p111

 

얀은 갑자기 아무런 슬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현재의 그는 18년 전의 자신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떠한 기쁨도 슬픔도 느낄 수 없었다. 고장 난 시계처럼 그의 심장은 멈추었다.” p120

 

그 순간, 얀은 깨달았다. 이제 아무런 보호막도 방어력도 그에게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순식간에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찾아왔고, 순식간에 사무치는 그리움이 거세게 밀려왔다.” p124

 

그는 멀어져 가는 배 위에 서 있는 클라라를 그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 지치고 늙은 얼굴에는 지금 그가 느끼는 깊은 절망과 통환의 아픔을 모두 담아낼 수 없었다.” p312

 

주변 어둠 속에 스며들어 그녀를 노리는 자들을? 그것은 바로 오만과 냉혹함이자, 탐욕과 욕망이야, 포르투갈 제국에서 여황이 끝없이 싸워야 할 존재들이지. ~ 클라라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무언가 그녀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고 있었지만, 그 요동치는 감정들을 억눌러야만 했다. 소용돌이치는 이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이 조금이라도 몸 밖으로 새어 나온다면, 그녀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 것만 같았다.”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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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곁의 한국 정원 - 철학, 문화, 역사가 수놓인 우리 정원 이야기
신지선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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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공간의 철학, 정원에 머무는 자연의 미

당신 곁의 한국 정원을 읽고 / 신지선 지음

수오서재 (도서협찬)

철학, 문화, 역사가 수놓인 우리 정원 이야기

서양의 정원은 인간이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었다. 외부의 진리를 찾아 나선 철학처럼, 그들은 자연을 통제하고 다듬어 절대적 조화를 이루려 했다. 그러나 작가는 말한다. 동양의 정원, 그중에서도 한국의 정원은 달랐다고. 정원이 도달해야 할 진리는 자연 그 자체였으며, 손대지 않은 질서 속에서 오히려 완전함이 피어난다고.

 

이 책은 정원을 단순한 조경의 대상이 아니라 사유의 풍경으로 바라본다. 유학자이자 시인이었던 선조들은 세상을 하나의 시로 담았고, 그 시를 땅 위에 펼쳐 정원을 만들었다. 벤치 하나, 길 하나에도 서로의 마음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머무는 법을 담았다. 걷는 이와 앉은 이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배려한 설계에는,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인간적인 공간의 철학이 숨어 있다.

 

나에게 정원은 그런 곳이다. 혼자 있고 싶을 때 마음 편히 혼자 있을 수 있고, 울고 싶을 때 편히 울 수 있으며, 자연을 바라보다 보면 저절로 쉼이 되는 장소.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움이 스스로 드러나는 공간. 그 안에서 나는 자연스러움의 힘을 배운다.

 

당신 곁의 한국 정원은 그저 정원을 말하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 머무는 법, 그리고 비움의 미학으로 도달하는 평온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작가의 문장 곳곳에 스며든 그 고요한 사유는, 우리 곁의 정원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서양에서 정원은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장소였다. 서양의 예술이란 절대적 아름다움이 있다고 여겼다. 이러한 생각은 철학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서양 철학이 외부 어딘가에 있는 진리를 찾아 나섰듯이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형태를 정원에 구현했다. ~ 서양에서는 그들이 생각하는 정원의 아름다움을 자연 소재를 인위적으로 통제하며 구현했다.” p169

 

동양철학이 정원에서 발현되는 형식은 달랐다. 정원이 도달해야 하는 진리의 경지는 바로 자연 그 자체였다. 자연의 모습이 바로 정원이 추구해야 하는 것이었다.” p170

 

도시가 발달하고 자연과 멀어져 오히려 자연을 갈망하게 되었기에, 자연처럼 보여지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p171

 

한국 정원을 만든 유학자들은 모두 시인이었다. 세상을 하나의 시로 담아왔던 이들에게 정원은 시이자 은유였다. 시인이자 조경가인 그가(정영선) 세상을 보는 방식은 땅에 쓰는 시가 되어 정원이 되었다. ~ 고단한 병원 생활에서 울고 싶고, 쉬고 싶어도 마땅한 자리가 없던 안타까움이 설계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 걷는이와 앉은 이의 동선은 서로 방해되거나 눈치 주지 않으면서 같은 정원을 공유한다. 벤치 배치는 일관적이면서도 약간의 변주를 주어 기분에 따라 어디에 앉을지 고를 수 있다. ~ 마주 보는 벤치가 없는 곳에서는 조용히 지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베ᅟᅵᆫ치의 간격은 누군가는 이어주고, 누군가는 맘 편히 홀로 있을 수 있게 만들었다.” p174

 

요조앤 @yozo_anne 이 모집한 서평단에 선정되어 수오서재 @suobooks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당신곁의한국정원 #신지선 #수오서재 #인문에세이 #한국정원 #요조앤서평단 #쉼터 #자연스런아름다움 #자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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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25만 부 기념 전면 개정판) - 가장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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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그림들과 함께하는 치유와 위로, 형과의 추억과 상실의 아픔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도서협찬)

가장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ALL THE BEAUTY IN THE WORLD

 

그토록 인기가 많았고, 여러 번 눈에 띄었던 책이다. 볼 기회는 수도 없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나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게으름이라면 게으름이었다. 조금 늦게야 펼쳐 든 책이지만, 이렇게라도 읽을 기회를 주신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책장을 넘길수록 잔잔한 동화 같은 문장들이 마음을 붙잡았다. 작가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형과의 깊은 유대가 자연스레 그려졌고, 상실의 아픔 또한 고요히 전해졌다. 읽는 내내 이 책이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그 이유를 실감했다.

 

저자는 미술관의 경비원으로서 그림을 지키며 삶을 배운다. ‘경배라 불리는 장면 앞에서 우리는 말문을 잃고, ‘통곡의 그림 앞에서는 오래된 진리를 깨닫는다.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의 피에타를 바라보며, 그는 예술이 위로와 고통을 함께 건넨다는 사실을 느낀다. 썩어가는 나무 조각 속에서도 대가의 손길을 발견하며 경이로움을 얻고, 브뤼헐의 소박한 그림에서 인간적인 따뜻함을 본다. 세상이 이토록 형형색색으로 충만하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향한 본성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것이 신비롭다. 예술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정성껏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식임을 그는 조용히 일깨운다.

 

이런 테마의 장면을 경배라고 부르는데 나는 그 아름다운 단어를 마음에 품었다. ~ 이런 이미지 앞에서 우리는 말문을 잃고 말앙말랑해진다. 뒤이어 강렬하고 명백하지만 일상생활의 소란 속에서는 약하게만 느껴지던 무엇인가가 우리 안으로 침투한다. ~ 형이 두 손을 꼭 쥐고 용감하게 고통을 참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 느낌 말고는 다른 감정이 거의 들지 않았다. 기쁨의 별에서 특별한 종류의 선명한 빛이 나오는 듯했다. 옛 거장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선명함 같은 것이었다. ~ 어머니는 내가 찾은 그림보다 더 인정사정없고, 더 아름답고, 심지어 더 진실되어 보이는 그림 앞에 서 있었다. 14세기에 활동한 피렌체 출신의 니콜로 디 피에트로 제리니라는 거장이 그린 그림이었다. ~ 매우 아름답지만 당돌하리만치 죽은 게 확실한 젊은이를 그의 어머니가 온몸으로 받치고 있는 장면이다. 마치 아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그를 껴안고 있는 어머니를 그린 이 그림은 통곡혹은 피에타라고 부르는 장르에 속한다. 어머니는 잘 울었다. ~ 그 그림이 어머니 안의 사랑을 일깨워 위안과 고통 둘 다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경배를 할 때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통곡을 할 때 삶은 고통이다라는 오래된 격언에 담긴 지혜의 의미를 깨닫는다. 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냉혹하고 직접적이며 가슴을 저미는 바위 같은 현실 말이다.” p72, 73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란다. 썩어가는 사과나무 조각에서 대가의 펜 자국을 발견하니 완성된 목판화에서는 얻을 수 없는 느낌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가 그린 그림은 브뤼헐답게 친근하고 인간적이다. <더러운 신부 혹은 몹수스와 니시의 결혼식>이라는 작품은 같은 명칭의 민속놀이를 재현하는 주민들을 묘사하고 있다.” p279

 

세상이 이토록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고 충만하며, 그런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며,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들을 정성을 다해 만들려는 본성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사실이 신비롭다. 예술은 평범한 것과 신비로움 양쪽 모두에 관한 것이 어서 우리에게 뻔한 것들, 간과하고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도록 일깨워준다. 예술이 있는 곳에서 보낼 수 있었던 모든 시간에 고마운 마음이다. ~ 때때로 삶은 단순함과 정적만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도 있다. 빛을 발하는 예술품 사이에서 방심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살피는 경비원의 삶처럼 말이다. 그러나 삶은 군말 없이 살아가면서 고군분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p331

 

#나는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경비원입니다 #패트릭브링리 #김희정 #조현주 #웅진지식하우스 #woongjin_readers

#명화이야기 #그림의치유와위로 #상실의아픔 #미술관경비원 #에세이 #미술에세이 #책리뷰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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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노예 남편 아내 - 2024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 수상작
우일연 지음, 강동혁 옮김 / 드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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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을 깨부수고 자유를 추구하는, 불의에 맞선 인간의 뜨거운 투쟁사

주인 노예 남편 아내를 읽고 / 우일연 장편소설 / 강동혁 옮김

FIKA 피카 출판 / (도서협찬)

Master Slave Husband Wife

 

 

이 소설은 읽는 내내 심장이 오그라드는 이야기다. 글조차 몰라 자기 이름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던 여인이, 오직 자유를 향한 의지 하나로 세계를 건넌다. 엘렌이 젊은 장교를 속이고, 도망노예법 아래에서 목숨을 걸고 북쪽으로 향할 때, 행여나 모든 것을 다 들켜버릴까봐 읽는 이는 숨조차 쉬지 못한다. 간이 콩닥콩닥 마음은 조마조마, 행여나 여자임을 들키고 봉변이라도 당할까봐, 그 긴박한 순간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짜 힘은 공포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생의 의지에 있다.

인간의 존엄을 향한 절박한 투쟁이 어떻게 사랑과 연대, 그리고 문명 비판으로 확장되는지를 그려낸 작품이다. 엘렌 크래프트는 단순히 도망친 노예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신분을 연기로 뒤집고, 거짓을 통해 진실을 증명한 인물이다.

젊은 장교를 속여 자유의 문턱에 다다르는 순간, 그녀의 지략과 용기는 한 인간이 체제의 균열을 만들어내는 장엄한 예시로 빛난다. 그러나 도망노예법의 통과로 그들의 투쟁은 다시 불붙는다.

자유를 찾아 북쪽으로 향하는 여정은 단순한 탈출이 아니라, 국가와 인간의 근본을 묻는 정치적 행위였다. 법과 도덕, 신앙과 권력의 모순 속에서 그녀는 글을 배우고, 자기 이름을 써 내려가며 비로소 주체가 된다. ‘그 누구보다 진심을 담아, 엘렌 크래프트’ --이 서명은 노예의 탈출기가 아니라 인간 선언문이다. 그녀의 자유는 타인의 선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투쟁으로 쟁취한 존재의 증명이었다.

 

 

그녀는 조금씩 나눈 대화로 젊은 장교를 설득해, 그녀가 그와 같은 계급에 속한 인물이라고 믿도록 만들었다. 단 한순간에 그녀의 노력이 보람을 거두었다. 엘렌의 성공은 그녀가 속한 세상의 위선과 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냈다. 한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가능성, 문명이 스스로 세운 잘못된 구조를 인식조차 못한 채 허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이다.” p161

 

주인과 노예로서의 연기가 정점을 맞은 순간, 그들은 한 번만 잘못 움직여도 끊어질 것 같은 실로 구덩이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고 느꼈다.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도망치다가 잡힌다. 총을 맞고 죽는다. 기도 말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p195

 

도망노예법의 통과로 새로운 교전 상태가 시작되었다. ~ 아무리 보스턴이 자랑스러운 자유의 요람이라지만, 보스턴 시민들이 동료 시민의 곁에 서기 위해 힘과 목소리를 빌려줄 것인가? 그것이 회관의 온기에서 주위의 어둠으로 흘러 들어간 질문이었다. ~ 노동계급 소속임을 보여주는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 그들은 단 하나의 정신처럼 모여든 사회의 뼈와 근육이었다.” p373

 

노예 중 누가, 언제, 어떻게 자유인이 되어야 하는지 결정할 특권과 권리는 노예주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특권과 권리로, 일단 엘렌을 자유인으로 만들지 않기로 했다.” p383

 

그 모든 지체에도 불구하고, 보스턴의 법률가들은 도망노예법을 지키기로, 크래프트 부부를 최대한 빨리 보스턴에서 내보내 다시 예속시키기로 합의했다.” p399

 

“‘연방이 살아남을 것이냐는 문제 자체였다. ‘북부인들이 신의 성실의 원칙에 따라 도망노예법을 실행하고 남부가 만족하면 우리 국민에게는 평온이 회복될 것으로 보이네그는 경고했다. ‘그러나 이 법에 저항이 일어나고, 법이 실행될 수 없다면 연방은 즉시 위험에 빠지겠지.’” p440

 

엘렌은 몇 줄의 글로 자신이 성취하고자 했던 모든 것을 이루었음을 보여주었다. 자유, 글을 읽고 쓰는 능력, 선택, 그녀는 공개적으로 저항했으며, 자신의 성공담을 세상에 주는 교훈으로 삼았다. ~ 그녀의 이야기와 그녀의 아이는 온전히 그녀의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선택하고 주장해 온 성과 이름을 그녀의 자유로운 손으로 적었다. ‘그 누구보다 진심을 담아, 엘렌 크래프트’” p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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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심리학 - 미술관에서 찾은 심리학의 색다른 발견
문주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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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의 심리학 마음의 팔레트

미술관에 간 심리학을 읽고 / 문주 지음 / 믹스커피 (도서협찬)

Psychology meets the Art gallery

미술관에서 찾은 심리학의 색다른 발견

 

책을 읽는 동안 자꾸 멈추게 되었다. 단어 하나, 색 하나가 내 마음의 어떤 구석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문장이 마음의 색깔처럼 번져왔다. ‘멜랑꼴리’, 그 말은 단순히 우울이 아니라, 상실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설명에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살아가며 한 번쯤은 겪게 되는 슬픔의 결, 그것을 병이 아닌 정서로 이해하려는 시선이 위로로 다가왔다.

 

피카소의 청색 시대는 단짝 친구의 자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 푸른빛이 단순한 예술적 실험이 아니라 깊은 상실의 기록처럼 느껴졌다. 슬픔은 병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구절이 오래 남았다. 예술사의 한 장면으로만 배웠었지만, 이 책을 통해 그 푸른빛을 새로 보게 되었다.

 

셀레가 발견한 초록이 한때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만큼 독성을 품었다는 이야기는 섬뜩했다. 아름다움이 반드시 선하지 않았다는 사실, 색도 인간처럼 양면을 가진 존재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노랑. 햇살처럼 따뜻하고 생동감 있는 한국에서는 희망과 기쁨 긍정적인데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이단배신의 상징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같은 색을 보고도 서로 다른 감정을 투사하는 건 어쩌면 인간이 자신만의 심리적 필터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관을 산책하는 동안 내 마음의 색깔을 발견하게 만든다. 때로는 푸르고, 때로는 탁하며, 때로는 찬란한. 결국 예술은 타인의 감정을 통해 나를 이해하게 만드는 가장 정직한 심리학이라는 걸, 책을 덮으며 새삼 깨닫게 된다.

 

 

“‘멜랑꼴리라는 말은 프랑스어 ‘melancolie’에서 파생된 단어로 우울하거나 슬프고 서러운 감정을 뜻한다. 우울증과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우울증에 걸리면 슬프고 희망이 없으며 매사가 귀찮고 예전에 즐겼던 것에 더 이상 관심이 가지 않는다. ~ 가족이 세상을 떠났을 때, 키우던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막대한 재산상의 피해를 봤을 때, 기대하던 일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등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상실의 경험은 우리를 큰 슬픔과 좌절에 빠뜨릴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슬픔에 빠져 있다면 슬픔을 느끼는 건 정상이다. 슬픔은 상실에 대한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p53

 

피카소의 인생에서 청색 시대1901년 엄청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스페인을 함께 여행하고 파리 유학도 같이 간 단짝 친구 카롤ㄹ로스 카사헤마스의 자살은 20세 청년이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 친구의 공개적이고 폭력적인 자살 소식을 접한 피카소는 깊은 슬픔에 잠겼고, 곧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방식, 즉 물감으로 감정적 혼란과 불안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p180

 

“1775년 스웨덴 화학자 칼 빌밀헬름 셀레가 선명하고 아름다운 초록색을 발견한 후 1세기 이상 초록색 열풍이 일었다. ~ 그러나 면연력이 약한 여성과 어린아이의 경우 피부가 녹거나 외출 중에 기절하는 등 많은 사람이 이 염료가 뿜어내는 독성으로 사망했다. 셀레가 만든 초록은 다양한 화합물로 구성되었는데 그 중 인체에 가장 치명적인 건 산화비소였다.” p189

 

노랑은 인간이 볼 수 있는 가시광선에서 가장 밝은 색이다. 아름답고 예쁜 꽃들, 상큼한 레몬, 따뜻한 햇살,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와 같은 것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노랑은 서양에서 인기가 없다. 심지어 색체 선호도 조사에서 가장 선호하지 않는 색 2위를 차지했을 정도다. ~ 유럽 역사에서 수 세기 동안 노랑은 이단자또는 신뢰할 수 없는 자라는 인식이 흔했다.” p198

 

서양에서 노랑은 오랫동안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구별하는 색이었다. ~ 특히 다윗의 별은 엘로 배지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했는데 반유대주의자와 외국인 혐오증을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색이었다.” p200

 

 

#미술관에간심리학 #문주 #믹스커피 #chae_seongmo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를 통해서 도서 협찬받아서 읽고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 #책리뷰 #서평 #색채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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