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길 - 나를 바로세우는 사마천의 문장들
김영수 지음 / 창해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마천

중국 한나라 때 사람... 동아시아 역사가 중 손에 꼽히는 사람이라고...

한나라와 흉노와의 전쟁에서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가 한무제에게 팽당하여 사형을 당하게 되었지만 아버지의 유언인 "역사를 기록하라"는 사명감으로 궁형을 스스로 자처하여 당하였다고 한다. 옥중에서도 역사 기술을 계속하여 역작인 "사기史記"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와 같이 한무제로부터 사형은 언도받은 친구인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한다.

한무제는 생각없이 일을 저지르는데 도가 튼 위인이니 나중에 무고가 입증되면 명예를 회복할 수 있으므로 임안에게 일단 살아서 견디고 재기를 노리라

나무위키 "사마천" 편에서

어쩌면 자신도 이와 같은 생각으로 궁형을 받은 것일지도... 나중에 한무제의 신임을 얻어 벼슬자리를 얻었다고 하지만 말년에 또다시 내침을 당해 결국 사형을 당했다고 전해진단다. 여튼...

사마천의 사기는 후대 사람들에게 많은 부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단다. 내 마음을 울리는 것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세상은 온통 흐린데 나만 홀로 맑고, 모두가 취했는 데 나만 혼자 깨어있다.

(거세혼탁擧世混濁 유아독청唯我獨淸)

p20, '내가 선택하는 최선의 삶' 편

초나라 시인 굴원이 무능한 통치자와 부패한 기득권 세력, 사악한 간신들이 권력을 좌우하는 나라를 걱정하다 모함을 받아 조정에서 쫓겨나 멱리수에 이르러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마주친 어부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맑고 깨끗하며, 깨어있어야 다른 사람에게도 떳떳하고 자주적일 수 있다. 또 그렇게 살아야하는 것이 올바른 길일 것이다. 하지만 시쳇말로 다들 미쳤는 데 나만 안미쳤으면 과연 나는 미친 것일까 아닐까? 다들 눈이 멀었는 데 나만 눈이 밝으면 과연 나는 정상이 맞을까?

막상막하를 겨루어야 하는 데 막하막하를 다툰다고 하면... 내가 검으니 너도 검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 전혀 바람직한 세상은 아닐 것인데 혼자서 잘난 척 귀한 척 깨끗한 척 그런 척한다고 손가락질 당하는 상황은 더더욱 싫다. 나도 참... 쫌 그렇다... ㅠ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첫째는 교만하여 도리를 무시하는 불치병이다.

둘째는 몸(건강)은 생각치 않고 재물만 중요하게 여기는 불치병이다.

셋째는 먹고 입는 것을 적절히 조절치 못하는 불치병이다.

넷째는 음양이 오장과 함께 뒤섞여 기를 안정시키지 못하는 불치병이다.

다섯째는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약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치병이다.

여섯째는 무당의 말을 믿고 의원을 믿지 않는 불치병이다.

이런 것들 중 하나라도 있으면 병은 좀처럼 낫기 어렵다.

p128, '사물의 핵심을 꿰뚫어보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편

삼국지에 나오는 화타와 더불어 명의로 손꼽히는 편작이 장상군이라는 사람의 약을 먹고는 환자의 병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단다. 그렇게 의술의 달인이 된 편작이 불치병으로 열거한 것들이 위의 여섯가지 병이다.

실제로 몸이 아픈 병증을 수반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교만하고 재물 욕심을 부리고 먹는 욕심을 부리고 하는 것들 말이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겠다. 나 역시도 하나를 가지면 또 다른 하나를 원하게 되는 것을 보니 말이다. 무언가 내려놓을 줄 알게되는 도끼같은 울림이 내게 있어야 나도 깨달음의 한자락을 붙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그런 깨달음 끝에 무언가를 꿰뚫어볼 수 있는 비범한 능력도 얻을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세상을 어떻게 볼까... 그것은 내려놓음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가벼운 깃털도 많이 쌓이면 배를 가라앉힌다는 적우침주積羽沈舟부터 가벼운 사람도 떼를 지어 타면 수레의 축이 부러진다는 군경절축群輕折軸,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는 중구삭금衆口鑠金...

p177, '귀는 나쁜 말에 관심을 더 갖는다' 편

이 구절은 헐뜯음이 쌓이면 뼈도 깎는다는 적훼소골積毁銷骨을 이야기하면서 소개되고 있다.

자기 아들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에 꿈쩍도 하지 않던 어머니가 두번째, 세번째 사람이 와서 같은 말을 하자 이내 도망을 쳤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믿기지 않고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자꾸 들리니 쌓이고 쌓이니 이내 내 믿음보다 의심이 더 커져버린다는 의미다.

이와같이 사소한 것들도 모이고 쌓이면 힘이 될 수 있고, 그 힘이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그 아래 돌에 구멍을 낸다고... (정확하지는 않는 것 같다. 대충 이런 정도의 의미라는 정도... ㅡ.ㅡ)

누군가에게 나를 선전하고 알리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임팩트있게 무언가 한방 탁 터트릴 것이 있으면 좋은데 그것이 아니라면? 자주 나를 드러내고 알리는 것이 좋은 방법일 지도 모른다. 사마천의 표현을 저자는 이렇게 버무려서 우리에게 들려준다. 생각해보니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다만 듣는 상대가 귀찮아 하지 않기를 바래야겠지만...ㅎ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

(불비불명不蜚不鳴)

p210,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편

3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는 새가 있다면, 대체 그것은 어떤 새입니까?

초나라 장왕에게 신하 오거가 낸 수수께끼라고 한다. 당시 장왕은 즉위해서 3년동안 놀고 먹기만 했는데 그것을 비꼬며 말한 것이다. 그런데 장왕의 대답이 걸작인 것 같다.

"3년을 날지 않았다면 장차 날았다 하면 하늘을 찌를 듯이 날 것이고, 3년을 울지 않았다면 장차 울었다 하면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다. (일비충천一飛沖天 일명경인一鳴驚人)"

나중에 장왕은 자신이 한 말과 같이 날아올랐다고 한다. 만약 장왕이 이후에도 계속 놀고 먹다가 나라를 말아먹었다면 그의 말이 전해지지 않았을게다... 자신이 한 말을 현실화시키는 실천력, 어쩌면 그 실천력이 장왕의 표현이 길이 남도록 해주었는 지 모른다.

때가 되기를 기다리면서 그 기다림 속에서 준비해야할 것을 착실히 준비하고 대비하여 날개짓 한번에 구만리를 날아가는 붕새가 되겠다는 웅장한 꿈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너무 큰가? 너무 크다... 그냥 높이 높이 비상하는 솔개 정도로만 하자... ㅎㅎㅎ

잘난 척하지 말고 어울려 살아간다는 마음으로

욕심을 내려놓고 교만하지 않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준비하고 대비하며 적절한 때를 기다리다가

그 때 그 시간이 되어 내가 꿈꾸던 그 무언가를 착실하게 이루는 삶...

말로는 쉽지만 실재로는 너무나 어렵고 어려운 이 모든 것들이 지천명知天命의 시간을 살아가는 내게 천명天命임을 알라고 하는 것 같다. 천명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있음을 자각하는... 그것이 이것임을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팬데믹 이후의 세계 A.C.10 - 코로나 쇼크와 인류의 미래과제
JTBC 팩추얼 <A.C.10> 제작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A.D - Anno Domini, 기원 후

A.C - After Corona... 코로나 후

이정도야??? 싶은 기분이 확하고 다가오는 책...ㅋ

참 많은 책들이 코로나 팬데믹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이 이후의 시대를 논하고 있는 것을 본다. 하다 하다 이제는 역사의 시간을 표기하는 방법까지도 다시 정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만큼 우리에게 현재의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JTBC에서 방송한 다큐멘터리와 방송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엮은 이 책에서는 18인의 석학들이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고 이후 세상을 예견하고 대비할 수 있는 방향을 들려준다.

백신의 욕망

지금의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백신과 치료제다.

지금까지의 사례에서 볼 수 없었던 신속한 개발과 임상 실험, 그리고 투여의 시간적 단축은 우리가 생존을 위해 얼마나 급박하게 움직여야 했었나를 알려주는 다른 표현이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백신은 코로나 극복의 힘을 주었지만 또다른 시사점을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백신 국수주의...

더불어 공공 의료 체계...

어느 나라 국민 100%가 접종 완료했다하더라도 다른 나라에서는 아니라고 하면 그 나라 혼자서 살 수 있는 세상은 결코 아니다. 그동안 글로벌 글로벌하지 않았나 말이다. 혼자서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닌데 아직 우리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이 여전해보인다.

노동의 재구성

팬데믹 상황 이후의 노동 환경의 변화는 이전부터 이야기되던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있는 것 같다. 책에서도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한 인간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고 말한다. 혹자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다보면 인간은 좀더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것이 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서로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되었다. 비대면이다. 온라인 수업을 위시해서 재택 근무와 배달 문화 등등등... 이와 같은 상황에서 경제적 신체적 약자에 대한 도움 및 배려는 눈에 띄게 늘었고, 이와 같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필수 노동자로 구분하기도 한다.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항해서 인간은 감정과 정서를 바탕으로 하는 지식과 이성만으로 대체할 수 없는 그런 일을 좀더 해야하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싶다. 우리에겐 벌써 인간이 아닌 반려 동물과 반려 식물에서 위안을 찾기도 하고, 나아가 로봇펫을 통하기도 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우린 모든 것을 다 맡겨놓고 메타버스라는 이름으로 부캐놀이와 가상 세계 속으로 숨어들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다른 곳에 있지 않을까?

신자유주의 경제, 금융 자본의 시대에서 노동에 의한 근로 소득의 비중이 아주 작아지고 있는데다 (비중이 높은 사람은 그야말로 프롤레타리아인지도 모른다. 나같이... ㅠㅠ) 그나마도 급여는 줄어들고 있고 그 정도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긱경제라는 것은 누구에게는 기회이고, 누구에게는 암울한 현실인 것이다.

팬데믹은 전쟁과도 같이 누군가의 부富를 엄청나게 늘려주었다. 마크 주커버그, 제프 베조스 등과 같은 사람들의 엄청난 부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그들은 그 부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최근 기사에 테슬라의 알론 머스크는 타당한 기아 해결 방법을 제시하면 60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7조700억원)을 기부하겠다고 한다. 똑똑한 사람이니 이유가 있는 조건이겠지만... 과연 머스크는 그런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왠지 나는 색안경을 끼고 싶다...

국가의 이유

국가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어떻게 해야하는가? 뭐 그런 생각을 하게만든 코로나 팬데믹이다.

사설 병동 90%와 공공 병동 10%의 우리나라가 50%씩의 사설 병동과 공공 병동을 가진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지방보다 사망자도 적었다는 참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를 상황에서도 결국 공공 의료 확충과 의료 사각 지대의 최소화는 국가가 해야하는 일의 하나일 것이다. 자본 효율과 이익에 앞서 공존 공생을 위해 인술人術을 펼쳐야할 의료에 대해서는 좀더 국가가 개입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이 상황에서의 의료인들의 수고와 희생을 생각해보라고? 그건 정말 진심으로 감사하다. 정말...

결국 돈 문제는 아닐까?

노동으로부터의 자유, 팬데믹으로 인한 통제 등등 이러한 것은 결국 돈 문제와 연결된다고 본다.

왜 내가 남들보다 더 일해야 하는가, 왜 내가 더 위험한 일을 해야하는가, 질병 확산 방지를 위한 통제는 좋지만 나는 파산 직전인데... 그래서 이런 저런 이유로 자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기본 소득이라는 문제... 최소한의 생활 보장이라는 문제... 무임 승차... 부자가 되려는 의욕 감퇴... 공존이라는 생각...

어쩌면 돈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할 지를 물어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
에릭 재거 지음, 김상훈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세 시대...

어느 기사의 부인이 사이가 틀어진 다른 기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한다. 이 사실을 남편에게 고백한 부인은 남편에게 복수를 해줄 것을 간청한다. 기사는 자신과 그 기사의 주군에게 재판을 요청했으나 결과는 무죄...

기사는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 결투를 통해 자신과 부인의 주장이 정당하며, 유죄 판결을 통해 정의를 이루고자 한다. 과연 신은 누구의 편을 들어줄까?

영화 라스트 듀얼 - 리들리 스콧과 맷 데이먼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단다. 몇몇 기록은 누락되어 있거나 소실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사실을 알려주지 못하기에 저자의 상상력이 이 틈을 메꿔 전체 이야기가 완성되었단다.

게다가 이 소설은 영화화되었다. 유죄를 주장하는 기사 장 카루주 역엔 맷 데이먼, 무죄를 주장하는 기사 자크 역엔 아담 드라이버, 장의 부인 마르그리트 역엔 조디 코머, 그리고 감독은 리들리 스콧... 영화 각본을 맷 데이먼과 밴 에플렉이 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이 둘은 영화 '굿 윌 헌팅'에서 공동으로 각본을 맡아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었는 데 이 둘이 다시 뭉쳤다는 것...

책을 읽는 내내 뭐랄까 소설이라기 보다는 역사적 사료들을 읽어주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료들이 빠진 부분을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상상의 이야기를 메꿔 소설이 완성되었다는 느낌은 별로 없다. 다만 이런 저런 자료가 없어 확인이 잘 안되고 모호하다라고 정리하곤 해서 그냥 그렇구나 하는 느낌이랄까...

새삼 기록이라는 것이 당시의 생활 상이나 사건들에 대하여 얼마나 유용한 방법인 지 더 잘알게 되었다는 감상이다. 이 소설도 결국은 그런 사료를 발굴해서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결투, 하나의 의식

책에서 바은 느낌은 그렇지만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다른 의견이 없을 것같다. 시대적 배경은 차치하고라도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결투라는 방식과 한 여자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다는 멜로적 요소까지 아주 딱인 그런 소재라고 할까...

책의 거의 30%쯤이 결투 당일의 이야기로 되어있지만 말이다.

기사의 갑옷 입는 순서와 갑옷의 구성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기술하고 있고, 당시 결투라는 것이 그냥 총 한 방 빵쏘고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는 서부시대의 그런 것이 아니라 각종 선서, 서약, 맹세와 그에 대한 확인 등에 대한 구구절절한 절차를 갖춘 의식임을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알려주고 있다. 좀 긴장감을 감소시키는 요소가 아닌가 싶어졌지만... 영화에서도 이 과정을 길고 세세하게 묘사하지 않았을까 싶다. 결투 순간까지 긴장감을 높이는 무언가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결투의 결과 승부가 나고 두 기사의 유무죄와 부인의 운명은 결정되어졌다.

그 결과는 아직도 후손이나 관계자에게 의견이 분분한 것 처럼 보인다. 지금 세상에서야 과학적 수사 방법과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범죄가 실제로 발생했는 지 여부를 알아낼 수 있을 지는 몰라도 14세기 중세 시대에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당사자의 주장과 목겨자의 진술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없었단다...), 주변인의 진술 등이 모두인 상태였으니 그렇겠다 싶다.

결투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

누구는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고, 누구에게는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게다.

누구는 복수를 위한 한 방법이었을 것이고, 누구에게는 희생을 당하게 된 한 방법이었지 않을까?

과연 결투라는 방식이 유일한 방법이었을까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그 방법이 타당하다는 당시의 인식도 그렇고...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으니... 중세 시대 결투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장면 하나... 왕좌의 게임에서 오베린은 난쟁이 티리온 라니스터의 챔피언이 되어 결투를 하다 죽는다. 티리온은 해당 사건에 대해서 무관했지만 결투에서 자신의 챔피언이 패배함에 따라 유죄가 된다. 그리고 그것이 신의 선택이라고 사람들은 믿는다. 결투의 과정과 당시 상황은 볼거리로선 흥미진진할 지는 몰라도 그 자체가 정말 정의였을까? "사람은 완전하지 못하다"라는 생각에 결정적 한 방이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
에릭 재거 지음, 김상훈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결투가 정의 구현을 해주었을까? 결투에 대한 인식을 무겁게 바꾸어주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이프 트렌드 2022 : Better Normal Life
김용섭 지음 / 부키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트랜드 세터 - 얼리어답터 - 얼리 메이저리티

뉴 노멀 : 시대에 따라 새롭게 떠오르는 기준 또는 표준

베터 노멀 : 뉴 노멀 전단계로서 변화의 중간 어디쯤?

결국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따라하다가 어느 순간 변화를 먼저 경험하고 체험하는 사람이 되고, 그다음은 주도하는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

나는 어디쯤에 있을까?

Culture code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비거니즘Veganism...

좁게는 채식주의라고 하겠지만 넓게는 동물을 착취해서 얻어지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까지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상... 더 넓게는 동물을 착취하지 않기 위해 다른 대안을 채택했을 때 이 대안이 또다른 환경과 착취의 문제를 야기한다면 이것조차도 거부 내지는 재고再顧해야 한다고 말하는 생각들과 행동들...

이와 같은 바탕에서 유기농을 넘어 내가 직접 재배해서 먹고, 그 과정을 즐기겠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말하고, 동물의 가죽과 털을 대체하는 식물성 가죽을 사용하며, 패션 산업에서 의류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폐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산업이 재편되기도 하고, 수선을 통해 오래 사용하는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다른 code로는 메타버스 Metaverse 라고 할 수 있겠다. 메타버스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가상 공간으로 확장한 초월적 세상"을 일컫는다고 한다. 요즘은 부캐라는 말이 유행이다. 어쩌면 메타버스를 쉽게 말하면 부캐 생활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현실에서 받는 실망감이 이러한 경향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는 잘안되는 것을 가상의 세계에선 될 지도 아니 그렇게 되고 있으니...

Life style

이러한 코드 속에서 life style도 새로운 트렌드가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저자가 주장은 정리해보면 스몰액션 small action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상을 바꾸는 거대하고 혁명적인 행동이 아니라 내 수준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행동들을 하고, 이러한 행동에 동참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사회를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런 흐름... 이것이 뉴노멀이라고 말하고 있다.

플로깅이라던 지, 액체 비누에서 고체 비누를 사용한다던지 하는 행동을 실천함으로서 환경을 지키고 개선하는 그런 활동들말이다.

나의 쓰레기를 줄이는 행동, 예를 들어 리필 제품을 사용하고, 용기를 재사용하고, 비닐 봉투를 덜 사용하는 그런 행위가 기후 온난화를 줄이는 데는 아주 작은 효과밖에 못줄지라도 나와 같은 사람이 모이고 모이면 그 힘은 대단할 것이고, 이런 생각들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지구 환경에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실천 행위에 나는 어느정도 기여하고 있는 지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비록 엘리트까지는 아니어도 오염 물질을 많이 배출하고 있는 것은 확실할게다...

책에서 가장 아프게 다가온 것이 "오염엘리트"라는 것이었다. 소득이 높은 사람들은 반대인 사람들에 비해서 더 많은 탄소 배출을 하고 있단다. 하루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쾌적한 주거 환경을 위한 냉난방은 꿈일 것이고, 이러한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해외 여행을 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어느 기관에서의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소득 상위 10%는 하위 50%의 사람들보다 30배 탄소 저감을 해야한단다. (내가 과연 소득 상위 10%일까 싶지만 연 소득이 우리돈으로 1인당 4300만원 쯤 되면 그에 속한단다. 우리 집은 네식구여서 1.6억원 쯤 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난 10%는 아니군... 다행이다 싶으면서 왠지 좀 우울해지는 이유는 뭘까??? ㅡ.ㅡ)

비행기 한번 안타면 굉장히 많은 양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 한 명을 안낳는 것을 비교 자료로 보여주는 것은 좀 과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만큼 우리는 한 사람이 너무 많은 탄소 배출을 함으로서 지구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점점 더 안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말이겠지만 말이다...)





최선보다는 차선... 하지만 차선이 최선일지도...

꼭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 지도 모른다.

새로운 트렌드를 신속하게 받아들여 내 삶의 패턴을 급작스레 바꾸어야 뉴노멀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말이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고 했던가... 어차피 세상은 하루하루 변화하고 새로운 것들로 기존의 것들이 대체되어 갈 것이다. 그것이 자연스런 흐름일 터이니... 내 수준에 맞추어 내 속도에 따라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좋은 대처법인지도 모른다. 최선보다는 차선의 삶, 그래서 new normal이 아닌 better normal이라고 저자는 제목을 지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말이다. 난 이렇게 생각해본다. 차선의 선택이 내게 있어서는 최선의 선택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 선택을 실천함으로서 내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 내 삶을 변화시키고,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을 바꾸는 수많은 작은 행동 중 하나가 될 지도 모르니 말이다.

2022년에는이 아니라 이제 두달여 남은 2021년 지금부터 나도 small action의 삶을 살아봐야겠다.

그나저나 무엇부터??? ㅡ.ㅡ???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