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의 세계 A.C.10 - 코로나 쇼크와 인류의 미래과제
JTBC 팩추얼 <A.C.10> 제작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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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 Anno Domini, 기원 후

A.C - After Corona... 코로나 후

이정도야??? 싶은 기분이 확하고 다가오는 책...ㅋ

참 많은 책들이 코로나 팬데믹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이 이후의 시대를 논하고 있는 것을 본다. 하다 하다 이제는 역사의 시간을 표기하는 방법까지도 다시 정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만큼 우리에게 현재의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JTBC에서 방송한 다큐멘터리와 방송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엮은 이 책에서는 18인의 석학들이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고 이후 세상을 예견하고 대비할 수 있는 방향을 들려준다.

백신의 욕망

지금의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백신과 치료제다.

지금까지의 사례에서 볼 수 없었던 신속한 개발과 임상 실험, 그리고 투여의 시간적 단축은 우리가 생존을 위해 얼마나 급박하게 움직여야 했었나를 알려주는 다른 표현이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백신은 코로나 극복의 힘을 주었지만 또다른 시사점을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백신 국수주의...

더불어 공공 의료 체계...

어느 나라 국민 100%가 접종 완료했다하더라도 다른 나라에서는 아니라고 하면 그 나라 혼자서 살 수 있는 세상은 결코 아니다. 그동안 글로벌 글로벌하지 않았나 말이다. 혼자서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닌데 아직 우리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이 여전해보인다.

노동의 재구성

팬데믹 상황 이후의 노동 환경의 변화는 이전부터 이야기되던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있는 것 같다. 책에서도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한 인간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고 말한다. 혹자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다보면 인간은 좀더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것이 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서로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되었다. 비대면이다. 온라인 수업을 위시해서 재택 근무와 배달 문화 등등등... 이와 같은 상황에서 경제적 신체적 약자에 대한 도움 및 배려는 눈에 띄게 늘었고, 이와 같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필수 노동자로 구분하기도 한다.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항해서 인간은 감정과 정서를 바탕으로 하는 지식과 이성만으로 대체할 수 없는 그런 일을 좀더 해야하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싶다. 우리에겐 벌써 인간이 아닌 반려 동물과 반려 식물에서 위안을 찾기도 하고, 나아가 로봇펫을 통하기도 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우린 모든 것을 다 맡겨놓고 메타버스라는 이름으로 부캐놀이와 가상 세계 속으로 숨어들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다른 곳에 있지 않을까?

신자유주의 경제, 금융 자본의 시대에서 노동에 의한 근로 소득의 비중이 아주 작아지고 있는데다 (비중이 높은 사람은 그야말로 프롤레타리아인지도 모른다. 나같이... ㅠㅠ) 그나마도 급여는 줄어들고 있고 그 정도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긱경제라는 것은 누구에게는 기회이고, 누구에게는 암울한 현실인 것이다.

팬데믹은 전쟁과도 같이 누군가의 부富를 엄청나게 늘려주었다. 마크 주커버그, 제프 베조스 등과 같은 사람들의 엄청난 부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그들은 그 부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최근 기사에 테슬라의 알론 머스크는 타당한 기아 해결 방법을 제시하면 60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7조700억원)을 기부하겠다고 한다. 똑똑한 사람이니 이유가 있는 조건이겠지만... 과연 머스크는 그런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왠지 나는 색안경을 끼고 싶다...

국가의 이유

국가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어떻게 해야하는가? 뭐 그런 생각을 하게만든 코로나 팬데믹이다.

사설 병동 90%와 공공 병동 10%의 우리나라가 50%씩의 사설 병동과 공공 병동을 가진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지방보다 사망자도 적었다는 참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를 상황에서도 결국 공공 의료 확충과 의료 사각 지대의 최소화는 국가가 해야하는 일의 하나일 것이다. 자본 효율과 이익에 앞서 공존 공생을 위해 인술人術을 펼쳐야할 의료에 대해서는 좀더 국가가 개입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이 상황에서의 의료인들의 수고와 희생을 생각해보라고? 그건 정말 진심으로 감사하다. 정말...

결국 돈 문제는 아닐까?

노동으로부터의 자유, 팬데믹으로 인한 통제 등등 이러한 것은 결국 돈 문제와 연결된다고 본다.

왜 내가 남들보다 더 일해야 하는가, 왜 내가 더 위험한 일을 해야하는가, 질병 확산 방지를 위한 통제는 좋지만 나는 파산 직전인데... 그래서 이런 저런 이유로 자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기본 소득이라는 문제... 최소한의 생활 보장이라는 문제... 무임 승차... 부자가 되려는 의욕 감퇴... 공존이라는 생각...

어쩌면 돈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할 지를 물어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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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
에릭 재거 지음, 김상훈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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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

어느 기사의 부인이 사이가 틀어진 다른 기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한다. 이 사실을 남편에게 고백한 부인은 남편에게 복수를 해줄 것을 간청한다. 기사는 자신과 그 기사의 주군에게 재판을 요청했으나 결과는 무죄...

기사는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 결투를 통해 자신과 부인의 주장이 정당하며, 유죄 판결을 통해 정의를 이루고자 한다. 과연 신은 누구의 편을 들어줄까?

영화 라스트 듀얼 - 리들리 스콧과 맷 데이먼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단다. 몇몇 기록은 누락되어 있거나 소실되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사실을 알려주지 못하기에 저자의 상상력이 이 틈을 메꿔 전체 이야기가 완성되었단다.

게다가 이 소설은 영화화되었다. 유죄를 주장하는 기사 장 카루주 역엔 맷 데이먼, 무죄를 주장하는 기사 자크 역엔 아담 드라이버, 장의 부인 마르그리트 역엔 조디 코머, 그리고 감독은 리들리 스콧... 영화 각본을 맷 데이먼과 밴 에플렉이 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이 둘은 영화 '굿 윌 헌팅'에서 공동으로 각본을 맡아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었는 데 이 둘이 다시 뭉쳤다는 것...

책을 읽는 내내 뭐랄까 소설이라기 보다는 역사적 사료들을 읽어주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료들이 빠진 부분을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상상의 이야기를 메꿔 소설이 완성되었다는 느낌은 별로 없다. 다만 이런 저런 자료가 없어 확인이 잘 안되고 모호하다라고 정리하곤 해서 그냥 그렇구나 하는 느낌이랄까...

새삼 기록이라는 것이 당시의 생활 상이나 사건들에 대하여 얼마나 유용한 방법인 지 더 잘알게 되었다는 감상이다. 이 소설도 결국은 그런 사료를 발굴해서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결투, 하나의 의식

책에서 바은 느낌은 그렇지만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다른 의견이 없을 것같다. 시대적 배경은 차치하고라도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결투라는 방식과 한 여자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다는 멜로적 요소까지 아주 딱인 그런 소재라고 할까...

책의 거의 30%쯤이 결투 당일의 이야기로 되어있지만 말이다.

기사의 갑옷 입는 순서와 갑옷의 구성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기술하고 있고, 당시 결투라는 것이 그냥 총 한 방 빵쏘고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는 서부시대의 그런 것이 아니라 각종 선서, 서약, 맹세와 그에 대한 확인 등에 대한 구구절절한 절차를 갖춘 의식임을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알려주고 있다. 좀 긴장감을 감소시키는 요소가 아닌가 싶어졌지만... 영화에서도 이 과정을 길고 세세하게 묘사하지 않았을까 싶다. 결투 순간까지 긴장감을 높이는 무언가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결투의 결과 승부가 나고 두 기사의 유무죄와 부인의 운명은 결정되어졌다.

그 결과는 아직도 후손이나 관계자에게 의견이 분분한 것 처럼 보인다. 지금 세상에서야 과학적 수사 방법과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범죄가 실제로 발생했는 지 여부를 알아낼 수 있을 지는 몰라도 14세기 중세 시대에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당사자의 주장과 목겨자의 진술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없었단다...), 주변인의 진술 등이 모두인 상태였으니 그렇겠다 싶다.

결투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

누구는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고, 누구에게는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게다.

누구는 복수를 위한 한 방법이었을 것이고, 누구에게는 희생을 당하게 된 한 방법이었지 않을까?

과연 결투라는 방식이 유일한 방법이었을까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그 방법이 타당하다는 당시의 인식도 그렇고...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으니... 중세 시대 결투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장면 하나... 왕좌의 게임에서 오베린은 난쟁이 티리온 라니스터의 챔피언이 되어 결투를 하다 죽는다. 티리온은 해당 사건에 대해서 무관했지만 결투에서 자신의 챔피언이 패배함에 따라 유죄가 된다. 그리고 그것이 신의 선택이라고 사람들은 믿는다. 결투의 과정과 당시 상황은 볼거리로선 흥미진진할 지는 몰라도 그 자체가 정말 정의였을까? "사람은 완전하지 못하다"라는 생각에 결정적 한 방이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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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
에릭 재거 지음, 김상훈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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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가 정의 구현을 해주었을까? 결투에 대한 인식을 무겁게 바꾸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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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2022 : Better Normal Life
김용섭 지음 / 부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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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드 세터 - 얼리어답터 - 얼리 메이저리티

뉴 노멀 : 시대에 따라 새롭게 떠오르는 기준 또는 표준

베터 노멀 : 뉴 노멀 전단계로서 변화의 중간 어디쯤?

결국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따라하다가 어느 순간 변화를 먼저 경험하고 체험하는 사람이 되고, 그다음은 주도하는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

나는 어디쯤에 있을까?

Culture code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비거니즘Veganism...

좁게는 채식주의라고 하겠지만 넓게는 동물을 착취해서 얻어지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까지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상... 더 넓게는 동물을 착취하지 않기 위해 다른 대안을 채택했을 때 이 대안이 또다른 환경과 착취의 문제를 야기한다면 이것조차도 거부 내지는 재고再顧해야 한다고 말하는 생각들과 행동들...

이와 같은 바탕에서 유기농을 넘어 내가 직접 재배해서 먹고, 그 과정을 즐기겠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말하고, 동물의 가죽과 털을 대체하는 식물성 가죽을 사용하며, 패션 산업에서 의류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폐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산업이 재편되기도 하고, 수선을 통해 오래 사용하는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다른 code로는 메타버스 Metaverse 라고 할 수 있겠다. 메타버스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가상 공간으로 확장한 초월적 세상"을 일컫는다고 한다. 요즘은 부캐라는 말이 유행이다. 어쩌면 메타버스를 쉽게 말하면 부캐 생활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현실에서 받는 실망감이 이러한 경향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는 잘안되는 것을 가상의 세계에선 될 지도 아니 그렇게 되고 있으니...

Life style

이러한 코드 속에서 life style도 새로운 트렌드가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저자가 주장은 정리해보면 스몰액션 small action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상을 바꾸는 거대하고 혁명적인 행동이 아니라 내 수준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행동들을 하고, 이러한 행동에 동참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사회를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런 흐름... 이것이 뉴노멀이라고 말하고 있다.

플로깅이라던 지, 액체 비누에서 고체 비누를 사용한다던지 하는 행동을 실천함으로서 환경을 지키고 개선하는 그런 활동들말이다.

나의 쓰레기를 줄이는 행동, 예를 들어 리필 제품을 사용하고, 용기를 재사용하고, 비닐 봉투를 덜 사용하는 그런 행위가 기후 온난화를 줄이는 데는 아주 작은 효과밖에 못줄지라도 나와 같은 사람이 모이고 모이면 그 힘은 대단할 것이고, 이런 생각들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지구 환경에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실천 행위에 나는 어느정도 기여하고 있는 지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비록 엘리트까지는 아니어도 오염 물질을 많이 배출하고 있는 것은 확실할게다...

책에서 가장 아프게 다가온 것이 "오염엘리트"라는 것이었다. 소득이 높은 사람들은 반대인 사람들에 비해서 더 많은 탄소 배출을 하고 있단다. 하루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쾌적한 주거 환경을 위한 냉난방은 꿈일 것이고, 이러한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해외 여행을 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어느 기관에서의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소득 상위 10%는 하위 50%의 사람들보다 30배 탄소 저감을 해야한단다. (내가 과연 소득 상위 10%일까 싶지만 연 소득이 우리돈으로 1인당 4300만원 쯤 되면 그에 속한단다. 우리 집은 네식구여서 1.6억원 쯤 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난 10%는 아니군... 다행이다 싶으면서 왠지 좀 우울해지는 이유는 뭘까??? ㅡ.ㅡ)

비행기 한번 안타면 굉장히 많은 양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 한 명을 안낳는 것을 비교 자료로 보여주는 것은 좀 과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만큼 우리는 한 사람이 너무 많은 탄소 배출을 함으로서 지구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점점 더 안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말이겠지만 말이다...)





최선보다는 차선... 하지만 차선이 최선일지도...

꼭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 지도 모른다.

새로운 트렌드를 신속하게 받아들여 내 삶의 패턴을 급작스레 바꾸어야 뉴노멀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말이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고 했던가... 어차피 세상은 하루하루 변화하고 새로운 것들로 기존의 것들이 대체되어 갈 것이다. 그것이 자연스런 흐름일 터이니... 내 수준에 맞추어 내 속도에 따라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좋은 대처법인지도 모른다. 최선보다는 차선의 삶, 그래서 new normal이 아닌 better normal이라고 저자는 제목을 지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말이다. 난 이렇게 생각해본다. 차선의 선택이 내게 있어서는 최선의 선택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 선택을 실천함으로서 내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 내 삶을 변화시키고,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을 바꾸는 수많은 작은 행동 중 하나가 될 지도 모르니 말이다.

2022년에는이 아니라 이제 두달여 남은 2021년 지금부터 나도 small action의 삶을 살아봐야겠다.

그나저나 무엇부터??? ㅡ.ㅡ???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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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 어쩌다 자본주의가 여기까지 온 걸까?
데이비드 하비 지음, 강윤혜 옮김 / 선순환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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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건 모르건 지구촌 곳곳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상당수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엊그제 민주노총에서 주도한 대규모 시위가 서울 서대문 사거리에서 있었다고 뉴스가 있었고 말이다. 이런 시위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저자의 분석은 이렇다.

첫번째... 사회적 불평등

두번째... 기후변화

물론 두 단어만으로 이런 상황을 모두 표현할 수는 없겠다. 저자가 이런 분석을 하게된 이유를 이제 천천히 살펴보기로 한다.

시작하면서 들려준 이야기 중에서...

"어째서 이런 위기가 닥치는 것을 알지 못했지요?" 여왕이 물었습니다.

"저희는 시스템 상의 위험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라고 경제학자들은 대답했습니다.

p40. 2장 신자유주의의 간략한 역사 중 약간 변형

여러 경제 위기 상황을 맞아 영국 여왕은 저명한 경제학자와의 자리에서 이렇게 물었단다. 즉답을 못하던 그들은 모여서 회의를 했고, 그 결과 내린 결론이 이러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결론을 통해 보면 우리가 겪고 있는 겪었던 경제 위기는 우연이 아니라 시스템 내에 존재하고 있는 어떤 위험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그런데 도대체 시스템은 뭐지? ㅡ.ㅡ 여튼 이건 계속 찾아보기로 하고 일단 넘어가본다....

신자유주의의 모순

저자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분석하면서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이렇게 들려준다.

잉여가치 (노동자의 임금 대비 초과 생산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자본가들은 임금을 줄인다. 그런데 시장을 유지해야 하는 소비의 기반이 줄어듦에 따라 시장이 함께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되며, 이것이 "시장이란 어디에서부터 형성되는가?"하는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정부를 무시하는 경향을 띄게되는데, 레이건 대통령의 이 한마디로 대변되지 않을까 싶다.

정부는 해결책이 아닙니다. (중략) 정부가 바로 문제입니다.

p47, 3장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파헤치다 중

의료와 교육을 비롯한 복지 시스템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을 줄이고 자유 경쟁 상태로 개인 책임을 부르짖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정부의 규모는 그리고 정부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다만 정부의 정책은 복지 보다는 자본 보호에 치중하여 망해가는 기업에 대해 재정을 투입하여 되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가 만나 신군국주의화되면서 결국 이라크 전쟁까지 일으키는 상황...

정부 역할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했던 신자유주의는 부실 경영 기업을 되살리고, 기업 유치가 일자리 창출이라고 떠들으며 자본가에게 혜택을 몰아주는 정부 역할을 최선을 다해 행하는 모순을 벌이고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묻는다. 개인 대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왜 개인에게 자금 지원을 하지 않고 은행을 지원했는가 하고... 개인을 지원해서 빚을 갚으면 될 것을 개인은 다 빼앗기고 은행과 자본가는 그것을 헐값에 사들여 돈방석에 오르게되는 이 억울한 상황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해 비판한다.

금융 권력의 독재화

그와 함께 이렇게 말한다.

금융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은 경제 성장을 기반으로 한다. 노동자의 임금을 줄여 자본가의 이익을 극대화한 결과 시장이 커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금융의 타개책이라고 하는 것은 신용, 즉 빚을 지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저런 목적과 제목을 달아 대출을 해주고 미래의 노동을 담보로 잡는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외자 유치,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목하에 기업에 주었던 각종 혜택은 이제는 돈의 위력을 내세운 기업들이 당당히 지역 사회와 국가에 요구하는 뻔뻔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의 삼성전자 공장 설립 과정에서도 이런 저런 혜택을 삼성전자는 많이 받았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잘했다 싶지만 입장을 바꿔보면 그리고 좀 더 넓게보면 이렇게 돈의 권력은 가진 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것을 요구하고 있구나 하는 좀 허탈함같은 것을 느낀다. 기업에 혜택을 주는 것보다 지역 주민을 교육하고 지역 사회의 환경을 조성해서 기업들이 알아서 찾아오게 하는 상황은 요원한 것일까?)

클린턴 행정부때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분리를 규정한 법률까지 없애도록 부추긴 월가의 힘은 이제 금융의 권력이 우월함을 과시하는 정도를 넘어 독재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번져가고 있다고 봐야겠다.

사회주의자의 시각

저자는 지리학자이자 마르크스를 연구하는 사회주의자라고 보인다. 그래서 책은 신자유주의로 뒤덮힌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사회주의의 좌파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게된다.

계획과 통제는 자유을 부정하는 것으로 공격받고 있다. 사람들은 사유재산이 자유의 핵심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다른 토대 위에 세워진 사회는 '자유'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규제가 만들어낸 자유는 비자유라고 비난받고 있다. 그것이 제공하는 정의, 자유, 복지는 노예제도를 교묘히 위장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p96, 6장 사회주의는 진정한 자유를 추구한다 중 폴라니의 말을 재인용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일단 계획과 통제를 통해 균등한 분배와 평등을 추구한다고 알고있다. 일단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사회주의자들은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계획과 통제 속의 자유도 자유이고, 필요의 영역이 구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주어지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고 말한다.

필요의 영역... 현재 우리 사회에서의 집, 부동산 그리고 교육, 의료, 노후 대책과 같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 어느 정도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자유라고 하는 것은 즉, 집도 없고, 시간도 없고 (대출 갚느라 일해야 해서...ㅠㅠ), 노후 대비도 못한 상황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자유는 그림의 떡이자 사회가 그들을 방치하는 것에 대한 변명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계획과 통제를 통한 평등과 분배가 필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는... 맞다... 이거다... 당연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런데 뭘까 이것도 역시 너무나도 꿈같은 까닭은...

저자는 세계 경제에서의 중국의 위상을 이야기한다. 2007~8년 금융 위기에서도 중국은 지속적으로 성장했고, 현재 성장율이 좀 둔화되었지만 그래서 성장의 비율만을 보면 수치가 적어졌어도 성장의 총량은 그동안의 경제 성장으로 인해 이전보다 훨씬 커졌음을 말한다. 그거봐라... 중국 공산당이 펼치는 계획과 통제가 잘 돌아가고 있지 않냐... 뭐 이런 주장이다. 게다가 시진핑은 이제 부의 양극화를 해소하려고 계획하고 통제하 고 있으니... 흠... 결과는 아직 모르니 현재의 진행은 바람직한 것이 맞는걸까? 그런데 왜 난 중국에 가서 살고 싶지 않지? 의문이군...

총량 기준 평가와 분배라는 문제

저자가 이야기하는 바는 두가지인 것같다.

하나는 비율이 아닌 총량 기준으로 평가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 허울좋은 비율을 논하며 절대적 총량이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는 것을 막아야한다고 말이다.

두번째는 기술과 지식이 자본주의 발달의 원동력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들이 생산한 잉여가치가 잘 분배되어야 한다는 것. 기계와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 시간을 줄여준 것이 대다수의 임금을 줄이고 복지 혜택을 박탈하는 방향이 아니라 생산된 잉여 가치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으로 작용되도록 해야한다고 말이다.

진정 부유한 나라는 노동시간이 하루에 12시간인 나라가 아니라, 하루에 6시간인 곳이다. 부富란 잉여노동시간을 좌지우지하는 데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과 사회 전체가 직접적인 생산에 필요한 시간 외에 이용할 수 있는 시간에서 생기는 것이다.

p324, 19장 집단적인 딜레마에 대한 집단적인 반응 중

그래서 필요 영역을 해소하기 위해보다는 개인의 자유로운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여야 한다는 것. 그 시간을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단순히 노동력을 투입하는 방법 외에 다른 차원의 방법을 강구할 수 있는 시간으로 잘 활용하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회주의자적인 저자는 반자본주의자는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사회주의로의 진행을 막아야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책은 소제목으로 짧게 구성되어 있어서 읽기가 좋다.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고는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그런 상황을 피했다고 해야하려나 뭐 그런 느낌... 책을 읽으면서 어느 한 구절에서 멈췄다가 다시 진행할 때도 부담이 없는 구성이어서 좋다. 그래서 그런지 딱딱할 수 밖에 없는 주제임에도 조금 수월하게 읽은 느낌...

읽는 내내 장하준 교수가 생각났다. 자꾸 구절 구절 비교하게 되더라는... 내가 아는 거의 유일한 좌파적인 경제학자여서 그런 것이겠지만 왠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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