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맨드 - 제1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채기성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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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사회에는 로봇이 필수인 세상이 될 것이다.

그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내 생각에는 그런 미래 사회를 가장 근접하게 표현한 것이 영화 "아이,로봇"이 아닐까 싶다.

법칙 1. 로봇은 인간을 다치게 해선 안되며,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이 다치도록 방관해서도 안된다.

법칙 2. 법칙 1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한다.

법칙 3. 법칙 1, 2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만 한다.

네이버 영화 정보에서 영화 "아이,로봇"

영화 "아이, 로봇"에서는 인간의 외모를 닮은 로봇들이 나온다.

물론 로빈 윌리엄스의 "바이센테니얼맨"에서는 더 인간같은 푸근함이 있기는 하다... ㅎ

우리의 상상은 이렇게 점점 인간의 외모와 비슷해지고 인간의 생각을 하는 로봇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여튼 소설은 "아이, 로봇"과의 유사성이 더 많은 것 같다.

소설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패션회사 대표 하정의 로봇 엘비, 화가 김승수의 로봇 그리드, 그리고 많은 로봇들이 주인에게서 떠나간다. 로봇을 관리하는 회사 IU도 왜 어디로 갔는 지 아직 모른다. 반IU 단체 휴먼 라이츠 소속의 도정우와 영기 등이 로봇이 모여있는 스마트 밸리 빌딩을 찾아가게 되고 거기서 로봇들이 하고자 하는 것들을 알게된다.

영기의 형이자 IU 변호사 영재는 자꾸 사라져가는 사람들의 행방에 대한 비밀을 알게되고 급기야 자신도 어딘가로 끌려가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소설에서 로봇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기능적인 대체재로서 존재 의미를 갖는다.

비서, 가사 도우미 등의 역할과 함께 사용자 (구매자)의 요구에 맞춘 각종 기능을 탑재할 수 있다. (소설 속에선 그림을 대신 그려주는 로봇, 그리드가 나온다. 그림 대작 문제로 한동안 뉴스에 나왔던 바로 그 사건을 옮겨놓았단다...)

로봇을 만들고 통제하는 회사, IU Intelligence Union의 모토도 이런 것이어서 로봇은 로봇 그 자체이고, 인간과 같은 존재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반대한다. 인간과 로봇은 공생해야 하지만 인간에 적용하는 윤리와 가치관을 로봇에게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동물 복지에 대한 논의가 있다. 이러한 논의를 로봇에게도 적용해야 할까?

동물에게는 생명이 있는 데 로봇에게는 생명이 있을까? 아니 있게 될까?

그때가 되면 과연 로봇이라고 불러도 될까?

인간과 로봇의 차이는?

영혼의 유무? 영혼은 무엇일까? 자꾸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죽음이란 무엇인가" (셸리 케이건)이 떠오른다.

죽음에 대한 고찰을 하면서 기억의 유무가 삶과 죽음의 판정 기준이 될 수도 있음을 넌지시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내가 나임을 잊어버리는 순간...

소설에서 그리드와 로봇들은 그 기억이라고 하는 것을 인간됨의 하나로 생각하는 듯 하다.

그래서 그리드는 누군가의 기억을 가졌고... 엘비는 기억 속 공감을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포기했다.

어쩌면 기억을 가지고 있어야 인간이고, 그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 인간 관계가 아닐까 싶어졌다.

영화 "아이, 로봇"에서 써니는 로봇의 인간됨을 추구하기 보다는 로봇의 존재 그 자체에 집중했었던 것 같다.

인간 필요와 기능의 대체물로서의 사물이 아니라 스스로 지능을 가지고 생각하며 감정을 느끼고 주관이라는 것을 갖춘 인격체로서의 로봇...

써니는 그것을 자신을 만든 박사가 자신에게 준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로봇들을 이끌어가려 했던 것 같다.

소설 속에서 써니와 같은 리더 역할을 하는 것이 그리드다.

하지만 그리드는 로봇들을 연결하고 있는 네트워크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의 기억을 필요로 했고, 그 자체가 로봇임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보인다.

로봇이 인간이 되는 그런 시간이 올까?

터미네이터에서 보여주는 로봇과 인공 지능의 디스토피아적 세계는 아니더라도 인간이 로봇과 공생하는 유토피아적 세계가 우리에게 펼쳐질 지는 모르겠다.

인간은 신의 섭리에 따라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성장하고 죽음의 시간을 거치고 있을 때, 로봇은 스스로의 지능으로 다른 로봇을 만들고 노후된 로봇을 폐기하는 시간을 거치게 되는 그 시간 그 시대 그 환경에서 과연 인간과 로봇은 동등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될 지는 나는 자신없다.

인간과 로봇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수많은 경우의 수와 결과로 인해 미래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세상에서 단편적인 몇 몇 가지를 가지고 판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겠다.

하지만 무언가를 생각해본다는 것은, 그 미래를 상상해본다는 것은 어쩌면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우리의 몸부림이자 필수적인 선택이 아닌가 생각해봤다.

소설 속에서 IU사社의 의장은 줄곧 베일에 감추어져 있다.

난 혹시 이 의장이라는 존재가 인공지능이나 네트워크가 아닌가 생각했었다.

이 소설을 읽는 다른 사람들은 누구인지 맞출 수 있을까? 의외의 존재라며 쿵하는 반전이라기 보다는 은근슬쩍 밝혀진 존재라는 점에서 의외성이 있는 것이 아니었나 싶네... 지금 생각해보니 말이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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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기쁨과 슬픔 - 너무 열심인 ‘나’를 위한 애쓰기의 기술
올리비에 푸리올 지음, 조윤진 옮김 / 다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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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차례 부분을 본다.

계속하기, 시작하기, 1만 시간의 유혹...

무언가를 노력해서 성취하기 위해 첫번째로 해야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시작하기"가 먼저 아닐까 싶다. 시작이 없는 끝은 없으며, 시작도 하지 않았는 데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상황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차례는 시작하기가 두번째다. 첫번째가 따로 있다는 거다.

그것이 바로 계속하기다.

시작도 하지 않았는 데 뭘 계속하라는 것일까?

저자는 이 순서가 어떤 실수나 착오도 아니며 계속하기-시작하기의 순서로 해야한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시작은 그 단어만으로 무언가 엄청나고 대단해보인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이 느낀다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의 내용처럼 조각가가 점토의 모형을 만드는 것으로 어떤 작품 활동을 시작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조각가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하고 있는 것은 뭐?

그냥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마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밥벌이로서의 일을 '이제부터 시작이야' 하면서 새삼스레 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금까지 해왔고 당연하게 해야할 일을 계속 이어가는 것과 같이 말이다.

저자는 지금까지의 상식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일을 일만 시간동안 열심히 노력하고 꾸준하게 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일만 시간이면 대충 십년 정도의 시간이 되겠다.

하루에 4시간 씩 일년에 250일을 10년 정도 하면 달성할 수 있다는 거다.

저자는 과연 그럴까? 라고 말한다. 여러 조사 연구에 따르면 전문가 수준에 도달하기 까지는 사람에 따라 소요된 시간의 차이가 있고, 그 편차가 3000시간에서 25000시간까지 다양한데다가 25000시간을 투자하더라도 달성하지 못할 수준이 있다고 말한다.

"원하면 이룰 수 있다가 아니라 이룰 수 있다면 제대로 원한 것이다." 라고 말한다.

노력의 슬픔... 바로 그거다... ㅠㅠ

또한 생각을 멈추라고 말한다.

"과도한 생각은 존재 전체를 오염시키고 심지어 위협한다"고 까지 말한다.

"행동하기 위해 생각하기를 멈추는 것은 이성을 배척하는 행위가 아니라 이성에 제자리를 찾아주는 행위다." (p201) 라고하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무언가를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 일 (생각)의 흐름에 맡겨두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말이다.

게다가 목표를 세우지 않고 이루는 것이 좋다고도 말한다.

어떤 목표는 추구하지 않을 때 이루어질 수 있다며 자신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해오던 일을 계속하고 계속하다보면 어떤 일 (생각)이 시작되고 마무리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을 멈추고 행동을 하고, 목표를 정하기 보다는 그 상황 그 흐름에 맡겨야 하며, 너무 오래 열심히 보려하지 말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동안 집중해야한다고 말이다.

일의 결과 즉, 끝이 있는 명확한 과제가 주어지면 생각을 많이 하겠지만 그전에 꿈을 꾸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결정을 할 수 있으니 꿈을 몽상을 많이 해라고 덧붙인다.

이런 노력... 이 노력은 기쁨을 가져다 줄까???

이와같은 저자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참으로 혼란스러웠다.

듣는 말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하며 우왕좌왕하는 펄럭귀를 가진 나같은 사람에게는 정말이지 혼돈과 당혹스러움을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결국은 "그때 그때 다르다"라는 것이 답 아닐까?

오랜 시간 정성을 다해 생각하고 고민해서 꼼꼼하게 준비하고 계획함으로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을 것이다.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면 어떤 일을 해나가는 중간 중간에 자꾸 곁길로 가거나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을 것이다.

생각에 앞서 행동이 필요한 경우와 그 반대의 경우가 있을 것이다.

요즘의 나에게 필요한 것이 '생각보다 행동' 이 아닐까 싶어진다.

책읽기도 카페와 블로그에도 신경이 가지 않으니 이제 조금 생각을 멈추고 가장 편한 자세를 취한 후에 그냥 상상과 공상의 나래를 펼쳐 어디까지 가나 해보는 것이 좋을까?

그러고 나면 좀 흐름에 동화되는 나를 볼 수 있으려나?

정말이지 요즘같아서는 철학원에라도 가보고 싶어지는 날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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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는 바이러스다
윤정 지음 / 북보자기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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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오랜 시간동안 정신 분석 상담을 해온 정신 분석가라고 한다.

그 정신 분석의 바탕에는 철학에 기초한 자아에 대한 성찰이 깊게 깔려있는 탓 인지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철학적 고찰의 깊이를 가늠하기 힘겹다.

자아는 감정을 복사하는 바이러스이고

바이러스는 자아를 복사하는 기생물이다

책 표지에서

자아라는 것은 무엇일까?

사전적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이라고도 정의되어 진단다.

이것을 달리 '영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는 '정신'?

이렇게 모호하면서도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는 '자아'라는 것을 저자는 유전정보를 가지고 숙주에 기생하거나 공생하면서 변화와 변종을 지속해가는 바이러스와 비교한다.

'나'라고 하는 중심은 유지하면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되는 것을 보면 적절한 비유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요즘의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에서는 특히나 '바이러스'라는 개념을 적절한 시점에 차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책을 1부 자아 바이러스 편과 2부 생명 바이러스 편으로 구분하여 우리에게 자신의 철학적 고찰을 들려준다.

1부에서는 자아에 대한 분석에 집중한다. 여러 시대에 걸쳐 여러 철학자와 사상을 통해 분석되고 정의되어진 '자아'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부의 끄트머리에서 이와 같은 분석과 인간의 질병과의 관계를 열거한 것에 눈길이 간다.

1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생명 바이러스'로서의 '자아'는 참으로 다양하게 분석, 정의되고 있다.

학교에서 또는 책을 통해 한번 쯤 들었을 만한 많은 철학자와 주의들을 고찰한다. 정리해보면 이 정도가 될 듯...

원시시대에는 '자아'에 대한 인식을 없었다 한다. 항상 불안과 공포 속에서 스트레스받던 인간이 불이라는 권력자에 의존하며 숨어지내듯 자아도 숨어있었다.

자연 철학과 소크라테스, 플라톤을 거쳐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는 동안 관념 속에 기생하던 자아는 인과적 과정과 목적론적 입장에서 도덕과 윤리의 옷을 입고 인간을 감염시켰다.

권력에 대한 기대를 갖게된 자아는 종교를 앞세워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서구의 기독교 문화는 도덕과 윤리를 넘어 사랑과 진리를 논하며 권력과 지배에 대한 욕심을 감추는 것으로 변종되었다.

중세의 종교에 기반한 권력 투쟁에서 르네상스의 예술로 옷을 갈아입은 자아는 이성과 손을 잡는다.

이후 이성에서 무의식으로 그리고 존재에 대한 논의에 빠져든 자아는 문자와 언어로 무장하고는 "언어의 기표와 기의에 매달려, 있다가 없다가를 반복하면서 말로 표현되는 사라지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바이러스" (p115)와 같이 되고 만다.

한순간 슬쩍 과정의 전부를 몽땅 건너뛰고 말았지만 (흄이니 스피노자, 라캉 등등의 여러 철학자의 형이상학적 수식들은 내가 단시간에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범주의 문제이니 그럴 수 밖에...ㅠㅠ) '자아'라는 용어의 정의 자체가 확연한 이미지와 형태로 다가오지 못하니 '문자와 언어'에 휘둘리며 이렇다가 저렇다가 한다고 주장하는 바에 전적으로 동의해야겠다.... 허허허

(요만큼의 길이로 요약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많은 철학자의 심사숙고를 슬쩍슬쩍 옮겨 적었는지 알 수 있을까?... ㅠㅠ... 아마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에 내가 이 글을 다시 읽으면 깜짝 놀라거나 아니면 고개를 절레 절레 손가락질하는 그 둘 중에 하나가 될 것임에 틀림없겠다...ㅎ)

저자가 언급한 것과 같이 자아는 바이러스와 같이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는 말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현상적 자아'를 이해하는 것이 어쩌면 이 책의 핵심이 되는 한부분일 것이나 일단 넘어가는 것으로... 아무래도 내게는 무리데쓰無理です...ㅜㅜ

저자는 '질병의 자아'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질병이란? 자아의 물리적 반응과 화학적 발생의 표현" (p131)이라고 딱 규정하고 있거든...

그래서 원인과 치유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각종 병변에 대한 원인을 규정하고 있다.

그중에서...

"'호흡곤란증'은 변화가 두렵고 신뢰하지 못하는 '도덕적'인 판단의 자아이고..." (p134)

"'호흡기 질환'은 다가갈 수 없는 두려움으로 밖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없는 억압의 감정을 안고 '도덕적'판단을 하는 자아이고..." (p135)

"'대상포진'은 두려움의 연속성을 지닌 긴장감을 가지고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고착시켜 합리적으로 선택한 자아의 현상" (p136)

"'발작' 증상은 대물림의 유전정보를 이어받아 도망가려는 충동이 내재된 억압성을 품고 '권력적'으로 억압된 자아의 현상" (p137)

"'가슴앓이'나 '궤양', '복통'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열등의식을 가지고 늘 긴장하며 살아가는 자아의 논리적 판단의 예" (p137)

"'전립선 질환'은 두려움을 통해 죄책감과 늙어가는 모습에 불안이 머문 염려의 자아가 선택한 현상" (p139)

"'치매'는 세상을 살면서 선택당한 권력과 도덕적으로 버려진 고통의 가증을 나타낸다. 뇌세포 내 대내피질의 신경회로가 자아의 강박적 선택의 반복으로 타버린 결과이며, 다만 어린 시절 남은 회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아의 모습" (p139)

이외에도 많은 병변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접근으로 원인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에서 읽으면서 "오호라~~~ 맞네 맞아..."를 연발한 것만 선별한 것인데 그럴듯하지 않은가?

(특히... 아내의 샤워 소리에 두려움을 느끼며 섬과 누움에 대한 자의적 액션 불능 등에 대한 난감함과 일말의 죄책감... 뭐 그런 염려가 발현되었다는 것... 문자와 언어로 포장된 나이 듦에 대한 일련의 반작용이 이러하구나 하는...ㅠㅠ... 서글프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웃음터진다는... 허허허)

여기까지...ㅋ

1부가 자아에 대한 분석 결과를 고백의 형태로 말하고 있다고 하면 2부는 바이러스의 고백의 형태로 이루어져있다.

그런데 2부의 소제목은 '고민'이다. 고백과 고민은 차이가 있는 표현인데... 뭘까???

여튼...

2부에서는 1부와 다르게 빅뱅 이후 지구에서의 생명 탄생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태초부터 원시생물의 탄생을 거쳐 지금에 이르는... 세포적인 규모의 언급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세포의 작은 정원에 초대받은 바이러스는 "존재하는 것 같지만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인 것같다" (p226)며 자신을 평가하면서 인사를 한다.

결국 바이러스의 고백은 이와같이 마무리되는 데 저자는 이 고백을 통해 자아와 바이러스가 같은 운명의 속성을 지녔다고 말한다.

자아는 인간이 만들어낸 의미적 해석의 추상물이다. 원래 없는 데 있는 것처럼...

(바이러스는) 다른 질서를 가진 집에 기생하고 살아가다가 숙주에게 새로운 유전 정보를 남기고 사라진다. 결국 있는 데 없어지고, 없는 데 있어지는 현상은 바이러스나 자아에게 공통적인 것...

p236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후문後文에서 인류는 다른 생물종을 강제하고 약탈하고 있어 호모 사피엔스라기보다는 호모 라피엔스Homo Rarpiens가 아니냐고 말한다.

더불어 코로나 바이러스의 상황이 종식되고 나면 "인간의 자아는 세포 속에서 일어나는 바이러스를 생명의 역동성을 지닌 촉매제로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유전자를 만들어 자기유지를 할 수 있는 종으로 등장하길 원하고 싶다."고 말한다.

바이러스의 재앙을 사랑으로 극복하고 새로운 사유체계에 대한 변이를 통해 자아를 획득하는 바이러스적인 호모 사피엔스로의 역전이야 말로 인류가 진정한 만물의 영장이자 생명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바이러스에 의한 팬데믹 상황을 또 다시 맞이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바이러스의 변이, 변화에 대한 촉매제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바이러스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다보면 우리는 그렇게 아름다운 시간을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딱 그렇게만...)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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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하포드의 세상을 바꾼 51가지 물건 - 새로운 것들은 어떻게 세계 경제를 변화시켰을까
팀 하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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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51가지라...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

책을 펼치기 전의 내가 알고 있던 기존의 지식에서 손꼽히는 몇 가지가 있었다.

세탁기, 식기세척기, 수도... 뭐 이런 것들...

물론 컴퓨터와 도스 (DOS... 요즘 아이들은 이거 알까? ^^), 자동차, 비행기 등등등 무척 많은 것이 우리 생활을 바꾼 것들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그 파급력이 센 것은 단연 세탁기라고 하던데...

우리 할머니들이 빨랫거리를 잔뜩 머리에 얹고 빨래터에 가서 빨래하고 널고 하는 것들이 그네들의 하루 일과 중에서 무척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지... 그런데 세탁기라는 것이 나와서는 빨래넣고 버튼눌러놓으면 그냥 혼자서 빨래를 하고 탈수까지 해놓으니... 세상 편해졌음을 이것으로 아셨다고 한다.

물론 요즘 내가 해보니깐 유연제를 넣는 시간에 맞춰 한번쯤 궁둥이를 들썩 거려야 하는 것은 있더라... 우리집 세탁기가 좀 부실해서 그렇다는 것은 비밀이다... ㅡ.ㅡ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식기 세척기도 그런 면에서는 한몫 단단히 하는 것같다.

게다가 수도가 없어서 물지게를 지고 매일 두세번 우물 가로 물을 길러 다니셨다니... 흠... 나도 초등학교 시절 물통들고 우물가로 물길러 다닌 적이 있다. 그 시절 가끔 단수가 되었는데 그때마다 주변에 있던 우물로 물을 길러갔다는... 1970년대 후반 서울에서의 이야기다. 흐흐흐...

여기까지 정도가 내가 가지고 있던 지식...

궁금하다... 과연 팀 하포드라는 사람은 어떤 것을 51가지에 포함시켰을까???

저자의 51가지는 참으로 다양하다.

벽돌, 공장, 우표, 자전거, 안경, 캔, 경매, 재봉틀, 산타클로스, 스위프트, 블록체인, RFID, GPS, CCTV, 연금, 고무경화법, 태양광발전, 챗봇, 체스알고리즘, 슬롯머신...

제목은 51가지 물건이라고 하더니 물건만을 선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뭐라고 할까... 저자의 다양한 관심? 앎의 범위? 뭐 그런 것이 광범위함을 단적으로 알게해주는 것이 이런 리스트가 아닐까 싶어졌다.

물론 그래 이거야!!! 하면서 동의하는 것도 많지만 아닌 것도 있더라는... 개인적인 주장이다...ㅎㅎ

눈에 띄는 몇 가지를 논해보고자 한다.

우선 튤립...

언젠가 오래 전 네덜란드에서 튤립 광풍이 불었었다. 튤립에 대한 투기 광풍이었다지 아마???

특이한 튤립 종자에 대해 순간적으로 버블이 생겨 엄청난 금액으로 거래가 되었다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는...

저자는 튤립 자체가 세상으로 바꾼 물건 중 하나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이로인해 불어닥친 버블이라고 하는 사회적 경제적 현상을 말하고자 했던 것같다.

이후 1840년 대의 철도 광풍을 사례로 제시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어쩌면 버블 자체가 세상을 바꾸었다는 것이기보다는 버블을 만들어냈던 우리들의 욕심이 세상을 좌지우지한 그 무언가가 아니었을까?

다른 하나로는 블록 체인...

블록 체인은 세상을 바꾼 51가지가 사실은 아니다. 세상을 바꾸고 있는... 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간단하게 표현하고 정리하고 싶어도 할 수없는 (내 머리로는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ㅠㅠ) 현재 진행형의 하이테크놀러지인 것이다.

여튼 이를 바탕으로 해서 비트코인이니 알론 머스크로 유명한 도지 코인이니 하는 가상 화폐가 파생되어 나왔고, 또 다른 여러가지에 대해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바로 블록 체인이라고 하니... 흠...

하지만 현재로서 세상을 뒤숭숭하게 그리고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세상을 바꾸고 있는 것이 맞을까?

과연 최근의 중국 정부가 보인 가상 화폐에 대한 경고와 같은 것들로 미루어봤을 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무언가가 맞기는 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 상거래와 자금 흐름 등에 대한 보다 투명한 무언가를 확립하는 데 있어서 블록 체인은 그 역할을 다 할 것이다. 다만 말이다. 그 다양하게 영향을 주는 무언가 중 하나일 뿐인 가상 화폐에 대한 올인이 제발이지 파탄적인 결말을 맞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말이다.... 주권 화폐를 더욱 공고히 함으로서 글로벌 경제 상황에서 금융 위기에 대처하려는 각국 정부 및 중앙은행의 입장에서 보면 가상 화폐란 극단적 대치점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상거래와 금융 거래, 현금 흐름에 있어서의 투명하다는 것이 과연 금융 위기 상황에서의 대처법이 될 수는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새록새록 드는 것은 그냥 나와 같은 모질이들의 기우이기만을 바래본다.

그리고... 불...

사실 불이란 누가 뭐라고 해도 프로메테우스가 신의 영역에서 인간에 불을 훔쳐다 준 그 시간부터 우리 인간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무언가가 아닐까?

식생활을 바꾸고 도구를 발전시키며 자연으로부터 방어술이기도 했던...

불이 없는 인간이란 과연 존재가 가능했을까?

책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사회적 뇌' 가설 (존 가울렛이 주장했다는) 에서처럼 증대되어가는 사회적 압력에 대응하고자 모닥불 주위에서 머리를 맞댐으로서 뇌가 커지고 진화했다는 그것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저자는 불을 은유적으로 사용해서 인간이 제어하지 못하는 여러가지 형태의 다양한 위기를 불로 표현하면서 그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며, 그 대응을 고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불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우리 인간에게 그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단 말이지...

불은 물건일 수도 있지만 물건이 아닐 수도 있다. 좋으면서도 무섭다... 불이란 그런 것같다.

51가지로 선정된 세상을 바꾼 그것들은 저자의 의견일 뿐이어서 다른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아니 그것이 맞다. 그래야 하고...

하지만 언급된 이런 것들을 통해 우리 인간의 생활과 지금의 시간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 같아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들이 세상을 바꾸었다고 생각하는 데 있어 반대 의견이 있다면 혹시 이런 것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어떤 세상이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어떨까?

지금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니 말이다....

없었으면 더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금주법과 '좋아요'버튼... 뭐 이런 것 말이다... 그냥 내 생각이다... ㅎ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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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수학은 처음이야 2 - 읽다 보면 저절로 문제가 풀리는 ‘수’의 원리 이런 수학은 처음이야 2
최영기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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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하면 떠오는 게 뭐야?"

저자의 첫 질문이다.

글쎄...

난 말이다...

그냥 힘겨웠다? 어려웠다?

고3 시절 대학교에 가기 위해선 수학 시험을 잘보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랬다.

그래서 내내 수학 공부만 했던 기억이 있다. 수학의 정석... ㅋ

이제 그 시절이 다 지난 다음 아이를 위해 이 책을 본다. 꼭 아이만을 위해서는 아니라고 변명하면서... ^^

책은 시리즈의 두번째인 듯...

첫번째는 도형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 두번째인 이 책에서는 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수의 탄생이라고 해야할까? 0의 탄생, 자연수, 정수, 유리수 그리고 무리수...

유한 소수, 무한 소수, 순환 소수 그리고 실수...

일단 여기까지 말하고 있지만 허수도 있고 복소수도 있고... 아~~ 머리가...

이어지는 내용은 가우스, 파스칼, 오일러 등 여러 수학자들이 생각했던 수학 문제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 음...

내용 중에 "만약 우리의 손가락이 여덟 개라면?" 이라는 항목이 있다.

우리가 십진법을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가 양 손 합쳐 손가락이 열 개이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정말이지 손가락이 여덟 개 이거나 열두 개 또는 열여섯 개였다면? 하아~~ 정말이지 생각도 하기 싫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또 그것이 편해지기는 하겠지...

이런 것들을 보면 인류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십진법을 채택하고 그것을 꾸준하게 사용해서 지금의 우리가 이렇게 이용하고 있을 터인데 정말 잘한 선택과 결정이다라는 생각... 잘했어... 굿 잡!!

고등학교 수학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이 수학도 암기 과목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미적분이던 삼각함수던 일단 문제를 푸는 방식을 일단 외워야하고 그 외운 방법을 어떤 문제에 적용하느냐를 판단하는 것이 문제를 푸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고 해야하려나...

결국 이런 형태의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풀고 저런 형태의 문제는 저런 방식으로 적용한다는 식 말이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것이 이런 것이 수학인가? 원리와 개념은 어떤 것인지 몰라도 방법만 알면 풀리긴 하는구나...

도대체 몇 문제, 몇 개의 문제 형태를 외워야 시험을 볼 수 있을까???

대학에 가서 공업 수학과 미적분을 공부하면서는 문제를 푼다라기 보다 공학과 접목해서 어떤 상황을 방정식의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 더 문제구나 라고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뭐랄까 잘은 모르겠지만 중고등학교 수학 교육은 방향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아주 막연한 느낌이 있다.

게다가 엊저녁 딸아이의 고등학교 수학 문제 중 하나인 3차와 4차 방정식을 풀어보면서 우리나라 고등학생은 왜 이렇게까지 어려운 부분까지 공부를 해야하는 지에 대해 궁금해졌었다.

물론 답은 없고 답답함만 남았지만...

이렇게 수학이나 수와 관련된 내용을 접하다보면 떠오르는 책 하나가 '용의자 X의 헌신'이다.

그 책에서 주인공이자 용의자 X인 이시가미는 "P-NP 문제"라는 수학에서의 밀레니엄 문제를 해결하고자 매달리고 있었다.

요즘의 프로그램 개발이나 뭐 그런 다양한 분야에선 수학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런 분야도 포함되겠지?

하~~ 언제쯤 정말 수학과 친해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이 책에 한번 더 기대보련다.

한 번 더 꼼꼼하게 읽어보면 좀 친숙해지려나? 아니면 아래 문제처럼 생각조차 하기 싫어지려나?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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