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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정치적인 글쓰기 - 뼛속까지 정치적이면서도 가장 예술적인 문장들에 대해
조지 오웰 지음, 이종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조지 오웰의 정치적인 글쓰기>는 정치 비평서라기 보다는 한 작가가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읽힌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단순해보인다.
나는 왜 쓰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곧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정치적으로 쓸 수밖에 없는가.
1장 [나는 왜 쓰는가]에서 오웰은 글쓰기의 동기를 네 가지로 정리하지만, 읽는 우리는 곧 그것이 균형 잡힌 분류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차리게 된다.
자기과시나 미적 열정, 역사적 충동 역시 중요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은 정치적 목적이다.
오웰에게 정치란 정당 활동이나 선거 구호가 아니라, 세상을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려는 모든 시도가 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작가는 이미 정치 안에 들어와 있다. 다만 그것을 자각하느냐, 외면하느냐의 차이만 남는다고 생각된다.
이 지점에서 오웰이 독립노동당 가입 경험을 언급하는 대목은 단순한 이력 소개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중립적인 관찰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글쓰기 이전에 이미 한쪽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관념이 아니라 현실 속 행동이었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는 읽는 이에게도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정치적 글쓰기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위치와 시각에 대해서는 끝까지 말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회피가 아닐까 하는 질문 말이다.
4장 [정치적인 글쓰기]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날카롭게 정리한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오웰은 ‘정치적 글쓰기의 위험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정치적 글쓰기가 언제든 선전으로 타락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 위험을 이유로 언어를 흐리게 만들고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라고 말한다.
오웰이 반복해서 경고하는 것은 ‘거짓’보다 ‘모호함’이다.
정치적 언어가 병들 때, 그것은 대개 노골적인 거짓말이 아니라 의미를 비워낸 문장, 책임 주체를 지운 표현, 판단을 유예시키는 관용구의 나열 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 맥락에서 오웰이 제시한 글쓰기 규칙들, 그 중에서 특히 “뺄 수 있는 단어는 빼라”는 원칙은 단순한 문체론이 아니다.
이는 사고를 단순화하라는 주문이 아니라, 사고를 끝까지 밀어붙이라는 요구에 가깝다.
불필요한 단어를 제거한다는 것은 생각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핑계와 회피를 제거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 규칙은 저자의 또 다른 작품인 <1984>의 '신어(뉴스피크, Newspeak)'와는 정반대의 윤리와 사고를 지닌다.
신어가 사고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언어의 축소라면, 여기설 말하는 "뺄 수 있는 단어는 빼라"는 간결함은 사고와 주장을 책임 있게 만들기 위한 언어의 절제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결국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오웰이 정치적 글쓰기를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로 다룬다는 데 있다고 보인다.
그는 명료함을 미학으로 칭송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도덕적 선택으로 제시한다.
쉽게 쓰는 것은 독자를 배려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작가 스스로에게 변명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웰의 규칙들은 작가를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계속 불편하게 만든다.
<조지 오웰의 정치적인 글쓰기>를 1장과 4장을 중심으로 읽고 나면, 이 책은 하나의 주장으로 수렴된다.
정치에서 벗어난 글쓰기는 없으며, 정직함을 포기하지 않는 한 글쓰기는 언제나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오웰은 우리에게 정치적으로 쓰라고 설득하기보다 이미 정치 속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얼마나 비겁한지를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특정 이념의 옹호서라기 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하기 어려운 윤리적 질문을 남기는 그런 책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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