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피아노의 빛을 따라
피오나 매덕스 지음, 장호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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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낭만주의의 거장으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내게는 사실 낯설다.

그동안의 난 조지 윈스턴이나 유튜버인 피아니캐스트 등의 음악을 즐겨들어왔지 정통 클래식 연주자의 곡을 제대로 들어보지 않았기 때문이겠다.

오늘 책을 통해 라흐마니노프라는 사람을 만나본다.

제목이나 작곡가를 정확히 알지 못해도, 어쩌면 난 그의 음악을 이미 여러 번 들어봤을 지도 모르겠다 싶다.

영화 속에서, 광고 속에서, 혹은 누군가의 연주 영상에서 흘러나오던 그 음악은 어떤 느낌을 내게 주었을까?

영화를 본 것은 아니지만 우리 영화 <탈주>에서 구교환의 연주 (일부분만 직접 연주했다고 하던데... ^^)로 들어본 "프렐류드 op.23 no.5" 는 조금은 쓸쓸하고 격정적이면서도 그러나 동시에 지나치게 감상적이지 않은 품위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만난 라흐마니노프에 대해 이 책 <라흐마니노프, 피아노의 빛을 따라>는 바로 그 음악 뒤에 서 있던 한 인간의 삶을 조심스럽게 비춘다.

이 책은 위대한 작곡가의 업적을 찬양하는 전형적인 전기와는 조금 결이 다른 듯 싶다.

피오나 매덕스는 라흐마니노프를 ‘천재’라는 단어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좌절하며, 자기 의심 속에서 음악을 붙들었던 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특히 교향곡 1번의 실패 이후 깊은 우울에 빠졌던 시기, 그리고 그 침묵을 뚫고 다시 음악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새롭게 대하도록 만드는 듯 싶다.

그가 만들어낸 장대한 화성과 깊은 서정성은 타고난 재능의 결과이기 이전에,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선 시간의 흔적처럼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불어 인상 깊었던 하나는 그가 '피아니스트'와 '작곡가' 사이에서 겪었던 분열과 고뇌에 대한 부분이라고 해야겠다.

대중은 그의 연주에 열광했지만, 정작 본인은 연주 여행의 피로 속에서 작곡할 시간을 빼앗기는 것에 괴로워했고, 20세기 초 현대 음악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칠 때 "나는 구시대의 유물인가"라고 자문하며, 당시의 음악 경향이 실험과 해체의 방향으로 나아갈 때 그는 여전히 낭만주의의 언어를 고집했다.

하지만 저자는 그 선택을 보수성이나 한계로만 보지 않는다.

그런 점으로 인해 라흐마니노프가 늘 ‘시대에 뒤처진 작곡가’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저자는 라흐마니노프가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유행과 평가의 소음 속에서도, 그가 끝내 지키고자 했던 것은 ‘자신의 소리’였다는 것이다.

망명 이후의 삶 또한 이 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조국을 떠난 예술가로서의 고독, 성공한 연주자이면서도 작곡가로서는 늘 갈증을 느꼈던 모순된 위치는 라흐마니노프를 더욱 복합적인 인물로 만든다.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그 명성이 곧 내면의 평안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며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유독 ‘그리움’이라는 감정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이 책이 남기는 인상은 한 음악가의 삶을 이해했다는 만족감보다는, 그의 음악을 다시 듣고 싶어진다는 충동에 가깝다.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은 이제 단순히 아름다운 음악이 아니라, 한 사람이 견뎌낸 시간의 무게로 다가오는 듯 싶다.

그래서 이 책은 전기라기보다, 음악을 통해 한 인간을 이해하려는 것으로 느껴진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가 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붙잡고 있는지, 그 이유를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조심스럽게 납득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지금 영화 속에서 들려지는 "프렐류드 op.23 no.5"를 다시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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