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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토리노를 달리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7년 2월
평점 :
히가시노 게이고가 생중계하는 동계올림픽의 재미!
소설을 읽다보면 이 소설을 쓴 소설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난다. 작품 전체의 분위기나 인물을 통해서가 아닌 작가의 진짜 모습이 궁금할 때마다 그들이 쓴 산문집이나 에세이를 찾아 읽어본다. 일면식은 없어도 작품을 읽을 때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오다 보니 어느 순간 부터는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 뿐만 아니라 읽고 싶은데 도저히 글의 내용이 읽히지 않아 읽을 수 없는 작품을 만날 때는 그 책을 잠시 덮어두고 그가 쓴 산문집이 없나 찾아보고, 있으면 그것부터 먼저 본 후에 작품을 읽어본다. 그러다 보면 이해되지 않았던 그의 작법도 눈에 들어오고 동시에 그가 쓴 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주제도 다양하지만 워낙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작가라 역자의 후기에도 쓰였듯이 책을 읽고 와중에도 또다른 신간들이 나와 기함하게 만드는 작가이기도 하다. 지금도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늘 그의 작품 중에서 으뜸으로 생각하는 책이 <방황하는 칼날>이었고, 그 이후로 그가 쓴 책을 부지런히 사서 읽었지만 한창 읽을 때도 한 달에 몇 번씩 출간되는 그의 책을 따라잡기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부지런히 쫓아 읽어야지 하며 속도를 냈지만 눈깜박할 사이에 그의 책이 나오고 있으니 책을 아무리 좋아해도 이건 너무 텀이 없잖아라고 궁시렁 대면서도 그의 작품을 사곤 했다.
어느 순간 부터는 이제 속도를 초월하며 천천히 읽기로 했지만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그가 에세이를 낸다고 했다고 했을 때 오! 히가시노 게이고의 에세이는 어떤 민얼굴로 그의 면면을 바라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기대가 컸다. <꿈은 토리노를 달리고>는 책 제목처럼 그의 개인적인 에세이지만 작가로서 그의 개인적인 면을 바라보기 보다는 토리노 동계 올림픽을 히가시노 게이고와 그의 고양이인 유메키치가 인간으로 변신(?)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첫장을 펴자마자 응?하며 물음표가 가득한 멍한 얼굴로 그의 에세이를 읽었지만 이내 이 책이야 말로 정말 히가시노 게이고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모든 채널이 올림픽을 중계했고, 사람들의 관심사도 컸지만 어느 시기 부터는 각각의 날짜마다 한 방송사의 중계 때문인지 사람들의 관심사가 분산되었다. 요즘은 다양하게 올림픽 소식을 듣다보니 브라운관에서 직접 낮과 밤을 지새면서 보던 열정적인 모습이 흩어졌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나오키상 피로연 다음날 그의 고양이 유메키치와 담당 편집자인 구로코와 이탈리아 토리노로 떠난다. (참고로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은 2006년 2월 10일에 개막하여 26일에 폐막했다. 우리나라는 금6개와 은 3개, 동 2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스노보드 마니아로 잘 알려진 히가시노 게이노는 그 누구보다 활력있게 동계 올림픽을 관람한다. 컬링, 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 피겨 스케이팅등 다양한 종목을 관람하지만 오롯하게 일본인인 그의 관점에서 이야기 하다 보니 선수의 이름이나 실력을 말하는 부분에서는 동조하지 못했다. 각각의 선수들의 기량 보다더 눈여겨 본 것은 바이애슬론과 컬링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저 눈 위를, 빙판은 빠르게 달리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겨울의 스포츠를 좋아하는 히가시노는 그보다 훨씬 깊고, 정밀하게 그 스포츠를 바라보고 직접 경험하며 스포츠를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토리노 올림픽을 다녀 온 후에 그의 고양이인 유메키치가 다시 본 모습으로 돌아와 이야기하는 모습은 마치 소설 속의 한 장면을 읽는 것처럼 다가왔다. 다음에는 그의 주특기를 사용하지말고 진짜 그의 작품세계와 그의 생각들을 알 수 있는 에세이가 나왔으면 좋겠다. 더불어 이 책의 진짜 묘미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만큼이나 생생하게 전달되는 잔재미가 느껴지는 일러스트다. 곳곳에 그려진 일러스트 때문에 몇 번을 웃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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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이 전부가 아니야. 이기지 못하더라도 감동을 주는 게 스포츠야."
"정말 그럴까? 결국 메달을 따느냐 못 따느내 하는 문제이지. 이기지 못해도 감동을 주는 건 분명하지. 하지만 그건 주목받는다는 걸 전제로 할 때야. 관심 없어서 보지도 않는데 아무리 드라마틱한 사건이 일어난대도 일본인은 감동하지 않아. 애초에 어차피 모르는데 어쩌겠어." - p.69
"육상 경기와 비교하는 의견도 많아. 동계 올림픽에는 시간을 다투는 종목뿐이라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는 역동성이 없다고······."
"역동성······?"
"육상 경기도 시간을 다투지만 결국 운동회의 달리기 시합과 마찬가지야. 모두 출발선에서 달리기 시작해 먼저 들어오는 사람이 이기지. 시간은 그다음이야. 그런데 동계 종목은 스키든 스케이트든 대부분 선수가 각자 달리고 그 시간을 비교해 우승자를 결정하는 방식이거든. 이게 분위기를 띄우는 것과 관계 있다는 의견이 있어. 자 결전이다, 라는 긴박감이 없다는 거지. 음,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어."
"확실히 인간 대 인간이라기보다, 적은 시계라는 느낌이지." - p.74
겨울과 싸우며 살아간다······ 그 상징이 동계 스포츠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야생을 되찾는 일 아닐까. 겨울의 마법은 그것을 내게 알려주었는지 모른다. - p.186